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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근대 건축 서적들이 웅장한 외벽의 벽돌 개수를 세거나 도시 계획의 거대 담론을 논했다면, 이 책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 소파의 질감을 만져보게 한다. 미술사학자 최지혜가 안내하는 이 '남의 집 구경'은 단순한 관음적 호기심을 넘어, 박제된 역사에 온기를 불어넣는 세밀한 복원 작업과도 같다. 저자는 흑백 사진 속에 멈춰 있던 무채색의 공간에 타일의 광택과 벽지의 문양을 덧입혀 컬러풀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7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시각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서양식 문화주택을 동경하면서도 온돌방의 아랫목을 포기하지 못했던 당시 사람들의 치열하고도 흥미로운 고민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특히 천장부터 바닥 마감재까지 낱낱이 파헤친 대목에서는 저자의 무서운 집요함이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한국 근대 생활사의 '유전자'를 채집하는 과정이다. 거창한 역사적 사건 뒤에 가려져 있던 '자잘한 일상'이야말로 그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진솔한 열쇠임을 책은 증명하고 있다. 화려한 백화점의 진열장을 지나 이제는 가장 사적인 휴식처인 주택으로 들어온 이 여정은, 마치 백 년 전 경성의 어느 평범한 오후로 초대받은 듯한 기묘한 몰입감을 준다.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이 탐구생활은 과거의 공간을 현재의 우리 곁으로 성큼 데려다 놓는다. #연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