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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물쓰듯 떵떵거리고 살던 야스오는 일본의 거품경제의 몰락과 함께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야스오를 떠나게 되고, 어머니마저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어머니를 살리는 딱 한가지 방법은 100마일이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한 산 마르코병원, 그곳엔 기적의 손을 가진 심장수술의 대가인 소가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머니는 일찍 죽은 남편을 대신해 혼자서 4남매를 키워냈다. 야스오는 그 중 막내이다. 두 형과 누나는 모두 부자이다. 일명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야스오는 자신 스스로 말하듯이 낙오자, 사회적 탈락자이다. 부유한 형과 누나는 어머니의 수술을 원치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야스오는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서 살아나시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 야스오에게 마리는 말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 날개를 가질 때는 반드시 사건이 발생해. 그때까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사람이 어떡하든 일어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거야. 그걸 계기로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지는 거지. 저기, 야스오…..” 뚱뚱한 몸을 그에게 향한 순간, 마리의 표정에서는 진지함이 뚝뚝 흘렀다.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면 안돼. 내가 응원할게. 이건 분명히 승부의 갈림길이야. 아마 당신의 인생도 걸려 있을 거야. 틀림없어!” (70쪽) 어머니를 살리는 것이 바닥에 가라앉은 야스오가 일어나게 되는 사건이 될 거라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거라고. 야스오는 자신의 재기를 위해서 자신의 힘만으로 어머니를 꼭 살려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사장에게 낡아빠진 차 한대를 빌리고, 빚 독촉하는 사채업자에게 기름값을 빌려, 어머니를 모시고 소가선생님이 있는 병원으로 가는 100마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추억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머니는 사력을 다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침내 병원에 도착하게 된다. 어머니는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바닷가에 가자고 하고, 야스오에게 추억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아마 어머니는 노래 속에서 가족이 화목하게 살고, 고바야시가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그 고난의 날들이 어머니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하니, 그의 가슴은 슬픔으로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행복은 ‘희망’ 그 자체였다. 희망이 이루어진 행복은 실은 어머니의 행복이 아니다. 희망에 매달려 살았던 그 무렵이 어머니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189-190쪽) 그리고 야스오는 어머니에게 제발 5년만 더 살아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신은 절대 재기할 수 없다고. 자신도 이젠 지쳤다고. 이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소가선생님은 두 모자의 대화를 다 들은 뒤, 어머니를 등에 업고 성큼성큼 병원으로 들어간다.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걱정하는 야스오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노 프라블럼. 고민할 것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무시하지 마세요. 이 병원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에요. 그런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의사는 한 사람도 없어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 상처를 치유하는 것, 고통을 없애주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건 오직 그겁니다. 의사라면 그래야 당연하지 않나요?” “왠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대사 같군요.” (221쪽)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을 없애주는 것만을 생각하는 의사가 과연 이 사회에 얼마나 될까. 그래서인지 야스오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야스오가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나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꼭 살리고 그 어머니가 원하는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라고 격려를 하게 된다. ‘어머니는 저에게 부자가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어요. 어쩌면 부자가 되어서 어머니를 잊어버리라는 뜻인가요?’ ‘그래, 그걸로 충분해. 지금의 가난한 넌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어머니의 진심이 아니야. 어머니는 가난한 네 도움을 받고 싶어하지 않아. 부자인 너에게 버림을 받고 싶어하지. 어머니는 아마 그렇게 여기고 있을 거야.’ 그게 어머니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의 존재의 모든 것. 어머니 인생의 모든 것. (225쪽) 자신이 버림받는 것보다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더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희생이, 이 시대의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파 온다. 자신은 잘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웠더라도 자식에게만은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학교에 보내고 말이다. 이렇게 고생만 하신 부모님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마음 깊이 야스오를 응원하게 된다. 천국까지 100마일은 참으로 멀었어요. 끝까지 완주했을 때,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모두 제가 운전하는 고물 왜건과 함께 달려준 거예요. 사장님은 차와 휴가를 주고, 마리는 용기를 주고, 사채업자인 가타야마는 지갑을 통째로 주었어요. 그리고 식당에서 만난 운전사들은 모두 제각기 힘내라고 격려해주었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위해서 에어컨을 끄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밥을 먹었어요. 이 세상에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결과란 건 없어요. 이 세상의 선의를 모두 끌어 모아 전 100마일을 달렸어요. 뭐가 하나라도 빠졌으면 모든 건 물거품이 됐을 거예요. 형들도 누나도 에이코도 아이들도 얼굴을 모르는 아버지도, 모두 힘을 보탰어요. 그들의 뜨거운 마음을 기름으로 바꾸어 전 천국까지 100마일을 달린 거예요. 무엇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어머니는 도중에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말을 겨우 입에 담았다. “소가 선생님. 만약에 어머니가 다시 살아난다면, 전 반드시 행복해지겠습니다.”(230-231쪽) 소가 선생님에게 어머니는 자신은 살든 죽든 상관없지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아들은 평생 일어설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자신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가선생님은 어려운 수술을 하겠노라 결심을 하게 되고 야스오에게 말한다. “난 의사가 싫어. 의학을 배우는 사이에 점점 더 싫어하게 됐지. 의사녀석들, 너무 욕심덩어리야. 환자를 약에 푹 담가서는 돈을 갈고리로 긁어 모으고 있지. 그래서 박사다, 교수다 하며 계속 출세하려는 거야. 풀을 빳빳하게 먹인 새하얀 가운을 입고 회진하다니, 엿먹으라고 하게. 난 출신이 안 좋아서 그런 건 참을 수 없네. 권위는 딱 질색이야. 돈이 욕심나면 장사를 하면 돼. 난 아무것도 욕심나지 않아. 그럴 시간이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주고 싶어. 비록 언젠간 사라져버릴 생명일지언정 1분 1초라도 더 연장시켜주고 싶어. 고맙다고 하지 말게. 난 그런 말 듣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권위이니까. 병이나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건 인간의 권리이고, 그것을 지탱하는 건 의사의 권리이네.” “의무가 아닌가요?” “아니야, 권리야. 좋아서 하는 걸 의무라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 난 자네 어머니를 수술할 거야. 알았나 (236쪽)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에서 자신의 일을 의무가 아닌, 즐겁고 좋아서 권리로 행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자식으로서의 권리, 가족으로서의 권리, 인간으로서의 권리. 수많은 권리들을 의무로 착각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야스오가 어머니를 살려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 힘든 용기를 낸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절망의 늪을 헤어나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바라는 자식의 행복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꼭 거치게 된다.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말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죽을 것 같이 힘들던 괴로움을 견디고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그만큼 성장해 간다. 삶이란 받았던 고통만큼의 양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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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를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어머닐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100마일 너머의 외딴 병원의 의사 밖에 없는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야스오는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수술 가능한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 |
| 말 그래도 펑펑 울면서 본 소설이다. 유난히 잘 우는 나여서 알까? 아니면 유난히 가족이란 소재에 약한 나여서? 일본적인 정서가 스며들어 있기때문에 직접적인 내용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겐 조금은 슬프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 작가가 쓴 그래도 문장을 따라가면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자신에게 대입시켜서 읽다보면 정말 희망적이고 감동적인 글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 형제들 모두 성공하고 막내인 주인공 야스오는 부도에 이혼 ,형제들로 부터 외면 친구들에게 배신당한다 양육비에 버거워하면서 절망적인 삶을 살던 야스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어머니가 심장병에 걸린다. '가난'이란 과거와 함께 어머니를 잊고 사는 형제들에게 항변하면서 (야스오 자신도 성공했을땐 그 형제들처럼 잊고 살았다.) 어머니를 유일하게 살릴 수 있는 의사 소가를 찾아 떠난다. 어머니와 160KM(=100마일)의 길을 떠나면서 40살의 막내 아들과 칠순의 노모는 서로에게 있어서 궁금했던 이런 저런 일에 대해 나눈다. 이혼이랄지 미망인으로서 삶이랄지 여자이기 보단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 자식들에대한 미안함 자식들의 외면에 대한 이해.. Open your heart! 말 그대로 마음을 열고 가족, 특히 어머니의 모정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다. 남들만큼 편하게 키워주지 못해 미안한 어머니와 가난이란 과거를 어머니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뭍어 버리려는 형제들 한번 찾아온 사랑 앞에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접었던 어머니 남편보단 아이들을 지킬수 밖에 없었던 야스오의 아내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추락한 남자를 다시 날게하고 보내주는 마리 정말 감정 하나 사건 하나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정말 작가의 관찰력과 표현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춘기란 이름아래 내 감정만 생각하고 지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평생 나는 어머니의 모든것을 이해할 순 없을것이다. 나는 딸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이니까... 그래도 이 소설을 통해 잊고 있었던 어머니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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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한번 읽었지만 여전히 찌잉 한 책. 그리고 2000년의 판본으로 읽다가 2005년에 새판으로 나온 책. 많이 팔린걸까.
실은 이 책을 처음 읽는 날 반납 당일에 학교가는 지하철안에서 읽다가 조금 울뻔한 경험이 있다. 그때의 기분이 센티해졌던 탓도 있겠지만, 아사다 지로의 책에는 그런 따뜻하고 뭉클한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별로 꾸며지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자기가 죽도록 힘들다고 생각했던 삶은 정말로 죽어가고 있는 엄마에 비해선 그야말로 어린애 우는 소리에 불과했다. 유명한 심장외과의가 있다는 말에 그 병원까지 스스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겠다고 결심한 야스오. 거기까지의 거리는 정확하게 100마일.
어머니와 함께 정확히 있는지도 모를 다른 병원으로 가는그에게 내과의와 이런저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천국까지의 길을 가는 동안 그도 그의 어머니도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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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주무시고 계신 엄마품으로 파고드는 다 큰 딸내미를 엄마는 내치지 않고 무슨 일이니 하고는 토닥여주신다. 잠이 덜 깬 엄마의 토닥임은 나를 아기로 만들어버릴려고 한다. 엄마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아기때부터의 토닥임, 내가 누군가에게 토닥거림을 받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서 였구나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가슴에 더욱 부비적 거리며 안아달라 몸짓으로 말한다. 평소 같았음 징그럽다고 등짝을 때릴 엄마는 밤이라고 더욱 꼭 안아주며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시며 한 말씀 하신다.
-괜찮다.
-웅, 괜찮아, 엄마. 엄마, 나 보다 오래 살아야 해.
혹여나 울음이 새여나가 엄마가 놀라기라도 할까 입을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심장과 내 심장이 같은 속도로 뛸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어느덧 가을의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너무 일찍 와서 달님한테 꾸중을 들은 이른 가을 바람 앞에 이 책을 들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다시 마음이 격해진다.
#내 목숨을 가져가요, 어머니-아들이기에 죄송한 아들의 이야기
병원에 제 생명의 불이 누워있습니다. 그 분의 몸을 빌어 태어났고, 그 분의 몸을 불태우며 제가 자라났습니다. 가난했음에도 가난해서 아픈 기억보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작은 집에서 어머니는 우리 4 남매를 길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미래를 발판으로 사회에 나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제가 엄마의 꿈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도 몰랐으며 엄마의 미래를 어떻게 깨트리며 사회에 나간지도 몰랐습니다.
가난한 행복을 갖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누나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저 하나만 실패를 등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은 분명 있었것만 돈을 공기처럼 쓰던 시절도 있었것만 저는 지금 월급도둑이란 소리를 들으며 친구네 회사에 빌붙어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 월급 역시 이혼한 아내와 자식들 생활비로 모두 보내야 하는 앞니 빠진 마흔의 아저씨입니다.
그래요. 어머니의 심장병은 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늘 제 걱정에 맘을 졸이던 작을대로 작아진 어머니가 아프신 것은. 그래요,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런데 저는 죽일 놈인데 왜 형들과 누나는 어머니를 보러 오지 않을까요?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왜 부잣집 형제들은 모른 척하는 걸까요?
저는 어머니를 살릴 겁니다. 주머니에 기름값도 없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저 숨만 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천국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머니의 수술을 해주는 병원까지는 160키로미터가 걸립니다. 100마일이 되는 그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달려갈 겁니다. 그곳이 우리에게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니까요. 어머니가 살 수 있다면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국으로 100마일, 나도 당신과 함께 달리겠습니다
스스로 못났다는 말을 하는 남자 야스오. 돈도 잃고, 가족도 잃고, 희망도 잃고 삶까지 잃은 남자 하지만 그에게는 어머니가 남아있다.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잘 나가던 시절, 호강시켜 줄 수 있는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왜 그제서야 보이는 걸까?
어쩌면 어머니들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 그저 우리의 뒤에서 혹은 우리가 서있는 곳 아래에 서 계신지도 모른다. 그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어머니들은 만족한다는 미소를 띄시며. 그런 어머니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건 우리가 절망을 만났을 때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란 절망 앞에서 우리는 손 하나를 발견한다. 익숙한 손이지만 너무 늙어버린 손에 내 어머니의 손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손 하나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낸다.
야스오에게도 어머니는 삶의 이유가 되고 불씨가 되었주었다.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100마일을 나는 울면서 따라갔다. 야스오가 어머니를 업고 가는 순간에도 내 눈에는 어머니가 야스오를 업고 있는 걸로 보이기도 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걸까? 자신의 힘든 순간에도, 아픈 순간에도 자식을 들춰 업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인 걸까?
혼자서 걸어가는 길은 인생에서 없는 지도 모른다. 시야가 좁아서 보이지 않을 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가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지, 응원해주고 있는지 우리는 모를 뿐이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100마일. 그 길을 야스오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같이 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나도 슬며시 껴본다. 소리없는 박수를 보내며.
<누대에 걸친 근친상간의 밥상 비켜갈 수 없는, 무정갱의 밥상 위에 발가벗고 올라가 눕고 싶은 생각이
어머니가 나를 잡수실 수 있게 말이지요>
-김선우, 숭고한 밥상 中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시집
이 책을 읽고 김선우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자식이 그러하지 않을까. 내 부모가 드시는 한약에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줄 조금 잘라 넣어드리고 싶은 것. 드시지 않을 부모님이시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자식마음 아닐까.
부모님의 손을, 이마에 주름을 만져드리는 딸이 되고 싶다. |
| 전체적인 내용은 아사다 지로의 작품답게 재미있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여전히 유지되는 책이구요. 사실은 선물하려구 샀는데 제목의 의미가 궁금해 읽기 시작하다 제가 가지고 선물은 다른 걸 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읽을만하냐고 묻는다면 적극추천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단점은 언제나와 거의 마찬가지로 마무리가 조금 약해요. 너무 급작스럽게 끝난 느낌...그렇지만 마리의 존재 또한 그렇게 마무리하는게 가장 멋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서둘러 마친 듯한 인상은 받지만 결말까지의 재미와 감동이 이 책의 선택에 후회없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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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까지 100마일> 지금의 우리는 천국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걸까?
만화같은 소설이야기이다. 현실의 절망이 바닥까지 쳐서 더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사람이 비상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현실에 절망하고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곳까지 내려가고 나면 대개는 날개를 부러뜨리고 땅에 안주하지만, 주인공은 바닥을 치고 다시 한번 비상한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가족도, 돈도, 무엇보다 열정도 의지도 그리고 앞니도 빠져서 없는 주인공 야스오. 그는 어머니의 심장병을 낫게 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친구에게 트럭을 빌려서,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이혼한 아내에게 돈을 빌려서 100마일 밖에 있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 책의 미덕은 한번 잡으면 끝까지 술술 잘도 읽힌다는 것이고, 비참한 현실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게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현실에서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바라고 있던 희망을 곳곳에 잘도 버무려 놓았다는 것이다. (너무 술술 이야기가 풀리도록 해놓아서 거슬릴 정도지만 ^^ )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자꾸 해피 엔딩이 좋아하진다. 행복한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혹은 바라보면서 나도 기어이, 꼭, 행복해지겠어.. 하고 다짐하게 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치스럽게 자란 사람이야. 뼈져리게 가난을 겪어본 사람은 행복 같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란 걸 알아. ...
너도 이제 알았을 거야. 불행하게 자란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정말, 정말, 벌레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름한 단칸방에서 훌륭하게 날개를 만들어 날아갔어. 기적이야.
- 어머니의 말 중에서
** 그래, 맞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되지도 않는 상황에서라면
그러나 모든 행복을 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듯이 나 역시 알고 있다. 아,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과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은 모두 가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 꼭 그럴 것이다. 라고 다짐해 본다. 잘 살던 유년과 이후 몰락한 집안으로 인해 가난을 겪어본 아사다 지로의 이야기는 부유함과 가난함의 경계를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삶과 죽음의 비정함과 가까움을 잘 알고 있어 그들은 잘 버무려 놓아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정도의 실망이 없어서 시간이 나거나 기회가 되면 그다지 망설임 없이 집어들게 된다. 어떤 사람에 대해 그런 정도의 (망설임이 없는 정도) 믿음을 가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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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치스럽게 자란 사람이야. 뼈져리게 가난을 겪어본 사람은 행복 같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란 걸 알아.
너도 이제 알았을 거야. 불행하게 자란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정말, 정말, 벌레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그 아이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름한 단칸방에서 훌륭하게 날개를 만들어 날아갔어
소가 선생님 만약에 어머니가 다시 살아난다면, 전 반드시 행복해지겠습니다.
왜냐면 사랑받는 건 행복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건 행복하니까. 매일매일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리니까.
일본문학 느낌"이라는 갇혀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 아사다 지로. 이 사람도 약간은 인류보편적"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을정도의 애틋하고 잔잔한 소설을 쓴다. 가장 현대문학의 놀랄만큼의 일본스러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새롭다거나 거리감 같은 것이 들지 않는다.
이번에는 대놓고 슬픈 '어머니'라는 주제이다. 생명이 위험할 만큼의 협심증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머니와 사업에 실패하고 한 순간에 낙오자가 된 막내 아들이 등장한다. 눈물팔아서 쓴 소설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런 신파극 따위에 얼마든지 주위에서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선 가난의 정의를 굉장히 가차없이 정의 하고 있다. 어머니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하며, 어떻게든 홀몸으로 아들 셋과 딸 하나를 이 시대가 바라는 성공적인 인물로 키워냈다. 어머니 당신의 생명에는 이제 신경쓰지도 않는 못난 자식을 그녀는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견주어 버린다. 제3자의 눈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어머니란 그 누구나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끔 하게 만든다.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고 다시 가난과 삶의 고통을 안은 후에야 그동안 어머니가 자신들을 키워주며 겪었을 노고를 깨닫는 주인공 야스오. 그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헌신적인 어머니 뿐만 아니라, 비록 이혼을 했지만 그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는 전부인 에이코. 그리고 그를 자신보다도 사랑하는 애인 마리... 나는 그를 둘러싼 훈훈한 인물들을 보며 따뜻함을 느끼고, 그를 돌아서는 매몰차고 냉소적인 인간들을 보며 차가움을 느꼈다. 그것이 사람사는 인생이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세상에는 어쩜 이럴수 있을까... 하는 좋은 사람이 늘 있다. 겉으로는 아닌척하지만 속 마음은 너무너무 예뻐서 나도모르게 지켜주고픈 사람도 있고, 누구나 다 인정하는 착한 사람도 있다. 그것을 빨리 깨닫고 고마움을 전하는데 서툴러서 그렇지, 우리 주변엔 아직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야스오는 그러한 사람들의 존재를 이야기 후반에 깨닫는다. 어머니의 수술을 위해 심장외과계의 권위자를 찾아 어머니를 낡은 왜건에 태우고 100마일을 달리는 중년의 야스오. 힘껏 달린 100마일에서 결코 그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요전에 본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죽은 누나에게 한국을 보여주기 위해 시체를 차에 싣고 달리고 또 달리는 소년과 친구들. 여기서 야스오가 100마일과 소년이 달린 거리는 하나의 신념이자, 차디찬 사람들 속에서 생긴 오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들은 결코 외로운 외줄타기를 혼자서 하지 않았다는 것.
또 여기서는 진정한 '의사'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살려야하는 생명의 권리로 보는 진짜 의사들이다. 야스오가 100마일을 달리고 어머니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그들이다. 오픈 유어 하트. 왜 그 차가운 사람들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끙끙 혼자 앓고 있는 것일까.
야스오의 형과 누나는 소위 성공하였지만, 어머니의 생명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이뤄놓은 성공에 해라도 갈까봐 조마조마하고 있는 모습이다. 막내는 그런 형.누나들을 보고 분노하지만, 어머니는 그들을 이해한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소원은 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버린다'라는 것이.. 그 어떤 신도, 철학자도 아닌 어머니의 삶에서 고스란히 이루어 지고 있는지도.
나는 어머니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야스오의 애인 마리도 칭찬하고 싶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전부로 내몰은 여자. 바보같은 짓이 아닌 스스로는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여자. 그녀를 거쳐간 남자는 항상 성공을 하고, 꼭 그래야하는 것처럼 그녀를 떠나간다. 하지만 그것을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녀는 항상 안식처와 같이, 혹은 특유의 따뜻함으로 낙오된 사람들을 안아주고, 또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가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결코 낭만적인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그녀의 행복이므로.
비인간적이다, 라는 말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성공을 위해 따뜻함에 얼음을 들이붓고 낳고 길러준 어머니를 모른척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지 여타 다른 어떠한 것은 아니다. 인간적이라는 것이 항상 따뜻함만을 지닐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사회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스오가 말했던 " 비사회적이지만 비인간적은 아니다 "라고 했던 말도, 바꿔보면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메세지 같기도 하다. 차가운 얼음 속에 핀 꽃 같은 것. 그래서 이 세상의 등불같은 존재가 빛을 발하고 어머니라는 위대한 사람들이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질주의에 이미 물든지 오래된 사회에서 한가닥 희망이라는 실낱같은 존재가 이토록 차가운 세상에서도 팽팽하게 그 끈을 오래도록 이어갔으면....
우리는 어머니에게 결코 절망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우리의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의 따뜻한 기도만을 들었을 뿐.
open your heart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100마일을 달린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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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의 또 다른 감동이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표현하는 작가인 아사다 지로는, 누가 비판하듯이, 읽는 책마다 눈물을 빼는 산파조(?) 작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산파가 좋다. 그런 감성에 젖는 게 무엇보다 좋다. 삶이 정화되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되돌아 보게 해주는, 감동의 작가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매우 단순한 이야기를 이리도 재미있고 아리게 표현을 잘 할까 놀라곤 한다. 불황과 도산, 개인 파산, 이혼, 엄마의 병과 간병... 이런 살아가는 문제점과 거기서 오는 가족 붕괴의 현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덮어 치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과 우정, 의사의 양심, 착한 서민들 속에서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망해서 돈도 없고, 형제와 처식에게도 버림받은 한심한 중년 남자인 야스오... 심장병에 걸린 늙은 어머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물차로 지바에 있는 병원까지 100마일을 달려가면서겪는 이야기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때 잊고 지냈던 수많은 가치들을 그 100마일을 달려가면서 느끼는 주인공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우리들 자신이며, 주인공이 흘린 눈물은 우리들의 뼈저린 후회가 되고, 희생 자체인 삶을 살아온 야스오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 인것이 되어 버린다. 뜨거운 눈물없이 어떻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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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대충 줄거리를 보구선 이거 이거.. 읽으면서 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 또 울고 말았네.. ㅜㅡ
부도, 이혼,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려짐.. 이렇게 2년째 힘겨운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 기도코로 야스오는.. 심장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걸고 1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병원에 혼자 힘으로 가기로 한다.. 두 모자는.. 서로에게 다시 한 번 힘이 되어 주기 위해 강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려 한다..
진부할 것 같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뻔하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
하지만..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주는 마리는.. 그녀의 사랑은..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