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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스펙터클,민주주의
"몸,스펙터클,민주주의" 내용보기
한국 민주주의를 성찰해보는 시야가 커졌다. 내용이 어렵지않고 잘 읽혀졌다.사회학자 김정환님의 첫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다음, 또 다음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작가님!  이 글. 보실지 모르겠지만..책 많이 집필해주십시요. 젊은 사회학자님의 시선과 견해들이 너무 새로워서 읽는 내내 흥분 되었답니다^^#몸스펙터클민주주의 #민주주의 #김정환 #사회학# 북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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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를 성찰해보는 시야가 커졌다. 내용이 어렵지않고 잘 읽혀졌다.사회학자 김정환님의 첫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다음, 또 다음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작가님!  이 글. 보실지 모르겠지만..책 많이 집필해주십시요. 젊은 사회학자님의 시선과 견해들이 너무 새로워서 읽는 내내 흥분 되었답니다^^




#몸스펙터클민주주의 #민주주의 #김정환 #사회학# 북스타그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솔직한 개인 의견입니다^^


t********0 2025.07.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과연...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과연..." 내용보기
#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김정환 지음. 창비. 2025._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민주주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와야했던 그 역사가 모두 어떤 이미지 혹은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보아왔던 그것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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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김정환 지음. 창비. 2025.
_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민주주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와야했던 그 역사가 모두 어떤 이미지 혹은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보아왔던 그것이, 그 이미지가 맞는 걸까. 진실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런 과정에서 우리에게 각인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감각이 어떤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지,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내가 봤다고 생각했던 것이 과연 옳았던가.

독자들께서는 2~4장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상계에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지, 여러분 역시 그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해왔다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지 우선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책을 읽어주시기를 바란다.(49-50쪽)

그래서 펼쳐본 2~4장이 몸과 스펙터클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은 민주화 과정에서 죽음을 무릅쓴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전제로 인용되는 것이다.(61쪽)
한국 민주주의라는 드라마에서 죽음이라는 스펙터클은 말 그대로 엄청난 "공포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것이 제공해온 감각적 인지적 충격을 재차 강조하며 경악하기보다는, 관객으로서 우리가  그러한 스펙터클을 어떤 식을 바라봐왔는지를 바라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120쪽)

진압, 고문,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국가적 힘이 민에게 가했던 폭력이고 그 폭력의 극단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죽음이 그 이후 다시 민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것으로 다시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결국 피를 흘리는 희생과 의지 없이는 그 다음으로 건너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폭력의 실체가 시체, 주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 보여지고 그 이미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죽음의 이미지를 나는 또 다시 학습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숨고 싶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의 죽음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무섭고 괴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우리가 피하고 도망친다고해서 달라지지 않는 엄연한 사실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미 일정 부분 이상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하고 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이 죽음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야한다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 아픔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몸, 그 스펙트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이 책 역시, 그런 민주주의의 상상계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결국, 사람들을 광장으로 몰려나가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들고, 소리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고 반복되는, 같은 영상을 돌려보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이런 영상을 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 걸까.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등장하는 민의 모습은 대단한 스펙터클로서 극적인 쾌감을 고조시키지만, 민주주의를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구현되고 확립되어야 할 원칙이라기보다는, 되찾아야 할, 회복해야 할, 탈환해야 할,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도덜하지 못한 저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목표로 고립시킨다.(328쪽)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다. 늘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인데,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이런 민주주의를 자꾸 빼앗기는 것이 국가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민은 늘 국가를 상대로 싸워왔으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자 덕분에 하게 됐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민의 죽음은 국가의 폭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보상이 주어지는 희소한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민간의 경쟁과 투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356쪽)

한 마디로, 맙소사다. 결국 우리 손에 의해 끌어내려졌던 것이다. 직접 우리가 만들어냈던 민주주의를 우리가 직접 몰아내고, 또 다시 만들어나가고 또 무너뜨리고. 그렇게 훼손된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극단의 방식을 택하는 희생으로 내내 겨우 유지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스펙터클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구나 싶다.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회를 보느냐에 따라, 어떤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 것인가는 달라지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광장에 모이는 것까지 다 잘 해놓고, 우리의 잘못으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n*****0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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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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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김정환 지음. 창비. 2025._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민주주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와야했던 그 역사가 모두 어떤 이미지 혹은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보아왔던 그것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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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김정환 지음. 창비. 2025.
_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민주주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와야했던 그 역사가 모두 어떤 이미지 혹은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보아왔던 그것이, 그 이미지가 맞는 걸까. 진실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런 과정에서 우리에게 각인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감각이 어떤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지,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내가 봤다고 생각했던 것이 과연 옳았던가.

독자들께서는 2~4장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상계에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지, 여러분 역시 그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해왔다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지 우선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책을 읽어주시기를 바란다.(49-50쪽)

그래서 펼쳐본 2~4장이 몸과 스펙터클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은 민주화 과정에서 죽음을 무릅쓴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전제로 인용되는 것이다.(61쪽)
한국 민주주의라는 드라마에서 죽음이라는 스펙터클은 말 그대로 엄청난 "공포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것이 제공해온 감각적 인지적 충격을 재차 강조하며 경악하기보다는, 관객으로서 우리가  그러한 스펙터클을 어떤 식을 바라봐왔는지를 바라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120쪽)

진압, 고문,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국가적 힘이 민에게 가했던 폭력이고 그 폭력의 극단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죽음이 그 이후 다시 민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것으로 다시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결국 피를 흘리는 희생과 의지 없이는 그 다음으로 건너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폭력의 실체가 시체, 주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 보여지고 그 이미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죽음의 이미지를 나는 또 다시 학습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숨고 싶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의 죽음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무섭고 괴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우리가 피하고 도망친다고해서 달라지지 않는 엄연한 사실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미 일정 부분 이상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하고 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이 죽음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야한다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 아픔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몸, 그 스펙트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이 책 역시, 그런 민주주의의 상상계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결국, 사람들을 광장으로 몰려나가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들고, 소리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고 반복되는, 같은 영상을 돌려보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이런 영상을 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 걸까.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등장하는 민의 모습은 대단한 스펙터클로서 극적인 쾌감을 고조시키지만, 민주주의를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구현되고 확립되어야 할 원칙이라기보다는, 되찾아야 할, 회복해야 할, 탈환해야 할,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도덜하지 못한 저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목표로 고립시킨다.(328쪽)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다. 늘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인데,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이런 민주주의를 자꾸 빼앗기는 것이 국가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민은 늘 국가를 상대로 싸워왔으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자 덕분에 하게 됐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민의 죽음은 국가의 폭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보상이 주어지는 희소한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민간의 경쟁과 투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356쪽)

한 마디로, 맙소사다. 결국 우리 손에 의해 끌어내려졌던 것이다. 직접 우리가 만들어냈던 민주주의를 우리가 직접 몰아내고, 또 다시 만들어나가고 또 무너뜨리고. 그렇게 훼손된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극단의 방식을 택하는 희생으로 내내 겨우 유지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스펙터클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구나 싶다.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회를 보느냐에 따라, 어떤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 것인가는 달라지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광장에 모이는 것까지 다 잘 해놓고, 우리의 잘못으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n*****0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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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때 무슨 계엄이야, 하는 말이 곧잘 들려왔다. 교과서나 영화같은 미디어에서 보던 계엄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 MZ세대들이 직접 경험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한쪽에서는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는 예상을 했던 근거도 있었지만, 더욱이 극우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국제 정세를 보면 그만큼 무도한 자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만. 어느 한가로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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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같은 때 무슨 계엄이야, 하는 말이 곧잘 들려왔다. 교과서나 영화같은 미디어에서 보던 계엄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 MZ세대들이 직접 경험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한쪽에서는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는 예상을 했던 근거도 있었지만, 더욱이 극우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국제 정세를 보면 그만큼 무도한 자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만. 어느 한가로운 밤 텔레비전 아무 프로그램이나 틀어둔 화면 아래 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를 발견하는 당혹과 급격히 돌아가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새벽은 여전히 충격을 준다. 

"마치 극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 그러하듯 공통의 스펙터클을 바라보면서 역사에 대한 특정한 감각을 배양한다. 119"는 내용처럼 123 이전까지의 계엄과 독재같은 단어들은 20세기와 21세기를 나누는 세기적인, 마치 영상물을 보듯 혹은 인쇄된 단어로 존재하는 차원의, 바다와 국경을 넘어 구역이 나눠진,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23의 현장은 그 거리감이 순식간에 시간과 차원, 구역을 좁혀 실제가 되어 중계되었다. 속보와 갖은 중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느껴지는 혼란과 분노, 어지러움은 장갑차 앞을 홀로 막아선 한 시민의 뒷모습과 함께 인간이 '언제든 두부처럼 썰릴 수 있다는 폭력 앞에 놓여진(113)' 과거를 소환했다.

처음엔 어려울까봐 책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면 읽는 동안에는 마주하기가 어려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초반 도입부를 정립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광주의 참상을 반복적으로 게시하고 있는 텍스트 사이에서 참담, 분노, 슬픔의 감각을 넘어선 실제적 고통을 느끼는 경험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증거 자료와 영상물, 창작물 등을 접해왔지만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에서 민의 몸으로 다시금 증언된 과거의 폭력 앞에서 현기증과도 같은 구토감이 밀려왔다. 더 솔직하자면 어떤 증언들은 더 읽어내지 못했다.

책의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과거에는 정보를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그들의 입맛대로 이용해왔다면 123의 순간들은 SNS로 실시간 공유되어 민의 연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4년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고립된 농민들의 곁으로 2030 여성들이 향했던 일명 '남태령의 기적'에서 폭력과 강제 연행없이 행진이 재개될 수 있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는 농민들의 고백이 있었다. 과거의 진압이 고립 안에서 대상을 향한 의도된 '전시(66)'로 은밀히 폭력을 사용해왔던 반면, 수백의 지지와 수천의 도움, 수만의 관심 아래 정보의 흐름이 있었다는 점이다.

123 이후의 시간동안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 6월항쟁에서도 물품과 식량의 공유는 결집한 민의 활력을 북돋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 인근에 위치한 계성여고의 학생들은 도시락을 걷어서 농성단으로 가져왔고, 근처의 빌딩에서는 빵, 우유, 속옷, 현금 등을 전해 주었다. 286" 는 과거와 일치한다. " 죽음을 목격한 민이 슬픔과 공포의 정서 속에서 몸이 굳고 위축되었다면, 거리로 나와 한곳으로 향해 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동원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민은 희망과 확신, 환희, 등 기쁨의 정서 속에서 활동력이 증대된다. 259" 이는 음악과 응원봉이 함께한 거리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들과 같다.

지금의 '정보'는 이처럼 중요한 구심점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혐오와 갈등을 퍼뜨려 세대와 성별, 외부(미중)로 시선 돌리기에도 이용되고 있다. 80년대의 시선 돌리기가 컬러화면의 등장과 에로티시즘(125)으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2000년대의 시선 돌리기는 시각보다 더 원초적인 자극을 도구로 한다. 이 갈등은 대학이라는 공간의 변질로도 이어진다. MB정부에서 키워낸 일베키즈들에게 과거의 정보와 정치는 조롱과 굴절된 분노를 표출할 재미, 자극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저항의 공간을 대학에서 거리와 인터넷(128)으로 변화 시키는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토머스 제퍼슨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63)'는 말처럼 과거부터 민주주의가 위기의 순간에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항상 민의 죽음, 희생이 그 계기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특히 수많은 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64" 여전히 탄핵된 대통령을 부모로 부르는 집단과 이 균열을 이용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계속될 재판을 통해 수감번호 3617이 그 댓가를 치룰 차례가 왔음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책속에서 과거 광주의 자료를 마주하며 민주주의를 빚진 부채감이 송곳처럼 불거졌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차별과 비하, 조롱이 이어지는 무도함은 여전하다. 불균형과 외면, 기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갈등과 혐오를 경계해야 함을 말하면서도 민주주의를 기만하는 자들 역시 그 볕과 그늘 아래에 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도록 마음이 좁아졌음을 느꼈다. 책을 읽는 동안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공간 안에 이어폰 없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보던 영상의 내용은 123 주체자인 수감번호 3617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한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각자의 매개체로 세상과 사건을 돌아보고 있는 동안 저자가 던진 질문을 다시 찾아보았다.

" 민주주의를 마지막 순간에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고치고 수선해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박근혜와 윤석열을 탄핵시키는 것이 아니라, 뽑지 않을 수는 없던 것일까? 329" 그 카페 안에서의 시간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됨과 동시에, 그와 한 공간에 있는 불편함과 블랙유머나 다름 없는 아이러니를 곱씹는 동안 "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민주시민이라 생각해왔던 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어떤 종류의 민이었던가? 그런 나는 과연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53" 하는 물음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논문에 뿌리를 둔 내용이라 다소 읽기 까다로울지 모르나 123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이달의 사락 m******j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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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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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포스트는 출판사 창비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지난 12월부터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리고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을 광장에서 함께 이뤄내며, 되려 지금의 광장 집회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골똘히 생각하고 다시 정치와 세상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발을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내용보기
해당 포스트는 출판사 창비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12월부터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리고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을 광장에서 함께 이뤄내며, 되려 지금의 광장 집회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골똘히 생각하고 다시 정치와 세상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 책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굵직한 순간들을 방대한 문화적 자료들로 다루며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 안에서의 ‘민’이 몸으로 스펙터클로 그려내며 반복하는 그 모습들과 이야기들을 담는다. 

그리고 담아지는 각각의 민주화 운동과 항쟁들, 그리고 그 안에 숨쉬고 있던 ‘민’의 이야기들을 또다시 찾아보느라 사실 책 주제가 가지는 무거움과 어려움 이상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의 이야기가 왜 지금 반복되는 모습으로 느껴지는지, 이 반복되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이 상황들이, 

결국 민주주의로 향해가고 있다지만 참 슬프고 역설적이다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난 계엄부터 탄핵까지 이 전 과정을 광장에서 이룬, 주권자 국민으로서 더 나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살아갈 우리들이 담담하지만 그 뜨거운 순간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새기며 읽어야 할 여러 서적들 중 하나라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빌런은 언제든 튀어나오니까...


#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n***0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몸, 스펙터클, 민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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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몸, 스펙터클, 민주주의는 과거의 민주 광장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게 그 시절의 몸부림을 전달합니다. 한국 정치 사건들에서 광장에 모인 ‘민’들을 개인이 감각할 수 있는 몸에 비유하여 그들과의 일치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과거 사건들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에 살아가는 우리가 ‘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몸, 스펙터클, 민주주"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는 과거의 민주 광장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에게 그 시절의 몸부림을 전달합니다. 한국 정치 사건들에서 광장에 모인 ‘민’들을 개인이 감각할 수 있는 몸에 비유하여 그들과의 일치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과거 사건들을 전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에 살아가는 우리가 ‘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입니다.

P. 29 “권위주의적 정치세력, 관료집단 특유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책 초반 이 문장을 읽고 조금 놀랐습니다. 정치인이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치인을 잘 뽑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동안 제가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해왔지만, 사실 저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주체인 민주주의의 ‘민’인거죠. 이 문장으로 책을 통해 기대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정치인이 아닌 저로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연속적이기 때문에 과거를 모르면 날카로운 시각을 갖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시작을 살아보지 못했던 제가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잘 질문할 수 있을 발판이 된 책입니다.
d***3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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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갈증을 느끼는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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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말을 단순히 정치제도로 환원하지 않고 ‘몸’과 ‘스펙타클’이라는 감각적인 틀 안에서 다시 꺼내 보여주는 책이다. 촛불집회, 광화문, 국회 집회 같은 익숙한 장면들이 책 속에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냐로 나누지 않는다.오히려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질문한다.덕분에 나는 정치 싸움에 휘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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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말을 단순히 정치제도로 환원하지 않고 ‘몸’과 ‘스펙타클’이라는 감각적인 틀 안에서 다시 꺼내 보여주는 책이다.


촛불집회, 광화문, 국회 집회 같은 익숙한 장면들이 

책 속에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냐로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질문한다.


덕분에 나는 정치 싸움에 휘말리는 느낌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치 얘기를 피하려 했던 내가, 결국엔 정치보다 더 근본적인 '사회' 이야기를 듣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논쟁을 붙이지 않고, 현상을 따라가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몸스펙타클민주주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j****5 2025.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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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민주주의, 그 사이 스펙터클의 서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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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최근 10년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도대체 왜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지 답답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시대를 한정하여, 민주주의 인식 구조를 발견하고 그 인식 구조로 인하여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추론해 내고 있다. '민의 몸'이 죽음으로부터 결집의 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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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10년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도대체 왜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지 답답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시대를 한정하여, 민주주의 인식 구조를 발견하고 그 인식 구조로 인하여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음을 추론해 내고 있다. 

'민의 몸'이 죽음으로부터 결집의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러한 레퍼토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하는 것 이상의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한계를 낳는다는 추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쟁취해야 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그 이후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거리를 던져주는 도서로, 최근 시국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몸스펙터클민주주의 #김정환 #사회학 #민주주의 #북스타그램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글쓴이
김정환 저
출판사
창비


YES마니아 : 로얄 c****i 2025.07.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민주주의를 구경하던 나에게, 살아내는 감각을 일깨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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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늘 광장에만 있었을까.촛불과 함성, 희생과 눈물. 우리는 그 익숙한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곧 ‘민주주의’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익숙한 감각에 물음표를 던진다. 혹시 우리가 마주해온 민주주의는, 드라마처럼 연출된 이미지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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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지극히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늘 광장에만 있었을까.
촛불과 함성, 희생과 눈물. 우리는 그 익숙한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곧 ‘민주주의’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익숙한 감각에 물음표를 던진다. 혹시 우리가 마주해온 민주주의는, 드라마처럼 연출된 이미지였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관객으로만 서 있었던 걸까?


책은 먼저 ‘민(民)’이라는 이름에 시선을 멈춘다. 민주주의의 주체라 불리지만, 정작 그 ‘민’이 스스로를 말하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국가와 정치가가 만들어낸 무대 위에서 우리는 하나의 장면, 하나의 표정으로만 소비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한국 현대정치는 늘 극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었다. 죽음, 피, 희생, 감동, 눈물.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낸 연극 같은 무대 위에서 ‘민’은 언제나 관객을 울리는 장치가 되어왔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광장에서 나를 어떻게 기억해왔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다.


특히 책은 ‘죽음의 스펙터클’을 정면으로 다룬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문장은 너무도 직설적이어서,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는다.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 그 장면 앞에서 드러나는 몸들, 쓰러진 몸, 남겨진 몸,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몸. 우리는 그 앞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울고, 사진을 찍고, 다시 공유한다. 분명 진심이었지만, 저자가 묻는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장면을 본 이후,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책을 읽으며 내 기억 속 장면들과 계속 겹쳐보았다. 어떤 날은 광장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오래 서 있었고, 어떤 날은 너무 추워서 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때로는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준비가 오랫동안 마음을 데웠다. 핫팩처럼 손에 쥐여주던 온기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몸의 언어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결국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그날 어떤 몸으로 기억하고, 어떻게 감각을 이어가는가에 달려 있음을 이 책은 계속 되묻는다.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사를 정리하거나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반복해온 장면들을 해체하고, 다시금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감각’으로 되돌려 놓는다. 관객의 자리에 서 있던 나를 불러내어, 주체로 살아가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힌다.


책장을 덮고 나니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제도나 이념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감각, 살아낸 기억,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민주주의를 살아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다.


추천 독자

- 광장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묻고 싶은 사람 
- 민주주의를 ‘제도’나 ‘역사’로만 배워왔지만, 그것을 몸과 감각의 언어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 “민주주의를 살아낸다”는 말이 도대체 어떤 감각인지 궁금한 사람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서 스스로의 경험과 감정을 자꾸 불러내게 만드는 책이라서. 민주주의를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다시 기억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v********2 2025.07.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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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아귀다툼에서 사람 사는 사회는 어떻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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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12월 3일 밤 11시, 누군가에게는 2022년 3월 9일,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이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민중이 광장에 나섰다. 누군가는 국민, 또다른 누군가는 시민, 각기 다른 이름으로. 한국 사회는 순식간에 어떤, '이전'으로 휩쓸렸다. 광장의 성원들은 제각기 다른 이미지인 동시에 하나의 개념으로 호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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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12월 3일 밤 11시, 누군가에게는 2022년 3월 9일,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이전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민중이 광장에 나섰다. 누군가는 국민, 또다른 누군가는 시민, 각기 다른 이름으로. 한국 사회는 순식간에 어떤, '이전'으로 휩쓸렸다. 광장의 성원들은 제각기 다른 이미지인 동시에 하나의 개념으로 호명되었다.


 그로부터 반 년이 넘게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잃고 또 회복하였는가. 혹자는 광장의 발생을, 또다른 누군가는 광장의 종언을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광장은 공론장의 명맥을 이었다고도, 형성 자체에 실패했다고도 말해진다. 민주주의는 '부활된' 동시에 여전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 안에서 광장의 주체이자 주력으로 기능한 민은 어떻게 기능하고, 표상되며, 정체화하는가.


 p.7 12월 4일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소와 같이 목격했을 풍경은 한국처럼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가 계엄과 같은 돌출적 사건으로는 쉽게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쿠데타 시도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 계엄이라는 비상사태를 기획하는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인 노동을 묵묵히 준비하고 수행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p.64 한국의 민주주의는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특히 수많은 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생을 달래기라도 하듯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중얼거렸고, 뒤이어 다시 피를 바치는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비일상이 일상을 집어삼킬 때마다 그러하듯, 불법 계엄 선포 이후 일상의 유지와 개념의 회복, 그리고 존재 투쟁의 간극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의의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동시에 '정의'의 정의를 차지하기 위한 경합의 연장이었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그 주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 민중이 주인이었던 때가, 진정 민주주의 사회였던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되는가? 이른바 '촛불혁명' 이래로 새삼스레 인식된 타국의 시민저항에 역시나 새삼스레 실망스럽고 부끄럽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대관절 한국인이 자부하는 '민주화운동'의 이미지의 핵심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p.119 우리는 공식 교육, 독서, 보도, 대중매체 등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극을 접하지만 어떤 경로와 매체가 되었든 죽음의 장면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 역사라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상과는 구별되는 차원에 존재한다는 감각, 또한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 나날의 생활을 난데없이 찌르고 들어와서 중단시키는 예외적인 장면들로 구성된다는 감각 같은 것 말이다.


 p.240 죽은 자는 산 자의 응답을 통해, 산 자는 죽은 자의 응원을 통해 구제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민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러한 상호구제를 통해서 결국엔 자기구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구상하고 건설하고 지키는 일이란 이러한 거룩한 믿음을 창출하고 동원해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제2의 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각종 미디어와 무용담, 교육자료로 숱하게 반복된 민주화투쟁의 이미지는 '열사'와 '소시민'으로 양분되어 있다. 다수의 소시민은 '열사'에 가해진 충격적인 죽음과 폭력을 목도하고 각성해 거리로 뛰쳐나오는 군중이 된다. '이전'을 경험한 적 없는 청년극우세대의 계엄 옹호는 사회 전반을 절망에 빠트렸다. 이것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한국 사회의 쇼맨십 선거구도와 팬덤정치, '대안사실'의 세대적 확산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가? '자격없는' 연사들의 연대발언에 대한 비난과 "품위" 운운은, 대의와 완결성은 무엇으로 표상되고 숭고한 열정은 어떻게 끌어올려져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과 어떻게 중첩되는가. 광장의 승리를 외치는 이들에게 먼저 광장에 나선, 항상 광장에 있었던, 그 광장을 열었던 혹은 모두가 떠난 투쟁의 현장에 남겨져 재차 고립된 이들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p.328 이처럼 죽음과 부활, 결집과 봉기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므로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민의 몸이 찢어졌다가 합쳐지는, 대단히 예외적이고 비일상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게 된다. (...) 민주주의를 희구하면서 광장을 가득 메운 집합적 신체의 장관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신성한 민주의 제단'에 바쳐질 누군가의 죽음을 의도치 않게 찬양하는 것이거나, 은밀히 그러한 희생을 요청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344 민주주의가 민에 속하는 이들과 속하지 못한 이들을 나누고 그 중 누군가는 민주주의로부터 배반당하는 이러한 역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민주주의라는 영화를 잘못 봤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극장 밖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으면서도 민주주의라는 영화 속 장면을 반복하여 극적인 역사를 재생산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이자 진정성이라 여겨왔던 관행과 작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른바 '광장에 나선 이들'을 추앙하기에 앞서, 그들을 무구한 희생양으로 못박기에 앞서 말이 되지 못하는 말로, 믿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음으로서 자신이 겪은 참상을 전달하려는 이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인식의 경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몸으로 표상되는 민, 민으로 표상되는 몸을 일종의 환상적 허구로 남겨두지 않는 일이다. 


 민주사회를 부르짖는 비민주적 욕망을 지적하는 것은 퍽 고되고 마뜩찮은 길일 것이다. 손쉬운 수사가 된 '극우'라 매도당할 것이다. 이미 그러하듯이. 현실이 아무리 극적이라 할지라도 개인은 표상 너머의 복잡계로 존재한다. 관객이자 주체로서, 양자의 역할을 모두 끌어안기 위해 기꺼이 부끄러워지자. 무고한 피해자로서의 민이라는 광휘를 벗어던질 때, 비로소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p.351 또한 더 크고 강하며 많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대적하고 제압해야 할 '적'과의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를 사고하게 한다. 민주주의의 적이 선명하고 강력할수록 민주주의의 부실한 성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도덕적 흠결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키는 것이 가능해지며, 이러한 '반민주'세력을 발견하고 지목하고 규탄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활동의 거의 전부가 된다.


 p.363 과연 한국의 민은, 즉 우리는 누군가 희생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분노하다가 무대로 뛰쳐나가 스스로 스펙터클이 되어 악한을 퇴치하고 거대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채 내려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긍정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주체인 민, 즉 우리가 민주주의를 상연하고 표상하는 방식을 돌아보고 바꾸어나가 면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도서제공: 창비

s*****7 2025.07.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