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당시의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쌍두취 행진곡]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지식인들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해서 비판한다. 작가는 배운것이 사용되지 않으면 배우지 않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주인공들이 학업을 중단 한 것에서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배운 사람은 그 배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농촌과 당시의 문맹을 깨우쳐 보려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있다. 작가는 함께 꿈을 꾸었던 영신이 죽는 것으로 하여 비극적인 이야기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 장의 제목을 '최후의 일인'이라고 하였다. 비극적인 이야기 다음에 이러한 제목을 붙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있다. 작가는 영신이 일본에서 학업도중 병이 걸려 돌아 온 것을 통해 영신이 죽은 것이 일본과의 싸움에서 순교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신과 동혁이 하고 있는 일은 사실 일본이 억압하고 있는 일, 즉 창씨개명, 우리말 사용금지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결국 영신의 죽음은 일본과의 싸움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영신이 비록 죽었다고는 하지만 최후의 일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게 한다. 누군가 싸우다가 죽어도 우리 민족을 살릴 사람은 언제나 남아서 상록수 그늘을 걷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제목이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농촌 계몽운동은 1935년대의 시대적 상황이다. 오늘날 동혁과 영신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들은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쩌면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잔잔한 감동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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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하면 교과서로 본 짧은 지문 속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농촌 계몽운동을 하던 여자 주인공 채영신이 주재소 주임으로부터 강습소에 아이들을 80명 이상은 받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아이들을 내쫓자 내쫓긴 아이들이 강습소 담벼락에 주욱 매달려서 귀동냥이라도 하려고 하는 모습. 이어진 영신이 창문을 활짝 열며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라고 했던.. 그 가슴뭉클한 한 장면으로 내내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올 3월 한달여의 긴 시간에 걸쳐 전문을 읽어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의 일제 시대 하 농촌 계몽운동이야기 인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거 참 생각했던 것과는 참 다르다.
우선, 주인공 남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나는 이 소설에 이렇게 메가톤급 사랑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을 하더니 사랑도 역시 열정적으로 하나보다. 둘의 절제된 모습들 속에서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나도 따라 흥분(?)되고 한편으론 그들의 순수한 모습에 혼자 큭큭 웃음도 나는 것이었다.
또, 작품해설에 보면 작가 심훈은 농촌 출신이 아님에도 원래 농촌 태생의 작가보다 더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던 천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해서 그런지 등장 인물과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동감이 넘쳐 흐를 뿐 아니라 아주 재미지다. 다른 나라의 고전을 읽을 때는 좀 딱딱하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상록수를 읽을 때는 너무 재미있었다. 뻔히 결말을 다 알고 읽는 것임에도 말이다.
작품속에는 생소한 단어도 많이 보였다. 차례로 대신 번차로 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지만 그외에도 많은 새로운 단어가 많아 내 어휘 실력이 이렇게 짧구나 하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혁은 말미에 영신이 죽고 동지인 건배가 배신하며 동생 동화가 만주로 피신을 가게 되면서 절절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나도 요즘 외로운 생활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의 외로움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숙명인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각각 자신의 육체속에 자신만의 의식세계 속에 살지 않는가. 그런 이상 그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똑같이 느껴줄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존재가 아닐른지... 힘들게 얻은 동반자나 동지라 할지라도 여러가지 원초적인 본능과 주위 상황에 의해서 얼마든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니까.
이거 다시 센티멘털 해졌다. 아니다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외로움을 대할 때 덜 힘들어 할 수 있을 것 같다.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