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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화창했던 어느 날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봄날의 운치도 감상할 겸, 흥선 대원군의 자취를 느낄 겸 운현궁 마당을 거닐었던 적이 있었다. 서울 도심부에 그것도 전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큰 마음 먹지 않고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운현궁이다. 궁이라고 해도 덕수궁이나, 창덕궁처럼 큰 곳도 아니고 사대부가의 위엄이 느껴지는 정도, 걸어서 둘러보면 5분이면 족한 그 정도의 규모에 불과한 사가이다. 그럼에도 '궁'이 된 이유는 고종이 왕이 되자, 왕의 사가를 여염집처럼 대할 수 없으니 '궁'자를 붙여 불렀을 터이고, 고종 즉위 뒤에도 왕의 부친인 흥선 대원군이 계속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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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제목이 참 멋지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문단에서 드물게 탐미주의적 성향을 보인, 그래서 선하기보다는 도도한 기운을 내뿜었던 김동인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이광수 작품 도처에서 드러나는 계몽성이나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었던 것이 김동인의 작품이었다. 그랬던 그는 왜 '운현궁의 봄'이라는 역사소설을 쓴 것일까?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의 섭정자로 권력의 중심에 서기까지를 담은 것이 '운현궁의 봄'이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원군의 '상갓집 개'나 ,기생집, 투전판을 들락거리는 '파락호'이미지는 이 '운현궁의 봄'에서부터 비롯된 모양이엇다. 무엇보다 김동인은 조선 역사 전반을 섭렵한 뒤에 이 작품은 쓴 모양이다. 30년대 초반이라는 상황, 일제의 문화 정치가 이루어지던 시기임을 감안해야 하는 것일까? 일제에 협력하는 작품을 쓰라는 일제의 강압을 피한 것일까? 아니면 창작력이 소진돼서?
흥선대원군이 안동 김문의 세도에 그들의 탄압을 피해 납작 엎드려 살았던 시절이며, 둘째 아들을 보위에 오르고 10년이상 권력을 움겨쥔 조선의 실권자였다가, 성장한 아들과 며느리와 권력다툼을 하다 결국 패했다. 그리고 다시 권좌에 복귀하려 했지만 이미 시대는 그의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의 굴곡에다 사대부들의 기득권에 맞서 강력한 정책을 펼치는가 하면 제국주의의 공세가 밀려들 때에는 쇄국을 고집한 그의 정치적 노선 또한 그를 정치적 풍운아로 만들기 충분했다. 흥선 대원군을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가 쏟아질만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김동인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야망을 감추고, 안동 김문의 경계를 피해 굴욕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살던 시절에 집중했고, 그가 대원군으로 고종을 섭정하게 되는 역전의 순간에서, 드디어 운현궁에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작품을 끝맺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시 우리의 처지를 빗대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비굴하게 살지만 일제를 물리치고 다시 비상하게 될 것이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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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철종 사후 차기 왕위를 두고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이 대면한 상황, 안동 김문의 세도와 전횡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왕실 어른인 조대비와 몰락한 종실 어른인 이하응, 당시 상황과 두 사람의 처지와 심중이 얽힌 심리묘사가 대화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조선 말기, 세자가 대통을 잇지 못하던 시절, 누가 권좌에 앉느냐에 따라 엇갈리는 운명들, 그래서 눈을 번득이며 권력을 움켜쥐려는 인간들의 움직임은 남달랐다. 물밑으로권력의 향배를 알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 세웠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움직임들도 흥미로웠다. 김동인은 탐미적인 작품을 쓴 작가답게 지저분하지 않게 깔끔하게 잘 담아냈다.
표지 안 쪽에 '운현궁의 봄'을 쓰던 무렵의 김동인의 사진이 실려있다. 선이 가늘고 세련된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신교육을 받은 현대적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온다. 그리고 '내가 천하의 김동인이요' 하는 그 도도한 분위기까지도. 역시 내가 사랑하는 작가이다. |
|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화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큰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바로 실제 인물들의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운현궁의 봄도 그렇다. 패망하는 마지막왕조. 그 조선왕조의 암울한 시간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나 대원군과 그 며느리였던 황비 민비의 성격묘사가 두드러진다. 운현궁의 봄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운현궁에 살았던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기위해 오랜 세월 감내해왔던 인생격정을 차근차근 써내려가고 있다. 학교수업시간에 배운 것이라곤 세계적 흐름이던 개방정책대신 쇄국정책을 펴 우리 나라의 개방화시대를 늦췄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정말로 잘못되었던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나라의 권력을 잡기위한 치열한 암투와 음모가 고스란히 살아있으면서 '김동인'만의 생생한 문체로 더욱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고귀한 왕족이면서도 비천한 행색으로 광인 행색을 하며 시대를 기다린 풍운아였다. 어느 누가 멸시와 천대를 견뎌내며 수십 년을 기다릴 수 있었을까? 기울어가는 국운을 세우고싶어했던 한 사내가 여기있다. 내가 알고 있던 한 사람들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 이 책이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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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응이 조선의 흥선대원군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역사적 인물을 다시 재조명하여 인간적인 모습을 담는 소설은 여러권 있었으나 나는 감히 김동인의 소설이 목적에 가장 적합하게 담아냈다는 찬사를 해주고 싶다.
역사적 임물이나 사건은 이미 죽은 자들의 것이라 작가가 작기의 기교대로 조종해도 거역하거나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바로 여기가 예슬가는 곧 神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대동강변의 공자 김동인이 역사소설을 취할수 있는 제일 합당한 곳이었다. 작품해설中
소설적인 픽션이 가미되어 있지만 조선의 전체적 흐름을 기반으로 정치적 음모로 팽배해진 왕조의 권위 실추,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하응의 눈물나는 몇년간의 상갓집 개와 같은 (소설속 인용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버려진 음식이라 주워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절개와 꿋꿋함은 글쓴이의 의도대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와닿게 표현되었다. 나처럼 흥선대원군=쇄국정책 으로만 알고있었다면 진짜 흥선대원군의 삶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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