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장소-유럽 속 이슬람 유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 책은 유럽 곳곳에 남아있는 이슬람 세계의 ‘기억의 장소’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슬람 세계의 흔적이 유럽에 남아있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그렇게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보면,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슬람이 유럽에서 호령하던 시기에 흔적을 남겨놓았던 게 틀림없다.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그 흔적들은 어디 어디에 있나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열면서 당연히 그 흔적은 지리, 장소별로 분류해 나갈 줄 알았다. 스페인에서는 이런 흔적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런 것......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만 허를 찔려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그 흔적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part 1 종교의 기억 part 2 문화의 기억 part 3 사상·언어의 기억 part 4 일상의 기억
장소별로 분류하는 게 아니라, 흔적의 종류별로 분류해놓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이 책은 그 목차로 종교, 문화, 사상과 언어, 그리고 일상에까지 이슬람의 흔적이 남지 않은 것(또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먼저 ‘아, 그렇구나.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래도 지리, 장소로 따져보았더니
그런 흔적의 범주로 나누려고 하니, 아무래도 생각이 먼저 장소와 연결되는지라, 이런 정리를 하게 된다.
part 1 종교의 기억 - 영국, 프랑스, 헝가리 part 2 문화의 기억 – 유럽 각지, 또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리보르노, 파리 part 3 사상·언어의 기억 – 아, 이건 굳이 장소를 따질 필요가 없다. part 4 일상의 기억 – 이것 또한 장소를 따질 필요 없지!
그러고 보면 저자가 분류를 이 책대로 하기를 잘 했다. 지리, 장소별로 구분 분류했더라면 책을 써나가는데 애로가 컸을 것 같다.
먹거리 이야기 – 크루아상(croissant)
멀리 갈 것 없다. 주변에 빵집에 가보면 크루아상이 있다. 초승달 모양의 빵이다. 맛있다. 프랑스 빵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 빵에 얽힌 이야기가 이 책에 소개되고 있다.
이 빵의 유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스만 튀르크군이 1683년 빈, 또는 1686년 부다페스트를 공격할 때 성으로 들어가고자 성벽 아래로 밤새 터널을 파고 있었다. 이를 성안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던 어느 제빵사가 발견하고 아군에 알려 튀르크 군을 물리쳤다. 그 제빵사는 결정적 제보를 한 공로로 무슬림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드는 독점 권리를 받음으로써 크루아상이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는 이야기다. (122쪽)
물론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으니, 읽어볼 일이다. 무릇 그런 일에는 항상 몇 가지 버전이 따르는 법이다.
지성사 차원에서 – 이븐 할둔
얼마전 단테의 『신곡』을 읽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만났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지나가는 중에 제일 첫 번째 장소인 ‘림보’에서 만난 사람중에 흥미로운 인물들이 있다.
바로 이슬람 인물들이다. 기록되기를 살라흐 앗 딘(살라딘), 이븐 루시드, 그리고 이븐 시나, 이렇게 세 사람은 분명 이교도임에도 그들을 지옥에 배치한 게 아니라, 림보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단테가 살았던 시절에도 이슬람인들을 아주 배척하지는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이슬람인이 등장한다. 이븐 할둔. 역사학자다.
유럽 지성사에서 이븐 할둔을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19세기 초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역사서술의 학문화를 이미 14세기 중세 말에 제창했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연구하는 방법, 그리고 서술하는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역사를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로 여기는 시각을 넘어 ‘학문’, 그것도 ‘철학적이거나 사회과학적 학문’으로 확립할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었다. (322쪽)
그런 인물이니 만약 단테가 그를 『신곡』에 배치한다면 적어도 지옥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정말 대단한 흔적이 많다. 이렇게 많았나. 허기야 몰라서 그랬다. 그게 이슬람의 흔적인줄 몰랐던 게 더 많이 있었던 것이다. 해서 이 책으로 이제 조금 눈이 떠진 셈이다.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그것의 유래가 어떤 것인지 몰랐던 나의 지식에 플러스를 한 가지 더한다. 감사한 일이다.
이 책에서 이슬람의 흔적에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억의 장소'는 단지 과거의 흔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의 유럽을 어떻게 이해하고, 미래의 유럽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 열쇠다. 유럽은 이제 더는 단일한 기독교 문명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며 화해하는 역동적 무대다. 이슬람은 이 무대의 외부자가 아니라, 유럽 문명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조각 중 하나이다. (6쪽)
그리하여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이 책은 유럽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을 단순한 유물로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기억의 장치이자 문화적 상호작용의 상징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6쪽)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생각도, 또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다시 깨닫게 한다.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이슬람 세계의 '기억의 장소'를 따라가는 여정이다"(4)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가 기획한 유럽 속 이슬람 유산을 알아보는 책이다. 이 연구소는 유럽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의 교류와 갈등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져있다. 책은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유럽 속 종교, 문화, 사상과 언어, 일상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따라가며 21명의 전문가가 설명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해 카톨릭 성당들이 많은 프랑스에서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파리 대모스크'는 독특하다. 프랑스는 알제리,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를 식민지화한 이후부터 이슬람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이 파리 대모스크는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무슬림 식민지 병사를 기리기 위해 1926년 건립되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의 피신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이슬람 테러 단체에 납치된 프랑스인 구출공간으로 이용되었다. 프랑스 이슬람 공동체는 이라크의 이슬람 무장단체가 프랑스 기자를 납치하고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금지하는 법(2004)'을 제정하지 말라고 요청하자, 파리 대모스크 이맘인 달릴 부바쾨르가 이는 프랑스의 문제이고, 프랑스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고 설득해서 인질을 석방한다. 파리 한복판에 있는 이슬람 성전의 역사적 변천과 오늘날 두렵기만 한 존재인 이슬람 무장단체를 상대로 평화적 해결을 이루어낸 프랑스 내 이슬람 공동체의 힘을 알 수 있다. 유럽 속에는 모스크나 알함브라 궁전과 같이 눈에 보이는 이슬람 양식도 있고, 과학, 수학, 천문학의 영향이나 독일어와 스페인어 속 아랍어 차용처럼 무형의 흔적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속에서 이슬람의영향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화가의 그림 속에서 이슬람의 흔적은 '홀바인 카펫'이다. 이 카펫은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그렸던 붉은 바탕에 다양한 문양이 직조된 카펫을 말한다. 한스 홀바인은 독일 태생의 영국 헨리 8세의 궁정화가로, 사실주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대사들>(1533)에서 탁상 위의 카펫이나 권력과 부를 과시한 <헨리 8세의 초상화>(1540)에서 발아래 깔린 카펫을 찾을 수 있다. 미술사가들은 이 카펫이 15-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도시인 우샥에서 직조된 특정 유형의 카펫임을 밝혀낸다. 최고의 카펫은 이란과 튀르키예산으로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카펫은 바닥에 깔거나 벽이나 발코니를 장식하거나 덮개로 사용했고, 회화에서 중요 인물 가까이에 카펫을 두었다. 카펫은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왕이나 고위 성직자만 소유할수 있었으나, 무역이 발달하며 점차 중산층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이념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난방이나 인테리어용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여러 명의 대학의 교수들이 전공을 살려 쓴 자료를 모은 것이라 내용이 충실하고 자세하다. 참고문헌이 풍부한데, 책과 최근의 연구논문이나 인터넷 자료도 비교적 최신이다. 조금 딱딱한 소논문과 같은 형식의 글도 있고, 에세이 같은 글도 있다. 상당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서 가볍게 읽기 보다 유럽과 이슬람의 교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유럽 역사에서 정복이나 무역을 통해 유럽과 중동이 교류하면서 만들어낸 문화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 읽고 나면 카톨릭교가 대부분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왜 이슬람의 흔적이 발견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의 개괄적인 소개가 책 초반에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랬다면, 여러 교수의 연구들이 어느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쉬웠을 것 같다. 오스만제국의 침입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무역의 발달, 780여년 간 지속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축출활동인 레콩키스타와 십자군 전쟁, 프랑스와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에 이르는 근현대까지의 이슬람 역사의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해보인다. 카톨릭이 대세인 유럽 속에서 유니크한 이슬람 문화를 발견하고 싶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평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전쟁의 동물인지 여러 이유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우리네 삶에 공포를 드리우게 하는 것은 '테러'다. 게다가 그 테러가 특정 건물이나 상대 군대를 겨냥한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에 대해 일어나고 있어서 정말 일상이 깨지고 있다. 테러가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종교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서구 유럽으로 대표 되는 기독교와 중동의 아랍으로 대표 되는 이슬람이다.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은 하루 이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 백 년에 걸쳐 일어나서 쉽게 손 대기 힘든 상황이다. 증오가 쌓이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란 멀기만 한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다면 이런 험악한 상태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기독교와 이슬람은 적대적이었나. 아니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대체 어떤 사이였길래 서로 화합하고 포옹할 수가 없단 것인가. 과거에 서로 잡아 죽이고 미워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어서 그런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아니오' 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는 서로 따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을 했고 서구 유럽 곳곳에 이슬람의 유산이 있다는 것이다. 미워한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유럽 속에 많은 이슬람 유산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면 궁극적으로 갈등을 줄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상대를 모르니까 전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이 따로 따로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서로 서로 좋은 점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독창적으로 혼자만 발전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유럽의 역사에서 이슬람이 이바지한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지금은 서양 유럽이 중동 이슬람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고 있지만 수 백 년 전에는 이슬람이 문명의 중심지였다. 말하자면 이슬람이 선진국이었던 것이다. 서양은 이슬람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결국 더 큰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어 상황을 역전 시켰다. 아직도 유럽 곳곳에는 이슬람의 흔적들이 있다. 이 책에서는 총 4가지 관점에서 유럽 속의 이슬람을 설명하고 있다. 첫 장 '종교의 기억'에서는 우선 헝가리의 이슬람 문화를 이야기 한다. 헝가리는 과거 기독교 국가였지만 이슬람 제국이었던 오스만의 통치를 받았다. 무려 150년에 걸쳐서 오스만이 헝가리를 통치 했는데 당연하게도 사회, 문화 등 전 방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책에서는 '가지 카심 모스크' 를 통해 이슬람의 영향을 설명한다. 오스만 제국이 세운 이 건축물은 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인 성모 마리아 교회로 개조 되었다고 한다. 그런 변화에도 원래의 오스만 건축 요소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 건물을 통해 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 관계와 두 문화의 융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는 오랜 역사적인 기간을 통해 서로 합쳐졌다면 영국은 비교적 최근에 이슬람 문화가 많이 들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샤 자한 모스크' 다. 이 모스크는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다문화 사회를 구성하는 영국 사회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미 400만명을 넘긴 이슬람 인구는 더 이상 대립의 종교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화합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2장 '문화의 기억'에서 첫 이야기는 '엘 시드의 노래' 다. 중세 스페인의 서사시인 이 이야기를 통해 아랍의 스페인 통치, 그리고 이슬람을 상대로 한 저항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때 저항은 과거 전통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가 공존하던 중 발생한 복잡한 문화적인 상호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7세기에 걸친 아랍의 지배였기에 배타적인 저항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 알람브라 궁전을 이야기한다. 13세기 이슬람 나르스조의 수도로 건설되었지만 이후 가톨릭 세력이 궁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궁전에서 보여주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는 아직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찬란하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아 베네치아에서도 이슬람의 흔적은 쉽게 발견이 된다. 이들 지역은 이슬람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 발전시켜서 기독교- 이슬람교의 융합 적인 문화를 키워냈다. 교역 뿐만 아니라 외교와 순례에서도 서로 간의 교류가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 문화가 충분히 평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때로 전쟁도 있었지만 평화롭게 접촉한 시간이 더 길 정도로 서로 간에 적대감이 쌓이진 않았다. 3장 '언어의 기억'에서 주목받아야 할 인물은 '이븐 할둔' 이다. 그는 19세기 초에나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역사 서술의 학문화를 이미 14세기 말에 제창했다고 한다. 책에서는 그의 업적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는데 여러 분야에서 방대한 서술을 했고 여러 사상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는 실제적으로 유럽의 여러 역사, 사상의 아버지로 봐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다. 너무나 뛰어난 인물이어서 지금까지도 연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책은 이밖에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로 독일어나 스페인어 속에서 아랍어의 잔향을 말해 주고 있다. 수 백 년 동안 교류를 했는데 언어에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좀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들 국가에서 아랍어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마지막 4장 '일상의 기억' 편에서 우선 '플라멩코'가 나온다. 음악과 노래, 춤으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공연 예술인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집시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아랍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랍 안달루시아 춤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멩코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에서 나왔다고 아랍인들은 주장한다. 이 플라멩코를 탄생시킨 모리스코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 뒤에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한다. 책은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기독교 세력의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이 춤 자체가 유럽과 이슬람의 융합임을 말하고 있다. 독일의 국민 거리 음식은 '되너 케밥' 이라고 한다. 케밥은 튀르키예의 유명한 전통 음식 이름인데 이중에 독일에서 널리 퍼지게 된 국민 음식이 되너 케법이라고 한다. 이 음식은 비교적 최근에 독일 음식이 되었는데 2차 대전으로 남성의 노동력이 부족해진 독일에 많은 튀르키예 노동자들이 이주하면서 탄생했다. 튀르키예에서 기원했으나 독일식으로 만들어진 케밥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튀르키예에는 없는 독일만의 대중 음식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유럽에 만연한 반이슬람 정서와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고려할 때 별다른 저항 없이 독일 음식이 된 사례를 통해 일상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은 여러 각도에서 유럽과 이슬람이 대립과 배척만 했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때로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기간 평화롭게 공존했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더 크게 융합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향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고 흔적은 곳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잘 살았는데 오늘날의 이런 대립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싸우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뭉쳐져서 그렇긴 하다. 그러나 과거에도 잘 협력했고 서로 평화로왔으니 아주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금씩 서로 노력한다면 미래의 유럽은 좀 더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가능성은 모르겠다. 큰 주제 아래 여러 명의 글쓴이가 있어서 조금 통일성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뜻은 대체로 잘 이야기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사실은 더 협력하고 평화로왔음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문명은 충돌하기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 유럽과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극우주의가 득세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난민들이 발생하였을때 유럽 각국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을 받아들였지만 언어나 문화, 종교 등 다른 점이 많아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기존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면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네요. 이러한 부적응은 각종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현재 유럽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입니다. 하지만 과거 스페인은 수백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었고 아랍의 지식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촉발하는 등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기억의 장소' 에서는 유럽에 남아있는 이슬람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럽 곳곳에는 수백년된 성당들이 남아있는데 성당은 도시 중심에 자리해 있으면서 사람들의 생활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슬람 성전은 모스크로 돔 양식에 주변에 첨탑인 미나레트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동에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늘고 있고 원래 유럽 사람들 중에서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도 생겨나면서 모스크 역시 곳곳에 생겨나고 있네요. 영국에서는 이미 19세기 말에 샤 자한 모스크가 세워졌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었는데 인도에는 힌두교도가 다수이지만 무슬림도 많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샤 자한 모스크를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샤 자한 모스크는 오늘날에도 영국에 사는 무슬림들에게 중요한 존재로서 역할을 하고 있네요. 스페인이 수백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발칸 반도 역시 수백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알바니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가리아에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포막족이 있습니다. 불가리아 정교에서 이슬람교로 강제로 개종을 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개종을 하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포막족은 수십만명에 이를 정도로 적지 않네요. 소수 민족에다가 종교가 달라 많은 차별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계속 문화와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많은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독일로 파견되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을 대신해 험하고 궂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이들이 보낸 돈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네요. 당시 독일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튀르키예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근로 기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끝난 이후에도 독일에 정착한 튀르키예 사람들이 많아서 현재 약 300만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튀르키예 문화도 독일에 많이 퍼졌는데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되너 케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난한 튀르키예 노동자들을 위한 저렴한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원래 독일 음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네요. 최근 독일은 국제적으로 위상에 맞게 중요한 역할과 기여를 하고 있는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면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것 같아요. 대구의 한 동네에서 이슬람 성원을 건축하는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이슬람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돼지 고기를 먹거나 돼지 머리를 갖다놓을 정도네요. 교회나 절은 특별한 문제 없이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슬람 성원만 반대하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럽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과 함께 점점 다문화 사회로 바뀌면서 무슬림도 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