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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욱 편할 겁니다.”
17대 국회에서 1급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의정 단상에 서게 된 국회의원이, 개원에 앞서 국회를 둘러보면서 했던 말이다. 이 기사를 보고서, 우리 주변의 각종 사회적 환경들이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문제가 없는가 하고 따져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각종 건물이나 도로 등의 시설들이 장애인들에게는 아주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비장애인들이 그저 아무런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도, 장애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혼자서 이용하기에는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이해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휠체어에 의존하여 생활해야만 하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어느 정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등원하게 된 다른 국회의원 역시 국회를 둘러본 뒤 ‘국회가 그동안 장애인에게 너무 닫혀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췄다고 하는 국회의사당조차도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활동하기에 적지 않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4월의 상황이니, 아마도 장애를 지닌 국회의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국회의 시설이나 환경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실제로 17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활동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국회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언론의 보도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본다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국회의원의 신분이기에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장애인을 동료로 둔 국회의원들도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장애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된 채, 생존의 경계에 놓여져 있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다. 기본적인 생계의 해결조차 힘든 경제적 여건 때문에 재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엄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단지 우리가 인식하고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적지 않은 장애인들이 우리와 더불어 생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마다 그 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에서는 우리 나라의 장애인이 약 4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상당한 수효의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배려는 아직도 충분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장애인 문제는 정책적 관심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오히려 장애인들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정책적 차원의 배려와 함께, 더불어 사는 이들의 따뜻한 관심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인식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 문제가 자신은 물론, 자신들의 가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대책을 ‘인권’의 문제가 아닌, 단순히 ‘시혜’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크게 다쳐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예를 매일매일 각종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통해서 접하곤 한다. 그렇다면 장애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며, 장애인들의 삶 역시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인 문제임이 분명한 것이다.
장애란 비단 오늘날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장애인은 존재했으며,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장애인들과 그들의 삶의 만날 수 있다. 정창권의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전통 시대의 장애 문제를 역사적으로 검토한 뒤, 생활사적 관점으로 그들 각각의 삶과 사회적 인식을 자세히 고찰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역사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나간 역사의 경험을 되짚어 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부닥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학을 제외하고는 장애인에 관한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된 분야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문학 연구자인 저자의 장애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각종 문헌 자료를 섭렵하여 읽기 쉬운 ‘이야기체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록(實錄)’ 등과 같은 정사(正史)는 물론 각종 야사(野史)의 기록들, 그리고 판소리․가면극․야담․소설 등의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자료들에 나타난 장애인의 각종 기록을 모아놓았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각종 자료를 통하여 장애인들의 삶을 살펴본 다음, ‘전통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진단한다. 또한 장애인을 지칭하는 각종 ‘비하어는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하락한 조선 말기나 일제 강점기에 주로 생겨’났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논하고, 지금도 무분별하게 사용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는 비하어를 삼가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장애인이란 용어는 대략 1980년대 초반 ‘장애인 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쓰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근대 이후에는 주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불구자(不具者)’란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전통 시대의 문헌에는 ‘병에 걸린 사람’을 뜻하는 ‘폐질자(廢疾者)․잔질자(殘疾者)․독질자(篤疾者)’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의 첫 항목인 ‘전통 시대의 장애인사’에서는 옛 문헌에 나타난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동안 우리의 관심이 미약했던 전통 시대의 장애인사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각종 장애 용어와 장애인의 유형 및 과거의 장애인 복지 정책 등 역사적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전통 시대의 기록에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모든 장애인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그 유형을 신체 장애인․정신 장애인․중복 장애인 등으로 분류하고 전통 시대의 장애 문제를 총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장애인사를 논한 부분에서 나는 홍대용의 문집에 수록된 아래의 기록을 읽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당시 지식인들의 ‘진보적인’ 시각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점치는 일을, 궁형(宮刑)을 당한 자는 문 지키는 일을 시키며, 심지어 말하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두 다리가 불편한 사람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
비록 장애를 가져 몸이 불편할지라도, 각자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각자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홍대용의 말은 당시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의 일단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위정자(爲政者)들에게 장애인의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배려하였음이 다른 기록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본(民本)’을 강조했던 유가적(儒家的)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인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맹자(孟子)가 강조했던 사단(四端) 중의 하나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보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잘 보살피는 것이 군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행했던 당시의 지식인들 역시 장애인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보살피고자 노력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체의 항목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내용은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항목이다. 앞서 전통 시대의 장애 유형을 분류했던 저자가, 그에 따라 옛 문헌에서의 장애인들의 현황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 그리고 청각․언어 장애인을 ‘신체 장애인’의 범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신체 장애인의 양상에 대하여 가장 풍부한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옛 문헌의 기록이 주로 이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본다면, 조선시대에는 신체 장애인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들 중 시각 장애인들은 전통 시대에도 다른 사람의 운명을 점쳐 주는 점술가(占術家)나, 경(經)을 외어 악귀를 몰아내는 독경사로, 또는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맹인(管絃盲人)으로 업(業)을 삼아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시각 장애인으로서 특별한 재능이 없던 사람들은 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하기도 했다. ‘구걸도 엄연한 직업’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오늘날 거리나 전철 등지에서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성을 환기시켜 주었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맹인 독경사들이 모여 명통시(明通寺)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이들은 가뭄이 들었을 때 나라에서 위임을 받아 기우제(祈雨祭)를 올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조선 세종 대의 음악가로 널리 알려진 박연이 관현맹인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도,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과 더불어 지체 장애인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날과 달리 외모보다 능력을 더 중시했던 조선시대에는, 그리하여 지체 장애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사람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이밖에도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에 관한 기록도 전해지는데, 상대적으로 시각 장애인에 비해서 그 기록이 매우 소략하다. 대개 기록자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문헌의 기록으로 남기게 될 때에는, 특이하거나 흥미로운 것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다른 장애인들의 경우보다 시각 장애인의 기록이 월등하게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쩌면 당시 사회가 비교적 시각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지닌 ‘중복 장애인’, 그리고 이른바 양성인(兩性人)과 같은 ‘기타 장애인’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과 장애’, ‘장애 가족 및 보장구들’, 그리고 ‘장애인 예술가’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나, 그 기록들은 하나의 항목으로 다루기에는 매우 소략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술상의 불균형은 문헌에 나타난 자료상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특정 분야에 대한 자료의 편중으로 인해서, 당시 장애인들의 생활상을 고르게 살펴보는 데에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전통 시대 장애인들의 삶을 과연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물론 너무도 열악한 오늘날 장애인들의 삶의 조건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분명 전통 시대의 장애인들의 삶의 조건은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여러 기록들에서 비교적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장애인들은 사회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했겠으나, 그렇지 못하고 열악한 처지에 살았던 장애인들도 상당히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당시의 기록들에 포착되지 않는 지점에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따라서 전통 시대에 국가에서 일을 주어 ‘관리’하는 장애인들의 사회적 처지는 비교적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것이 당시에 장애인들의 삶과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았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세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장애 문제, 우리 역사 속에 해법이 있다’는 항목으로, 과거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오늘의 장애인 문제를 점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효녀(孝女)의 대명사로 치부되었던 판소리 <심청가>의 주인공 심청이를 장애인인 아버지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저자의 관점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시각 장애인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심청이는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효녀라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그것은 오히려 장애인인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유교식, 특히 조선 후기의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주자학적 효사상의 한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과거 전통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장애인들과 더불어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아주 편한 친구’가 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정책적인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도 비장애인과 더불어 함께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최근 언론에서 장애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활발히 활동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삶을 소개하는 언론의 프로그램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 과거에 비해서 그들의 삶의 조건이 보다 나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일상적인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장애인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장애인들 역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 속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내, 장애인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자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제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차니)
*최초의 글은 오래 전에 쓴 것이기에, 약간의 수정을 했지만 시점이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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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되었던 심청이, 그동안 우리 역사 속 장애인은 가난하고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 특수교육과 장애 복지정책은 역사가 짧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 속 장애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창권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된 건 조선중기까지는 장애인 뿐 아니라, 가족들도 노역이 면제되고 부양가족이 없으면 부양자를 따로 두는 등 긍휼 정책도 있고, 나아가고대부터 장애와 비장애인이 거리낌없이 지냈다고 한다. (이해가 부족했거나, 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근대, 조선후기부터 수평적 질서가 무너지고 가치 기준이 물질이 되어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점차 천대받게 된 것이라고.... (가치 철학의 변화 때문이었다) 지금~ 장애인식과 태도가 개선되길 희망하며 많은 이들이 장애 유형과 특성을 알리거나, 장애인들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알린다. 많이 나아지고 있는 듯하다. 허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의 가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물질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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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소재와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책이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전공분야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여러 분야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많았던 장애인과 장애인복지에 대한 책이라 호기심도 일었고, 요즘의 학문들이 주로 서양인의 기준에 의해서만 해석되고, 서양 중심으로만 진행되다보니, 어느새 학문적 사대의식이나 우리 것에 대한 폄하가 알게 모르게 쌓여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어 더 좋았다.
과연 박연이란 사람이 남긴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은 명언이었다. 막연하게 현재 누리고 있는 문화와 문명이 이전 시대보다 월등한 것이라는 자만심을 통렬하게 깨는 명제였고, 그로 인해 전통시대의 장애인에 대한 아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따뜻하고, 논리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논리를 전개하다 보니 논리나 해석의 비약이 드러나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연구가 되지 않았던 분야에 있어 기초적인 단초를 제공하기에는 충분하였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그가 처음부터 전제한 주장을 견지하였던 점은 특기할 만 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장애인을 처우했기에 장애인의 개별 능력에 맞는 직업에 종사하며,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대우받았다는 점과 오늘날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왜곡된 시선은 조선 후기 및 일제시대 이후에 생겨났다는 주장은 일정 정도의 설득력은 있지만, 특별한 근거나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단정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장애인차별의 발생 이유와 그 해결책을 모색해본다면 현재 시정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과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상깊은구절] 실 장애 문제는 따져보면 ‘비장애인’의 문제였다. 비장애인이 사회의 미관과 편의를 해진다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고, 장애인의 입장에 대한 몰이해와 경제 논리 때문에 애초부터 지하철이나 버스, 건물 등에 그들의 편의시설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장애교육 프로그램이 더욱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