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주의 아름다운 여름.. 사표를 내고 한 달 즈음 쉬는 동안 서울에 올라가 있다가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데 읽을 책으로 언니가 소개해준 책이었다. 공선옥의 유랑가족을 빼앗더니 나에게 쥐어준 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언니는 분명 나에게 '재밌다'라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언니의 기준에서 재밌다...는 곧 잘 쓰여진 소설같다는 의미를 간과한 채 그렇게 읽어나갔다. 오래전 내가 스물 아홉해를 건널 즈음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라는 책을 보았을 때와는 상황은 비슷하였으나 그 결말은 참담히 달랐으니 사실 나로서는 저 책을 읽고나서 여주인공 이경은처럼 그렇게 새로이 걸어나가는 삶을 기대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일까. 안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것 그 명제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은 알아도 여전히 자신이 빠지고 만 궁창에 다섯 번은 더 빠지고 나서야 그제서야 그 궁창을 돌아서 간다는 그런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 인간의 한계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찾아야 한다. 행복을 누리는 권리는 바로 자신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할 그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불행을 누리고자 자처한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여름을 읽다보면 답답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라디오 시청자가 그러하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작가가 말을 하였듯이 그는 우리의 네가필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점점 자신의 세계에 더 빠지게 된다. 정작 우리에게는 나 자신에게 속해있으면서 그것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결혼을 하건 안 하건, 일을 하건 안 하건, 아이를 놓건 안 놓건, 부자이건 가난하건, 낙천적이든 그 반대이든 사람들의 그 '말! 말! 말' 때문에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은 과연 우리 인생을 슬프게 하는데 몇 % 차지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 이경은은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다. 그녀 역시 서른을 넘어온 사람이고 그 고개를 넘는데 그저 그냥 넘을 수 없는 인생이다. 직장에서는 이미 여자 서른 넘었으니 퇴물감으로 인정을 받고, 정작 자신은 나름의 안정권에 있다고 하지만 그녀의 삶은 늘 이리저리 부는 바람으로부터 안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그런 불안정한 심리적 상태를 주변의 완벽한..결백에 가까운 정리정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지만 결국 그는 그 자신이 인정하기 이전에 타인으로부터 들려오는 그 목소리로 인하여 자신이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을 먼저 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지 못하는 그 마음, 단 한번 그를 의지하던 모습, 서로 다른 기대로 자신의 자녀가 살았으면 하는 그 삶의 형태들, 그리고 정작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동료의 모습 속에서 나는 저리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그녀는 그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모습을 보던 그녀는 결국 시간이 지나고.. 기나긴 여름,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그 여름의 한 철, 그를 바라보던 청취자의 죽음과 함께 건네 온 시집을 보고서야 자신의 이제껏의 삶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자신의 삶의 음각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된다. 우리가 반드시 살아가면서 필요한 그 도약의 발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체조선수들이 힘껏 발판을 구르고 난 뒤에 저 착지점에 내려앉듯이 우리가 정말 피할 수도 없고, 아니 그 피하고 싶은 그것이 바로 자신의 구름판이 됨을 아는 데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나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나의 음지를 받아들이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이고(어쩜 그것은 선택을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리라), 지금 내 눈앞의 일들이 바로 내 삶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또 한 발자욱을 떼고, 한 걸음을 나아가고 내 눈앞에 펼쳐진 길을 갈 수가 있을까.. 며칠 전 나는 영화 '밀애'를 보다가 주인공의 넋이 빠진 모습에 지쳐서 중간에 다른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채널을 돌렸을 때 마지막 그녀의 독백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하였다. 자신의 인생의 슬픔이 자신을 살리는 것이 될 줄, 자신의 삶을 깨우는 그 것이 될 줄은 몰랐다던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의 모습은 몇 시간 전 보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경린의 '내 생애의 단 하루뿐인 날들'이라는 그 소설, 내용은 어렴풋이 알고 있고 조금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고,,, 아무튼 그녀의 표정과 대사 마지막 흐르던 음악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 그래서 사표를 낼 수도 있고, 이제껏 자신이 걸어보지 못한 그 길을 갈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인생은 그렇게 굴러간다고 해도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라면 조금 참고, 참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그것이 곧 행복임을 그 모든 것을 다 끌어안은 가시를 품어도 아프지 않은 그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겠다. 언젠가 새벽길에 혼자 정자해변을 향해서 일출을 보러갔던 날, 아무리 기다려도 해는 떠오르지 않고, 수평선조차 보이지 않던 안개 속에 가려진 그 막막한 대해만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그 날, 바다의 가르침처럼...인생은 내가 원하는 만큼 명확하지도, 확실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다만 우리는 보이는 만큼만 걸어갈 뿐이다. 안개 속의 풍경 속의 그 나무처럼...희망은.. 언제나 그 모든 것을 딛고 선 사람에게만 다가올 뿐이다. 절망의 끝에서 끌어올린 것이 희망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아닐지라도 그 삶의 산을 넘을 수 있는 믿음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