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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염세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가라앉는다.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산 건 맞지만 내용을 보고 나니 공현진 작가가 정말 마음에 든다. 너무 잘 쓴다. 책을 읽으며 마음 깊이 고독을 느낀건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이후 처음이다.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 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인간이 다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면 무섭기도 하지만 너무 쓸쓸하고 고독하다. 지지고 볶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가정과 사회 속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한숨 쉬고 절망하는 게 일반적인데, 또한편 생각하면 어차피 다 끝나는데 뭘 이렇게 악다구니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와닿지 않겠지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시점이 오면 알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카르페디엠'이구나. 이 순간을 기쁘고 감사하게 즐기지 않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세상은 어차피 내 뜻대로 안되게 되어 있다. 그걸 알고 나면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된다. 가족과 이웃간의 진심어린 응원과 이해부터 인류의 멸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공현진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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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소설에서 보여지는 세상은 정해져 있다. 표제작 제목 그대로 '어차피 멸망할 세상'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서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 단편소설 [녹]에서는 이주민 '녹' 의 일인 시위로 인하여 불안정한 시간 강사의 입지로 멸망할 수도 있고 기후 위기로 멸망할 수도 있다. 또는 [권능]에서 일찍 죽을 거라는 점쟁이의 예언대로 멸망할 수도 있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어차피' 망할 세상. '어차피' 안 될 세상이다. 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공현진 소설은 말한다. 그런데 '어차피'라는 어감은 결과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열심히 살아서 뭐 하나라는 자조론으로 빠지게 된다. '어차피'를 만들어내게 된 원인이나 해결책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결과론에 따르는 수동적인 삶에 멈추게 된다. 그래서 '어차피'에는 체념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공현진 작가는 소설 초반 '어차피' 된 이유의 원인을 먼저 캐묻는 듯 하다. 첫 번째 단편소설 <녹>에서는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가 나온다.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시간강사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시간강사이다보니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베이비시터였던 이주민 '녹'이 일인시위를 함에 따라 힘들게 지켜온 시간강사자리도 쫓겨나게 되었다. 미안하게 되었다라며 결과를 통지하는 대학 측. 다행이 모교에서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다음 학기에는 어떻게 될 지 장담하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주어가 없는 말들'이다. 주어가 없이 결과만 통지하는 사람들. 미안하게 됐어. 라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 주어가 없으니 결과를 말하는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주어가 없는 말들로 상처를 받는 '나' 또한 베이비시터인 '녹'에게 주어가 없는 말을 한다. 약속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남편 또한 주어 없는 말로 책임을 피한다. 주어 없이 결과만 통지하는 세상은 '어차피' 라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 상황에서 두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직격타를 날린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걸 피하는 세상, 기후 위기에 대해서 어차피 망할 세상이라며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세상. 곽주호도 그렇다. 엄밀히 곽주호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책임을 느끼는 모습에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죽은 거, 어차피 정리된 죽음, 주변에서는 왜 곽주호가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알지 못한다. '어차피' 세상에서 힘들어하는 건 책임을 지는 사람들 뿐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포기해야 옳은 것일까? 그럴 수 없다. 어차피 멸망할 거라도 함께라면 좀 더 낫지 않겠는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동료들과 함께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끝까지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름을 짓기 직전>에서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까지 퇴출되었던 친구 석주를 위해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그들이 자주 가던 주점은 비로 침몰되고 석주가 끝내 군대에 가게 되었지만 이들은 밴드 이름 짓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울면서도 노래가 좋다고 말하는 석주. 그 석주 곁에 그래도 내가 있다.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대답은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에서 선자씨가 알려준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는 선자씨. 생전 처음 보는 의학 단어들로 정신이 없다. 그래도 선자씨는 기죽지 않는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나가고 살아내야 한다는 걸 선자씨는 알려주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미워하면서도 아껴주는 <권능>의 청아이모와 나처럼 서로 함께 부둥켜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게 '어차피' 멸망할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이렇게 된 세상에서 우리가 살 방법은 '그래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 그래도 사랑하고 그래도 살아내는 것. 그래도 이왕이면 서로에게 다정한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힘이 되지 않을까 말해주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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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시리즈였을까 아니면 다른 소설집이었을까 아무튼 어디선가 만난 그 글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런 글을 누가 썼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이제 설렘이 생기지 않는 반면 새 글을, 새 작가를 알게 되는 건 참 기분 좋고 설레기까지 한다. 더구나 젊은 소설가라면, 아 이사람이 오랫동안 글을 써주겠지. 그럼 나도 재밌는 이 글을 오랫동안 볼 수 있겠지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