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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우울한 감성의 사랑이야기다.
작가가 '기이한 시대'로 정의내린 "2차 세계대전"을 동독에서 보낸 탓인지, 그 시대의 경험이 소설전체에 녹아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정의는 없다.
시대의 아픔보다는 사적인 경험과 감정들이 주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거의 배제된 역사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 맘에 들었다.
인간의 감정이란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 그 자체일수도 있고 혹은 사건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일수도 있기에.
이 책에서 '기이한 시대'라는 것은 사랑이야기를 하기 위해 배경으로 채택한 시간대의 설명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주인공과 상대 남자가 동독과 서독출신으로 각각 정해져 있으므로 감정의 설명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을 차지한다.
대놓고 우울한 여자주인공의 감성이 책의 시작과 마지막을 채운다.
이제 너무 늙어서 자신의 나이조차 알지 못하는,
거의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라 '실제 일어났던 것과 실제 일어났다고 생각했던 것'의 구분조차 힘들게 나이를 먹은 한 여자의 기억을 여행한다.
그런 탓에 책이 정말 얇은데도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읽기가 힘들어서 아마 1주일 이상을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린것처럼 계속해서,
'나는 무엇을 했을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그것을 한것이지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그것조차 아닐수도 있다.' 라는 식의 문장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말한다.
또 문장들이 죽죽 늘어지는 느낌인데다 우울하기까지 해서
그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페이지를 쉽게 넘기기가 힘들었다.
'프란츠'를 만나기 이전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한 여자.
그 50대 중반의 여자는 10대 후반의 감성으로 사랑한다.
그는 그녀에게 '늙어서 비로소 만나게 된 진정한 첫사랑'이었고
동시에 작은 키에 금발머리의 부인과 함께 사는 남자였다.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괴로운 날들이 연속되었고
그들은 결국 헤어졌으며,
여자는 피부가죽이 늘어진 오늘날까지도 그를 잊지 못한채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낱낱이 다 기억하고 있다.
때로는 망각으로 버텨내고 때로는 망상으로 시간을 덧칠하면서..
말했듯이 산만한 문장이 꽤 눈에 보인다.
허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논리적이다.
사람의 감정을 기술 할때 그저 추상적인 방식의 비유만을 쓰면 차라리 쉽다. 하지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은 독자가 집중해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제공하게 되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 책이 그렇다.
소재는 구태의연한 불륜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 여자가 하는 사랑이 불륜인지 무엇인지, 도덕적 기준은 거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확신에 찬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한 이야기'가 아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하는 것이 좋겠다.
거의 반페이지도 안되는 마지막 결론이 너무도 황당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정신분열증 같았군'하고 작가를 내 마음대로 용서하긴 했지만, 그 결론 하나를 설명하려고 그렇게 긴 복선을 깔았다는 게 좀 무모해 보였다할까.
아니면 내가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일수도 있고. 남들 다 아는걸 미리 못알아챈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때문에 엄청나게 힘든 상태라면 아마 이 책이 온 몸 구석구석 흡수되기에 모자람이 없을테다.
나는 그저 조금 공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번역이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작가의 의도자체가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어의 나열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매끄러워 질 수 있을법한 문장마저 내버려둔 점은 실망스러웠다.
그것이 책읽기를 심하게 방해했다. [인상깊은구절] 읽으며 무릎을 탁! 쳤던 부분은 제일 첫 문단이었다. [젊었을 때 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일찍 죽을거라고 확신했다. 인생의 종말이란 돌발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내가 젊었으며 인생의 초반에 있었다는 증거였다. 내 인생만큼은 서서히 쇠락해 가지 않을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백살이 되었지만 아직 살아있다. 어쩌면 아흔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알고 있진 못하나 아마 백 살쯤 되었을 것이다. 거래하는 은행 이외엔 아무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
|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가?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안나 카레리나'가 생각난다. 솔직히 이 책과 '안나 카레리나'를 비교해 보자면 거의 틀린 점이 없다. '안나 카레리나'를 읽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실망하지는 않겠느냐하고 물으신다면 나의 대답은 'No.'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안나 카레리나'와는 다르게 '슬픈 짐승'이 풍기고 있는 사랑의 로망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줍어 들은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섹스를 하고 난 후에 슬퍼지는 동물이 인간이다." 12시 30분이면 매일 떠나는 무덤을 쳐다보며 이 책의 '나'는 그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하루의 시작을 그가 없이 '나'는 그렇게 혼자 시작한다. 마지막은 그와 함께지만 시작은 다른 누구와 함께인 '프란츠'를 보며 '나'는 외로움에 빠지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가련한 '나'도 불멸의 사랑에 대해 믿었다. 아니. 그것의 존재를 믿지만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사랑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면 운명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이 불멸의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서 그 사랑의 기억을 연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슬픈 짐승'의 '나'는 수없이 사그러드는 사랑들로 맺어진 인연들을 보면서도 불멸의 사랑을 믿고 그것을 위해 전진하려 했던 것이다. 그녀가 이루지 못했다는 사랑은 어쩌면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은 결국 영원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독거성을 지닌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오직 자신만을 믿을 수있는 슬픈 짐승은 아니었던 것일까? 결국 '나'는 '프란츠'를 죽이고 망각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진정한 사랑을 내 안의 믿음을 통해서밖에 얻을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망각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인물이 그 괴로움을 더듬었을 것이다. 그런 꿈속에서의 사랑을 바라보며 난 '나'의 더욱 더 큰 절망 그리고 슬픔과 체념을 느꼈다. 알면서도 포기 할 수 없는 그 슬픔의 로망은 나를 붙잡는다. 끝없이 의심을 하고 보답을 받기를 원하는 이성과 순수한 사랑을 가진 이중적 존재인 원숭이, 그들이 우리다. '모키나 마론'은 내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풀지 못한 여운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우울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주는 이 책. 책을 읽다보면 내뱉고 싶은 말이 있다. "망각은 모든 것을 치료해 주지 않는다. 아픔을 향해 부딪쳐라. 그 순간 새로운 시작을 주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