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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영하 작가가 신간을 냈을 때, 채널 예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께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이라고 말이다. 리더라면 인간의 악함, 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또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이 작품은 같은 논픽션 장르-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에 비견된다. 시대적 차이와 어조의 차이가 있지만 엠마뉘엘 카레르의 작업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카레르는 절대악이 없다고 이야기하진 않지만 거짓에 가리운 진실을 하나씩 들추어낸다. 카레르의 작법에 대해 검색하다 발견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이 로망 사건(L'Affaire Romand)에 빠져들었지만 이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은 책임의식을 동반한다고 말이다. <적과 흑>, <마담 보바리>, <죄와 벌> 같은 작품들 모두 실화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작가들은 자신과 같은 책임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1993년, 1월 9일 프랑스가 발칵 뒤집힌다. 화재에서 구조된 장클로드 로망은 강도를 보았다고 증언한 뒤 의식을 잃었으며, 아내와 두 아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이를 알리기 위해 로망의 부모를 방문한 삼촌 클로드는 형 부부가 살해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알린다. 부모, 아내, 두 아이가 죽고 장클로드 로망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이들 앞에 던져진 진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장클로드 로망이 가족들을 살해했으며, 18년간 거짓말을 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이 사건에 흠뻑 빠져든다. 그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한편 장클로드 로망을 인터뷰하기 위해 편지를 보낸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듣기 좋은 말을 섬긴다. 그를 비극의 피해자처럼 대우하면서 말이다. 카레르가 쓰고 싶었던 것은 로망의 전기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신문에서 앞다퉈 보도할 것이다. 그가 알고싶었던 것은 이면의 것이다. 장클로드 로망의 일상, 18년간 거짓말을 하며 주변을 맴돌았던 그의 낮, 그 시간대의 정신세계였다. 변호사를 통해 전달되었을 편지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써 보려 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책임의식일까. 그 글을 포기한 카레르는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겨울 아이>라는 소설을 마친다.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장클로드 로망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망에게서 편지가 왔다. 2년 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소설인 <겨울 아이>를 읽었고 맘에 들었다고 한다. 카레르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던 과거 자신에 혐오감을 느끼지만 로망을 만나보기로 한다. 이 책에서 카레르는 장클로드 로망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적 기법을 사용한 사건의 재구성은 절제된 어조로 전달된다. 독자들이 그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끔. 존재감을 지운 화자로 등장하는 카레르의 혼란도 느껴진다. 18년을, 자그마치 18년을 주변 사람들 모두를 속이며 살아왔다. 한 번 쯤은 들킬만도 했을 것이다. 한 번 쯤은 의심해볼만도 했을 것이다. 불행인지 요행인지, 장클로드 로망의 삶은 평온했으며 그가 이룩한 거짓의 성 또한 건재했다. 끝이 다가올 뿐이었다.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그 허술한 거짓이 계속될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십여 년을, 의과대학 2학년을 계속해서 등록할 수 있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학생증이 나오니 로망은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고, 과제를 함께 하고 편법을 거쳐 의사가 된 체했다. 친구들도 아내도 의료계에 있었다. 국제 보건 기구로 출근한다는 로망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살던 동네에 국제 보건기구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누구도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로망은 부모의 은퇴 자금을 끌어다 생활한다. 세금을 내지 않는 스위스 계좌의 높은 이율을 들먹였다. 곧 위기가 찾아왔다. 장인이 메르세데스를 사겠다고 돈 일부를 돌려받으려 한다. 그러나 그는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죽는다. 아무도 로망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모는 혼자 살긴 너무 크다며 집을 판 돈을 로망에게 맡긴다. 이제 이쯤에서 카레르가 궁금해 한 로망의 비밀들이 밝혀진다. 출근한다고, 학회에 간다고, 동료들과 모임이 있다고 집을 나섰던 로망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던걸까. 부모, 삼촌, 장인의 은퇴자금이 동나자 로망은 내연녀의 돈에 손을 뻗는다. 계좌가 텅 비고 그도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학창시절부터 계속된 거짓말은 여전하다. 주변에서 그가 이상하다 여기면 그는 큰 병을 얻는다. 항상 생각해왔듯 그의 마지막은 자살일테니 죽어간다는 것은 아주 거짓은 아니다. 유일한 대화 상대가 그를 떠나고, 경제적인 압박이 옥죄어오자 로망은 충동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게 너울거리던 커튼이 조금씩 젖혀진다. 아내를 죽이고, 두 아이를 죽인 다음날 로망은 여상한 얼굴로 집을 나선다. 부모를 죽이고 헤어진 내연녀를 찾는다. 그녀를 살해하는데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온 로망은 약을 삼키고 집에 불을 놓았다. 무죄추정의 법칙은 그를 보호했다. 숱한 거짓말을 통해 선고받은 것은 22년 동안 가석방 없는 종신형. 아동살해자는 감옥에서 대우가 좋지 않다. 신기하게도 그를 알아 본 힘있는 죄수가 로망을 보호한다. "닥터 로망"에서 "살인자 로망"으로,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바꾼 장클로드 로망은 감옥에서 인기인이 된다. 봉사자 마리프랑스와 베르나르는 로망을 신의 길로 인도한다. 그는 너무 쉽게 용서와 회개를 이야기한다. 평안한 낯을 한 장클로드 로망을 부순, 검사 측 마지막 증인을 떠올려보자. 아직도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할까? 2018년이다. 장클로드 로망은 2015년부터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감옥에 있으며 변호사는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 이 모든 일을 재구성하고 일부는 목격한 카레르와 독자의 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악이 두려운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볼 일이다. 일에 착수하기 위해 차를 몰고 파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의 길고 긴 사기 행각에서 이제는 불가사의가 아니라, 그저 맹목과 비탄과 비겁합의 비참한 혼합만을 보았다. 고속도로의 휴게실이나 카페테리아의 주차장에서 보내던 긴긴 허공의 시간들에 그의 머릿속에 일어났던 일은 나에게도 익숙한 일이었고, 나 역시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제 그런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기도를 위해 한밤중에 깨어나 있는 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는 차 트렁크를 열어 앞으로 17넌간 보관해야하는 서류 박스들을 꺼내 내 스튜디오의 벽장에 정돈하면서 다시는 그것들을 열어 보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베르나르의 사주를 받아 쓴 그의 증언은 내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있었다. 상투적인 가톨릭 신자의 말투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정말로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위를 결정할 수 없다는〉 수학적인 의미에서 정말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신한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거짓말쟁이가 그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올 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뺨에 눈물을 흘리게 할 때, 그것은 여전히 그를 속이고 있는 적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일은 죄악이나 기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1월 파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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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시리즈 중 『갈레 씨, 홀로 죽다(열린책들)』에서 매그레 반장은 죽은 모습으로 등장한 갈레 씨의 삶을 뒤쫓는다. 매그레는 고인이 된 갈레 씨가 생전에 아내에게 감추려고 했던 비밀과 마주치고는 ‘18년 동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그렇게나 힘든 이중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탄식했다. 갈레 씨는 오래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고 계속 다니는 ‘척’ 연기하며 각종 서류를 거짓으로 만들었고 출장을 다녔다. 그가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우고 밖에서 한 일은 왕당파를 찾아다니며 돈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갈레 씨가 작정하고 숨겼지만 아내가 남편의 변화를 18년 동안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이 부분은 갈레 씨 부부 관계를 짐작케 하는 단서로 읽었고 소설이어서 가능한 설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기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과 아내의 식구들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를 속이며 이중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했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열린책들)』에 등장하는 ‘장클로드 로망’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적』은 1993년 프랑스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장클로드 로망의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일가족을 한꺼번에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하기 전까지 장클로드의 이중생활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장클로드가 가짜 의사에 사기꾼이란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정했으며 친구와 이웃과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이야기는 장클로드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친구 뤼크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뤼크에게 장클로드는 살인자일 수 없었다. 뤼크는 장클로드를 향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을 때 사람을 향한 믿음을 영원히 상실했다. 소설 속에서 ‘나’로 등장하는 카레르가 장클로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p.30)’어했듯이 나 역시 로망의 거짓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쩌다가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의 삶이 끔찍한 범죄자로 마감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장클로드의 거짓말은 이유가 없었다.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 없었다. 그를 이해하고 싶지만 더더욱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이란 어떤 진실을 덮어 버리는 데 쓰인다. (…) 한데 그의 거짓말은 아무것도 덮고 있지 않았다. 가짜 의사 로망 밑에는 진실한 장클로드 로망이 없었다.(p.95)
카레르의 『적』은 김영하 작가가 추천한 「인 콜드 블러드」와 비교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이 등장한다. 「인 콜드 블러드」에 등장하는 ‘페리’는 아웃사이더였다. 주위에 페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만 있었을 뿐 그의 상처를 알아주고 연약함을 감싸준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적』에 등장하는 ‘장클로드’에게는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이 계셨다. 장클로드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뤼크’라는 친구가 있었다. 페리가 안타깝고 안쓰러운 반면 장클로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낯설다. 낯선 작가를 처음 접할 때는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카레르의 『적(열린책들)』은 김영하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해서 읽게 되었다. 『적』을 읽은 뒤 김영하 작가와 상관없이 카레르를 향한 호기심이 생겼다. 르포르타주를 차용한 소설의 독특한 형식이 작용한 결과다. 올해 초 출간된 「왕국」도 카레르의 작품인 걸 이제야 알았다. 책을 읽은 뒤 리뷰를 쓰려고 책장을 뒤적인 지 한참 지났는데 볼 때마다 카레르의 독창성에 놀란다. 회사에서 점심 먹고 남은 시간에 카레르의 작품을 검색하고 리뷰도 읽어보는 중인데 느낌이 좋다. 카레르의 작품을 위해 비좁은 책장에 공간을 만들어야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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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부터 범죄 논픽션, 범죄자 심리 분석 같은 분야에 골몰하는 나같은 사람에게야 다소 심심한 내용이지만.. 취향이 정상적인 독자들에겐 그야말로 '충격 실화'로 읽힐 작품.
아래부터는 사족.
정말 신기한 게 개인적으로 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보단 타인에 대한 이야길 할 때 훨씬 흥미로운 작가임. PKD 평전이 그렇고, 예수와 바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토로하는 <왕국>이 그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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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작가의 적입니다. 1993년 1월 3일 토요일, 나는 아내와 함께 큰아들 가브리엘의 유치원 학부모 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 다섯살 가브리엘은 장클로드 로망의 아들 앙투안 로망과 같은 나이였다. 그리고 나는 가족과 함께 부모님 댁으로 가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족과 함께 보내던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의 휴일 시간 그쯤에는 내 작업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