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 조 :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현행 일본 헌법 제9조의 전문이다. 그것은 헌법 조항이라기 보다는 <국권 포기 각서>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②항의 "국가의 교전권은 안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설령 외국이 자국(일본)을 침범해 오더라도 무력(군사력)으로 대항하지 않겠다는 교전권 포기 의사를 명백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에 ①항에서 전제하였듯이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내 나라의 운명을 다른 나라들의 <처분>에 맞기겠소"하고 5대양 6대주에 외치고 다니는 것과 다름 없는 까닭이다. 그것도 영원히... 바로 그런 이유로 세계 초유의 사건이자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일본 헌법 제9조의 <영구한 무장해제> 선언은 비록 잠깐동안 이었지만 지긋지긋한 전쟁에 몸서리치던 전(全)세계 인류의 희망일 수 있었다. 참으로 현명한 일본인들은 '대동아공영'의 기치를 앞세워 아시아 각 국에 씻지못할 대죄를 저지른 '전범'이자 '인간 백정'들로서의 과오를 반성하고,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겸허히 국제사회의 심판에 무릎꿇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총칼 아래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개인 새날들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오로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백성이 하나되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우리에게도 역사의 혼미는 막을 내리고 마침내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열리는 듯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겉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처럼 어처구니없는(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결단을 내렸을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위력에 주눅들어서? 국제연합세력의 힘에 오금저려서? 혹시 내부에 무슨 문제라도? 아니면 드러내지 못할 무슨 비밀스런 음모가.....? [일본 헌법 제9조를 통해서 본 또 하나의 일본]은 고리에 고리를 연결해가는 질문의 사슬들을 하나씩 풀어준다. 책을 통해 베스트팔렌 평화조약(Peace of Westfalen,1648)으로 거슬러 올라간 세계사의 물줄기는 1.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타고 포츠담 선언(Postdam Declaration, 1945)에 귀착한다. 다른 한 줄기는 일본 근대사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서 발원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민중운동사(史)를 끼고 돈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역사 흐름을 통해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탈 만행과 종전 후 자행된 미국의 신제국주의 사고를 고발한다. 소위 <평화헌법>이라 불리우는 현행 일본 헌법이 채택되고 발효될 때까지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지구를 전쟁의 광풍 속으로 몰아 넣었던 독일과 일본의 동맹관계, 전란의 구덩이에 빠진 세계와 연합국 측의 몸부림, 그 틈을 파고드는 이념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미국과 소련의 행보,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해야 했던 이유, 미국의 핵이 일본에 떨어지기까지의 과정, 1945년 8월 15일 종전과 함께 일본에 입성한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그와 미.일 양국이 얽히고 섥혀 만들어 가는 평화헌법을 둘러싼 밀거래. 그리고 한국전쟁과 미.일 군사동맹(미일 강화.안보조약)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권의 스파이 소설을 읽는 것같은 책의 재미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일본의 '천황'이라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맥아더 장군과 미 정부에 각각 밀서를 보낸다는 대목에서는 그 치밀한 계략에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괴씸함에 치가 떨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일본 민중운동가로서 한국의 민주인사들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저자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런데 왜,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조항이 문제 되고 있는가?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핵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성실하게 답한다. 일본 내에도 군국주의의 과거사에 대한 자기성찰과 반성의 목소리이 끊임 없이 제기되어 왔기에 평화헌법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최근 몇년 간의 세계정세가 일본 우익 위정자들의 <과거로의 회귀 망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그리고 그러한 일본 우익주의자들의 배후에는 항상 미(米)제국주의의 패권주의적 야욕이 도사리고 있어왔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미국이 왜 자신들이 제시하였던 평화헌법을 '어겨도 좋은 것' 다시 말하면 <빛좋은 개살구>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묵시적으로 일본의 재군비를 강요하고 있는지를 직시하여야 할 때다. 왜냐하면 평화헌법의 존폐에 대한 문제는 일본 스스로는 물론이고 우리를 포함한 동남아와 세계평화에 직결되는 결과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평화헌법을 파기함으로써 과거의 전쟁망령을 흔들어 깨우는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라는, 일본 우익집단과 미국의 신(新)제국주의자들에게 던지는 저자의 웅변이 귓전에 맴돈다. 근자에 항일(降日)하는 듯한 일부 지식인들의 일본에 대한 '아부성 발언'을 보고 들으보면서 격분했던 적이 있다. 그렇더라도 '막연한 반일(反日)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에게 아첨하는 자세는 지탄받아 마땅하겠지만, '무조건 반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할 수 없음은 그때문이다. 아픈 역사를 뛰어 넘어 그들과 정정당당하게 맞서려면 먼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필요하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정확하게 인식한 후라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니, 그 때에야 비로소 바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이토 나리히코)와의 만남은 "지일(知日)하여야 극일(克日)할 수 있다"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의 우익은 '신(新)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이미 패권주의자들의 <빛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린 반쪽짜리 <평화헌법>은 그나마 '명문화(明文化)'라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