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잡지에서 이윤기 선생의 이런 글을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번역한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번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연구를 해야만이 가능할 것인데 도저히 그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저 번역가이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말을 듣고 그가 새롭게 다가왔다. 저 자신감은 오만이 아니라 액면 그대로 투자한 시간과 땀에서 비롯된 것이렷다, 그래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써 인정한다.
꽤 읽을만한 산문집이었다. 짧은 글들을 모아둔 것이어서 메모한 부분에 짤막한 느낌만 적는다.
[인상깊은구절] 남의 말이나 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그 자리를 피해가고는 한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시비할 겨를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였다. 잡초 없는 뜰이 어디 있으랴, 나가서 내 뜰의 잡초나 뽑아야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소매 둥둥 걷고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미국에서 머물 당시, 한국 학생들 주소록에 실린 <낚시 컬럼="">을 읽고 기절초풍한 적이 있다(주소록이지만, 몇 편의 에세이가 실리는 것이 보통이다).
본 칼럼의 목적은 면학과 연구에 시달리고 있는 ‘아무개’ 대학교 한국 학생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심신의 피로를 해소케 함으로써 내일의 면학과 연구를 위한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는 데 있다……
(중략)
내 은사 중 한 분의 글이었다면, ‘꼰대’ 들은 의례 그렇게 쓰는 것이겠거니 여기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은사가 아니었다. 새카만 나의 후배(미안하이)가 제 글을 이렇게 엶으로써 무려 5줄의 지면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쓰다 보니 벌써 청탁 받은 매수가 다 차버려 아쉬운 마음으로…… 글을 이렇게 끝맺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내용도 퍽 재미있었다.
도처에 하나마나한 말과 글이 넘쳐난다. 독창적인 생각이 실린 말이나 글보다는, 정부가 공급한 관급용어, 먹물들이 남발한 관념어들이 언론의 대량 유포에 힘입어 돛대도 삿대도 없이 둥둥 떠다닌다. 하나마나한 말과 글에도 작은 쓸모가 있기는 하다. 거짓말이 그렇듯이, 하나마나한 말과 글도 시간 버는 데는 퍽 쓸모가 있다. (P.9,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中)
아, 이 대목은 심히 부끄럽다. 글을 쓸 때 막히는 이유가 보통 생각이 나지 않는 관급용어를 찾거나 어디선가 읽은듯한 먹물들이 남발한 관념어를 찾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반성할 것.
아나운서가 여대생에게 묻는다. 월드컵 경기, 어떻게 보셨어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대생만 낼 수 있는 의견을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탤런트가 맛본다. 사회자가 그 탤런트에게 음식의 맛이 어떠하더냐고 물어보는 대목에 이르면 나는 그만 아연 긴장하고 만다.
“……고소하고 담백해요.”
미국인 교수들이, 한국인들 정말 사람 열 받게 한다면서 들려준 이야기.
교수: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요?
한국 학생: <고린도 전서="">에 따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게 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고, 모든 것을 견뎌내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교수: 다시 묻겠어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요?
한국 학생: 에우뤼피데스에 따르면 사랑은 “달고도 가장 쓴 것”입니다.
교수: 아니, 인용만 하지 말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의견을 말해보세요. 나는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은 거예요.
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설 수 없는가. 유목민처럼. (p.10,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中)
저 요리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적인 소감은 언제고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의 글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구어체 문장을 쓴다는 점이다. 그의 책은 내용이 어려운데도 술술 읽힌다. 그의 책에 ‘빌어먹을 놈’, ‘쥐둥아리를 놀려대는가’, ‘씹어제키는 김용옥’, ‘무데뽀’ 같은 속어나 비어들이 생짜로 실리는 것은 생각나는 대로 쓰고,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 때문이다. 그런 말 쓴다고 도올을 비난하는 사람들, 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는 속어 비어에 묻어 있는, 쓴 이의 ‘껍진껍진한 느낌’까지도 읽어야 하는 것이다. (p.13, 형은 상행선 나는 하행선 中)
이 사람의 얘기가 내가 아직 초단도 못 되는 이유이다. 어쩌면 인터넷이라는 것이 초단 띠를 매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껍진껍진한 느낌’이란 말이 오랫동안 입에 맴돈다.
나는 술을 좋아해서 자주 또 많이 마신다. 하지만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 보다는 ‘속닥한 자리’를 더 좋아한다. 자작은 ‘속닥함’의 꽃이다. 나는 ‘후래자 삼배’라고 해서, 늦게 당도한 술꾼에게 막무가내로 석 잔을 내리 마시게 함으로써, 그 술자리 모든 참석자들의 취한 정도를 순식간에 평준화시키는 악습을 싫어한다. 열외 없이 함께 망가지자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p.15, 후래자 삼배의 심리학 中)
유난히 술을 많이 권하는 편이다. 자제해야겠다. 사실은 덜 취하고 맛이 가고 이런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술자리가 더 재미있는 법인데.
나의 경우 대작의 목적은 대화이지 술 자체가 아니다. 술 자체라면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술맛 떨어진다’는 말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떨어지는 것은 함께 마시는 사람 맛이지 술맛이 아니다. 한 친구로부터, 박 아무개와는 새벽 두 시까지 마셨다고 하면서 나하고는 초저녁인데 왜 벌써 가려고 해, 너 사람 차별하느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친구에게라면 이태백의 다음 시 한 구절 들려줄 것까지도 없다.
내 취해서 잠들고 싶어하면 그대는 또 떠날테지
내일 아침에도 술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소
(p.16, 후래자 삼배의 심리학 中)
나는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술맛이 간절하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제격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실 수도 있고 TV를 보면서 마실 수도 있다. 사람과 술을 마시는 것은 역시 대화를 위한 것이다.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대화인 것처럼.
“나는 당신의 종교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동안 교리 논쟁을 벌이던 두 학자, 끝내 종교 전쟁은 벌이지는 않았다. 대신, 당신의 종교를 좀 더 알고 싶은데 혹시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추천해줄 수 있느냐, 서로 이런 말을 주고 받고, 추천서 메모를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불교도가 한 농담,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의 천국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천국 구경을 한사코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나이를 먹고 뭔가를 배워도 저런 넉넉함을 가질 수 없다면 절망해야겠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노래의 한 구절이 사라져서 몇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런 현상은 한 음유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물이 지하로 흐르다 다시 솟아오르듯 다른 시인에 의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사시의 조각들은 이미 몇 년 전 시체가 썩어버린 음유시인의 무덤으로부터 땅 표면의 단단한 껍질을 꿰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 (이스마엘 카다레, 박철화 옮김, 문학동네)
(p.40,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中)
모든 것은 반복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데, 천지창조 이래 새로운 것도 없다.
황지우 시인이 놀랄 만한 말 한마디를 툭 내뱉은 일이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 한영희 문인사진집 <작가> 서문 <선골도풍(仙骨道風) 이콘="">
(p.41,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中)
이런 깨달음이랄까 철학은 늙어야만 가능한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라고, 또 쓰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거 참 슬픈 일이겠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것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들은 아무 울림도 지어내지 못했다. 이거 혹시 ‘길 가르쳐주기’와 비슷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몇 세대를 한 곳에서 붙박이로 살아온 우리나라 시골 사람들에게 시골 길을 물으면 가르쳐주는 내용이 지극히 막연하다. 그 시골 사람들에게는, 객관화시키기 어려울 만큼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작품도 비슷할 것 같다. 작품의 분위기가 작가 자신에게 너무 낯익은 풍경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영되어 있는 작가의 미의식은 편애의 산물일 가능성조차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글들을 많이 썼다. 그런 글들을 쓰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는 했다. (p.55, 노래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中)
내가 쓰고자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에게만 낯익은 풍경이요, 편애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옛날 조나라 서울인 한단 사람들 걸음걸이는 보기 좋기로 소문나 있었던 모양인데, 어느 실없는 연나라 사람이, 그 걸음걸이를 배우러 갔다가 제대로 배우는 것은 고사하고 제 연나라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하는 수 없이 기어서 돌아왔다…… 이런 옛 이야기가 있다. 소설 쓰는 일을 걸음걸이에 견주면 내 보법이 그 짝이다.”
이렇게 쓰고도 문제는 ‘보법’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1993년 미국에서 결심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 붙여 보기(Naming the unnamable)’로 결심했다. ‘보법’을 까맣게 잊은 채 원고지 6천 장을 썼지만 역시 생멱 따는 소리만 낸 것으로 판명되었다. 1995년부터는 중단편에 매달렸다. 초심의 보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소설가는 시대의 스승이 되어 세상을 향하여 뭔가를 가르치는 소리를 마구 해야 하는 줄 알았음에 분명하다. 한 문학평론가로부터 따뜻한 비아냥을 집중적으로 많이 받았다.
“당신의 소설에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배우는 것도) 소설 읽는 재미의 하나지만 배우는 일이 잦은 소설은 아무래도 좀 옛날 소설 같다.”
“누군가 설법을 시도하고 소설가가 그 설법을 대필하고 있는 것일까?” (p.58, 노래는 내 몸을 가볍게 한다 中)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 붙여 보기’ 저거 아주 멋진 과제이다. 이미지로 풀 자신이 없다면 저걸 잘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사람을 그려내는 과정을 좀 보라지. 이미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그런 문장이 아니던가.
1957년 10월 9일 청명한 날 아침. 비원의 큰 대문 앞 광장에 중학교 교복차림의 한 소녀가 노란 탱자 한 알을 손에 들고 혼자 서 있다. 텅 빈 광장의 너무 밝은 아침 햇살 속에 오히려 빛의 안개가 서린 듯하여 나는 그 소녀의 얼굴을 잘 보지 못한다. 그의 이름도 모른다. 열다섯 살의 나, 소녀를 등 뒤에 남겨두고 비원의 뜰 안으로 들어간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빛, 텅 빈 광장, 투명한 공기, 큰 대문의 소슬한 추녀와 더불어 그 소녀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그 풍경은 나만의 것이다. 소녀 자신도 그 풍경을 보지는 못했다. 그 때 이후 문학은 나의 축복이다.
- <한눈팔기와 글쓰기="">(김화영)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다. 그저 감동에 떨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인터넷에 오르는 글들이 우리말을 파괴한다고 걱정들이 태산이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한다. 많은 사람들이 엄숙주의의 굴레를 벗고 청산유수로 글을 토해낸다. 화가가 쓴 글, 가수가 쓴 글이 인문학자가 쓴 글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경우를 자주 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나는 문어가 구어화하고 있는 것을 주목한다.
‘이메일’을 많은 사람들이 쓴다는 기분으로 쓰지 않고 말한다는 기분으로 쓴다. 그래서 쓴다는 강박관념, 곧 생각의 흘게가 풀리면서 말이 술술 나오는 것 같다. 우리말은, 우리 문학은 그 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일 것 같다. 김화영 교수가 한 일간지에 쓴, <시가 있는="" 아침="">의 짧은 글들을 기억하시는지. 이 근엄한 문학평론가가 쓴, 내가 소설에다 실험하고 싶어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기억하시는지.
“야, 요거 참 삼삼한 시네. 그런데 왜 삼삼하냐고 누가 물으면 뺨 맞은 듯 깜빡, 몰라져버리네.”
“여기까지는 어떻게 시인의 흉내를 내겠는데…… 야, 단수 한번 높구나.”
“그러니까 무슨 분위기 좋은 찻집 같은 데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단 말이지…… 농담 따먹기만 하고 있단 말이지…… 그만 앞에 놓인 찻잔을 엎질렀단 말이지…… 그런데 정작 쏟아진 것은 이쪽 마음이다 이거지……” (p.61, 야, 단수 한번 높구나 中)
젠장, 정말 단수 한번 높구나.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인물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가는 양상이 신화적 영웅의 행적과 비슷해질 경우, 상황은 확 달라진다. 이 경우, 나는 쫓아다니면서 관찰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적 영웅 이야기는 대체로 ‘영웅 사이클’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패턴을 따른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에 고난을 당하고…… 어느 날 문득 자기 존재의 본질을 만나게 되고……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되고…… 간난신고 끝에 뜻을 이루고…… 자기 인생의 정점에서 슬픈 순교자가 되거나, 오만한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한다는 것이다.
(중략)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영웅 중에는 장차 순교자가 되는 긍정적인 영웅이 있고, 장차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마치거나 정점에서 파멸하는 부정적인 영웅이 있다. 조셉 캠벨 같은 신화학자는, ‘어제의 영웅이 오늘 자신을 십자가에 달지 못하면 내일은 폭군이 된다’는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영웅은 참 힘들겠다. 한 영웅이 자기 인생의 정점에 오르면, 영웅 자신 아니면 그가 속해 있는 모듬살이 민중은 하나의 고질병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병명은 그리스 말로 ‘휘브리스’, 번역하면 ‘오만’이다. 캠벨은 영웅만 이 병을 앓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중도 이 병을 앓는 것 같다. 민중이 이 병에 걸리면 영웅은 순교자가 되고, 영웅이 이 병에 걸리면 민중은 온갖 무리수가 다 동원되는 폭군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 같다. (p.75, 폭군과 순교자에 대하여 中)
이 말은 이윤기 선생이 노무현에게 띄우고 싶은 편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의 성격은 단언컨대 연서(戀書)일 것이다.
실수하면 마음이 상처를 입는다. 상처는 아프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혹은 정신은 상처 받아 보지 않고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다(No pain, no gain). 나는 말이 좀 많은 편이어서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상처를 입는다. 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설 때의 외로움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p.95, 말로써 말이 많으니 中)
요전에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다. 진심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까지 겪고 있는 그로 인한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외로움이다.
교육이 나에게 베푼 은혜 중 가장 큰 것은 그것이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나의 말이 아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다. 나 같으면, 교육이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해악은 그것이 여행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고쳐 말하겠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잘 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 밖에서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p.106, 아탈리여, 그대가 옳다 中)
여행이라는 것이 시도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두렵다. 교육 탓인가.
나는 세기 말이 다 되어서야 그(임옥상)가 이야기(mythos)의 힘을 세우려는 사람, 이야기의 힘을 복원하려는 사람,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speaks otherwise)’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는 무엇인가? 신화의 형제인 알레고리아(allegoria)가 아닌가? ‘여느 방식과는 다르게 한 이야기(speech made otherwise than one seems to speak)’ 아닌가? ‘이야기의 힘’을 믿고 그것을 뒷심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는 신화(myth)의 요체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제도권 미술의 신화를 깨뜨리고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기’를 통해서 새로운 신화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그만둘 수 없다. (p.121, 이것은 꿈의 날개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中)
전쟁 영화에, 소리가 일체 삽입되지 않은 슬로모션 화면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로켓포와 수류탄이 몇 발 터지면 병사들의 귀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p.139, 머나먼 송바 강, 가까운 혼바 산 中)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전쟁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던 것 같군. 지금 생각나는 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해변 상륙 씬.
나는 이문구 소설의 중독자다. 나는 일간신문에 서양 신화 이야기를 1년 동안 주간 연재한 적이 있다. 자랑스럽게 여기거니와 나는 1년 내내 담당 기자를 곤란하게 만든 일이 거의 없다.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딱 한 번 있었다. 원고가 잘 풀리지 않아서 산보 나갔다가 이문구의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사들고 들어와 몇 줄을 읽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담당 가지가 원고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독촉 전화를 걸어 투덜댔다. 나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펼치는 실수를 했노라고 고백했다. 담당 기자의 반응은 이랬다.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어요? 거기서 빠져나와 원고 쓰기는 틀렸네요? 결국 밤새워 원고 써서 보내야 했다. (p.165, 문구 형님 中)
젠장, 이 책도 결국 읽게 되겠구나.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는 뜻이 아니다. 조금 비워낸 자만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 같은 것이다. 나는 꽤 긴 외국살이를 통해 절제가 삶을 조금씩 비워내고 그 비워진 부분이 여유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에 놀라고는 한다. 능력의 가동률이 너무 높아 보이는 것이다. 엔진의 크기에 견주어 자동차 껍데기가 너무 크고 무거워 오르막길 오를 때마다 가르릉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제 넘는 자리에서는 잘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들딸에게도 이렇게 가르친다. 절제하라, 절제라는 말조차도! (p.181, 나비 넥타이 中)
절제하라, 절제하라는 말조차도!
신문사의 신춘문예 시상식, 문학상 시상식, 무수한 출판사의 망년회, 사무실 이전 기념 모임, 출판 기념회, 수도 없다. 어쩌다 한번씩 나가서 반가운 얼굴 대하고 ‘호젓’하다는 전제 아래 함께 마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떠올려 보는 전날 밤의 술자리는 참담하다. ‘임의로움’과 ‘무례’, ‘진실 말하기’와 ‘술주정’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서 나는 되도록 혼자 놀기로 하고 있다. (p.188)
나는 혼자서 밥도 잘 사먹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영화나 콘서트도 혼자 잘 보러 다닌다. 그러던 것이 그만 팔자에도 없이 누군가에게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몇 번이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영화는 보지 못했다. 혼자서도 잘 보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영화보다는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해오던 것이 가장 편한 법이다.
아, 이 섬뜩한 예감들을 어쩌나! 청소년 시절이던 60년대, 나는 일본 문학을 퍽 좋아했다. 학교 공부는 팽개쳐둔 채 일본어를 배워 몇몇 일본 작가들 작품은 일본어로 읽기도 했다. <라쇼몽>의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사양>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 <유키구니>로 유명한 노벨 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리고 <킨가쿠지>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한꺼번에 실린 책이 있었다. <4인집>이었던가? 읽고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아름다웠다.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있을 당시, 아쿠다가와와 다자이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가와바타와 미시마는 일본에서 왕성하게 쓰고 있던 소설가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가와바타의 미학에서는 거의 피 냄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섬세한 떨림이, 미시마의 애국심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과 낭자한 선혈이 느껴졌다. 나는 이 두 작가 역시 천수를 누리기 힘들 것임을 예감했다. 참전 군인 노릇하던 1971년과 1972년에도 나는 베트남에서 가와바타와 미시마의 소설들을 읽었다. 아름다움에 숨이 막했다. 1971년 미시마가 할복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듬 해에는 가와바타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책 편집자도 피 냄새, 죽음의 냄새를 맡았던 것일까? (p.190, 아름다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中)
박주택 교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낭만주의자는 결국 폐병으로 죽기 마련이라고. 지나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그런데 그 죽음도 왠지 아름다워 보인다.
슬픔의 끝, 아름다움의 끝, 끝의 슬픔, 끝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나는 김소월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는 너무 슬프다.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소월이, 공을 끝까지 보면서 치는 정교한 타자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내가 만일에 김소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가 천수를 누리지 못할 것임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울리는 절창에서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종말을 예감한다. 하지만 절창은 거기에서만 꽃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p.193, 아름다운, 지나치게 아름다운 中)
얼마전 지하철 개찰구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 2="">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메인 카피가 ‘김훈의 절창’이어서 광고를 만든 이에게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절창을 꽃피우면 죽어야 한다는데 정말 그 정도인가?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남유럽의 불볕더위에, 넉 달 동안이나 카메라 수발을 들면서 만고 고생을 했던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가 그리워.”
그리스는 참 이상한 나라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길을 물으면 자기네들끼리 열심히, 그것도 고성으로 토론하고는 결론을 일러준다. 그런데 가보면 없다, 잘못 가르쳐준 것이다.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다 답이 다르다. 상당수의 그리스 노인들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십자가를 보면 성호를 긋는다. 그러다가도 내가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자리를 뜨면 재빨리 내 아내 옆으로 옮겨 앉고는 수작을 건다. 한두 번 당해본 봉변이 아니다. 독실한 동방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살짝살짝 하는 거짓말은 용서가 된단다. 운전기사는 택시 요금 바가지를 예사로 씌운다. 그런데도 모두들 무지하게 친절하다. 자신이 베푼 친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발칵 화를 낼만큼 친절하다. (p.219, 그리스가 그리워 中)
가고 싶다, 그리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일찍이 금치산 선고가 내려진, 그래서 지금은 조금도 유효하지 않은 고대 신화에 그토록 집착하느냐고 묻고는 한다. 인류의 문학 유산이 중세와 근•현대를 지나면서 얼마나 풍부해졌는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천 년 2천 년 전의 이야기에 매달려 있느냐고 묻고는 한다. 역사의 날빛으로 나오지 못한 이야기는 달빛에 젖어 신화가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날빛을 받아 역사가 된 이야기보다 나는 달빛에 젖어서 신화가 된 이야기들을 더 좋아한다. (p.236, 오래된 미래 中)
독신이었던 그(임길진)는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술 좋아하는 내가 마시면 흥을 돋우어주는 데는 선수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내가 피우고 있으면,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한 대 주쇼, 이러고는 연달아 몇 대를 빼앗아 피우기도 했다. 내가, 그러다 중독되시면 어쩌려고요, 했을 때 그가 했던 대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애연 없는데 금연 없고, 집착 없는데 해탈 없는 법이지요.” (p.240, 학장님 학장님 우리 학장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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