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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합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도저히 단념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익살이라는 끈 하나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요조는 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웠을까? 요조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로 익살을 사용했다. 나 또한 그랬다. 나도 어렸을 때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서 일부러 반 아이들을 웃기려고 했다. 나는 소심한 아이였으나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서 웃기려고 노력했다. 그런 요조는 한편으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요조가 호리키가 어리석은 사람이고 놀기에 좋은 상대인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지 않고 방탕하게 어울린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요조와 호리키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아닐까? 호리키는 요조의 돈을 원했고, 요조는 세상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요조는 비합법이 조금 즐겁고, 외려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본 것이 아닌가? 1930년대 군국주의 일본과 1945년 8월 패망한 일본을 보며, 일본의 실상을 목도하기가 두려운 것이 아닐까? 요조는 본인을 광인, 폐인이라고 하며 인간실격이라 말한다. 그럼 인간의 자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됨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껏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세계에서 단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요조는 지금의 일본의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듯하다. 기대어린 마음으로 끝나는 소설과 달리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기대를 갖기엔 세상이 너무 어두운 것일까? 이 책이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고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에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서로가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시대, 그러다 보니 진정한 신뢰가 싹트기 어려운 시대, 진정한 친구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시대, 이러한 시대에 이 책이 위로가 된다. 어쩌면 저자는 <인간실격>이라는 책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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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주인공은 제가 너무나 낯선 개차반, 날다리, 양아치 등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딴세상 사람이고 그래서 작가에 대해 찾아보았으며, 그래도 뭔가 이상한 공감하기 힘든....그런데 이상하게 그 과정속에서 뭔가 위로받는 느낌은 어덯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겟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