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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허전하진 않았을 거야.’ 불러도 대답 없을 이름을 부르며 현관문에 들어설 때마다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 꼭 10년을 내 곁에서 머물다 사라진 존재.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강아지 한 마리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녀석은 엄연한 식구였다. 워낙에 어릴 때 우리집에 왔고, 다 자랐음에도 그 크기가 작은 데다 떠나는 날까지 아기 노릇을 했던 녀석이었다. 하루를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거 같다는 동생의 말에 제대로 반한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거리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 딴에는 사랑을 듬뿍 준다고 했지만 부족한 것도 많았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 기형이라고 하였고, 계속해서 약을 먹였지만 막판에는 그로 인해 많이 힘들어 했었다. 떠나던 날 집에는 아버지만이 계셨다. 작별인사라도 하고팠던지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텅 빈 방마다 한 번씩 기웃거린 후에 녀석은 아버지 품에 안겨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환호하는 5월 5일, 나에게는 잔인한 기억이 하나 추가됐다. 이후로 우리집은 강아지를 들이지 않고 있다. 강아지의 빈자리는 또 다른 강아지로 채울 수 있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부모님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다. 아이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마냥 큰소리 내어가며 울진 않는 요즘이다. 오히려 우린 이따금 녀석과 함께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는다. 녀석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아마도 우리 가족에게 강아지와의 인연은 더는 없지 싶다. 귀여운 모습에, 호기심에, 다양한 이유에서 강아지를 집에 들인다. 그렇지만 강아지가 성장해 성견이 되고, 너무 늙어 세상을 떠날 시점이 되면 갈등은 시작된다. 어떻게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 할지 아는 이는 거의 없고,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죽음이라는 화두를 피해보고자 안간힘을 쓴다. 동물들은 인간처럼 죽음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신 동물들은 다가올 때와 떠날 때를 알고, 자연스레 모든 과정을 받아들인단다. 그는 동물은 동물로서 인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연의 법칙을 철저히 따랐을 것이라면서 조금은 과격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탄생의 과정이 순탄치 않다하여 곁에 두고 책임을 질 필요는 없고, 인간이 그러하듯 연명치료를 해가며 생을 연장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다. 동물로 하여금 동물의 삶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폭력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사에 대한 그의 의견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가 없었다. 괴로움을 없애 주기 위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안락사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기반한 게 아닐까 싶었다. 동물이 생과 사를 인식할 능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게 하나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안락사라는 결정을 내린 후 사람이 느끼는 죄책감은 당연한 것이다. 그마저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답지 못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로부터 애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슬퍼하는 데 관대하지 못하다. 제 부모가 죽어도 주어지는 휴가는 고작 일주일 남짓이다. 가슴 한 곳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되지만 서글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금기마냥 여겨진다. 하물며 반려동물의 죽음이 정당화될 리는 없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라는 식의 시선은 도처에 존재한다. 누군가가 나서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가 감정을 억누르면서 ‘정상’을 넘어선 ‘비정상’을 행하지 않겠다며 안간힘을 쓴다. 슬픔은 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잘 살았다면 잘 보내주는 것도 반려동물을 위해 우리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무언가다. 기억은 끊임없이 희미해진다. 어떤 슬픔도 극복이 안 되지는 않는다. 우릴 떠난 아이가 어느 별로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아직까지 내 꿈에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보아 새로이 속하게 된 세상에서 심심하지는 않은 모양이라며 짐작할 따름이다. 때가 되면 나는 녀석을 놓아줄 예정이다. 함께였음에 감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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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주 잠깐 집에서 개를 키웠던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잠깐이었던지라 그저 개를 키우고 싶다고 징징대던 나에게 실제 개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시키려고 잠깐 데려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뭐든지 다 해줄 기세로 안고 얼르고 하다가 어느샌가 귀찮아 하고, 훈련도 시키지 않아 놓고는 아무데나 볼일을 본다고 구박했다. 나 좋을 때만 예뻐하다던 어느날 학교 다녀온 내 발에 엉겨붙어 반가움을 표시하는 개가 덜컥 무서워졌다. '아, 내가 저 개를 계속 돌봐야 하는구나. 저 개는 나를 보고 이렇게 반가워라하는데 나는 그것이 귀찮구나.' 하는 깨달음. 개의 무게가 오롯이 책임감으로 덮쳐오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개는 물론이고 어떤 동물도 기르지 않는다.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는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의 상실감과 슬픔,그것을 극복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의 수명보다 짧은 동물의 수명 탓에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제 수명대로 잘 누리고 즐겁게 살다 죽었든 사고든 간에 함께하던 동물의 죽음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같다. 늘 함께하던 동물이 없을 때의 상실감,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 등 가족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반려동물에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 슬픔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저자의 경우 기르던 반려견이 다른 사람을 여러번 공격해 안락사를 선택한다. 또 아픈 반려동물을 위해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 없으니 계속 살아만 달라는 마음으로 치료를 계속하기보다는 반려동물의 체력상태, 자신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 등을 살펴 동물을 돌보기를 현실적으로 조언한다. 농장을 경영하며 여러 동물도 키우고 자신의 반려동물을 안락사 시킨 경험이 있는 저자의 글인데다가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많이 들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현재 반려동물과 이별했거나, 그런 이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도 감정이입을 하며 안타까웠는데, 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는 더욱 와닿는 이야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