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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시간의 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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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잡지에서 이윤기 선생의 이런 글을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번역한 에코의 소설 의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를 해야만이 가능할 것인데 도저히 그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저 번역가이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
"이윤기, 시간의 눈금" 내용보기
언젠가 잡지에서 이윤기 선생의 이런 글을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번역한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를 해야만이 가능할 것인데 도저히 그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저 번역가이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말을 듣고 그가 새롭게 다가왔다. 저 자신감은 오만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투자한 시간과 땀에서 비롯된 것이렷다, 그래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써 인정한다. 꽤 읽을만한 산문집이었다. 짧은 글들을 모아둔 것이어서 메모한 부분에 짤막한 느낌만 적는다.

[인상깊은구절]
남의 말이나 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그 자리를 피해가고는 한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시비할 겨를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였다. 잡초 없는 뜰이 어디 있으랴, 나가서 내 뜰의 잡초나 뽑아야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소매 둥둥 걷고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미국에서 머물 당시, 한국 학생들 주소록에 실린 <낚시 컬럼="">을 읽고 기절초풍한 적이 있다(주소록이지만, 몇 편의 에세이가 실리는 것이 보통이다). 본 칼럼의 목적은 면학과 연구에 시달리고 있는 ‘아무개’ 대학교 한국 학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심신의 피로를 해소케 함으로써 내일의 면학과 연구를 위한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데 있다…… (중략) 내 은사 중 한 분의 글이었다면, ‘꼰대’ 들은 의례 그렇게 쓰는 것이겠거니 여기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은사가 아니었다. 새카만 나의 후배(미안하이)가 제 글을 이렇게 엶으로써 무려 5줄의 지면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쓰다 보니 벌써 청탁 받은 매수가 다 차버려 아쉬운 마음으로…… 글을 이렇게 끝맺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용도 퍽 재미있었다. 도처에 하나마나한 말과 글이 넘쳐난다. 독창적인 생각이 실린 말이나 글보다는, 정부가 공급한 관급용어, 먹물들이 남발한 관념어들이 언론의 대량 유포에 힘입어 돛대도 삿대도 없이 둥둥 떠다닌다. 하나마나한 말과 글에도 작은 쓸모가 있기는 하다. 거짓말이 그렇듯이, 하나마나한 말과 글도 시간 버는 데는 퍽 쓸모가 있다. (P.9,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中) 아, 이 대목은 심히 부끄럽다. 글을 쓸 때 막히는 이유가 보통 생각이 나지 않는 관급용어를 찾거나 어디선가 읽은듯한 먹물들이 남발한 관념어를 찾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반성할 것. 아나운서가 여대생에게 묻는다. 월드컵 경기, 어떻게 보셨어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대생만 낼 수 있는 의견을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탤런트가 맛본다. 사회자가 그 탤런트에게 음식의 맛이 어떠하더냐고 물어보는 대목에 이르면 나는 그만 아연 긴장하고 만다. “……고소하고 담백해요.” 미국인 교수들이, 한국인들 정말 사람 열 받게 한다면서 들려준 이야기. 교수: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요? 한국 학생: <고린도 전서="">에 따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게 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고, 모든 것을 견뎌내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교수: 다시 묻겠어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요? 한국 학생: 에우뤼피데스에 따르면 사랑은 “달고도 가장 쓴 것”입니다. 교수: 아니, 인용만 하지 말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말해보세요. 나는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은 거예요. 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설 수 없는가. 유목민처럼. (p.10,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中) 저 요리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적인 소감은 언제고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글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구어체 문장을 쓴다는 점이다. 그의 책은 내용이 어려운데도 술술 읽힌다. 그의 책에 ‘빌어먹을 놈’, ‘쥐둥아리를 놀려대는가’, ‘씹어제키는 김용옥’, ‘무데뽀’ 같은 속어나 비어들이 생짜로 실리는 것은 생각나는 대로 쓰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 말 쓴다고 도올을 비난하는 사람들, 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는 속어 비어에 묻어 있는, 쓴 이의 ‘껍진껍진한 느낌’까지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p.13, 형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中) 이 사람의 얘기가 내가 아직 초단도 못 되는 이유이다. 어쩌면 인터넷이라는 것이 초단 띠를 매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껍진껍진한 느낌’이란 말이 오랫동안 입에 맴돈다. 나는 술을 좋아해서 자주 또 많이 마신다. 하지만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 보다는 ‘속닥한 자리’를 더 좋아한다. 자작은 ‘속닥함’의 꽃이다. 나는 ‘후래자 삼배’라고 해서, 늦게 당도한 술꾼에게 막무가내로 석 잔을 내리 마시게 함으로써, 그 술자리 모든 참석자들의 취한 정도를 순식간에 평준화시키는 악습을 싫어한다. 열외 없이 함께 망가지자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p.15, 후래자 삼배의 심리학 中) 유난히 술을 많이 권하는 편이다. 자제해야겠다. 사실은 덜 취하고 맛이 가고 이런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술자리가 더 재미있는 법인데. 나의 경우 대작의 목적은 대화이지 술 자체가 아니다. 술 자체라면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술맛 떨어진다’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떨어지는 것은 함께 마시는 사람 맛이지 술맛이 아니다. 한 친구로부터, 박 아무개와는 새벽 두 시까지 마셨다고 하면서 나하고는 초저녁인데 왜 벌써 가려고 해, 너 사람 차별하느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친구에게라면 이태백의 다음 시 한 구절 들려줄 것까지도 없다. 내 취해서 잠들고 싶어하면 그대는 또 떠날테지 내일 아침에도 술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소 (p.16, 후래자 삼배의 심리학 中) 나는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술맛이 간절하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제격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실 수도 있고 TV를 보면서 마실 수도 있다. 사람과 술을 마시는 것은 역시 대화를 위한 것이다.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대화인 것처럼. “나는 당신의 종교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동안 교리 논쟁을 벌이던 두 학자, 끝내 종교 전쟁은 벌이지는 않았다. 대신, 당신의 종교를 좀 더 알고 싶은데 혹시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추천해줄 수 있느냐, 서로 이런 말을 주고 받고, 추천서 메모를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불교도가 한 농담,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의 천국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천국 구경을 한사코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나이를 먹고 뭔가를 배워도 저런 넉넉함을 가질 수 없다면 절망해야겠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노래의 한 구절이 사라져서 몇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런 현상은 한 음유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물이 지하로 흐르다 다시 솟아오르듯 다른 시인에 의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사시의 조각들은 이미 몇 년 전 시체가 썩어버린 음유시인의 무덤으로부터 땅 표면의 단단한 껍질을 꿰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 (이스마엘 카다레, 박철화 옮김, 문학동네) (p.40,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中) 모든 것은 반복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데, 천지창조 이래 새로운 것도 없다. 황지우 시인이 놀랄 만한 말 한마디를 툭 내뱉은 일이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 한영희 문인사진집 <작가> 서문 <선골도풍(仙骨道風) 이콘=""> (p.41,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中) 이런 깨달음이랄까 철학은 늙어야만 가능한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라고, 또 쓰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거 참 슬픈 일이겠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것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들은 아무 울림도 지어내지 못했다. 이거 혹시 ‘길 가르쳐주기’와 비슷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몇 세대를 한 곳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에게 시골 길을 물으면 가르쳐주는 내용이 지극히 막연하다. 그 시골 사람들에게는, 객관화시키기 어려울 만큼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작품도 비슷할 것 같다. 작품의 분위기가 작가 자신에게 너무 낯익은 풍경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영되어 있는 작가의 미의식은 편애의 산물일 가능성조차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글들을 많이 썼다. 그런 글들을 쓰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는 했다. (p.55, 노래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中) 내가 쓰고자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에게만 낯익은 풍경이요, 편애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옛날 조나라 서울인 한단 사람들 걸음걸이는 보기 좋기로 소문나 있었던 모양인데, 어느 실없는 연나라 사람이, 그 걸음걸이를 배우러 갔다가 제대로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제 연나라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하는 수 없이 기어서 돌아왔다…… 이런 옛 이야기가 있다. 소설 쓰는 일을 걸음걸이에 견주면 내 보법이 그 짝이다.” 이렇게 쓰고도 문제는 ‘보법’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1993년 미국에서 결심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 붙여 보기(Naming the unnamable)’로 결심했다. ‘보법’을 까맣게 잊은 채 원고지 6천 장을 썼지만 역시 생멱 따는 소리만 낸 것으로 판명되었다. 1995년부터는 중단편에 매달렸다. 초심의 보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소설가는 시대의 스승이 되어 세상을 향하여 뭔가를 가르치는 소리를 마구 해야 하는 줄 알았음에 분명하다. 한 문학평론가로부터 따뜻한 비아냥을 집중적으로 많이 받았다. “당신의 소설에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배우는 것도) 소설 읽는 재미의 하나지만 배우는 일이 잦은 소설은 아무래도 좀 옛날 소설 같다.” “누군가 설법을 시도하고 소설가가 그 설법을 대필하고 있는 것일까?” (p.58, 노래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中)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 붙여 보기’ 저거 아주 멋진 과제이다. 이미지로 풀 자신이 없다면 저걸 잘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사람을 그려내는 과정을 좀 보라지. 이미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그런 문장이 아니던가. 1957년 10월 9일 청명한 날 아침. 비원의 큰 대문 앞 광장에 중학교 교복차림의 한 소녀가 노란 탱자 한 알을 손에 들고 혼자 서 있다. 텅 빈 광장의 너무 밝은 아침 햇살 속에 오히려 빛의 안개가 서린 듯하여 나는 그 소녀의 얼굴을 잘 보지 못한다. 그의 이름도 모른다. 열다섯 살의 나, 소녀를 등 뒤에 남겨두고 비원의 뜰 안으로 들어간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빛, 텅 빈 광장, 투명한 공기, 큰 대문의 소슬한 추녀와 더불어 그 소녀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그 풍경은 나만의 것이다. 소녀 자신도 그 풍경을 보지는 못했다. 그 때 이후 문학은 나의 축복이다. - <한눈팔기와 글쓰기="">(김화영)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저 감동에 떨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인터넷에 오르는 글들이 우리말을 파괴한다고 걱정들이 태산이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엄숙주의의 굴레를 벗고 청산유수로 글을 토해낸다. 화가가 쓴 글, 가수가 쓴 글이 인문학자가 쓴 글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경우를 자주 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나는 문어가 구어화하고 있는 것을 주목한다. ‘이메일’을 많은 사람들이 쓴다는 기분으로 쓰지 않고 말한다는 기분으로 쓴다. 그래서 쓴다는 강박관념, 곧 생각의 흘게가 풀리면서 말이 술술 나오는 것 같다. 우리말은, 우리 문학은 그 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일 것 같다. 김화영 교수가 한 일간지에 쓴, <시가 있는="" 아침="">의 짧은 글들을 기억하시는지. 이 근엄한 문학평론가가 쓴, 내가 소설에다 실험하고 싶어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기억하시는지. “야, 요거 참 삼삼한 시네. 그런데 왜 삼삼하냐고 누가 물으면 뺨 맞은 듯 깜빡, 몰라져버리네.” “여기까지는 어떻게 시인의 흉내를 내겠는데…… 야, 단수 한번 높구나.” “그러니까 무슨 분위기 좋은 찻집 같은 데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단 말이지…… 농담 따먹기만 하고 있단 말이지…… 그만 앞에 놓인 찻잔을 엎질렀단 말이지…… 그런데 정작 쏟아진 것은 이쪽 마음이다 이거지……” (p.61, 야, 단수 한번 높구나 中) 젠장, 정말 단수 한번 높구나.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인물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가는 양상이 신화적 영웅의 행적과 비슷해질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이 경우, 나는 쫓아다니면서 관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적 영웅 이야기는 대체로 ‘영웅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패턴을 따른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에 고난을 당하고…… 어느 날 문득 자기 존재의 본질을 만나게 되고……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되고…… 간난신고 끝에 뜻을 이루고…… 자기 인생의 정점에서 슬픈 순교자가 되거나, 오만한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한다는 것이다. (중략)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영웅 중에는 장차 순교자가 되는 긍정적인 영웅이 있고, 장차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정점에서 파멸하는 부정적인 영웅이 있다.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는, ‘어제의 영웅이 오늘 자신을 십자가에 달지 못하면 내일은 폭군이 된다’는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영웅은 참 힘들겠다. 한 영웅이 자기 인생의 정점에 오르면, 영웅 자신 아니면 그가 속해 있는 모듬살이 민중은 하나의 고질병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명은 그리스 말로 ‘휘브리스’, 번역하면 ‘오만’이다. 캠벨은 영웅만 이 병을 앓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중도 이 병을 앓는 것 같다. 민중이 이 병에 걸리면 영웅은 순교자가 되고, 영웅이 이 병에 걸리면 민중은 온갖 무리수가 다 동원되는 폭군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 같다. (p.75, 폭군과 순교자에 대하여 中) 이 말은 이윤기 선생이 노무현에게 띄우고 싶은 편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의 성격은 단언컨대 연서(戀書)일 것이다. 실수하면 마음이 상처를 입는다. 상처는 아프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혹은 정신은 상처 받아 보지 않고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다(No pain, no gain). 나는 말이 좀 많은 편이어서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설 때의 외로움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p.95, 말로써 말이 많으니 中) 요전에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다. 진심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까지 겪고 있는 그로 인한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외로움이다. 교육이 나에게 베푼 은혜 중 가장 큰 것은 그것이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나의 말이 아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다. 나 같으면, 교육이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해악은 그것이 여행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쳐 말하겠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잘 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 밖에서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p.106, 아탈리여, 그대가 옳다 中) 여행이라는 것이 시도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두렵다. 교육 탓인가. 나는 세기 말이 다 되어서야 그(임옥상)가 이야기(mythos)의 힘을 세우려는 사람, 이야기의 힘을 복원하려는 사람,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speaks otherwise)’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는 무엇인가? 신화의 형제인 알레고리아(allegoria)가 아닌가? ‘여느 방식과는 다르게 한 이야기(speech made otherwise than one seems to speak)’ 아닌가?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것을 뒷심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는 신화(myth)의 요체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제도권 미술의 신화를 깨뜨리고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를 통해서 새로운 신화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그만둘 수 없다. (p.121, 이것은 꿈의 날개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中) 전쟁 영화에, 소리가 일체 삽입되지 않은 슬로모션 화면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로켓포와 수류탄이 몇 발 터지면 병사들의 귀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p.139, 머나먼 송바 강, 가까운 혼바 산 中)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전쟁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던 것 같군. 지금 생각나는 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해변 상륙 씬. 나는 이문구 소설의 중독자다. 나는 일간신문에 서양 신화 이야기를 1년 동안 주간 연재한 적이 있다. 자랑스럽게 여기거니와 나는 1년 내내 담당 기자를 곤란하게 만든 일이 거의 없다.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딱 한 번 있었다. 원고가 잘 풀리지 않아서 산보 나갔다가 이문구의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사들고 들어와 몇 줄을 읽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담당 가지가 원고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독촉 전화를 걸어 투덜댔다. 나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펼치는 실수를 했노라고 고백했다. 담당 기자의 반응은 이랬다.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어요? 거기서 빠져나와 원고 쓰기는 틀렸네요? 결국 밤새워 원고 써서 보내야 했다. (p.165, 문구 형님 中) 젠장, 이 책도 결국 읽게 되겠구나.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뜻이 아니다. 조금 비워낸 자만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 같은 것이다. 나는 꽤 긴 외국살이를 통해 절제가 삶을 조금씩 비워내고 그 비워진 부분이 여유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에 놀라고는 한다. 능력의 가동률이 너무 높아 보이는 것이다. 엔진의 크기에 견주어 자동차 껍데기가 너무 크고 무거워 오르막길 오를 때마다 가르릉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제 넘는 자리에서는 잘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들딸에게도 이렇게 가르친다. 절제하라, 절제라는 말조차도! (p.181, 나비 넥타이 中) 절제하라, 절제하라는 말조차도! 신문사의 신춘문예 시상식, 문학상 시상식, 무수한 출판사의 망년회, 사무실 이전 기념 모임, 출판 기념회, 수도 없다. 어쩌다 한번씩 나가서 반가운 얼굴 대하고 ‘호젓’하다는 전제 아래 함께 마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떠올려 보는 전날 밤의 술자리는 참담하다. ‘임의로움’과 ‘무례’, ‘진실 말하기’와 ‘술주정’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서 나는 되도록 혼자 놀기로 하고 있다. (p.188) 나는 혼자서 밥도 잘 사먹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영화나 콘서트도 혼자 잘 보러 다닌다. 그러던 것이 그만 팔자에도 없이 누군가에게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몇 번이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영화는 보지 못했다. 혼자서도 잘 보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영화보다는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해오던 것이 가장 편한 법이다. 아, 이 섬뜩한 예감들을 어쩌나! 청소년 시절이던 60년대, 나는 일본 문학을 퍽 좋아했다. 학교 공부는 팽개쳐둔 채 일본어를 배워 몇몇 일본 작가들 작품은 일본어로 읽기도 했다. <라쇼몽>의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사양>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 <유키구니>로 유명한 노벨 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리고 <킨가쿠지>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한꺼번에 실린 책이 있었다. <4인집>이었던가? 읽고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아름다웠다.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있을 당시, 아쿠다가와와 다자이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가와바타와 미시마는 일본에서 왕성하게 쓰고 있던 소설가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가와바타의 미학에서는 거의 피 냄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섬세한 떨림이, 미시마의 애국심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과 낭자한 선혈이 느껴졌다. 나는 이 두 작가 역시 천수를 누리기 힘들 것임을 예감했다. 참전 군인 노릇하던 1971년과 1972년에도 나는 베트남에서 가와바타와 미시마의 소설들을 읽었다. 아름다움에 숨이 막했다. 1971년 미시마가 할복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듬 해에는 가와바타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책 편집자도 피 냄새,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p.190, 아름다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中) 박주택 교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낭만주의자는 결국 폐병으로 죽기 마련이라고. 지나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그런데 그 죽음도 왠지 아름다워 보인다. 슬픔의 끝, 아름다움의 끝, 끝의 슬픔, 끝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나는 김소월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는 너무 슬프다.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소월이, 공을 끝까지 보면서 치는 정교한 타자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내가 만일에 김소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가 천수를 누리지 못할 것임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울리는 절창에서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종말을 예감한다. 하지만 절창은 거기에서만 꽃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p.193, 아름다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中) 얼마전 지하철 개찰구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 2="">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메인 카피가 ‘김훈의 절창’이어서 광고를 만든 이에게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절창을 꽃피우면 죽어야 한다는데 정말 그 정도인가?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남유럽의 불볕더위에, 넉 달 동안이나 카메라 수발을 들면서 만고 고생을 했던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가 그리워.” 그리스는 참 이상한 나라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길을 물으면 자기네들끼리 열심히, 그것도 고성으로 토론하고는 결론을 일러준다. 그런데 가보면 없다, 잘못 가르쳐준 것이다.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다 답이 다르다. 상당수의 그리스 노인들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십자가를 보면 성호를 긋는다. 그러다가도 내가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자리를 뜨면 재빨리 내 아내 옆으로 옮겨 앉고는 수작을 건다. 한두 번 당해본 봉변이 아니다. 독실한 동방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살짝살짝 하는 거짓말은 용서가 된단다. 운전기사는 택시 요금 바가지를 예사로 씌운다. 그런데도 모두들 무지하게 친절하다. 자신이 베푼 친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발칵 화를 낼만큼 친절하다. (p.219, 그리스가 그리워 中) 가고 싶다, 그리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일찍이 금치산 선고가 내려진, 그래서 지금은 조금도 유효하지 않은 고대 신화에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묻고는 한다. 인류의 문학 유산이 중세와 근•현대를 지나면서 얼마나 풍부해졌는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천 년 2천 년 전의 이야기에 매달려 있느냐고 묻고는 한다. 역사의 날빛으로 나오지 못한 이야기는 달빛에 젖어 신화가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날빛을 받아 역사가 된 이야기보다 나는 달빛에 젖어서 신화가 된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p.236, 오래된 미래 中) 독신이었던 그(임길진)는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술 좋아하는 내가 마시면 흥을 돋우어주는 데는 선수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내가 피우고 있으면,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한 대 주쇼, 이러고는 연달아 몇 대를 빼앗아 피우기도 했다. 내가, 그러다 중독되시면 어쩌려고요, 했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애연 없는데 금연 없고, 집착 없는데 해탈 없는 법이지요.” (p.240,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 中)
k*********6 2005.04.1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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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향한 존경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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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홀딱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중용의 미덕을 아는 자이고(설마), 그저 그렇게 말한다면 열정이 옅은 탓이다. 책읽기에 있어서도 역사 소설이나 전기를 특별히 좋아하긴 하지만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도 아니다.  매니아가 되기엔 내 안엔 뭔가가 부족하다.    난 수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인물이 쓴 수필 책도 두권째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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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홀딱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중용의 미덕을 아는 자이고(설마), 그저 그렇게 말한다면 열정이 옅은 탓이다. 책읽기에 있어서도 역사 소설이나 전기를 특별히 좋아하긴 하지만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도 아니다.  매니아가 되기엔 내 안엔 뭔가가 부족하다.    난 수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인물이 쓴 수필 책도 두권째면 어 이거 재탕이잖아 똑같은 소리 또하네 하며 탐탁치 않아 한다. 이윤기 님의 수필집은 이 책이 벌써 세번째이다. 그만큼 난 이윤기 님이 좋고 존경스럽다. 읽어도 읽어도 재탕 삼탕 해도 울궈먹을게 있는 글이 바로 그의 글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나랑 생각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말이 귀 기울일만 하다고 느껴야 하고, 그의 말에 설득당할 수 있어야 하고, 어쩜 나랑 그리 생각이 비슷하냐고 맞장구 칠만해야 좋아진다. 다른 모든 글에서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특히 방생매라는 글에서 그랬다. (방생매는 매의 일종이 아니라 분재인 매화나무를 땅에 심어놓고 일컫는 말이다.) 난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만 분재는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화분에 가둬놓는 것도 모자라 생장점을 자르고 철사로 묶어 틀을 만들어내고 최소한의 영양만 공급하는 분재는 지금이라도 거둬야 할 인간의 못된 가학취미 중 하나다라는게 내 생각이다. 근데 이런 생각에 별로 사람들이 공감해 주질 않더라. 근데 이윤기 님이 대신 해 준다. 어찌나 반가운지...   유명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이 아는 체 하는 게 싫다고 하신다. 아주 오래 전에 '김수미'씨를 본 적이 있다. 전원일기를 통해 너무나 친숙해진 배우다. 눈길이 마주치자 절로 '안녕하세요'가 나온다. 그쪽이 날 모른다는 생각은 못하고 내가 그녀를 안다는 생각만 순식간에 들었다. 아는 사람을 모른 척 하면 안되지 않는가 만약 길거리에서 우연히라도 이윤기 님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드릴 것 같다. 그가 날 모른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난 그의 아내와 자식과 친구가 누군지도 알고, 그의 멋진 생각과 삶이 존경스럽다. 그러니 내가 그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고난 소심증과 부끄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행여라도 만나면 입이 쫙 벌어져라 좋아하면서 기어이 아는 척이라도 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의 팬이다.   묘목을 심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 채마밭의 잡초를 뽑느라 그 좋아하는 여행을 여름엔 하지 않는, 즐기기만 하지 않고 후손이 즐기게 하기 위해 노동을 멈출 수 없다는 이윤기님 난 그를 향한 존경을 멈출 수 없고, 그의 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n****5 2006.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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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사유의 폭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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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열림원에서 펴내면서 편집자가 넣었을 듯한 선전 문구지만 ****21세기형 유목민을 꿈꾸는 눈부신 사유의 폭팔******* 좀 표현이 그렇지만 "사유"란 정적인 것인데 눈부신 사유의 폭팔이라니....--; 읽으면서 난 그 사유의 폭팔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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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열림원에서 펴내면서 편집자가 넣었을 듯한 선전 문구지만 ****21세기형 유목민을 꿈꾸는 눈부신 사유의 폭팔******* 좀 표현이 그렇지만 "사유"란 정적인 것인데 눈부신 사유의 폭팔이라니....--; 읽으면서 난 그 사유의 폭팔을 경험한다.... 다르게 말하면 나와 코드가 맞는 책이라고 해야 되나? 코드,,,그렇다... 마치 콘센트가 연결되어 ON상태가 되어 오디오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어둡던 방에 불이 들어오는 듯이 느낌이 내 맘에, 머리에, 들어 오는 듯한 느낌.... 아주 격렬한 단어나 문장은 별루 없다. 평이하기 까지한 단어로 이루어진 에세이같은 산문집일뿐인데... 읽는 내내 참 행복했다. 피천득님의 숲길을 걷는 듯한 고즈넉한 글 맛과도 다른... 법정스님의 초월한 듯한, 비어있는 마음의 글과는 또 다른 농축된 에너지가 가득찬... 그러면서도 훨 훨..비우면서 또 자꾸 채우는 사유의 흔적들을 따라가면서 나 자신의 *시간의 눈금*들은 어디쯤 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주저없이 별 다섯개 ! 세상은 넓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너무나 많다...

[인상깊은구절]
*******변하지 않는 것은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고 "장차 올 과거"이기도 하다. 예스터 -모로 (yester-morrow) 어제와 내일이 혼재하는 시제를 나는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살면서 어제와 내일의 이음새가 되고 싶어한다.******
g*********o 2006.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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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이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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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믿고 따를 만한 멘토를 마음속에 둘 수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그 정신적 스승이 옆에 있건, 책 속에 있건, 아니면 자연속의 홀로선 나무 한 그루이던 간에 말이다. 이런 이유로, 건강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맑아지고 유쾌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간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를 통해 膾炙 되는 작가인지라 자신의 역사, 이야기는 들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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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믿고 따를 만한 멘토를 마음속에 둘 수 있다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그 정신적 스승이 옆에 있건, 책 속에 있건, 아니면 자연속의 홀로선 나무 한 그루이던 간에 말이다. 이런 이유로, 건강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맑아지고 유쾌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간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를 통해 膾炙 되는 작가인지라 자신의 역사,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고, 그런 이유로 작가의 내면세계나 성장과정 등의 지식이 없었던 터라 정작 그의 글의 始原的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작가건 자신의 내면을 풀어놓을 수필형식의 글을 조금은 써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도, 번역도 좋지만 그런 글들은 결국 작가 자신의 사상을 포장한 것이어서 작가 개인의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참으로 마음이 떨리는 감동이 있었다, 적어도 내겐. 현학적이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고, 마치 친구들끼리 전화로 일상을 이야기 하듯이 편하게 써내려간, 아니면 퇴근길 가족을 향해 걸으며 느끼는 행복감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무척 감사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어린시절과 이제 회갑이 된 작가의 현재의 삶의 방식에 관해서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간 글맛이 내겐 참 편안함을 주었다. 평생 활자를 친구삼아, 아니 활자는 그의 온갖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핏줄이자 생명의 피였고, 그를 통해 그는 세상과의 연결을 시도해왔다. 때로는 울고 웃고 고민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그를 평생 살아 숨쉬도록 했던 활자는 이제 우주의 활자인 나무와 자연에 그를 데려다 주었고, 그래서 그는 마냥 신이 났던가 보다. 글을 읽는 내내 의문하나를 잡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세상에 대한 애틋한 시선을 가지도록 만들었을까? 꽤나 글을 쓴다는 이들보다 이렇게 쉽고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글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아니,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발전했다.... 유년시절의 추억은 간직하고, 아픔은 이겨내고, 늘 자연과의 동화된 시각을 갖고 세상을 느끼기를 즐기는 이들... 거기다 항상 인간과 세상과 자연을 이해하게 해주는 많은 독서.... 앗! 작가의 글속에서 나의 생각이 들켜버린 기분이 들어, 그는 마치 나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활자가 있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다시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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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서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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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 나들이는 실패인 줄 알았지만, 이윤기의 산문집을 집어들고부터는 그런 생각을 던져버렸다. 책장 넘어가는 걸 아까워하면서 책 읽기란 얼마만이었던가. 가방에 책 한 권 넣어들고 다녔던 것도, 그 한권의 무게조차 버거워했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얼마만이란 말인가.(세친구 안연홍 버전, "아, 놀라워라") '시간의 눈금'이 명저라서가 아니라, 천시와 지시와 인시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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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점 나들이는 실패인 줄 알았지만, 이윤기의 산문집을 집어들고부터는 그런 생각을 던져버렸다. 책장 넘어가는 걸 아까워하면서 책 읽기란 얼마만이었던가. 가방에 책 한 권 넣어들고 다녔던 것도, 그 한권의 무게조차 버거워했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얼마만이란 말인가.(세친구 안연홍 버전, "아, 놀라워라") '시간의 눈금'이 명저라서가 아니라, 천시와 지시와 인시가 모두 맞아떨어진, 우연한 2005년의 어느 상큼한 시간이었겠지만, 그러거나 저러거나. 고대 신화에 관심많은, 유명 번역가인 줄만 알았던 이윤기가 이미 소설가였다는 사실은, 이미 두어 해 전 친구를 통해 인지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부러 이윤기의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를 빌어 '매력적인 산문가'라는 생각은 강력하게 갖게 됐다. 그리고... 구리빛에 주름이 가득가득, 백발의 아저씨는 외관도 그럴 듯. 불혹에 이어 지천명을 넘긴 이 사람은, 아마도, 품격있게 입말을 글말로 구사할 줄 아는 듯.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글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구어체 문장을 쓴다는 점이다. 그의 책은 내용이 어려운데도 술술 읽힌다. 그의 책에 '빌어먹을 놈', '쥐둥아리를 놀려대는가','씹어제키는 김용옥','무데뽀'같은 속어나 비어들이 생짜로 실리는 것은 생각나는 대로 쓰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 말 쓴다고 도올을 비난하는 사람들, 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는 속어 비어에 묻어 있는, 쓴 이의 '껍진껍진한 느낌'까지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형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가운데... 옮기고 나니, 생각보단 덜 그럴 듯하다. 젠장. 다른 더 그럴 듯한 게 있다고.
p******9 2005.09.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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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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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신화학자 이윤기씨의 산문집 <시간의 눈금>은 자신의 ‘전공’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이야기, 역시 신화의 현장을 찾아 떠난 몽골 초원의 경험, 젊은 시절 복무했던 베트남 방문기, 최근 들어 열중하고 있는 나무 심는 이야기 등이 두루 섞여 있다. 나라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특유의 감칠맛 나는 입담에 얹혀져 있다. 산문집 전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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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신화학자 이윤기씨의 산문집 <시간의 눈금>은 자신의 ‘전공’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이야기, 역시 신화의 현장을 찾아 떠난 몽골 초원의 경험, 젊은 시절 복무했던 베트남 방문기, 최근 들어 열중하고 있는 나무 심는 이야기 등이 두루 섞여 있다. 나라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특유의 감칠맛 나는 입담에 얹혀져 있다. 산문집 전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회향에의 의지’라 할 만한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책들로 성가를 높인 그는 이제 우리 신화의 원형을 간직한 몽골로 ‘시원(始原)’을 찾아 가는 여행에 나선다. 젊은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전투에 임해야 했던 베트남을 찾아가 피해자끼리의 화해를 모색하고자 한다. 여러 나라의 멋진 경치와 맛난 음식을 두루 거친 뒤 이제 그는 고향의 선산이 가장 좋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그것이 가장 신화적인 태도이기도 할 터이다.

 

산문집에 엮인 글 50여 편이 드러내는 다양함은 결국 몇 가지 주요 코드들의 변주일 뿐인데 이 주요 코드들이란 신화, 여행, 언어 그리고 문학이다. 따라서 이 산문집을 읽는 행위는 독자들을 두 가지 길로 안내한다. 하나는 시간을 가로질러 먼 신화와 공간을 가로질러 타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포용성을 보 여주는 작가 이윤기가 조금은 자유롭고 느슨하게 들려주는 신화, 여행, 언어와 문학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윤 기라는 작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요소들이 란 결국 산문집에 드러난 주요 코드들의 반듯한 조합이다. 작가 이윤기를 구성하는 이 요소들은 각각 글에 따로따로 떨어져 나오기보다는 서로 뒤섞이면서 얼굴을 내미는데 그 시작은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자크 아탈리가 새천년은 유목민의 시대라 고 정의하기 훨씬 이전, 청소년기 때부터 자신이 떠돌 운명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도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하는 것도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그는 산문집 전체에 몽골로, 중국으로, 터키로,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미국으로 떠나고 머문 기록들을 풀어놓았다.

 

그는 우리 시대 유목민의 한 전범이 아니던가. 말(馬)에서 내려 서면 땅 멀미를 할 것 같던 그이지 않던가. 그런 그가 숲을 가꾼다니, 그러니, 어느새 7권째에 이른 그의 이 낯선 산문집을, 존재 부정으로도 들리는 이율배반적 고차원 함수의 문제집이자 해설서라고 해도 과히 무리는 아니지 싶다. 이번 책에는 과거시제로 쓰여진 것들이 유달리 많다. 여기저기 다닌 끝에 눈 앞에 아른거리는 잔상들을 움켜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오래 침전된 것들로 쓴 것 같다는 인상이다. 10여 년 전 미국 생활이며, 30여 년 전 베트남 참전 경험, 유년의 고향에서 겪은 일, 청년기의 독서 편력 등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의 사유의 모태라고 짐작되는 신화적ㆍ고고학적 과거와는 또 다르다. 기록된 과거가 아니라 기억된 과거, 그래서 훨씬 아련하게 실감나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그의 여행, 신화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언 어에 대한 타고난 감각과 언어의 뿌리를 캐고 올라가는 관심이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알아야 한 다는 생각에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너덧살 무렵 천자문을 떼고 조선 왕조시대의 초중급 한문서적을 읽었고, 중학교 겨울부터 일본어를 독학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일본어로 읽었다고 하니 이 명번역자는 언어에 대해서 만큼은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런 그는 지금도 여행지에 서 그곳 말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뿌리를 캐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여행과 신화와 언어에 대한 몰입과 관심 자체가 결국 그의 글, 그의 문학일 수밖에 없는데 그는 이번 산문집 속 에 따로 자신이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 놓았다. 이와 함께 가족이야기, 책이야기, 그림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들도 소소하게 들려준다.

 

 

s****j 2007.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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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님, 제가 존경하는 거 아시죠?
"이윤기님, 제가 존경하는 거 아시죠?" 내용보기
넉넉함이 있고, 인문학적 성찰이 있고, 사람들 사이의 정도 느낄 수 있는 책, 이윤기가 쓴 에세이집 <시간의 눈금>을 읽고 난 소감이다. 하지만 난 책을 읽으면서 책 자체의 재미보다 저자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가는 걸 느낀다. 그가 멋진 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표작인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가 아니라 <진홍글씨>였다. 어느 여성분은 “책을 덮는 순간 ‘아~(저자
"이윤기님, 제가 존경하는 거 아시죠?" 내용보기
 

넉넉함이 있고, 인문학적 성찰이 있고, 사람들 사이의 정도 느낄 수 있는 책, 이윤기가 쓴 에세이집 <시간의 눈금>을 읽고 난 소감이다. 하지만 난 책을 읽으면서 책 자체의 재미보다 저자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가는 걸 느낀다.


그가 멋진 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표작인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가 아니라 <진홍글씨>였다. 어느 여성분은 “책을 덮는 순간 ‘아~(저자가) 남자였구나’라고 할 정도로 여성의 감정을 잘 나타냈다”고 리뷰를 쓴 바 있는데, 그 책은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멋진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남성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주량이 딸리는 여성에게 술을 권하는 가학취미를 좋아하지 않는다(16쪽).”

내가 올림픽을 찬양하지 않는 것은 올림픽에서 남성우월주의의 황혼을, 우상의 황혼을 보기 때문이다(199쪽).”

“나는 딸에게,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딸은 지금까지만 해도 부모를 충분히 행복하게 했기 때문이다(93쪽).”

내가 아는 어느 20대 여성분이 나이 많은 남자와 사귀는 건 끔찍하게 싫지만, 이윤기만은 예외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나보다. 중1 때 벌써 가정교사로 들어가 그집에 있는 책을 다 읽어버렸고, 중2 때는 도서관 사서를 하며 책을 원없이 읽었다. 그가 일본어를 배운 것도 사실은 다자이 오사무 같은 일본 작가를 섭렵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다음 대목은 그의 책 사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책을 다루는 프로에서 연락이 왔다...나는 TV 출연을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못나가겠다고 했더니 저쪽에서 그랬다. 당신네들 자꾸 이러면 책 다루는 이 프로, 다음 편성 때 잘릴지도 모른다! 어 뜨거라 싶어서 나가겠노라고 했다.(178쪽).”


가까이서 봤을 때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윤기는 예외일 것 같다. 안타까운 건 그가 점점 나이를 먹는다는 것. 책 제목으로 택한 시간의 눈금은 이런 내용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의 할아버지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버지뻘이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거의 동년배다. 이 시간의 눈금, 참 서글프다(116쪽).”

나이가 들어도 그가 계속 멋질 건 알지만, 나 역시 서글프다. 이윤기님, 건강하세요!


b*****i 2007.02.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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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신문의 북 섹션이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마침 아내와 외출했다가 서점에 갈 일이 생겨 이 책을 찾았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은 되어 있는데 진열된 것이 없어서 한참을 찾았다.  결국 찾아낸 곳은 포장도 풀지 않고 진열을 기다리고 있는 새 책 더미에서 였다.   토요일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 중엔가 끝을 냈다.  아무래도 산문집이니까 잘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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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신문의 북 섹션이 이 책이 나온 것을 보았다.  마침 아내와 외출했다가 서점에 갈 일이 생겨 이 책을 찾았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은 되어 있는데 진열된 것이 없어서 한참을 찾았다.  결국 찾아낸 곳은 포장도 풀지 않고 진열을 기다리고 있는 새 책 더미에서 였다.   토요일 오후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 중엔가 끝을 냈다.  아무래도 산문집이니까 잘 넘어 갔다.   잘 넘어가는 중에서도 곱 씹어 보고 싶은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그 쉽게 넘어갈 수 없었던 대목이라는 것이 대단한 메시지나 담론은 아니다.  요즘 인기 있는 저자인 이 윤기도 보통 사람들과 같은 고민이 있다거나, 그 필력있는 저자가 직업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 같은 것이다.   그가 글쓰기에 대해 한 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옳거니.  이제 알았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이 잘 안 될때가 있다.  그게 바로 글을 통해 잘난 척 하려는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생각도 짧은데 고민도 하지 않고 말하려니 말하는 제 마음도 그것을 알고 잘난 척 하려는 것인가 보다.    말에 대해 이 윤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말이 좀 많은 편이어서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설 때의 외로움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설 때 외롭다는 그의 말이 꽂힌다.  쓸데 없는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 상처를 입고, 상처 입은 사람은 말한 사람에게서 멀어져 가니 외로울 수 밖에.  어른들이 '말을 아끼라'고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것인가 보다.  돌아 보니 말은 아끼고 글은 아끼지 말라는 결론인가.   사족.  이 윤기가 가수 조 영남을 '영남이 형'이라고 불렀다는 것.  가수 이 문세와 설 운도가 동갑내기 친구라는 것과 비슷한 관계인가.
c******k 2005.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口開神氣散 舌動是非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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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설 수 없는가. 유목민처럼" 2cm 두께의 책을 겨우 두 페이지 읽었을 뿐인데 그가 던져준 화두는 직구로 내게 날아와 꽂혔다. 인상깊은 구절을 옮기라고 한다면 족히 이 책 반권은 여기에 옮겨 적어야 한다. 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쓰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신화 이야기가 안타깝긴 하다. 신화 이야기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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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설 수 없는가. 유목민처럼" 2cm 두께의 책을 겨우 두 페이지 읽었을 뿐인데 그가 던져준 화두는 직구로 내게 날아와 꽂혔다. 인상깊은 구절을 옮기라고 한다면 족히 이 책 반권은 여기에 옮겨 적어야 한다. 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쓰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신화 이야기가 안타깝긴 하다. 신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나는 아무래도 이제 다른 이야기가 듣고 싶은 모양이다. 그에게서 신화 이야기는 들을만큼 들었으니 가지고 있는 무수한 다른 이야기들로 무지한 나를 깨우쳐 주셨으면 싶은게다. 수필은 결국 일종의 자기 자랑 이라고 하는데 그의 자랑이라면 밤을 새고 들어도 싫지 않은 거다. - ........."절 마당에 동백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어요. 그 동백꽃 아래 서 있는데 한 스님이 제 옆을 지나가시면서, 뭔 꽃이 이리도 고울꼬, 이러시대요. 그래서 동백꽃입니다, 하고 대답했죠. 그 스님, 그런 대답은 않는 법이지, 이러면서 지나가 시는데, 아이고, 할 필요 없는 말 해놓고 보니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 그러고 보니 빈틈 없는 말, 흠결 없는 말에서는 향기가 안 나는 것 같다. 글과 말이 갈수록 어려워간다. 한 동안 내 책상에 "口開神氣散 舌動是非生" 이라고 적어 놓은 적이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얼마나 많은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필요없이 덧붙이는 글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이 책 첫머리부터 한 수 배우고 간다.
y***m 2006.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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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쉬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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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어른 서점으로 갔다. 이번에도 소설은 아니고 산문집이었다. 소설을 기대했었는데 짧은 글들을 엮은 산문집이 나와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짤막한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름대로 위로가 되었다. 게다가 이윤기의 산문집이 아닌가! 이윤기는 글을 쉽게 잘 쓴다. 쉬운 문장이지만 가볍지 않다. 바람 불면 날아 갈 듯한 가벼운 글이 아니다. 글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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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어른 서점으로 갔다. 이번에도 소설은 아니고 산문집이었다. 소설을 기대했었는데 짧은 글들을 엮은 산문집이 나와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짤막한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름대로 위로가 되었다. 게다가 이윤기의 산문집이 아닌가! 이윤기는 글을 쉽게 잘 쓴다. 쉬운 문장이지만 가볍지 않다. 바람 불면 날아 갈 듯한 가벼운 글이 아니다. 글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지 싶다. 시간의 눈금에는 그만큼 무게가 실린 글들이 많이 있다. 제목조차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의 눈금’이니까. 이윤기는 이 산문집 안에서 다양한 시간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보여주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너무나도 사적인 이야기들, 시간과 이윤기 자신 사이에 걸려있는 끊어진 연 같은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독자들은 그런 조각들을 여기저기로 맞춰서 이윤기라는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학자인 한 사람을 구성해 낼 수 있다.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퍼즐 조각을 다 맞춰보니 이윤기는 아주 평범한 오십 몇 살의 아저씨였다. 대단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소심하지도 않은, 그냥 나하고 비슷한 중년의 아저씨다. 아마도 내가 더 나이를 먹으면 이윤기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내 머리도 새치가 나서 희끗희끗해지고 있으니 머잖아 백발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윤기처럼 겉늙어 보이고 싶지는 않다. 사진으로 보이는 책 여기저기에 귀신처럼 등장하는 이윤기는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늙어 보인다. 특히 몽골을 여행 중에 찍었다던 얼굴이 붉게 타버린 사진은 영락없이 홍안의 할아버지다. 몽골의 뜨거운 태양에 얼굴이 익어버렸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주름살은 다 뭔가. 책 속에서는 치과가 무서워서 가지 않으려고 몇 년간을 고생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갔던 치과에서 오 분만에 치료를 끝내고는 지난 몇 년간의 바보 같은 참을성을 우습게 쓴 글이 있다. 그리고 25년간이나 애지중지 써오던 만년필이 결국 가짜인 것을 알고는 일순간 바보스런 웃음을 웃어버렸을 이윤기도 나온다. 그렇게 그는 나와, 혹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내 친구가 이윤기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시간의 눈금 이라는 책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w***e 2005.05.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