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의미심장해서 샀던 책이나 사실상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State of Crisis, 즉 국가의 위기가 아닌 위기의 국가이다. 저자는 위기를 그리스어로 전환점이나 선택정도로 보고 있으니 정확한 뜻은 전환섬 혹은 선택의 기로에 선 국가정도로 의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주요 관심사는 유럽의 유기와 해법이다. 한 마디로 유럽의 위기는 글로벌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국가의 권력과 정치의 근본적인 모순상황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화는 근대국가시대와는 달리 영토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국가가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문제는 글로벌하게 일어나는데 국가의 권력은 단지 영토내에 제약이 되어 있으니 바로 그것이 본질적인 위기라는 것이다. 유럽의 위기는 현재 단독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보니 국가는 과거의 복지국가를 포기하고 - 즉 국민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고 - 신자유주의 즉 시장만능주의와 탈규제주의, 균형예산 등으로 돌아서게 된다. 바로 이 것이 본질적인 위기의 국가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국가의 무력화를 해결할 하나의 방볍이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를 넘어서는 힘을 창출해 내는 것인데 사실 이는 민주주의에 역행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가,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개별국가, 국가들간의 연합의 한계, 국가에서 버려진 국민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중층적으로 쌓여서 위기의 국가가 나타난다. 그러나, 사실상 해법은 없다. 민주주의는 약해진다. 시장만능주의가 된다. 이 책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풍조가 위기의 국가의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선택임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글이 대화체로 되어 있고 추상적인 개념이나 단어, 그리고 액체사회, 포스트 모더니즘, 탈규제사회 등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약간은 현학적이고 전달하려는 내용에 비해서는 논증이 다소 약한 책이다. |
|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중 3번째 책인 '위기의 국가'.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여 답답한 마음에 이 시대에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이자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와 권력의 분리에서 생겨났고, 또한 지역적인 문제들 대부분의 원인은 세계화에 있기 때문에, 지역 혹은 한 나라의 문제를 그 지역 혹은 나라 안에서 자체 해결하기가 힘든 것이라는 것이다. 나라간에 긴밀히 협력하고 서로 시시각으로 영향을 받는 시대다보니 과연, 우리안의 정치로만으로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부산물들을 겨우 처리할 수 있을뿐.. 그 시간에도 세계화로 인해 생긴 갖가지 문제들은 우리들을 압도해버리고 만다. 초반에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이니 루소의 정치사상이니, 하는 (근대의) 법철학 혹은 정치철학적인 사유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와서 따분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현대사회의 정치와 사회의 지도력의 문제점에 대한 통찰들이 이어져서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정치를 바로잡으려 정치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경제적인 분야가 우리의 삶 깊숙히 파고드는것을 경계하며 서로 협력하여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
|
<위기의 국가>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집이다. 국가와 위기에 대한 두 석학의 폭 넓고 깊은 생각들이 담겨있다.
솔직히 쉬운책은 아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두권을 읽고 세번째 읽는 책이기에 그동안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과 글, 그리고 옮긴이의 번역에 익숙해 졌기 때문인지 앞선 두권보다는 편하게 읽었다. 여전히 불친절한 번역임을 느낀다. (글쓰기 특강 덕분에 글을 보는 눈이 높아져서 그렇다. 단점은 내글을 어떻게 고치든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위기의 국가> 우리는 '위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현 시대는 '위기'의 시대로 정의 해도 의견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삶 주변에는 다양한 위기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위기는 역시 '경제 위기'다. 우리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언제나 문제는 '경제 위기'라고, 하지만 이것이 다일까? '경제 위기'가 문제라고 알고 있다면, 정확히 무엇을 '경제 위기'라고 말하는지 알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 하고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정확한 정의 없이 써오고 들어 오던 용어이니까. 뉴스에서 쉽게 접하는 '경제 위기'라는 단어, 청년실업이 문제되는 것은 '경제 위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락하는 것은 '경제 위기'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역시 '경제 위기'다. 무역 적자, 무역 흑자도 '경제 위기'가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 자유경제무역협정, 중산층의 몰락, 부익부 빈익빈 현상, 빈부의 격차, 노숙문제, 자살, 복지 그 어떤 문제와 결과들에서 '경제 위기'라는 단어가 꼭 들어간다. 정말 그럴까?
거의 모든 문제에 '경제 위기'가 원인이지 결과라면 결국 '자본주의'가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것, 현 시대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이념, 경제 원리인 '소비 자본주의'가 지금의 문제들을 만들어 온것은 아닐까?
세상에 '자본주의'가 등장한지 200여년이 됐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 문명의 역사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200여년의 시간동은 우리는 너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산업혁명, 문화혁명, 정보혁명,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국가, 자유국가 등 많은 용어들이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너무 갑작스러웠던게 문제였을까? 미처 변화는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없는 것일까? 인류는 지금껏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걸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이렇다 할 수 없는. 어느 방향으로 바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 과거를 돌아보며 현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 '문제',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원인과 결과들을 분석하고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길 끝에 희망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위기'에 대해서 카를로 보르도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같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두 석학의 대담은 '위기'라는 말의 어원부터 더듬어 간다. '위기'는 어디서 부터 왔는지, 어떻게 '위기'라 불리고, 왜 현대 사회에 '위기'가 만연해 있는지.
카를로 보르도니는 위기가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데 익숙해 져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와 국면,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현시대의 위기는 결국 '책임자'의 부재로,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위기에 대해 이야기 하며 현대의 문제는 결국 정치와 권력의 분리라는 상황에서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 진단 한다.
가를로 보르도니는 '공위기'를,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사회'를 말하면서 때로는 같으며, 때로는 다른 의견들을 폭 넓고 깊게 이야기 하며, 주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불러온다.
국가의 위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위기'와 '국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 해야 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국가'역시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정의 영토와 영공, 영해가 있고 국민이 있는 국가의 정의 에서 더 넓게 나아가 이념, 이데올로기 문화까지 포함한 '국가'의 의미와 그런 의미로 인해 역으로 '국가 없는 국가'가 되어버리는 상황, 현대의 지구적 범위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의견까지 따라가다 보면, 지금껏 갇혀 있던 생각의 틀이 깨진다.
21세기, 2015년의 지구는 인터넷 공간과 '경제'의 흐름속에 많은 부분이 '지구적'이 된 세상이다. '지구적'이란 말 그대로 물리적 공간의 범위가 지구 전체라는 것, 원한다면 지금 이곳에서 미국으로 돈을 보낼 수 있고, 순간 순간의 생각들을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문화역시 곳곳에 퍼져 있다. 거의 모든 것이 국적을 초월해 가는 세상에서 아직까지 '국가'의 틀에 얽혀 있는 것은 '정치'단 하나다.
두 사람은 '위기의 국가'를 말하면서 '근대의 위기'를 집어준다. 현대는 근대의 연속이기에 근대를 꼭 알아야 현대를 진단 할 수 있다. 근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를 지나 훗날 정의 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의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개념을 따라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더니티'는 산업혁명이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들을 말한다면 포스트모더니티는 확실성위에 점점더 불확실해 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19~20세기를 포스트모더니티라고 한다면, 21세기 이후는 포스트모더니티를 벗어난 그 '무엇'이 된것. 지그문트 바우만은 '무엇'을 '액체 사회'라는 새로운 '이론'을 말한다.
근대를 벗어서 인류 역사상 처음 가보는 현대와 미래, 여기서 두사람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는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중은 무엇인가? 민중을 강력하게 통제했던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란 '자유'와 '위협'이였고,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때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일까? 과연 민주주의는 죽었을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민주주의의 모습일까? 민주주의 역시 앞에 '대의'라는 말이 들어간다. 소수의 의견 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많은 것들이 정해지는 정치형태,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투표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는 지금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요즘 교과서에는 어떻게 다룰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사회선생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예외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이때 그 소수의 사람들이 부자들이냐고 따졌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정의를 내렸었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게 소통하며 작은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이야기를 힘겹게 따라가며, 제대로 이해 했는지 아직까지 의심스럽지만 그 들이 말하는 '위기'에 대한 것들, 결국에는 '사람'의 문제이며,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사람'이 사람보다 '자본'을 위선시 하는 도덕 없는 '자본주의'에 빠지면 서부터 문제들이 시작 된 것은 아닐까? 혁명이란 이름아래 굴복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재화'로만 바라보면서 시작된 문제, 현대의 모든 문제는 '사람다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는 것은 아닐까?
단체에서 개인으로, 다시 개인에서 단체로 관계가 '사람대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둘 모두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갈 길이란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을 '자본의 재화'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사람'답다는 것을 찾아가길 바란다. |
|
국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한 해였다.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특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국가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고 신뢰했는데 그런 신뢰가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보면서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일반 국민은 국가(?)라는 울타리에 넣어두고 지배자들이 마음껏 조롱하고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위기의 국가>란 책을 동녘 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면서 만나게 되었다.
표지는 중세봉건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듯한 그림이었다. 여러 농민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서 있고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지배자가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책의 형식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담화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책의 형식을 파악하지 못해서 한참을 헤맸다. 내용이 깊이가 있었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에 관심이 많고 기본적인 역사적 개념이 있는 사람들은 수월하게 읽을 것 같았다. 나는 아쉽지만 쉽게 읽지 못했다. 읽다가 잘 몰라서 헤매기를 몇번하다가 중반쯤 되니 괜찮아졌다. 책은 역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어야하나보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소설가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인용한 부분이었다. "삶이 왜 경주에 비유되어야만 하는가, 혹은 국민경제들이 건강을 위해 사이좋게 조깅하지 않고 어째서 서로 앞다투며 달려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은 시장을 만들지 않았다. 만일 우리 인간들이 시장을 만든 것이라면, 그것을 없애고 보다 친절한 형태로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왜 세계는 부지런히 협력하는 벌집이나 개미집이 아니라 검투사끼리 죽고 죽이는 원형경기장이어야만 하는가?" (본문 60쪽)
1퍼센트의 최상위 부자들이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가 버리는 걷잡을 수 없는 불평등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훨씬 수치스러운 시대입니다(본문 131쪽).
"모든 사람이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민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으며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정부 형태가 진정으로 인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 지금까지 좌파는 합의를 시작하고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를 끌고 가기 위한 많은 길과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 과거의 역사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고양, 희생의 중요성, 대규모의 구경거리와 거창한 의식 등을 토대로 성공을 거둔 파시즘과 모든 강력한 전체주의 정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다수의 편을 들면서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켰습니다."(본문 244쪽)
현대 사람들이 교육을 많이 받아 지식을 쉽게 접하게 되었고 깨어있게 되었지만 모두들 나서지 않는다. 내 삶을 지키고 꾸려나가기에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분노하고 있음을 느낀다. 국가는 어처구니없는 쇼나 엉터리 통계로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면 훗날 더 큰 일들이 닥칠지 모른다. 국가는 지금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는게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