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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봤을때 수탉이 오타인줄 알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수탉이 알을 낳은게 맞아서 신기 했다. 왜 수탉이 알을 낳았는지도 궁금 했는데 그게 전설인게 더 신기 했다. 인상적인 장면이나 부분은 나무늘보가 ‘이땅에 태어난 생명은 소중한것’ 이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인 장면이나 구절이다. 왜냐하면 동물들이 바실리스크를 해칠려고하자 나무늘보가 생명은 소중한것 이라고 말해서 인상적이였다. 내 생각에는 바실리스크는 위대하다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남양주에 재앙이 있으면 아무도 못 막는데 바실리스크는 그 재앙을 막기 때문이다. 또 나라면 그 재앙이 무서워서 못 물리칠것 같다. 바실리스크를 친구로 받아들이자는 타조와 바실리스크를 친구로 안받아들이자는 치타의 입장 중에서 나는 치타의 입장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누가 우리 엄마를 해치면 그 아이와 친구가 되기 싫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를 희생해서 마을을 구했지만 엄마를 해쳤기 때문에 친구로 받아들이지는 못할것 같다. 왕따를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왕따는 하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왕따를 당하는사람은 힘들고 슬플것이기 때문에 왕따를 하지 말아야 된다. 그리고 왕따를 당한 친구는 그 기억때문에 평생 힘들것이고 왕따를 한 친구도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 봤을때 평생 후회할것이다. 나는 이책을 읽고 왕따를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 했다. 바실리스크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동안 많이 외롭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책을 통해서 더욱 깊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봤을때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겠다고 생각 했다. 누구도 왕따를 당할 이유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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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개자리별이 빛나는 밤. 칠 년 된 수탉은 알을 낳아서는 안 된다. 또한 두꺼비는 수탉이 낳은 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이다. ![]() ![]() ![]() ![]()
그런 전설을 안고 바실리스코가 태어났다. 놀란 수탉, 두꺼비가 나타나자 들킬새라 놀라 내빼는 수탉, 바실리스코가 알에서 깨어나자 두꺼비도 그만 황급히 내빼고.. 자신의 처절한 외로움앞에 목놓아 우는 바실리스코 바야흐로 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바실리스코는 슬프게도 맹독성을 가진 채 태어난다. 그의 슬픈 운명 때문인가? 그의 입김이 닿는 모든 곳에서는 어떤 생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바실리스코는 그런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괴로웠다. 외롭지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동물들을 죽이고 또 동물들이 자기를 죽일 만큼 미워한다는 것이 괴로웠던 거다. ![]()
이때, 바실리스코를 낳은 수탉이 나타나 붉은 핸드라 약초를 먹고 동굴에서 사흘간을 절대 나오지 말고 견디면 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비법을 전달해 주고 죽는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죽은 것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바실리스코는 붉은 해드라 약초를 물고 동굴로 들어가 사흘을 견디고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던 동물들에게 다가가는데.. 난데없이 날아든 까마귀가 숲을 덮어버리는 메뚜기떼가 날아든다고 알려준다. 주술사인 나무늘보의 도움으로 바실리스코는 메뚜기떼를 물리치는 주문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물총새와 총격전으로 메뚜기떼를 물리친다.
'가야 해. 메뚜기 재앙을 막았다고 알려야 해. 예전의 나를 용서해 달라고. 친구로 받아 달라고 말해야 해. 나는 정말 동물들과 어우려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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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스코 타고난 운명앞에 굴하지 않았지 맹독성을 무기로 삼아 세상을 대하지도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어 동물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너의 그 간절함이 오늘의 결실을.. 깨달은 바 크다. 네가 말해준 것이.. 아이들의 동화이지만 나의 한계를 한계로 인정하고 그저 머물러 있었던 시간들이.. |
| -소년한국일보-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려는 용기를 심어 주는 우화. 상상의 동물 바실리스크 이야기를 통해 장애우가 겪게되는 고통과 좌절 그리고 역경을 이겨 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머리와 몸은 닭이고 목과 꼬리는 뱀인 돌연변이 바실리스크는 줄곧 외톨이로 자란다. 그러던 중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게 되자 바실리스크가 홀로 용감이 나서 이들을 물리친다. 바실리스크는 장애를 어떻게 극복을 할까? 헨드라 약초, 그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예감응 적중했고, 수탉이 알려준 처방대로 행한다. 요즘 아이들도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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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남다른 책이에요.
수탉이 알을 낳았다니, 처음에는 우스한 책인가 싶었는데 책을 읽고 난 후에
제목에게서 느끼는 것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오래전부터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이 어느 날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예요.
수탉이 낳은 알에서 깨어난 게 바로 바실리스크인데,
바실리스크는 모습은 자기의 태생만큼이나 정상적이지 못했답니다.
바실리스크는 동물들과 친구가 되려 했지만
스스로 가지고 있는 독으로 인해
친해질 수가 없었답니다.
바실리스크의 입에서 나오는 독은 사자도 꼼짝없이 죽게 만들만큼
아주 강력하지요.
이런 광경을 보고 바실리스크와 친구가 되려하는 동물들은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럴 수록 바실리스크는 더욱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자기가 가진 독을 없애서라도 친구를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바실리스크.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때가 많지요.
어쩌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는 바실리스크.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바실리스크는 그토록 친구를 원하는데 말이죠.
바실리스크는 왜 그렇게 친구를 원하는 걸까요?
바실리스크때문에 평화가 깨친 초원에서는
바실리스크를 없애려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무늘보는 바실리스크를 죽이려하기보다
바실리스크의 독을 없애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지요.
누군가가 자기에게 피해를 준다고
그 사람을 없애버린다면 그러니까 피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바실리스크는 결국 수탉의 도움으로 약초를 먹고 3일동안 참으면
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 다시 태어납니다.
메뚜기떼 재앙에 덮친 초원을 구한 바실리스크는
결국 초원에서 같이 살게 된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주게 된 동물들과 함께 말이지요.
바실리스크는 비정상적이고 동물들에게 해를 주는 동물이었어요.
그러나 동물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던 바실리스크는
결국 원하던 가족과 같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답니다.
우리들도 바실리스크와 같은 친구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자신의 단점이나 친구들과 다른 점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친구들이요.
이런 친구들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알게 해주는 동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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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금기를 깨고 태어난 바실리스크와 달빛초원 동물들을 통해 다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책 내용을 간단히 쓰자면 오래전부터 달빛초원에 전해내려오던 전설과 같은 금기사항이 어느날 밤 실제로 일어나고 이로 인해 닭과 뱀을 섞어놓은 맹독성 동물 바실리시크가 태어난다. 바실리스크는 가족이 없는 자신이 너무나 외로워 뜻하지 않게 여러동물들의 목숨을 빼앗게 되고 이로 인해 다른 달빛 초원 동물들은 바실리크를 제거하기 위해 지혜를 모은다. 이 과정에서 주술사인 나무늘보를 찾아가고 나무늘보는 태어난 생명은 모두 소중한거라면서 동물들을 만류하지만 다른 동물들의 눈에 바실리스크를 당연히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 이런 동물들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또 다시 외로움에 사무친 바실리스크앞에 맨 처음 알을 낳았던 수탉이 찾아온다. 수탉은 바실리스크에게 독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힘은 들지만 있음을 알려주고 마침내 바실리스크는 독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달빛초원 동물들은 이를 믿어주지 않고 여전히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실리스크를 대한다. 그러나 친구와 가족이 갖고 싶었던 바실리스크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날이 오는데 이는 메뚜기때의 재앙으로부터 죽음을 무릎쓰고 지켜준 바실리스크의 진심이 동물들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편견에 부딪히게 된다. 장애우들은 당연히 도와줘야만 하는 존재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피해야만 하는 존재로 대하는 것도 그것 중의 하나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그 존재 자체를 우리와 동등하게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