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주의에서 출발한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이제는 동물권에 가닿고 있다.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중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과 비거니즘 등을 포함한 생태 담론에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하지만 늘, 이러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었다. 생태 담론이 거대해질수록, 말 그대로 '담론화'의 벽 자체에만 갇혀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지나친 우려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중요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 바깥에 있는 거대담론이라고 생각했던 동물권과 환경 문제를 치열하게 몸으로 받아내며 느낀 모든 것들이 담겼다. '10년차 기자'에서 '10여군데의 동물 급식소를 운영하는 5년차 캣맘'으로 자신의 삶이 확장되기까지 겪었던 많은 일들과 인식의 변화를 화려한 치장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동물을 구하고 살리는 동안 행복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의 비참한 삶을 바라보며 느낀 인간으로서의 부채감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토록 비인간 동물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삶까지 바꾸는 사람마저 매순간 혐오와 무지 등과 싸우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시켜 나간다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내가 사랑하는 어떤 종의 비인간 동물을 구하는 일이, 다른 종의 비인간 동물을 혐오하고 몰아내는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삶에 있어서 '타당성', '당위성'이라는 것들은 언제나 부분적으로 교차하지만, 이를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단 하나의 비인간 동물이라도 더 많이 포용하기 위해 눈물 흘리고 고뇌하는 저자의 삶이 참으로 숭고하다고 느껴졌다. 저 멀리 우주에도 사람을 보내려 애쓰는 종이 곧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 안 개구리'가 아니라 그저 '우물 안 개구리'다. 자기 발 앞의 것밖엔 보지 못하니까. 저자의 말처럼, 오히려 동물들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의 잣대로 대상화하지 않고, 그동안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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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친하다고 생각했던 지인이 날 언팔로우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가끔씩 올리는 음식 사진이 불편해서 라는걸 나중에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비건이었고, 동물권의 견해를 갖고 관련된 글과 사진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이었다. 난 그런 사진이나 글들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던 걸 보면 고양이와 10년이 넘게 함께 살고 있음에도 안에서 바깥으로 확장을 하지는 못했던 사람이었던것 같다. 그녀에게 나라는 사람 자체가 거부된 것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난 변하지 않겠어! 너는 나를 조금씩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친거야! 라고 혼자 속으로 바보같은 생각을 잠시라도 했던 걸 돌이켜보니 많이 부끄러워진다. <살리는 일> 의 박소영 작가님은 그런 나를 조용히 돌아봐주시는것 같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러나 자신의 길을 확고하게 정하고 그 길을 걸어나가고 있는 강인함으로 말하고 있다.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다고. 당신이 변했듯이 나도 변할 수 있다고. 박소영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과 바람을 담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조금씩 바뀌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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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꾹꾹 참았다. 재작년 겨울 임시보호를 하다 입양까지 하게 된 지금은 우리 가족이 된 막내 강아지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험한 일을 당했는지 사람 손 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입질을 하고 목줄 하나 채우지 못해 산책은커녕 동물병원에도 가기 힘들어했다. 우리 가족은 이 강아지를 사람 손을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반려동물과 관련된 책을 읽고, 영상들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강아지를 위해 돈을 모아 동물훈련사를 집에 불러들이고 할 수 있는 노력들은 죄다 쏟아부었다. 갑자기 아프게 되면 동물병원에는 어떻게 데려가지? 평생 목줄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입양하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면 어떡하지?를 걱정하며 밥 먹다가도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눈물로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그랬던 강아지는 지금 매일 하루에 세 번은 꼭 산책을 나가야하는 씩씩하고 멋진 강아지가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나 역시 완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지금에서라도 세상을 바꾸고 실천하고 싶었던 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검열하게 만들었다. 어떤 때에는 길거리에 있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라고 데려온 우리집 피칸이가 사실은 우리가 데려오면서 더 불행해져 버린 건 아닐까, 나혼자 ‘반려’라고 규정짓는 것도 폭력적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을 검열해야 하는 ‘캣맘’이었다.(32p)” 나 스스로를 검열하고 주눅이 들 때마다 밀려왔던 답답함에 괴로워했던 이유들을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캣맘을 하다보면 이 책에서와 같이 아이들을 챙겨주기 위해 바쁘기도 하지만, 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일을 행해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겨진 많은 약자들은 다른 이들이 나쁜 인식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작아지고 몸을 사려야만 한다. 그리고 아직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함께 내주고 용기를 심어줄 사람들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비인간 동물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 다문화가정, 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계속 떠올랐는데 작가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많이 해주시고, 특히 예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 대한 사례가 나와 깜짝 놀랐다. 작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같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주셨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듯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소리 높여 정신없이 대화하듯 후루룩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님과 친분은 없지만 작가님이 걱정되었다. 캣맘 일을 하면서 해외여행을 꿈꾸지 못하고 이사를 가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해야하고,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착한 동기를 가졌지만 경계해야하는 일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걱정하느라 혹시 나중에 지쳐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동물들을 구조하고 보살피는 데에 아낌없이 힘을 쏟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건강한 글을 써주신 작가님께 무척이나 감사했다. 이 책을 쓰신 작가님이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독자들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끔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알게 될 때마다 너무나도 화가 나서 차라리 모른 척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노력하고 힘을 쏟고 계시는 세상의 수 많은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며 나역시 힘을 보태고 싶다. 작가님의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 글이 많이 퍼져서 꼭 같이 힘을 보태어 더 나아가 동물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많은 생명들을 살려줄 사람들이 늘어나길, 용기를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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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자주 쓰는 물건인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어떤 물건에 누군가가 생각이 날 때. 내가 어제, 털모자를 집어 들려다가 <살리는 길>의 길고양이를 가만히 생각한 것처럼. 정말 올해가 가기 전에, 모두가 꼭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 김금희 작가님, 정세랑 작가님, 박정민 작가님의 신뢰와 추천을 예쁘게 두르고. ‘우리는 이렇게 생생하게 견디어 살아 있'음을 말하는 듯한 붉고,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다” <살리는 일>은 길고양이부터 사육곰, 실험실의 토끼, 소외된 사람들까지 사랑의 대상을 확장해나가는 감동적인 에세이이다. 10여 군데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캣맘’ 박소영 작가는 길고양이에게 따뜻한 물과 밥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동물을 구조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또박또박 적어낸 생생한 체험기에 마음이 크게 일렁인다. 이 책이 놀라운 건, ‘동물을 사랑하는 데 본인의 삶 전부를 내던진 이의 하루’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는 점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살리는 일'의 의미를 아주 세밀하게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채식을 하고, 토끼 실험을 거친 마스카라를 사지 않고, 동물의 삶과 감정을 외면하지 않은 음악과 책을 사랑하는 일로. '기호’가 아닌 단순히 ‘옆 사람’으로 간주되길 바라는 장애인의 소망과 집이 없는 이들의 사계절을 헤아려보는 마음으로말이다. 살아남은 이들이 갖게 되는 숙명처럼, 정말 ‘쓰지 않을 수 없어서’ 기록한 글이라는 게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느껴진다. (정말 이 책이 주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살리는 일> 덕분에 나는 앞으로 사랑하는 날들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누군가가 나의 눈길에, 낮춘 몸과 건넨 손에, 시선과 마음을 둥글게 한 모든 신호들에 안심할 거란 믿음을, 기대를 갖게 되었으니까. 나도, 길 위의 작은 친구들을 기꺼이 내 삶에 초대하고 싶다. 물론 그 친구들이 내 곁에 와준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이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일. 새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작은 힘이나마 누군가를 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살리는삶’을 살고 싶다.” - 본문 중에서 - "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 본문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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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박소영 ☆☆☆☆☆ 이 책의 작자인 박소영 기자를 독서모임에서 처음 봤다. 2018년에 시작했고, 10번 가까이를 했으니 서로 빠지지 않았다면 10번 정도 봤을 게다. 이후에 따로 그 멤버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 번 더 본적이 있다. 그 때는 밥을 같이 먹었었다. 그때 책에 나온 것 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냥 먹을게요". 옥자라는 영화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믿지 않았었다. 설마 영화 하나로? 나도 본 영화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던 터라 더 믿기 어려운 이야기 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 때 밥을 같이 먹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딱히 그럴듯한 기억도 없었지만, 이 문장을 보고는 더 그랬다. "단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자주 외로웠다.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변화하지 않는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한 비난으로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거야,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라고 이유를 찾아보기는 했었다. 다음에 만나 혹시 밥을 같이 먹으면 "그냥 먹을게요" 라는 말을 안해도 되는 식당으로 가시죠!! ? 정갈하고, 도시녀의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직업도 기자이고, 독서 모임에서 생각을 이야기 할 때 보면 군더더기 없었다. 타투 이야기는 의외였다. 책에 쓰여진 것처럼 나만의 선입관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음에 새기면 되지, 기어이 몸에 새기다니, 항상 처다보고 행복의 원천이 될만한 것은 한두개면 되지 않은가? 근데 타투를 앞으로 더 늘릴 거라고 하니, 어우! 이 독한!!^^ "나는 변하지 않을 어떤 것을 몸에 새기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을 몸에 그리고, 언제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감의 원천이 된다. 마치 손에 미술품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랑하는 것들로 몸에 장막을치고, 그것들로 보호받는 느낌. 나는 앞으로도 타투를 하나 둘 늘릴 것이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많아질수록," ? 사랑 이야기는 극과 극을 달린다. "상대방의 자리를 상상하는 것으로 사랑은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는 문장과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악취?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우기는 모습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작은 일상이 있어야 고상한 철학도 나오는 거 아니겠는가? 혹여 코로나가 잠잠해셔 만날 일이 생기면 냄새에 신경쓸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류의 지적활동의 시작은 "구분"이다. 먹어도 되는 것인지, 가도 되는 길인지, 저 동물은 나를 해치는 동물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구분하는 일이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런 구분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언제 행복한지, 직업을 사람을 구분해내는 건 점점 어려워 진다. 아니 복잡해 진다. 반려견을 돌보는 삶을 선택한 순간 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구분해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끼 식사에서 부터, 사는 곳을 결정해야 하는 이사, 어디까지 돌보아야 하는지 시간과 노력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 힘을 얻기도 하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과 갈등도 힘들게 버티거나 외면해야 한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고 더 부럽다. 그리고, 이 문장이 아프지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 "나는 자주 생각한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미안해하지 말자고. 그리고 노력한다,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이런 것마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서글프게 느껴지지만." ?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한 말이다. 박소영 기자님!! 책을 냈다는 것보다 소영쌩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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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지인이 추천해서 접하게됐는데.. .. 보기 불편할 정도로 주관적 경험, 편견, 피해의식.... 이 만연해 불쾌했다 ㅠㅠ 작가의 마음은 이해하는데 .. 반대로 비건이 아닌 사람이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각자 생각대로 살면되지않나 싶었고 ㅠㅠ 아이러니하게 반감이 더 생겨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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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인간만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나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기를 좋아하는 너와 내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비건은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육식을 전시하지 않는 것. 내가 맛있게 먹은 고기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 육식 소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육식은 동물권의 문제도 있지만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이기도 하다. 육식의 전시를 줄여나가는 것만으로도 동물권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함께 쓰는 지구에까지 덜 해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생명의 목숨줄을 밟고 그 위에 서서 숨 쉬는 것은 멈춰야 한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뿐이다.' 스스로가 인간답게 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 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덜 멋진 옷을 입고, 덜 예쁜 내가 되어도 좋다. 유난스럽고 예민한 사람이 될지언정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
'내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 것은 작으나마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 세 마리가 누군가에 의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다. 나는 몇몇 동네 아저씨들의 눈엣가시인 캣맘이었다. 퇴근길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어느새 야옹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세 마리의 고양이가 담벼락으로 쪼르르 따라왔다. 그저 사료와 물만 주었는데도 그렇게나 나를 잘 따랐다. 이름도 없이 그저 이리와하고 부르면 밥을 먹고 나에게 몸을 비비던 아이들이었다. 그러다 종종 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아저씨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 캣맘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위협이었다. 혹시 그 일 때문이었을까. 그 아이들의 죽음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여러 곳에 신고를 했지만 야생동물 사체 처리 외에는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나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로 인해 내 캣맘 생활은 끝이 났고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한동안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외면하기 바빴다. 그 고양이들이라고 춥고 배고픈 길 위에서의 생활을 선택하고 싶었을까? 물론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동물이 사람 눈치 보며 사는 세상이 아닌 사람이 동물 눈치 보며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의 기쁨이자 행복인 반려견 홍시는 번식농장 구조견이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개들이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품종견 뿐만아니라 식용견으로 길러지는 개들까지. 무지했다고 변명하기에는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더는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된다. 지금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부끄러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작은 관심을 시작으로 모든 동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날이 올 때까지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를 살리는 일이 곧 나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용기와 위로 그리고 계속해서 실천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동물을 위해 힘써주는 이 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찌나 든든한 위안이 되던지. 더 많은 이들이 동물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살리는 일'을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 또한 그러기를!
박소영 작가님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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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강아지, 고양이와 살고 있는 반려인이고 길고양이에게 5년째 밥을 챙겨주고 있다 고양이는 나에게 무서운 동물이었다 경계를 할 때 세우는 털도, 화가 나면 드러내는 발톱도, 소리도 너무 무서웠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작은 목소리로 살아있음을 알리던 어린 고양이 한마리, 우리 양이 그 작은 생명을 시작으로 추운 겨울 어미없이 좁고 좁은 구석에 떨고 있던 우리 몽이, 결막염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던 우리 쿵이까지 아이들로 인해 고양이에 대한 무서움의 경계가 좁혀졌다 ( 부모님의 집은 주택이다 ) 양이와 몽이는 집안과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지내는 아이들이다 같은 아픔을 겪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서로를 잘 챙겼고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특히 작고 여린 어린 아이들에게.. 그래서 난 5년째 길고양이들에게 밥 셔틀 중이다 5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우리 양이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고, 몇 날 며칠을 찾아 헤맸고, 그렇게 발견한 양이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의 손에 내 곁을 떠났고, 양이를 잘 따르던 몽이는 몇 날 며칠을 울며 지냈고.. 아마도 그 날 이후로 몽이가 다른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작가님처럼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나서며 돌보진 않지만, 배가 고파 오는 아이들을 챙겨주다 보니 5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작가님이 이 글을 쓰시기까지의 삶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슬퍼했고 분노했고 눈물을 흘렸고 반성했다. 동물들의 희생을 통해 편안한 삶을 누리며 살고 있으면서 아낀다 사랑한다 말만 하는 사람이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작은 힘일 테지만, 큰 변화는 아닐 테지만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힘을 보태고 싶다 사랑, 용기, 헌신을 하며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소중한 생명들을 돌보고 계실 작가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고 응원하고 싶다 .. 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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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물을 좋아하노라. 한다면 살리는 일을 실행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더불어 선을 행하며 그 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하며 마음그릇도 더욱 깨끗해 질 것이다. 더 깨끗하고 더 안락한 집은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상황에 맞게 해주면 되는 것 아닐까. 세상에 버려진 모든 쉴 곳 없는 동물들에게 따듯하게 대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세상이 되기를.. 외치기 전에 자신이 실행을 먼저 해주고, 그것을 책으로 옮겨 많은 이들에게 외쳐준 그녀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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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듯, 사람이 동물을 사랑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다. 사랑은 힘든 것도 척척 해낼 수 있게 만든다. 고양이를 돌봐주는, 소위 말하는 '캣맘'이라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랬듯, 또 당연하다는 듯이 고양이들을 챙겨주고 그들이 배를 채울 수 있게 배려해 준다. 쉽게 갈무리할 수 없는 게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꾸준히 사랑을, 그것도 행동으로 보인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고양이들의 본래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지만 특정한 사람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는 게 다행이다. 또한 좋은 기회로 그걸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렇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돈다는 건 그게 실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힘을 보태줄 수는 없지만, 이 책이 세상에 풀렸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박소영들이 작가님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권태를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것도 간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