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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소설은 일련의 작품들이 하나의 연작처럼 이어지고 있다. 남도 사람 연작과 언어사회학서설 연작이 그러하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대표작 '병신과 머저리'를 통해 그의 예술관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형은 소설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린다는 이분법적 구조는 그들 각기의 예술관을 살펴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전쟁의 상흔으로 가슴에 상처를 지닌 형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담당하던 환자가 죽음으로써 그의 세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그의 군대시절 전쟁의 아픔과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형은 서술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동생이 그러한 형의 소설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동생은 형의 소설이 쉽게 결말을 보지 못하자 못내 안타까워하며 자신 역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고 만다. 이들의 다소 이분법적인 구조는 이렇다 할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우리는 다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의 아픔이, 혹은 동생의 아픔이 더 크다고 우리는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렇다 할 과거를 갖지 못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욱 공감을 주는 인물은 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볼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그림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화필과 물감을 통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의 십분의 일도 걸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을 좀 더 깊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느낌이 절실했던 점만은 지금도 고백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여 에덴으로부터 그 이후로는 아벨이라든지 카인, 또 그 인간들이 지니고 의미하는 속성들을 논리 없이 생각해 보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전부를 긍정할 수는 없었다. 단세포 동물처럼 아무 사고도 찾아볼 수 없는 에덴의 두 인간과 창세기적 아벨의 선 개념, 또 신으로부터 영우너한 악으로 단죄받은 카인의 질투-그거은 참으로 인간의 향상 의지로서 신을 두렵게 했을지도 모른다-그 이후로 나타난 수많은 분화, 선과 악의 무한정한 배합 비율...... 그러나 감격으로 나의 화필이 떨리게 하는 얼굴은 없었다. 실상 나는 그 많은 얼굴들 사이를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혜인 이후 나는 벌써 어떤 얼굴을 강하게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내가 그것과 만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