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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밭으로 향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고추밭 풀도 잡아야 했고 남은 깨도 심어야 했다. 온난화로 더워진 지구의 체온 앞에 육체는 가냘프기 그지없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한낮의 태양이 떠오르기 전 일을 마쳤다. 지친 몸으로 아침 해를 등지고 집에 들어서다 문득 "그들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난 적도 없는 상학, 창석, 태호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나영, 강희, 순례, 심영은... 먼 이국의 도시 포와 그리고 호놀룰루가 눈앞에 펼쳐졌다. 100여 년 전 제물포항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했던 소녀의 시선으로 남태평양 열대의 섬 하와이를 만났었다. 임재희 작가의 등단작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통해서였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신의 파라다이스’ 하와이 이민 1세대로 살았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아픈 서사가 우릴 비껴갈 수 없었던 시기였지만, 작가는 동시대의 시대적 배경보다 물설고 낯선 이국의 땅에 던져진 개인의 서사에 천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작가 또한 이민자로 이민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근현대사의 서사를 비껴, 아프고 아름다운 개개인의 이민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낯선 땅에 발디딘 이민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작가에게 전달됐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가 언젠가 방문했던 호놀룰루 박물관의 사진 한 장일 수도 있고, 하와이 바닷가 작은 까페에 앉아 얘기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귀를 스쳐 지나며 소설의 모티브로 자리잡았을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작가가 이민 1세대의 삶에 공감했다는 것과 모국어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것일 게다. 작품 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꼭 써야만 되는 글이었다고. 등단작이자 첫 작품인 ‘당신의 파라다이스’는 세계일보 문학상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와이 이민 1세대에 대한 작가의 위로가 모국어로 전달되었을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언젠가 이민과 장미 삽목을 비유했던 기억이 있다. 살을 자르듯이 가지를 잘라 땅에 심는 삽목. 살아나길 바라는 애틋함. 살아남아야 하는 절실함. 그 애틋함과 절실함은 모든 이민자의 삶을 관통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된 삶을 살아갔던 이민 1세대의 살아가는 이야기 ‘당신의 파라다이스’에는 남녀의 엇갈린 사랑, 고단한 노동, 일상의 작은 기쁨 등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의 상상이라지만 삶을 그려낸 작가의 유려한 문장에 함께 숙연해지기도, 함께 눈물짓기도 한다. 사랑과 삶과 이별 모두가 눈에 들어올 즈음 이민 1세대의 삶이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노을처럼 한 장면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개의 글에서 굳이 책의 줄거리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책장을 넘기며 가슴앓이했던 내 기억처럼 앞으로 읽을 독자에게 선물로 남겨두고 싶어서이다. 언젠가 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부모와 산길을 걷던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빠! 용감하다는 건 어떤 거예요?"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용감한 건 저기 보이는 저 들풀의 삶이란다. 그 누구의 갈채도 없지만 자기 몫의 삶을 완성하는 들풀의 삶. 이보다 더 용감한 건 없단다." 그래서 힘들고, 그럼에도 반짝였고, 결국엔 위대한 삶을 살아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이렇게 쓰여졌다. 작가 또한 한 세대를 힘들게 버텼던 삶을 '파라다이스'라고 역설의 언어로 표현한다. 아마도 모든 삶이 위대하게 반짝여서가 아닐까? 얼마 전 교보문고 갔을 때 '당신의 파라다이스'가 민음사에서 새로 출간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반가웠다. 책장을 넘기며 가슴앓이했던 작중 인물을 다시 만난 느낌도 들었다. 힘들고 고달퍼서 그래서 더 반짝일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임재희 작가의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통해 느껴보시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