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인들의 다양한 심리를 묘사한 소설집
"여인들의 다양한 심리를 묘사한 소설집" 내용보기
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언급되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읽은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서 여주인공 다카코씨가 읽었다는 ‘여학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여학생’은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여학생>은 14편의 중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흥미로운 것은 14편의 소설의 화자가 모두 여성
"여인들의 다양한 심리를 묘사한 소설집" 내용보기

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언급되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읽은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서 여주인공 다카코씨가 읽었다는 ‘여학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여학생’은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여학생>은 14편의 중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4편의 소설의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100엔짜리 화폐가 화자인 단편 ‘화폐’의 경우에도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인 작가가 여성을 화자로 삼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여성독자들의 호응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성 독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여성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에 긴가민가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은 14명의 여성을 통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이 책에 실린 화자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 ‘등롱’의 경우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경계하고 있으니까요.(9쪽)”라고 시작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믿음을 주는 일도 상호적인 것이라서 내가 상대를 믿어줘야 상대도 나를 믿어주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결국 화자는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심어주었던 것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상대로부터 오해를 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표제작인 ‘여학생’의 화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듯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책의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나는 책에 쓰인 것들에 지탱하며 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그 책에 골몰하게 되어, 신뢰하고 동화되고 공감하면서 거기에 내 삶을 얹어버리고야 만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그 책에 동화돼버린다.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여 내 것으로 슬그머니 고쳐내는 재능은 나의 유일한 특기다.(34쪽)” 비판적 책읽기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퀴리 부인>, 나가이 가후의 <묵동 기담>,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드 데아미치스의 소설 <쿠오레>, 프랑스 작가 조제프 케셀의 소설 <메꽃>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꽃>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가이 가후의 <묵동기담>에 대하여 “내용은 결코 못마땅하거나 불쾌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거들먹거리는 꼴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마음에 들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65쪽)”라고 적고 있는 것은 작가가 화자의 입을 빌어 슬쩍 비꼬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모진 마음을 먹고 순간 자살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아,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알게 될 것을, 조금만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인데…….’하고 아쉬워하곤 한다.(74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스스로 삶을 마치는 선택을 한 것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지요.


세 번째 작품 ‘벚꽃잎과 마술피리’는 언젠가 한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 간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편 ‘지요조’에 한국인이 등장하는데, 길을 묻는 화자에게 길안내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혼고(本鄕)의 가스가초에 가는 길 안내였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때문에 나는 한결 더 고맙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일본 사람은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으니까 그저 모른다고 지나쳐버리곤 하는데, 이 한국인은 잘 모르는데도 내게 어떻게든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 진땀을 마구 흘려가면서 열심히 알려주려고 있으니까요.(168쪽)” 어찌되었건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벚꽃잎과 마술피리’에서 도고제독의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일거에 격멸하는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표현한 반면, ‘12월 8일’에서는 전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짐승 같이 아둔한 미국 군대가 이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일본 국토를 어름어름 걸어 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못 견디겠다. 이 신성한 땅을 한 치라도 밟는다면 녀석들의 다리는 썪어 문드러지리라(219쪽)” 이런 시각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듯하자.

y*****2 2025.05.27.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어린 여성이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어린 여성이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 내용보기
수필인듯, 소설인듯 자전적인 얘기를 여성의 그것도 어린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서 수려하게 써 나간 단편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단행본에 실린 여러 단편들 속에서 그가 결코 부인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인의 시점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번은 부인의 마음 속을 궁금해하고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어린 여성이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 내용보기

수필인듯, 소설인듯 자전적인 얘기를 여성의 그것도 어린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서 수려하게 써 나간 단편집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단행본에 실린 여러 단편들 속에서 그가 결코 부인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인의 시점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번은 부인의 마음 속을 궁금해하고 자식들의 마음을 골똘히 생각했을 그를 상상해 보았다.


<여학생>

-

아침에 막 눈 떴을 때의 기분은 흥미롭다. 숨바꼭질을 할 때 장롱 안 어둠 속에 웅크려 숨어 있는데, 갑자기 술래가 장롱 문을 활짝 열자 햇빛이 쏟아지면서 “찾아냈다!” 하고 크게 소리 질렀을 때의 눈부심, 그리고 운 나쁘게 잡혔다는 것을 언짢아하며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쑥스럽게 장롱 밖으로 나올 때의 묘하게 분통 터지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다. 아니, 그게 아니다. 그런 느낌도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다. 상자를 열면 그 속에 또 다른 상자가 있고 그 작은 상자를 열면 그 속에서 더 작은 상자가 나오고 다시 그 상자를 열면 더 작은 상자가 나온다. 그렇게 일곱 개, 여덟 개나 열어보았는데 끝내는 주사위만 한 아주 작은 상자가 마지막으로 나와 열어보았더니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 이런 때의 느낌에 가깝다. 눈이 번쩍 떠진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지럽고 혼탁하다. 그런 가운데 점점 전분이 밑으로 가라앉아 조금씩 맑은 물이 새어 나올 때쯤에야 가까스로 피로했던 눈이 떠진다. 아침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언짢다. 슬픈 일이 가득 마음에 떠올라 견디기 힘들다. 싫다, 싫어. 아침의 나는 정말 밉다. 두 다디로 흐느적흐느적 피곤하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어젯밤 숙면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은 건강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침은 내게 있어 잿빛이다. 아침마다 그렇다. 아침은 바로 허무다. 잠자리에서 깨어난 아침나절은 늘 내게 있어 염세적이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추악한 후회 뿐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후회가 가슴 가득 밀려와 몸무림치게 만든다.

아침은 심술쟁이다.


-

언니, 헤어진 사람들, 오랫동안 못 만난 사람들까지 모두가 문득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아침엔 지나간 일, 그리고 멀어져간 사람들 생각이 바로 가까이 있는 단무지 냄새처럼 싱겁게 느껴진다. 견딜 수가 없다.


-

다시 또 문득, 옛날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부엌 한구석에 이런 자세로 주저앉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눈앞의 잡목림을 보았고 앞으로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과거-현재-미래, 그것이 한순간에 느껴지는 듯한, 실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비슷한 기분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누군가와 방 안에 마주 앉아 서로 말을 건네다가 그저 눈을 탁자 한쪽에 꽝 하고 고정시켜놓고 입만 나불거린다. 이런 때엔 묘한 착각을 하게 된다. 언제였더라? 이와 같은 상태로, 이와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마찬가지로 탁자 한 모서리를 응시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떤 머나먼 시골의 들길을 걷는다 해도 확실히 이 길은 언젠가 거닐었던 길이란 생각이 든다. 길을 거닐면서 길녘의 콩잎을 콱 뜯었을 때에도, 역시 이 길의 이쯤에서 이 앞을 마구 뜯어내버린 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제부터 몇 번이고 계속 이 길을 걸으면서 이 자리에서 콩잎을 뜯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

나에게서 책 읽기를 제쳐놓는다면 삶의 경험도 제대로 갖지 못한 나는 아마도 울상만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책에 쓰인 것들에 지탱하며 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그 책에 골몰하게 되어, 신뢰하고 동화되고 공감하면서 거기에 내 삶을 얹어버리고야 만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그 책에 동화돼버린다.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여 내 것으로 슬그머니 고쳐내는 재능은 나의 유일한 특기다. 정말 이 교활함, 이 엉터리 속임수에 이제는 짜증이 난다. 매일매일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면서 창피를 당하다 보면 조금 더 중후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실수조차도 뭔가 적당히 핑계를 대어 그럴듯한 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측은한 연극을 꾸며낼 수도 있을 듯싶다. (이런 말도 어느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

정말로 나는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읽을 책이 없어 흉내 낼 교본이 없어지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행동이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숫제 위축되어 울상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

모두들 그럴듯하고 확실한 말만 하고 있지만, 개성도 없고 깊이도 없다. 올바른 희망, 올바른 야심, 그런 것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이상이 없다는 말이다. 비판은 있지만 글과 자기 삶을 잇는 적극성이 없다. 반성도 없다. 진정한 자각, 자기애, 자중함도 없다. 비록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결과에 대해 과연 책임을 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변의 생활양식에 잘 적응하고 이를 처리하는 데 있어 능숙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주변의 삶에 바르고 강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 없다. 독창성이 부족하다. 모방만이 있을 따름이다. 인간이 본디 지니고 있는 ‘사랑’의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품위 있는 척하지만 기품이 없다. 그 밖에도 이 잡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

우리는 스스로 가야 할 최선의 장소, 가고 싶은 아름다운 장소, 스스로를 펼쳐나갈 장소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올바른 희망, 야망이 아니겠는가.


-

어느덧 오차노미즈다. 역 플랫폼에 내려서자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들을 서둘러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다음을 생각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가 텅 비어 있다. 때로는 무척이나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도 있었던 것 같고, 괴롭고 부끄러운 것도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지나고 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정말 재미있다. ‘지금, 지금, 지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금’은 저 멀리로 달아나버리고 새로운 ‘지금’이 오고 있다. 다리의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면서 문득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바보스럽다. 나는 지금 행복 과잉 상태인지도 모른다.


-

책 읽는 것은 이제 집어치워야 한다. 관념뿐인 삶이다. 무의미하고 유식한 체하는 것은 이제 질색이다. 경멸, 또 경멸. 하긴 나에게는 삶의 목표가 없다. 좀 더 생활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적극적이어야 한다. 내겐 모순이 너무 많다. 얼핏 생각이나 괴로움에 빠져 있는 체하지만 딴은 값싼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애에 빠지기도 하고 그저 자위하고 있을 따름이다. 거기에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평가하고 있다. 참, 이토록 마음이 너저분한 나를 모델로 삼다니, 선생님의 그림은 기필코 낙선이다. 아름다울 리가 없다.


-

그러고는 요즘의 나를 조용히, 그리고 느긋하게 돌이켜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이다지도 불안한 것일까? 왜 늘 무엇인가에 대해 겁을 내고 있는 것일까? 참, 얼마 전에도 누군가에게, “왜 너는 점점 속되어가기만 하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럴지도 몰라. 나는 확실히 잘못되어가고 있는거다. 틀려 먹었다. 안 된다, 안 돼. 너무 나약하다. 너무 나약한 거다’ 벌컥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

평생토록 자기 자신과 엇비슷한 처지에 있는, 약하지만 따뜻한 사람들하고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평생 고달픔 없이 살 수 있다면, 사서 고생을 할 필요도 없겠지. 일부러 고생을 자처할 까닭은 없으니까.

자기 자신의 기분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은 분명히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허구한 날 이마이다 씨 같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웃어주거나 맞장구를 쳐주어야만 할 신세라면 나는 아마도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리고 말 것만 같다.


-

우리 모두의 괴로움을 정말이지 아무도 몰라준단 말인가. 언젠가 어른이 되면 우리의 괴로움과 외로움은 애처로운 것, 그리하여 그 애처로움이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이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으니 그냥 내버려둘 수 밖에 없다. 홍역 같은 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역으로 죽는 사람도 있고, 홍역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저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렇게 울적해하거나, 벌컥 화를 내다가 더러는 발을 헛디뎌서 다리 밑으로 추락하여 돌이킬 수 없는 몸으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 또 모진 마음을 먹고 순간 자살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아아,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알게 될 것을, 조금만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터인데…….”하고 아쉬워하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로서는 괴로운데도, 그래도 가까스로 거기까지 참고 견뎌오면서, 뭔가를 들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도 세상은 영 알 듯 모를 듯 추상적인 교훈 따위만 반복하며 “그저, 그저 조금만 참아……..” 하며 다독거릴 뿐이다. 우리는 늘 그 기대에 배반당하곤 했다. 우리는 결코 찰나주의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너무나 먼 산을 가리키며, 거기까지 가면 분명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테고, 그게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격렬한 복통을 앓고 있는데, 그 복통에 대해서는 아예 본체만체하고, “자, 자아, 조금만 참아. 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다 되는 거란다.”하고 말할 뿐이다. 분명 누군가의 잘못이다. 나쁜 것은 바로 당신이다!


-

마음 깊숙이 투명하게 ‘숭고한 허무’라고나 할까, 그런 심정이다.


<지요조>


-

이렇게 칭찬을 받는다 해도 내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쭙잖은 글을 써서 모두에게 조롱을 받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걱정에 가득 차서 살아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나는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나는 매일 이 자리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어떤 사람을요? 아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닐는지도 모르지요. 나는 인간을 싫어하니까요.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섭답니다. 사람들과 만나며, “별고 없으신지요?”, “추워졌습니다.” 따위를 말하고 싶지도 않고, 겉치레뿐인, 실속 없는 인사를 적당히 나누다 보면 어쩐지 나 같은 거짓말쟁이는 이 세상에 없는 것만 같아 죽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상대가 나를 경계하며 어정쩡하게 적당히 칭찬의 말을 하거나 잘난 체하며 거짓 감상 등을 나불거리는 걸 듣다 보면, 상대의 인색한 조심스러움이 서글퍼지면서 이 세상이 너무 싫고 견딜 수 없이 지겨워집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서로 굳은 인사를 나누며, 조심스레 대하다가 급기야 제각기 지쳐가면서 일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아닌한, 내 쪽에서 먼저 친구에게 놀러 가자 따위의 말은 아예 하지 않는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묵묵히 바느질하는 게 무엇보다도 마음 편해요.


<오상>


-

“올바른 사람은 괴로울 까닭이 없지. 난 문득 느끼는 게 많아. 왜 너희는 그렇게 정색을 하고 사는 거지? 세상을 훌륭하게 살도록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걸까.”

“뭔지 모르겠고, 난 둔감할 뿐이에요. 나는 말이에요, 다만…….”



n******7 2020.03.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