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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내 삶에 불쑥 박혀버린 돌멩이(상처, 결핍)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것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연수, 진이, 류민, 그리고 부모, 할머니 세대까지)은 저마다의 아픈 상처와 결핍을 품고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소설 속 인물들이 그 상처와 결핍에 함몰되지 않고, "다 좋은 건 없으니까, 다 나쁜 것도 없을 거야", "가다 보면 다른 길이 보이겠지" 하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돌멩이가 박힌 두릅나무가 돌을 밀어내지 않고 서서히 자신의 껍질로 덮어 안으며 자라나듯, 아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거울삼아 자신의 상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치유자로 성장해 나간다. 우리의 삶 또한 상처와 결핍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이제 소설 책을 덮고, 나에게 박힌 돌멩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그 돌멩이를 밀어내고 있는지, 받아들이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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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누이를 위하여’가 어려웠던 시절 뜨겁게 살다 먼저 간 누이에게 바치는 헌사라면, 이번 작품인 소설 ‘아버지를 찾아서’는 자연이 곧 우리들의 교실이자 학교임을 작가가 학교를 떠나며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당부하는 마지막 퇴임의 변이다. 자연이 모든 생명의 모태임을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실천적인 삶으로 드러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작가가 교사로서 여전히 학교와 함께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당부하는 그런 퇴임의 변이다. 이런 멋진 퇴임사라니..... ‘언젠가 읽었던 책 생각이 났다. 반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 구석으로 가서 느티나무 아래에 눕게 하고 몸이 흩어지는 상상을 하게 하던 어느 선생님 이야기’ 연수가 생각했던 위 구절은 아마도 작가가 교사 시절 담임일 때의 실제 경험일 것이다. 학교에 돌을 쌓거나 쇠로 만든 동상을 세워도 되는데 굳이 나무를 심는 이유가 뭐냐고 허진이 연수에게 묻지만 실은 작가가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던졌음 직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는 함안 촌출답게 늘 산과 강을 벗하며 살다 보니 산속의 여러 소재들도 거리낌 없이 잘 다루고 그래서 글의 전개도 자연스레 잘 읽힌다. 매조지는 우련하게 발간 뭉근 숙어진 그러구러 등의 생전 처음 접하는 단어들을 보는 재미있다.(발간 물갈퀴와 숙어진 어깨는 처음에는 퇴고의 실수인 줄 알았다^^.) 부산의 반송동 재송동 반여동에 있는 학교에 근무한 교사들이라면 가정이 부재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2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연수와 허진과 류민을 마주하게 된다. 교사로서의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가정의 부재라는 커다란 벽에서 절망했던 기억들이 반송 재송 반여 지역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교사라면 다들 있을 것이다. 소설은 그 부재한 가정의 아이들의 부모 역시 어린 시절 어쩔 수 없었던 가정의 부재를 겪었다는 사실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렇지. 그렇구나...... 나는 교사 시절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늘 가정의 부재를 느꼈지만, 책처럼 그 부모의 어린 시절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 부모들을 공감할 마음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다. 학교를 떠난 뒤의 뒤늦은 깨달음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소재도 참 잘 다루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고입 원서를 작성하기까지 모습들이 생동감 있고 실감 나게 잘 묘사되어 있어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준비한 노력도 눈에 팍팍 뜨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꽃을 피우기 위해 흔들리며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라 성장소설이란 분류로 학교 도서관 책꽂이에 꽂혀 있어도 좋을 책이지만 진로상담실에 꽂혀 있어 상담교사가 아이들에게 권하면 더 값지고 아름다운 책일 듯하다. 연수의 ‘그러구러’ 한 말에 대해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한다. “글쎄다, 나는 제대로 어른이 되어 보지도 못하고 늙어버려서 잘 모르겠다.” 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 충분히 추측되는 할머니의 저 말 때문만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을 포함하여 충분히 나이 든 어른들이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읽어볼 성인들을 위한 성장소설로도 손색이 없다. 연수가 아버지와 엄마의 부재로 고통을 겪었지만, 그 아버지와 엄마 역시 똑같은 부모의 부재를 겪었고 그 할머니 역시 푸른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푸르고 깊었던 지리산을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소설은 담담하게 꾸밈없이 평소 누구나 겪는 일인 듯 지나가듯 이야기한다. 연수 류민 허진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 역시 그들은 모두 크면서 아팠고 아프면서 뚜렷해졌다. 숲은 그냥 두면 알아서 잘 자란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들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지만 그냥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왔을 뿐’ 그렇게 가다 보면 다른 길이 보일 거라고 이야기하는 허진처럼 살아가면 된다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중2병의 극한 병을 앓는 아이들도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이 가는 다른 길이 보일 것이다. 연수가 나무 학교에 가고 허진이 피아노 학교에 가고 류민이 병을 고치기 위해 친부가 있는 제주도로 가듯이. 연수의 아빠가 할머니와 함께 백무동 가깝지 않은 기슭을 찾아가려고 가듯이. 책을 다 읽고선 길게 밀려오는 여운이 있어 책을 덮으니 책 표지의 제목과 산길을 걷는 한 아이와 목적지가 채 정해지지 않은 채 걸어가는 한 아이를 둘러싼 녹음 짙은 산속 길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표지의 전체 풍경을 어루만지는 마지막 「작가의 말」을 표지 위로 오버랩 되듯이 하얀 글씨로 덧입혔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은 행복한 책 읽기를 끝낸 독자의 아주 사소한 아쉬움이었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말인가. 「그들은 모두 크면서 아팠고, 아프면서 뚜렷해졌습니다. 숲속 그늘이 푸른 것은 그들이 스스로 빛나기 때문입니다.」 카~ 멋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