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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은 동서양의 사상이 충돌하고 일제와 군사정권의 압제로부터 민중이 깨어나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사상가이자 비폭력 평화의 정신을 갖춘 주체적인 실천가이다. 그의 삶과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알 수는 없지만 요약하여 엿볼 수 있는 책을 찾던 중 알게 된 책이 박재순의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이다. 그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자신만의 신념체계로 완성한 인물이라고 스승을 기억한다.
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필자가 선생님께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올렸을 때 "하나의 물방울이 생명의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지"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연과 인간 역사와 신을 생명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깊은 생명 속에 하나님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래서 개신교의 하나님과 함석헌의 하나님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다. 유일신이자, 나와 분리된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이 개신교의 하나님이라면, 함석헌의 하나님은 나를 포함한 일원론적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온통, 큰 물줄기이며 나는 죽어 그 물줄기에 합류하는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때 ‘나’는 절대자 혹은 개인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체로서 '나'를 일반적으로 칭하는 것이기에 '내'가 길과 진리와 생명의 근원이며 길과 진리와 생명을 결정한다고 예수의 말을 일반화하였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역시 역사적 예수, 절대자로서의 예수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중들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자각하라는 메시지라고 보았다. 십자가의 예수는 신격화의 대상이 아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실천의 지침을 끌어내려는 드라마틱한 배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부활’은 후대에 덧붙여진 듯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는 부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의 아(我)가 역사적 부처를 절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을 지칭하는 의미와 상통한다.
뿐만 아니라 함석헌은 역사적 예수에게 매이는 신앙을 거부했다. 역사적 예수가 나의 죄를 대속해주는 구원자라는 정통 기독교 신앙은 ‘나의 인격적 주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믿는 타력 신앙적 구원관을 극복하고 내가 역사적, 사회적 실천의 자유로운 주체가 될 뿐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구원 주체가 된다는 자력 신앙적 구원관을 믿었다. 또한 그의 하나님은 고정불변의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동적인 존재이다. 전지전능의 절대자로 보는 신관(神觀)은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는 보수적인 역할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수도 과거와 교리 속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완성되는 존재로 그는 이해한다. 그래서 예수라는 인격은 성경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지금도 자라는 존재다. 예수와 하나님이 미완성인 것은 ‘나’라는 존재, 우리 삶과 역사가 미완성이라는 사실과 통하며, 우리 자신이 우리의 삶과 역사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이 없다는 것에 개신교 신자들은 사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한다. 절대자 신을 그렇게 좁쌀만 한 속을 가진 존재로 망가트려 놓은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만든 기적과 신성의 증명으로 자주 거론되는 오병이어의 이적도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나눔으로서 풍성해졌다는 나눔 공동체 운동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쓰인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 함석헌은 이해한다.
씨알사상으로 대변되는 함석헌의 사상은 기독교와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동서 문명을 아우르는 철학을 완성하였다 평가할 수 있다고 박대순은 기록한다. “다산은 대학자로서 성리학의 관념적 일원론에서 벗어나 경험과학적 대상으로서 자연현상인 천(天)과 궁극적 신앙 대상인 천주(天主)를 구별하고 성리학적 일원론과 선(禪) 불교의 일원론을 비판했다. 하지만 유교적 목민관의 관점에서 역사와 사회를 변혁하는 운동적 주체로 민중을 보지 못하고 애민 사상으로 민(民)을 사랑과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역사적 한계를 가진다.” 이는 민을 나라와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섬기고 받들었던 함석헌의 민중(씨알)사상과 구별된다.
그의 사상은 비록 기독교에서 시작되었지만, 독립운동과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면서 민중(씨알)을 중심에 세우는 종합적인 사상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에게 민중은 5,000년 역사 속에서 짓눌리고 빼앗기면서도 인간 생명의 본성과 민족의 얼을 간직한 존재이며 지극히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롭고 못난 것 같으나 어질고, 착한 것 같으나 위대한 존재, 모든 지혜와 문화의 원천이다. 따라서 함석헌은 씨알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씨알에게 배울 것을 강조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남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고 파괴했다면, '스스로 하는' 민중은 농사짓고 건설함으로써 평화를 이루었으며, 오랜 역사 속에서 평화적인 삶을 몸으로 익힌 씨알은 비폭력 투쟁을 통해 민족과 인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할 저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씨알만이 세계를 건질 자격이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 제 노릇을 할 때 민중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해방되고 구원된다. 민(民)이 역사와 문화의 주인일 뿐 아니라 인류를 살리는 세기의 그리스도라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민중은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이는 실로 혁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종교에도 나름의 발전이 있고 수준이 있다. 원시적 종교 형태라 할 수 있는 다신론에서 비롯된 일신론은 자신의 조상신에 대부분 기원을 둔다. 여호와도 이스라엘의 민족신이었으며,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하기에 이들의 신은 가부장적 질서의 중심이며 배타적인 인격신의 형태를 띤다. 저급한 인격신에 대한 숭배는 잘못된 신앙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련의 일부 기독교주의자들의 작금의 ‘광란’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의 하느님(天)도 각 부족, 나라의 조상신의 개념이다. 그 개념에서 군주의 덕(德)이 나오고 인간의 도(道)가 나온 것이다. 도교가 깨뜨린 파격이 이것이다. 장자는 인격신을 거부하고 자연이 근본임을 깨닫고 자연의 이치가 곧 도(道)임을 강조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그 원리 중 가장 핵심이라할 수 있다. 불교는 더 나아가 신의 개념을 부정하며 “깨달으면 모든 중생이 부처”라 말한다. 함석헌의 말처럼 부처는 구원과 천국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제 목을 자른 자”인 것이다. 함석헌의 “민중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실로 기독교의 성숙을 끌어낸 말이라 나는 생각한다. 도교의 원리에서도 도를 깨달은 철인(哲人)이 무위(無爲)의 사상으로 민중을 다스릴 것을 강조하지, 민중을 결코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구원자로 인정한 것이다.
그의 사상에는 사랑의 비폭력 정신이 있다. “내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이 되어 사람 노릇을 하려면 나에 대한 모든 폭력을 거부해야 한다.” 함석헌은 평생 폭력을 거부하고 비폭력 저항을 추구했다. 하지만 비폭력은 결코 무저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비폭력을 원칙으로 가장 치열하게 기존의 질서와 싸운 의인이었다. “상대가 내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데 싸우지 않는다면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것이다. 상대를 인간으로 대접하려면 싸워야 한다. 비폭력 투쟁은 나와 남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비폭력 투쟁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고 짐을 초월한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어차피 그들도 우리와 같은 한 물줄기, 온통 일진데 그들을 원수로 여길 이유는 없다고 본 것이다.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의 명언이 생각나는 말이다. “적을 절대 미워하지 마라. 너의 판단만 흐려질 뿐이다(Never hate your enemies. It affects your judgement).”
함석헌은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 인격, 전체"로 보았다. 세계를 인격적이고 유기체적인 전체로 보기 때문에 개체와 전체, 부분과 전체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원수도 나도 결국은 한 덩어리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죄악과 불의가 있고 죄인과 불의한 악인이 있으나 전체의 자리,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에서 보면 죄인도 악인도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원수는 없다.” 이는 성경의 원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사실, 1,000년 이상 억압과 수탈, 정치, 그리고 사회적 갈등 속에서 형성된 구약성경의 신앙 세계에서 '원수'는 엄연한 현실적 존재였다. 그러나 함석헌의 '원수'는 없다. 이는 불교에서 이야기하듯 그저 마음의 조화로 발생한 것이 원수라는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함석헌은 사상을 집대성한 학자가 아니라 실천가였고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 간 활동가였고 큰 어른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사상을 더 크게 확장하고 이어주길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박정희 정권 말기에 “누가 이 참의 바통을 받을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참을 향한 길이 개인의 삶에서 끝나지 않게 대를 이어 실천할 역군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가 비록 87년 민주항쟁의 결론이 결국은 군사정권의 형식적 변화뿐이었던 아쉬운 결과만을 목도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에 이어진 수많은 국민저항의 역사를 보았더라면 그 바통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는지를 알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