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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일본사람들은 "집을 나서면 모두 도둑놈으로 보아라."고 여기나온다 전국시대에
는 집을 나서면 모두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이라고 긴장하며 살았다. 전국시대는 불신의 시대였다.
가족외에는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처음 도입부에 문화는 인간의 역사경험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다. - 좋은말이다.
다른 세계의 문화를 접할 때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 선입견은 금물이다.
그리고 아주 좋은 말이 있다 8세기초에 유령국가가 성립되었다.
다른 책의 내용을 곁들이자면 백제왕족의 직계후손이 일본천황가를 만들었고 백제가 망한후 이들은 일본
이라는 이름으로 국명을 바꾼다 그리고 천황가의 후손들이 헤이안시대(발해신라의 남북조시대쯤)를 열
고 그 후손이 다이라씨를 열고 미나모토씨를 연다 다이라씨가문의 군대는 등에 홍기를 달았고 미나모토
씨의 군대는 등에 백기를 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운동회때의 청백전의 시초가되니 우리의 문화가 다
시 돌아온 격이라고나 할까
페이지 76 통치자로써의 덕이 나온다.
인간의 됨됨이는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보다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는말
그래서 일본은 무가정권 700년동안 사람을 보는 눈을 칼을 중심으로 키울수 있었나보다.
태평양전쟁때도 총보다는 칼을 우선시했다니...
고등학교시절 군국주의시절에 썼다는 풍신수길8권과 덕천가강20권 그리고 한국일보기자가 쓴 이것이 일
본이다를 읽었다. 대학시절과 사회나와서 료마가간다등 다체로운 책을 읽었지만 이처럼 좋은 책은 정말
없었다 물론 내 상식을 깨거나 주의깊은 내용과 정신을 준 책들도 있었고 좋았었다.
이 책은 일본사의 기틀을 제공해주었다는데서 개념정립이 되었다. 그래서 최고점을 주고싶다.
한국판 국화와 칼 같은 평가를 하고싶다.
물론 이 책은 아무에게나 선물할 대상은 아닌것 같다 어느 정도는 일본사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
고 있어야지 무조건적으로 읽는다고 소화시킬수 있는 수준의 책은 아닌듯 싶다.
(치바쇼바쿠)의 내용중 - 이길 수 있는 싸움에는 다른사람을 앞에 세우고, 지는 싸움에는 언제나 자기의
책임을 생각하라 - 귀감이 되는 감미로운 말이다.
페이지 91에서 오다의 첫승에 관한 내용 예전에 재미있게 읽던 풍신수길의 내용이 생각나 추억을 접한다.
페이지111 한중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질때의 자세 사뭇다르다.
히데요시가 모리씨를 서부에서 공략하고 있을때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지에서 반란을 일으킨거 좋긴 좋
은데 무사에 대한 내용을 주로하다보니 자세한 내용을 접하고 싶었는데 요점만 정리한 대목만 읽으니 좀
가슴에 안와닿는다 일본에선 지금도 겉치레는 다테마에 속치레는 혼네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지 않는가.
(하가쿠레) - 간언은 전투에서 수훈을 세우는 것보다 어렵다.
"의를 지키고 불의를 멀리하지 않으면 무사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무사를 우습게 알거나 저질로 안다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스케는 언행일치는 미
덕이지만 그것도 용기가 없으면 실천할 수 없다고했고 많은 무사들이절개를 지켰고 용기와 충절을 위하
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부분이 많다 특히 47인의 로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일본무사는 어릴때부터 칼을 차고 다녔다 또 칼을 써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훈련을 하였다 그것이 근처
의 개나 고양이일 수도 있고 '미나모토 무사시'에선 지나가는 제비를 베면서 훈련하는 장면이 나와 그 놈
미쳤나했는데 이런데서 연유한걸 이제 알았다.
그리고 2차대전때 포로들을 기둥에 묶어놓고 죽이는 연습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에 넘어가는 사람
들에게 예전에 죄수들을 묶어두고 죽이는 훈련을 했다는 풍문을 들은기억이 난다 여기서 연유했나보다.
겐카는 무사상호간의 싸움으로 무사의 일상생활 속에서 ㅂ라생하는 사적인 것이다.
페이지 254에서 6까지 겐카의 장면이 나오는데 사소한 싸움이 겐카로 발전하는 예가 3가지가 나온다.
우리는 배째라는 표현을 재미로하지만 일본에서는 배를 갈라죽는 셋푸쿠는 무사의 행위이며 그들만의 권
리였다.
무가정권시대가 끝나고 소위 새시대가 도래했어도 청년들은 여전히 무사사회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국화와 칼에서도 일본포로들이 전향하지를 않았는데 이것도 무가사회에서 주군에 대한 충성의식에서 비
롯된 것임을 느낀다.
페이지 276에서 내상투를 자르려거든 내 목을 잘라라는 현대와 근대사이의 문화의 건널목이 어디에나 있
었나보다.
페이지 300에서도 일본인의 폐도론은 조선의 단발령과 같은 저항을 불러왔다.
페이지 249에서 한국에서 웃어넘길수 있는 일이 일본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남듯 조선시대 수절과부
나 여러가지 예전문제가 집안을 멸문으로 만든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버려도 되는 사소한 것들이었듯 일
본에서도 그런 사소한 문제가 두 집안의 멸문으로까지 발전한 경우가 많았다는걸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
다.
무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새롭게 죽음을 생각하고 항상 죽은 몸이 되어있어야 했다.
일본인에게 일본도는 소지하는 자의 정신을 지탱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모든 소지품을 다 내려놓았어도 일본도만을 휴대하였다.
첫번째 리뷰---- 추천1 댓글0
나는 일본사에 대한 목마름으로 왠만한 일본사에 대해 서술한 책을 닥치는대로 사서 보았다. 물론 모아놓고 보면 보잘것 없는데 일본사를 고대서부터 현대 헤이세이 시대까지 적어놓은 책을 보아도 도대체 감이 안와서 두번세번 계속 읽은 기억이 난다. 재미난 소설을 읽으면 순간 몰입해서 끝까지 읽거나 어느 정도까지 읽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면 상당한 부분을 읽고있다는걸 느끼는 순간이 어느 정도씩은 있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고 저자가 일본사에 어줍잖은 지식이 아닌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해박한 지식이 있었기에 모르는 부분까지도 알기쉽고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아닌지 또 일본 무사도의 성립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쓴 것까지는 좋은데 덧붙여서 일본 헤이안시대로 종료
되는 고대사뒤에오는 가마쿠라막부시대부터의 역사를 한 손에 파악할 수 있는 재미도 덧붙인다. 저자가쓴 일본사 상,하 두권을 예전에 읽은 기억이나서 한 번 재미삼아 사보았는데 의외의 큰 소득은 얻은 느낌이라 뿌듯하다. 일본사에 대해서 대체적인 감을 느끼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2차대전 당시에 지은 베네딕토 여사의 국화와 칼이 일본사의 고전이라면 21세기에는 이 책이 우리시대의 고전이 되길 희망한다. 참 좋은 책이다. 적극추천한다.
제목 : 미즈노교수와 종로 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18세기 프랑스에선 자신의 문화의 우수성을 차등화하기 위해 `야만'이라는 말
을 만들어냈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
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
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노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 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
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할거하는 전국시
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 군단위의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한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
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
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 욕이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
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6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결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일본은 외
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의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이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
부들이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
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세운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
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꼐 논다는 겸손의 뜻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로 불리던 강남의 땅에 정자를 지은
후 그곳의 뜻은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녕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담,창덕궁산책로,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종로의 '피맛골'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떄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
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물양식이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그 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
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주식회사와 보험을 탄생시킨 동인도회사의 대표적 건물양식이며 한국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그자체가 박물관인 중앙청을 부술떄도 있었지만 한 정치인의 야망에 의해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그 정치인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때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한국은 야만의 수준
을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초가을에 자미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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