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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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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하루끼 작가와 작품 그리고 소설속 화자와 그 대척점의 이해당사자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며 찾고자 하는 것은 #전지적작가시점의 #당신과나 사이를 #순례하는 #사랑 #상실 #절망 #정체성~을 확인코자 하는 듯 하다. 아마도 불확실성과 트라우마가 복선으로 겹치는 정신적 혼란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사회인들의 절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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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하루끼 작가와 작품 그리고 소설속 화자와 그 대척점의 이해당사자에게 지금 어디에 있냐며 찾고자 하는 것은 #전지적작가시점의 #당신과나 사이를 #순례하는 #사랑 #상실 #절망 #정체성~을 확인코자 하는 듯 하다. 아마도 불확실성과 트라우마가 복선으로 겹치는 정신적 혼란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사회인들의 절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소설속 너와나에게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 흐르며 우리에게 남겨진 상흔같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처럼 그들에게도 세계대전전후사 의식을통해 새로운 세계질서와 상충되는 획일적 가치관과 위기, 혼란과 갈등속에 남겨진 역사적 트라우마를 예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저자를 통해 언급된 #상실의시대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거듭 물었다. 이 물음은 #노르웨이의숲 #마지막장면에서 미도리가 그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나오코를 의식한 관계불안이었을까도 생각해봤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상실감속에 손을 내밀었을 나오코, 또 그때문에 불안한 현실의 미도리적 감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오롯이 남아 있다. 그런 단순한 스토리가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내기억속에 상실의시대가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상실감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따금씩 겪는 불확실한 미래, 존재의 불안정성을 부르는 이유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하루끼책은 세종류를 읽었는데 달리기에관한 에피소드책은 예전 마라톤하면서 공감하며 조금씩 지금도 읽는 중이고 상실의 시대는 지금은 소멸된 예전의 삼성역 무역센타 지하의 반디앤루니스점~에서 도독으로 완독하며 여주인공의 자살보다는 현대사회 젊은이들의 자화상으로 치횐할 수 있는 와타나베적 처신이 상실의 감정으로 얼마되지않지만 하루끼에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1Q84 3set는 사점에서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다. 주인공이름이 아오마메 였던 기억속에 태양이 두개로 변하는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음악까지 개인적으로는 썩 인상적이진 않았던 기억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하루끼에대한 순도높은 인수분해를 통해 하루끼 소설들을 이해하는 제렛대 역활을 할듯 하다. 아마펜이라면 한번을 읽어볼만 할정도록 정성이 들어간듯 했따. 이러한 점들은 아마도 비평가다운 본문의 여러가지 손길들을 통해 좀 더 소설속 주인공들의 상충적 내면의 #함의와효용~까지 탐구하는 좋은 계기가 될듯 싶다. 


#사랑합니다 표현하는것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모국에서는 #치유작가~로통하는 #Haruki 
#하루키 지금어디에있니 
#김응교 지음
#책읽는고양이 출판 
#출판사의지원으로작성된서평입니다 

c**********y 2025.07.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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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1949~1992, 김응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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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함께 성장했다. 대학 시절, 그의 책들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비밀 통로 같았다. 당시에는 그저 쿨한 문장들과 낯선 서사 구조에 매료되어 읽었다. 현실의 권태를 잠시 잊게 해주는 시원한 콜라처럼, 혹은 몽롱한 마약처럼 그의 소설은 나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주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1949~1992, 김응교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함께 성장했다. 대학 시절, 그의 책들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비밀 통로 같았다. 당시에는 그저 쿨한 문장들과 낯선 서사 구조에 매료되어 읽었다. 현실의 권태를 잠시 잊게 해주는 시원한 콜라처럼, 혹은 몽롱한 마약처럼 그의 소설은 나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주인공들의 고독과 방황,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유머와 판타지는 20대였던 나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그의 소설이 던지는 깊은 질문이나 숨겨진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그 분위기 속에 잠기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그의 작품을 다시 마주할 때마다 나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한때는 그의 태도에 반대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의 소설이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에만 천착하거나, 혹은 때 때로 등장하는 성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상실'과 '고독'이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오히려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의 문학적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지 온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나 역시 그를 '쓰레기'라 하했던 비평가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마치 현실 도피적인 행위처럼 느껴져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접한 김응교님의<무라카미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하루키 소설에 대한 나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응교 작가의 시선처럼, 하루키의 문학을 개인의 내면 탐구나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의식'과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하루키 소설이 우울한 까닭은 그의 무의식이 아직 장례식을 치르고 있기 때 문"이라는 관점은 나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섹스를 하고 와인을 마셔도, 세상은 아직 슬픔이 해결되지 않은 상중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한다는 그의 통찰은, 하루키 소설의 밑바닥에 흐르는 설명할 수 없었던 우울감의 근원을 명확히 밝혀주었다. 하루키의 소설에 ‘역사가 없다'는 세간의 평가는 어쩌면 피상적인 이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가 난징 학살 사건과 관계있는 부대 출신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평생 그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외롭게 투쟁하는 모습은 개인적인 고뇌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죄악, 즉 '시스템 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시도하는 하루키 자신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스템 악'에는 일본의 군부, 부패한 자본주의, 사이비 종교 단체의 트러스트다. "자기 나라에 좋은 역사만을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소설 속에서 은유적으로 표현되던 그의 역사관이 얼마나 선명하고 단호한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처럼 하루키의 소설은 '삭제의 죄악'에 맞선 '기억의 복원'을 시도하는, 위험하고도 용기 있는 작가적 시도였다는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물론, 글에서 지적하듯 하루키 소설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직접적인 고발 대신, 상징과 은유, 그리고 판타지라는 장치를 통해 무의식 깊숙이 자리한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이 우울한 것은, 바로 그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슬픔과 아직 끝나지 않은 '장례식' 때문이라는 것은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맥락인 것 같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내가 하루키 소설을 '치유'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한때는 그의 소설이 그저 '힐링 마케팅'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상실과 고독, 그리고 그들이 찾아 헤매는 '연결된 고통'의 의미는, 결국 우리 사회가 겪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대학 때 몇 번을 다시 읽었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를 생각해 본다. 소설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와타나베가 주 인공이며, 읽으면서 남자의 심리, 청춘, 사람에 대해 알게 된 소설이다. 기츠키가17살에 죽고, 노오코가 죽고, 나가사와의 애인 하쓰미의 죽음이 있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에 죽음이 있으며, 삶은 계속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상처와 고민은 삶의 일부가 되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상처를 통해 더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경험을 한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들도 이제는 조금 더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기셨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하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 장면은 아직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미도리와의 인연이 이어졌을 지, 혹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았을 지는 열린 결말로 남아있다. 삶에서 많은 관계들이 항상 명확하게 정의되거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와타나베의 마지막 질문은 비단 그만의 질문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신 것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다시 한번 탐색하는 소중한 과정일 것 같다. 대학 시절에는 청춘의 방황과 사랑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느끼면서..나는 이제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그 이면에 숨겨진 '장례식'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의 소설이 주는 우울함은 과거의 아픔을 직시하고, 그 아픔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작가의 깊은 의지가 담긴 고통의 연대기이다. 그의 소설을 통해 나는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시대와 역사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어떻게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는지를 배운다. 저자가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하루키 소설은 나에게 더 이상 콜라나 마약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는 '비타민'이자, 때로는 쓰디쓴 '약'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의 무의식이 치르는 장례식이 계속되는 한, 나는 그의 소설을 계속 읽으며 그 슬픔의 연대기에 동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진정한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더 이상 하루키의 소설의 의미를 몰라서 멍 때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진정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으로 안내하는 가이드와 같은 책이었다.
이달의 사락 p****r 2025.07.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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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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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읽으면서도 "지금 내가 뭘 읽은 걸까?" 싶은 작품이 있다. 1Q84가 그랬고,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도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고 하니, 남들이 읽길래 한번 읽어봤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펼친 김에 끝까지 읽긴 했지만, 반의 반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다시 떠올려봐도 난해했던 스토리와 장면들.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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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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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도 "지금 내가 뭘 읽은 걸까?" 싶은 작품이 있다. 1Q84가 그랬고,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도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고 하니, 남들이 읽길래 한번 읽어봤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펼친 김에 끝까지 읽긴 했지만, 반의 반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다시 떠올려봐도 난해했던 스토리와 장면들.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의 저자는 하루키 문학이라 일컫는 작품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하루키는 청춘의 상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제를 알리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사회적이거나 국가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널리 알리는 하루키가 자국민들에게 외면 당하면서도 끝까지 시도한 것은 모험일까, 도전일까? 
그렇지만 문제들을 문학 뒤에 숨겨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아, 작품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낳는다.
스스로 비국민을 자처하는 오에 겐자브로 작품과 비교해도, 재일 한국인 양석일 작품과 비교해도 하루키 작품은 소극적이고 몽환적이고 개인적이라 난해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뛰어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는 달리, 용기가 부족했던 걸까? 시대의 부조리를 알리고는 있으나 대놓고 떠들지는 못하니,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지 않은가!!!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문제들을 하나 하나 상세히 설명한다. 문학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알려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라면서 겪은 일을 설명하며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도 설명한다. 
책의 일부를 발췌해, 저자가 주장하는 의견의 근거로 삼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해부한다.
"아니, 이런 걸 의미했다고?"
필자처럼 하루키 문학에 도전했다가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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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_p63
더 깊이 쓰자면 '삭제의 죄악'에 맞선 '기억의 복원'을 시도한 작가로 볼 수도 있겠다. 하루키 소설이 우울한 까닭은 그의 무의식이 아직 장례식을 치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섹스를 하고 와인을 마셔도, 세상은 아직 슬픔이 해결되지 않은 '상중'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밑줄_p103
하루키가 등장시킨 도스토옙스키와 카프카, 다자이 오사무는 중성의 글쓰기를 했던 인물들이다. 하루키는 목표를 드러내는 낮의 글쓰기가 아니라, 미로를 헤매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글쓰기로 희망 없는 젊은이들의 무의식을 담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의 리얼리즘’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 시도의 총체가 장편 소설 『노르웨이의 숲』인데, 이 소설에 대해선 뒤에서 다룰 예정이다.




>> 이 서평은 책읽는고양이(@reading__cat)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인문학 #비평론 #작품비평 #무라카미하루키
#신간도서 #도서추천 #책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
이달의 사락 p*******3 2025.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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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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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나의 성인 시절의 독서를 정의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움베르트 에코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정의 될 것이다.수능이 끝나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외삼촌이 사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고전을 입문하며 무심한 듯 그러면서도 열렬히, 기호학의 ‘있어보이는’문장에 푹 빠졌었다.그리고 ‘푸코의 진자’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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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의 성인 시절의 독서를 정의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움베르트 에코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정의 될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스무살이 되었을 때 외삼촌이 사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 고전을 입문하며 무심한 듯 그러면서도 열렬히, 기호학의 ‘있어보이는’문장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푸코의 진자’와 같은 에코의 다른 책들도 읽어나갔고 그러다 만난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였다.
특유의 어두우면서도 깔끔하고 그러면서도 여러분야의 지식들이 무심하게 나열되어 있는 문장에서 에코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하루키도 내가 방학이 되면 손에 쥐는 책의 작가가 되었다.

#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김응교 지음 #책읽는고양이 출판)의 제목을 보자마자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떠올랐다. ‘노르웨이의 숲’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의 “나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것을 따온 듯 싶었다.

저 대사는 지금 본인의 물리적 위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있어서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담아놓은 존재의 기원과 관련된 질문이다.

‘노르웨이의 숲’의 저 대사를 안다면 제목만 보아도 얼추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능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존재가 가진 의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하나의 평전이겠거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책읽는 고양이 출판사의 #아티스트웨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인데 아티스트웨이 1번 책이 아시아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 평전이었으니 이것으로도 어느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에세이와 소설 두 분야에서 모두 뚜렷한 성과를 거두며 노벨상 시즌이 되면 문학상 수상자 후보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하루키는 수십개국에 번역되어 읽히는 시대를 대표하는 월드와이드 작가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들에게 외면 당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80년대 하루키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가지고 있던 일본에 대한 감정도 한 몫 했을 것이고, 독자들에게도 어느순간 반복되는 쓸데 없이 세밀하게 묘사되는 남녀간의 성적행위가 변화하는 시대에 많은 비평을 받게 되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게는 그 시대가 감당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외면하지말고 글로써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의무감을 부여하는데, 하루키는 그것에 소극적이었다라는 말도 말이 듣는다.

보통 어떤 비과학적인 신비한 요소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김응교 저자는 하루키가 물론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일본내의 극우파, 일본 자본주의의 타락,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의 인터뷰로 완성한 ‘언더그라운드‘, 옴 진리교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약속된 장소에서‘ 등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왔다.
그럼에도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최신작에 속하는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일본군이 중국 난징에서 벌인 ’난징 대학살‘의 악행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반애국적이라며 불매운동이 벌어졌었다.

솔직히 하루키는 일본의 발전 역사에 그렇게 긍정적인 시작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의 책은 항상 먹구름이 낀 듯이 우중충하다. 아마 그것은 일본의 역사에 가지고 있는 아픔과 잊지 말아야할 그 시절의 행동에 대한 회의가 담겨있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일본 특유의 권태와 상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대체 무슨 말을 하고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자기의 이야기라 여기며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들도 제법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서 그런 하루키의 책들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짚어주는 ’하루키 오디세이‘로 채워진 이 책을 읽으면 팬이라고 하더라고 그냥 주구창창 읽어내려만 갔던 것과는 다른 전형적인 이해를 추가할 수 있다.
그로인해 나와 같이 하루키를 좋아했던 사람은 하루키에게 땡겼던 이유를 정확히 알게 해주고, 하루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하루키가 왜 이렇게나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이 드높은지를 알게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적지않은 분량의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가면서 “하루키 랜드에서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그곳을 걷는 것 자체가 이미 위로이 자 치유이며 깨닫는 길이 아닐까”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나에게 이 책은 의미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열성인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남들도 설득할 만하기를 요구하는 세상에 한방 먹이는 듯 했다.
이달의 사락 k********4 2025.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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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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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무라카미하루키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도서협찬 이 책의 저자 김응교 평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40년 넘게 읽고 분석해왔다. 그는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책 제목에 담긴 “어디에 있니”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던진 질문을 인용한 것으로, 하루키 문학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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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무라카미하루키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도서협찬



이 책의 저자 김응교 평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40년 넘게 읽고 분석해왔다. 그는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책 제목에 담긴 “어디에 있니”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던진 질문을 인용한 것으로, 하루키 문학의 핵심인 존재의 상실과 회복을 향한 여정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 읽은 『기억의 유령』 속 W.G. 제발트가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발트는 모두 아버지 세대의 전쟁 경험을 깊이 성찰하며, 그들이 남긴 침묵과 죄책감, 역사적 상처를 문학적으로 탐색해왔다. 하루키는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가 중국 전선에 복무했지만, 전쟁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고(p.45), 제발트 역시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에서 독일 전후 세대가 겪은 침묵과 기억의 단절, 그리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핵심 주제로 다룬다.


또한 하루키의 작품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관이 자주 인용되거나 변주되어 나타난다. 두 작가는 한 가지 주제를 단정짓기보다, 독자에게 애매하고 복합적인 사유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양을 쫓는 모험』 등에서 불확실한 현실, 권력의 부조리, 정체성의 혼란을 끊임없이 탐색하며, 카프카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는 프란츠 카프가와 비슷한 면이 많다. 다무라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떠나는 인물인데, 아버지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욕망이었다.<p53>


하루키의 작품세계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쥐 인간’이다.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양을 쫓는 모험』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쥐 3부작’을 통해 쥐 인간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존재의 불안과 고립감을 탐색한다. 쥐 인간은 주인공의 내면과 마주하며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네는 존재로, 사회적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단독자의 상징이자, 기억 속에 떠다니는 잊혀진 세계의 잔해를 대표한다.


밤에는 자기 일을 하는 ‘쥐’의 생리는 바를 경영할 때 영수증 정리를 마친 심야에 글을 쓰던 하루키를 상상하게 한다. ‘쥐’는 어딘가 균형을 상실한 존재로서 부서진 자아, 금이 간 존재다.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탈출하는 마지막 선택도 영락없는 하루키 자신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쥐’는 하루키의 무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p133>


#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책을 읽으며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해낸 비평가의 시선은 그의 소설들을 전혀 다른 층위에서 조명하게 한다. 사실 이 비평서를 읽지 않았다면 하루키 문학은 나에게 너무 난해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작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거 같다.


피츠제럴드가 자신을 최고의 작가들의 기법을 훔친 ‘문학적 도둑’이라 칭했듯(피츠제럴드, 글쓰기의분투), 하루키 역시 만만치 않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카프카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들의 흔적이 엿보인다.


하루키는 이질적인 작가들의 기법을 능숙하게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독자들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로 이끈다. 그의 문학은 상징성이 깊고 다층적인 의미를 품고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런 독자라면 이 비평서를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김응교

출판사:책읽는고양이 @reading_cat

v*******0 2025.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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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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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by김응교🌱   하루키가 소설을 통해 표출하고 싶었던 궁극의 메시지!“자기 나라에 좋은 역사만을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 이름만으로도 그가 가지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로 문학계에 데뷔할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고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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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협찬. 📚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by김응교


🌱 
  하루키가 소설을 통해 표출하고 싶었던 궁극의 메시지!
“자기 나라에 좋은 역사만을 젊은 세대에 전하려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 이름만으로도 그가 가지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로 문학계에 데뷔할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고 영향력이 큰 작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서 일본작가가 이토록 사랑받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비평집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버리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댄스댄스댄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을 다룬다.

 프롤로그에서 먼저 저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루키에게 가지는 시선 또는 편견에 의문을 던진다.
 하루키 문학이 쓰레기인지? 마약인지? 비타민인지? 콜라인지? 역사의식은 있는 것인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성장사 등 유명작가로써 수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분석되던 주제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문학이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에 해석도 읽는 사람이 누구냐 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하루키 문학을 어떻게 볼 지 정하고 나니 이 책을 보는 것이 수월해졌다. 
 비평가의 비평에 따라 내 관점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49년생인 하루키의 생애부터 보자. 작가의 생애를 아는 것은 작품분석에 무척 중요하다.
 왜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이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지도 이해된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대동아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있고, 하루키의 역사의식은 일본사회가 침략의 과거사를 마주봐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써 흔치 않는 역사관이기에 한국인들이 그를 더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그의 역사관은 작품들과 그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노르웨이의 숲>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제목은 '상실의 시대' 였다. 작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제목이어서 원제가 다르다는 걸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저자는 이 작품과 '위대한 개츠비' 를 비교해서 살핀다. 실제로 하루키가 이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상실할 때,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 어떤 삶을 선택할 지 생각하게 한다. 치유의 소설이자 성장소설로 요즘 한국사회의 mz세대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부터도 느꼈지만 하루키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이 평가될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시대의 인식이 많이 앞서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대에 읽을 때, 30대에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도 한몫한다. 
지금부터 10년 후, 다시 읽는 하루키는 또 어떤 느낌일까?
 
@reading__cat
#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김응교 #무라카미하루키 #책읽는고양이 #서평단 #도서협찬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이달의 사락 y****2 2025.07.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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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세계 속으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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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김응교 #책읽는고양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들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비평한 책이다.‘지금 어디에 있니’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저자는 이 제목을 <노르웨이의 숲> 속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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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김응교 #책읽는고양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들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비평한 책이다.

‘지금 어디에 있니’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저자는 이 제목을 <노르웨이의 숲> 속 주인공의 대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하루키 혹은 독자의 자리에 관한 물음으로 그 답을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이 특색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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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작품들

비평의 대상이 되는 9개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1. 고양이를 버리다 (2020)
2.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9)
3. 1973년의 핀볼 (1980)
4. 양을 쫓는 모험 (1982)
5.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
6. 빵가게 재습격 (1986)
7. 노르웨이의 숲 (1987)
8. 댄스 댄스 댄스 (1988)
9.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992)

📌하루키의 아버지 콤플렉스

저자는 하루키의 생애에 집중하기보다는 작품 저변에 깔린 아버지에 대한 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하루키의 작품 속 아버지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이 능동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찾는다. 바로, 하루키의 아버지가 제국주의 시절 징병되어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루키는 아버지와의 구체적인 일화를 언급하며 그가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음을 암시한다. 그 나름대로 역사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하루키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 작가 카프카에게서도 아버지 콤플렉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아시아적 아버지 콤플렉스‘로 확장하여 과거의 ’오욕‘을 이겨내려는 의지로 집약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라는 하루키에 대한 정의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이해

각 나라의 문학작품에는 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마련이다. 일본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 역시 하루키의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임은 당연하다. 저자는 하루키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일본적 정서, 세대 간 갈등, 역사적 사건 등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작가와 철학자

앞서 언급했던 카프카를 비롯하여 토마스 만, 밥 딜런, 비틀스, 카를 융, 니체, 헤겔 등 문화계와 철학계의 유명인사들이 언급된다. 이들이 구축한 세계와 이론이 하루키의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카를 융의 페르소나와 그림자 개념을 바탕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 ‘나’와 ‘쥐인간’을 해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이 미쳐 의식하지 못하는 잠재의식을 ‘쥐인간’을 통해 드러내려는 하루키의 기획-저자의 해석-에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작품 간 연관성

하루키 작품 간 연계는 물론 하루키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혹은 하루키의 작품 속에 나타난 다른 작가의 작품들 역시 거시적인 연관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노르웨이의 숲>을 비평하기 위해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 <설국>과 작품 속 주인공이 꺼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끌어들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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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하루키가 2009년 예루살렘상을 수상하며 한 발언이라고 한다. 저자가 그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로 바라본 이유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소설을 쓰는 단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성을 드높여, 각 개인의 영혼이 눈 부신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영혼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보음을 울리고 시스템에 빛을 비추어 감시하여 경종을 울 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이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p.404

시스템은 자본주위를, 일본 단카이 세대의 부패한 현실을, 전쟁의 참혹함을 … 모두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든 작품을 이러한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가 대부분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유의미해 보인다. 저자의 하루키에 대한 정의에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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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에 왜 성적인 묘사가 나타나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의 작품 집필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음미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c******u 2025.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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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있는 하루키에대한 탐구
"깊이있는 하루키에대한 탐구" 내용보기
한국에서도 인기 최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번 노벨문학상 후보에 한강 작가와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은 그의 문학세계를 문학평론가 김응교 작가가 차근차근 집어볼 수 있도록 "하루키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십여년전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은 난해하기도 하고 공감이 힘든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해변의 카프카를 읽은 그 당시의 충격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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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인기 최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노벨문학상 후보에 한강 작가와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은 그의 문학세계를 
문학평론가 김응교 작가가 차근차근 집어볼 수 있도록 "하루키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

십여년전 읽었던 하루키의 소설들은 난해하기도 하고 공감이 힘든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해변의 카프카를 읽은 그 당시의 충격과 불쾌함이 아직도 어렴풋하게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이 책의 제목은 하루키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리가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에서 따온 것으로, 상실을 겪은 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징한다.
이 책은 하루키의 삶과 생각과 취향, 그리고 역사를 어떤 식으로 그의 소설에 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감춰도 반드시 밖으로 나온다. 역사는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집합적인 기억이다."
일본의 극우 단체와 중요 평론가의 '쓰레기'라는 비판까지 삼켜가며 하루키는 그의 문학을 통해 생각을 표출한다. 
그리고 그 표출은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가해자의 시각에서의 폭로였고, 진성성이나 치유를 향한 고통의 연대보다는 허허로운 판타지와 괴이한 성묘사가 주를 이루었다. 
하루키 문학의 핵심은 치유이고, 상실과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쓰레기인가, 마약인가, 비타민인가, 콜라인가, 독자마다 제각각 평이 엇갈리는 이유다. 
그의 세계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소설은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주할 사람들이 있을 것을 예견한 듯 친절하게 말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아무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하루키는 난징 학살 사건에 투입되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의 작품 곳곳의 아버지는 일본이라는 제국의 모습, 신흥 종교 같은 이데아 혹은 숨은 신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일본이 회피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보수적이고 극우의 전범국가 일본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작품세계를 펼치는 하루키와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고, 다양한 문제를 순례하는 작품 속의 인물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게 한다.
  
하루키 소설의 심층적 의미와 시대적 맥락을 새롭게 읽어내고자 하는 하루키의 팬들, 그의 소설이 어려웠거나 불편했던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까지 확장시켜주는 추천하고 싶은 비평집이었다.
과거에 읽었던 그의 소설들은 다시 읽어보고 싶고, 놓쳤던 소설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지금 당장 구매 후 다른 책에 밀려 펼쳐보지도 못한 어딘가에 꽂혀있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꺼내봐야겠다.
s*****0 2025.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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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내용보기
한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그의 글이 왜 좋았는지도 모르면서 한때 유행처럼 그랬다.수필은 그런대로 좋았는데 소설은 난해했다. 무슨 의미의 서사인지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읽어댔다.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말하듯이"상실의 시대로 제목이 바뀌어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당시 20대였던 K는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80년대 한국인 독자는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내용보기
한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그의 글이 왜 좋았는지도 모르면서 한때 유행처럼 그랬다.
수필은 그런대로 좋았는데 소설은 난해했다. 무슨 의미의 서사인지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읽어댔다.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말하듯이
"상실의 시대로 제목이 바뀌어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당시 20대였던 K는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80년대 한국인 독자는 하루키의 소설을 잠깐 시원하려고 마시는 콜라처엄 읽었고 아니면 마약처럼 현실도피용으로 읽은 경우가 많았다. 어느 평론가는 쓰레기라는 말까지 했는데 쓰레기 정도는 아니지만 K는 권태롭게 읽었다. 유교적 윤리의식안에서 문학을 배원온 K는 그 평에 어느정도 공감했다. ....과연 하루키의 소설은 쓰레기인가, 마약인가, 비타민인가, 콜라인가"

요즘 나에게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라졌다. 그의 소설에 관심이 가지지 않는다. 노벨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긴 하지만 글세...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나의 생각은 한강에게도 아르 에르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현대문학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한 탓일까?

이 책은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일본의 국가권력이 저지른 부끄러움을 낱낱이 찾아 기록하여 자신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첫장은 기록하고 있다.
딱 거기까지만 이해하기로 하고 하루키 책을 접는다


l***1 2025.09.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