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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오고쇼, 즉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한없이 자애롭고, 후덕하며, 또 신망있고 의리를 지키는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역시 난세를 살던 전국인의 하나였고, 생존이란 덕목이 궁극의 도달점이었던 약육강식의 시대에 무골호인이 된다는 건 자체 만족 혹은 세상의 평판 어느 편도 얻지 못하고 티끌처럼 도태되는 비참한 귀결을 부르는 게 당시의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실상이야 어쨌든 이 '픽션' 속에서 다다테루를 앞에 두고 마음에도 없는 연극을 하며 한없이 눈물을 떨구는 그의 모습은, 세상의 안위를 책임진 한 사내와, 제 살점을 저며내어서라도 자식을 살리려는 한 아비의 처지를 겸하는 그 처절한 자아분열상이 생생하게 펼쳐져 독자를 숙연하게, 또 비감에 젖게 만든다. 의리 하나로 주군의 온갖 신산을 같이하고 대신 떠맡기까지 했던 가신의, 병풍 뒤에서의 하염없는 통곡도, 아무리 일본시대물에서의 익히 봐 오던 클리셰라고는 하나 사람인 이상 가슴이 뭉클해진다.
부모의 마음이란 다 이런 것이겠다. 이 권에선 '어머니'의 애끊는 자식 사랑은 다뤄지고 있지 않으나 전편을 통해(1,2권의 '게요인' 등) 일본적 모성상을 또한 절절하게 묘파하고 있는 게 또 이 작품이다. 여하간 이 권에서 아버지는, 아니 부모님이란 존재는, 자식의 장점, 단점을 신불보다도 더 정확하게 낱낱이 꿰뚫는 존재, 아이가 어떤 응석과 어리광, 때로는 패륜을 부리고 까불어도 예수(기독교 세력의 말썽이 이 책에 참 여러 번 나오는데 실제 역사도 그러했다)나 그 어느 초월적 존재의 대자대비보다 더 너그럽고 '포괄적으로' 죄사함과 재생의 기름부음을 아낌없이 행하는 분이다. 제발 사람이 되어서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사회에도 폐를 끼치지 말라는 훈육이라는 점에서 짐승의 생식행위을 뛰어넘는 고결함을 보임이겠다. 비록 못나고 심성까지 비뚤어졌으며 머리까지 절망적으로 아둔한 저주받은 자질이라고 한들,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부모 입장에서도 차마 그 얘기는 못 하고, 그저 나무아미타불 삼천번을 외우면 축생도 극락왕생이 가능하리라고 여겨 불가능의 비원을 108염주알을 굴리며 새겨 넣고 또 새겨 넣는 것이다. 생에 있어 단 한 번도 남의 눈에 들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낸 적이 없는 아들, 오로지 부모가 애써 빽업하는 물질로만이 어디 가서 남한테 경멸과 무시(그가 받아 마땅한)를 면할 수 있었던 그 아들에게 "그래! 니가 이렇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잘못 만난 탓일 뿐이야!"라며, 끊임없이 반어의 기원을 불어 넣으려 애쓰는 그 모정, 너무나 닳고 닳은 클리셰라 오히려 대세적으론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게("아니 대체 한국 모든 청소년을 망치고 다니는 그 못된 익명의 친구놈은 누구란 말유? 그놈 하나만 족치면 애들 다 김빛나리교수로 만들텐데..") 뻔한데도 어머니의 필사적인 기원은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학창 시절 이래 그 끊임없는 필사적 현실도피로부터 제발 바른 길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180도 다른 동기에서이긴 하나 사회의 눈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왜? 아주 볼썽사납고 혐오스런 그 추악한 꼬락서니를 제발 시야에서 면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을 것이므로. 천하의 공유뮬인 오사카 성을 마땅히 제가 받아야 할 대접인 양 대놓고 내놓으라 '뗑꽝'을 부리고 부모에게도 안 먹힐 그 한심한, '똥오줌 못가리는 식의' 터무니없는 어리광질을 세상에 향해서 당당하게도 요구하는 그 '큰 빠가'가, 즉시 (일견 불가능해 보일) 회심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거리에서 다테 마사무네 같은 인정 사정 없는 맹호를 만나 그 눈빛만으로도 형체도 없이 찢기고 뜯길 게 분명한 운명이겠기 때문이다. 그 부모 역시 과연 그 아들을 둘 법한 복사판인지는 물론 정확히 알 수는 없겠으나(그럴 필요나 가치도 없다) 굳이 신사도나 독자의 충성심을 발휘해서 텍스트를 선해하자면 그럴 것이다. 어디 가서 '부모가 나를 대접하듯 너희도 나를 그리 여겨라'는 식의 발광을 한다면, 지금이나 그때나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의 칼날이 주해의 刀劍, 아니 道劍처럼 그 보잘것없는 고깃덩어리를 도륙할 것이므로.
한 초인의 대망은 막을 내리나, 사나다(眞田) 씨의 냉소적 예언처럼 세상의 바보들이 그저 될 때까지 해 보는 도발질에 평화란 요원한 것이니 비록 천하인의 대망도 신불의 자비도 부질없을 뿐이라고 한다. 범부로서 그 최종의 향배는 가름할 길이 없더라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또 당당하고 사내다운 일일 것이라는게 이 대로망의 최종 결론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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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말로 꼭 일년도 더 걸린... 독서의 시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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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615페이지, 31줄, 30자.
뭐 역사의 흐름대로 히데요리는 멸망합니다. 망한 가문을 일으키려면 납작 업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멸문당하는 것이지요. 쇼군 히데타다는 아버지에겐 저자세이지만 그것 때문인지 정치는 과격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인척들에게도 마찬가지. 동생 다다테루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지만 처분이 늦어지자 이에야스가 직접 작은 성에 안치시킵니다. 결국 죽을 때까지 아버지 얼굴을 못 보는 처분을 당하여서 꺽이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동생들은 아직 어리니 히데타다에게 대들 수 없습니다. 히데타다의 쇼군직 세습이 끊어질 것을 감안하여 막내는 대대로 부쇼군직만 담당하도록 하고, 9남과 10남은 혹시 3남(히데타다)의 가문이 끊어지면 쇼군 후보가 되도록 합니다. 덕분에 260년을 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난제인 다테 마사무네(다다테루의 장인)를 승복시킨 후 이에야스는 눈을 감습니다.
철저히 이에야스의 편에서 기술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소설이라면 이렇게 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리 해야 편을 들면서 읽을 수 있고요. 주인공이 나쁘게 묘사된 소설보단 반대의 경우가 더 잘 읽힙니다.) 역사에 기술된 것들과는 시각이 다르지만 근 8천 페이지나 되는 대하소설을 읽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13권 이하는 다른 내용들입니다. 다음에 사면 읽을 예정입니다. 당분간은 쉬면서 다른 책을 읽어야지요.
111012-111013/11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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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을 때 오쿠라 부인은 요도 마님 앞에 두 손을 짚고 경련하듯 큰소 리로 울기 시작했다. 쇼에이니도 나이 부인도 오쿠라 부인을 따라 고개를 들 지 못하고 있었다. 왜 우느냐? 무사히 돌아와 기쁜 눈물이라면 나중에 흘려라. 그리고 조쿄 인은 어떻게 된 거냐? 이에야스는 그대들을 베려고 했겠지? 퍼붓는 듯한 요도 마님의 질문에 오쿠라 부인은 한층 더 소리높여 울었다. 요도 마님이 팔걸이를 두드렸다. 울지 마라, 오쿠라! 그대들은 나의 사자, 아직 보고도 하지 않았다. 오쿠라 부인이 갑자기 소리쳤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쥡시 오.
이제사 대망 속의 대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네요. 읽기 급급했던 대망이었는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