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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표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인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집에서 창은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바깥을 느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블라인드를 걷고 하늘을 보고, 아파트 정원을 보고,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지 마음 먹는다. 밤이 되어 블라인드를 내리면 오늘도 잘 보냈구나, 편안한 맘이 된다. 안정감도 주고 동시에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존재, 창. <창문 너머 예술>에서 창이 품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창이 있는 그림을 좋아하고 많이 봐오기도 했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그림 속에 존재하는 창이 주는 의미, 화가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 동시에 작가의 삶 또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림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정도로 봤던 그림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작가를 보며,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깊게 들여봐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도 실감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프랑스식 역광>은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산뜻한 그림이었는데, 그 창문 그림은 작가로 하여금 호크니의 다른 전시를 생각나게 했다한다.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모습은 자신이 새로운 길 위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에까지 미치는데, 뭐랄까? 그림 한 점이 생각을 깨어나게 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게하는 그런 그림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너무 좋다. 현재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젊은 작가 알피 케인의 작품은 낯설었다. 그래서, 더 작가의 글을 집중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KAIT PLAZA라고 불리는 공간의 하늘 창문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오시마 지추 미술관에서 봤던 하늘 창문이 떠올랐는데,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는 듯도 보이지만 결국 한 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하늘 창문의 존재는 경이로웠다. 로트레크의 이 그림은 자주 봐왔지만 창에는 눈이 가지 않았었다. 머리가 눈을 가린듯한 옆 모습에서 고단한 현실에 무력하기만 한 여인을 봤었는데, 작가는 말했다. '...이렇게 포기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며 응원하는 것만 같다.'고. 창이 없었다면 희망을 찾을 수 있었을까? 창만으로 그림이 주는 메세지는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라는 부제가 이 책을 정의하기에 완벽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림에 대한 설명, 그린 화가의 생애, 그림을 그릴 당시의 화가의 상황, 즉 그림에 담겨있는 화가의 생각등 흥미로운 글들이 가득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매개체가 책의 그림들이 아니었을까싶었다. 우린 흔히 '마음을 비추는 창'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내 삶을 들여다보기에 '창'이라는 소재는 안성맞춤인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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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창문너머 예술이라는 제목과 함께 조용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림속 창밖은 다양한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창문이 주는 시각적요소는 작가의 의도 그림의 컨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박소현 작가의 에피소드와 그림의 배경정보 그리고 그림속에서 발굴되는 이야기를 잘 버무려 맛있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2019년에 한국에서 호크니 전시회를 놓친 한사람으로 사진과 영상으로 만족해야했던 나로서는 마냥 그랬다. 프레드릭차일드하삼의 피아노속 소녀의 모습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작가의 추억이 나의 어린시절 피아노 독주회에서 본 피아니스트의 우아한 드레스에 홀릭되어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던 국민힉생의 허무맹란한 꿈이 떠올라 혼자만의 창에 기대어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되는 신기한 일이...... '나는 창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라는 작가의 글과 샤걀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샤갈에게 창문은 그의 아내이자 뮤즈인 벨라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그의 환상을 드러내는 또다른 캔버스였다라는 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앙리 드 툴루즈 로드레크의 그림속 세탁부의 창은 어떤 의미일까? 박소현작가의 말처럼 어떻게든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위안이 되었다는 말. '나 말고도 힘든 사람이 있구나'라는 그것 또한 위로가 되었다. 고요의 순간을 멈출 수 없어 그렇게 작가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기로 했나? 그림뿐 아니라 사진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희미해져가는 우리 기억을 빨간 우산의 감동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을 끄집어 내듯 기억속에 남는 과거의 잔상을 담아낸 사진이 나이가 들어 만나야 더 좋다는 작가의 글이 잔상처럼 남는다. 이 책은 참 따뜻한 밥상같은 책이다 각 음식마다 정성이 가득한 한 상. 보여지는 것보다 그 상을 준비하면서 품은 마음과 정성에 시간이 녹여낸 든든하고 힘이나는 한 상이다. 창문은 밖을 바라보고 꿈을 품을 수 있는 창구이면서 자유를 상징한다. 또 창문은 시간의 변화, 시선의 은밀함. 안에서 밖을 관찰하고 외부에서 안을 엿보는 행위를 가능케 한다. 비로 가득한 창문을 뒤로 하고 나만의창에 기대어 '창문너머 예술' 박소현의 창문을 보고있다, 지금. #리뷰어클럽 #창문너머예술 #박소현 #문예춘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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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나고 새벽빛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 때, 나는 종종 그 빛의 궤적을 따라간다. 사각형 프레임에 담긴 세상은 때로는 한 폭의 그림처럼, 때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창문이라는 경계선은 안과 밖을 구분하지만, 동시에 그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번에 읽은 박소현의 <창문 너머 예술>을 통해 만난 예술가들의 창문은 단순한 건축적 요소를 넘어선 철학적 공간이었다. 하메르스회의 햇살 속에서 춤추는 먼지들, 샤갈의 환상 속에 떠다니는 연인들, 페르메이르의 진주 같은 빛의 입자들과 같이, 이들은 모두 창문이라는 틀 안에서 각자의 우주를 펼쳐 보였다. "경계에 서 있지 않고서는 그것이 경계였는지 모른다" 가슴에 와닿는다. 창문은 물리적 경계이지만,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어떤 경계 위에 서 있지 않은가. 학교와 사회, 청춘과 성인,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또렷한 창문의 순간은 대학 기숙사의 작은 창문이었다. 그 창 너머로는 캠퍼스의 일상이 펼쳐졌고, 나는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경계의 시간이었는지를 말이다. 창가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뒷모습이 자주 그림의 소재가 되는 이유를 이제 안다. 뒷모습은 관찰자에게 상상의 여백을 남긴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게 된다. 도시의 아파트 창문들은 밤이 되면 수많은 작은 무대가 된다. 각각의 창문 안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나는 때로는 관객이, 때로는 배우가 되어 그 무대 위에 선다. 현대인의 외로움이 창문과 만날 때, 그것은 단순한 고독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진다. 카유보트의 그림 속 창가에 선 인물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창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SNS라는 디지털 창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더욱 깊은 고립감을 느끼는 역설적 상황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외로움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외로움은 때로 우리를 보호하는 투명한 막이 되어주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을 선사한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아침의 빛은 희망적이고 역동적이며, 저녁의 빛은 서정적이고 사색적이다. 겨울의 빛은 날카롭고 선명하며, 여름의 빛은 풍성하고 따뜻하다. 하메르스회가 포착한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들을 보며 생각한다. 평소에는 더럽다고 여겨졌던 먼지들이 빛을 만나는 순간 마법 같은 존재가 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시선의 마법 말이다. 창문은 자연광의 무대이면서 동시에 인공조명의 캔버스가 되기도 한다. 밤이 되어 실내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스며 나갈 때, 그 창문은 거대한 도시라는 캔버스 위의 하나의 픽셀이 된다. 창문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를 규정한다. 실내에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바깥을 관찰할 수 있지만, 바깥의 사람에게는 그 창문 안의 세계가 때로는 호기심의 대상이, 때로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이 된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창가의 여인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창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구도로 포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 완벽함 뒤에는 여성에게 허락된 제한적 공간에 대한 은밀한 고발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창문은 해방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속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현대의 우리에게 창문은 어떤 의미일까.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지금, 집의 창문은 사무실이 되고, 카페가 되고, 때로는 전 세계와 연결되는 포털이 되기도 한다. 물리적 경계는 희미해졌지만, 심리적 경계는 오히려 더욱 복잡해졌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의 작은 창문을 기억한다. 그 창문에는 늘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커튼이 하늘거리며 방 안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그림자들을 보며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했다. 대학시절 자취방의 창문은 또 다른 의미였다. 좁은 방에서 유일한 바깥과의 통로였던 그 창문을 통해 나는 세상의 변화를 감지했다. 날씨의 변화, 계절의 이동,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나 자신도 조금씩 성장해갔다. 첫 직장의 사무실 창문에서는 도시의 역동적 에너지를 느꼈다.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고, 나는 그 한 부분이라는 소속감과 동시에 개인으로서의 미미함을 동시에 느꼈다. 지하철이나 지하 공간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창문의 부재에서 온다. 자연광의 부재는 시간감각을 마비시키고, 바깥 세상과의 연결감을 차단한다. 반면 공항의 대형 창문들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일상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자극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창문 없는 공간들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외부의 빛을 차단함으로써 작품 자체가 발산하는 내재적 빛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일상의 시간에서 벗어나 예술적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화면, TV 스크린... 현대인은 물리적 창문보다 디지털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이들 디지털 창문은 전 세계를 우리 앞으로 가져오지만, 동시에 직접적인 경험의 기회를 빼앗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의 사각형 프레임들을 보면 박소현이 말한 "사각형 틀 안에 세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은 창문과 닮았다"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우리는 매일 수백 개의 작은 창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창문들이 진정한 소통의 창구가 되고 있을까. 아니면 더 정교한 고립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의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필터 버블 속에서 우리는 진짜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하이데거가 묻는다. "어떤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내 마음속 풍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길일까, 대학 시절 도서관의 고요한 오후일까, 아니면 아직 가보지 못한 낯선 도시의 풍경일까. 김환기가 고향의 달항아리와 돌담집을 그렸듯이, 우리도 각자의 마음속 풍경을 간직하고 산다. 그 풍경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그리움이 되고, 때로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된다. 창문은 이런 내면의 풍경과 외부의 현실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창문을 통해 우리는 물리적 세계를 보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감정과 기억들을 투영하기도 한다. 샤갈의 환상적인 창문들을 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의 창문 너머에는 날아다니는 연인들과 바이올린을 든 천사들이 있다. 이것이 예술가의 시선이 아닐까. 평범한 창문을 통해 비범한 세계를 보는 능력 말이다.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시간들을 생각해본다. 급한 일도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저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실은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아그네스 마틴의 미니멀한 작품들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연습. 창문 앞의 명상은 이런 수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고, 빛의 변화를 관찰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문의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가상현실의 창문, 증강현실의 창문,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맞춤형 창문... 미래의 창문들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빛과 바람,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경험과 가상 경험 사이의 간극, 그것을 메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아닐까? 박소현은 "나는 창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고 말한다. 창문을 열어둔다는 것은 변화에 열려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닫힌 창문의 안전함을 포기하고 열린 창문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찬바람이 들어올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소음이 들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창문 너머에는 항상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하루, 변화하는 계절,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자신까지. 창문을 열고 그 모든 가능성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창문은 세상을 보는 틀이지만, 동시에 그 틀을 넘어서게 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창문 앞에 서서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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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문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나는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잠깐이라도 현실과 괴리된 느낌을 즐긴다. 그 시간 동안 작은 일상의 틈이 생긴다. 박소현 작가의 『창문 너머 예술』은 바로 그 틈을 길게 확장시킨다. 창문이라는 틀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고, 미술, 건축, 문학 등 다양한 예술을 생각하게 만드는 조용한 초대장이라고 할까. 단순한 미술 에세이를 넘어, 우리의 ‘경계’와 ‘빛’을 마주하는 사유의 창을 활짝 여는 작품이다. MBC 아나운서에서 아트 디렉터로 변화한 박소현 작가는 ‘창문’이라는 단어에 담긴 시공간 너머의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 놓는다. 저자는 어린 시절 피아노 앞,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주는 무한한 세계를 시작으로 줄곧 ‘경계’에 서 있었다고 고백하며 1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경계’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감각을 일깨우는지! “경계에 서 있지 않고서는 그것이 경계였는지 모른다. (p61)”라는 문장이 마음을 두드린다. 단순한 공간의 경계가 아니다. 삶의 경계,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 말과 침묵 사이의 떨림. 작가가 그리는 창문은, 그 모든 경계 위에 놓인 투명한 프레임이다. 🔖 실제로 우리 삶을 돌이켜 보면, 많은 순간 경계에 서 있거나 심지어 그 경계를 넘나들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에는 잘 알지 못한다. 일상의 소중함에 더 감사하는 것, 그것은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어 본 사람만이 가지는 특권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특권에는 일상이 툭 하고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도 함께한다. - p61, 1부 경계 위에 서서, <경계를 오가는 사람> 그나저나 이 책은 샤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르크 샤갈전을 다녀온 터라 책 속의 이야기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창문' 이라는 시각적 기호가 가지는 의미를 다층적으로 살핀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 속의 창, 살바도르 달리 그림 속의 창, 구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속의 창 등 회화 속 창문과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창밖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에서 고독과 고요, 사유와 거리감을 읽어내기도 하고, 안과 밖, 이곳과 저곳,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경계로서의 창문을 이야기한다. 2부는 빛이 머무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대한 경험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풀어낸다. 저자는 창문 너머의 풍경보다는 창문 안의 공간에 시선을 집중하는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반복되는 뻔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에서 특별함을 포착한 예술가의 시선에 집중한다. '그 특별함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완성된다. 그의 작품 속 창문은 실내 공간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특이할 것 없는 일상 풍경을 매력적으로 전환한다.(p100)' 그 외에도 빛은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감정의 질감, 기억의 조각, 예술의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것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글에 등장하는 외할머니 댁의 이야기를 최지원 작가의 그림 <평온함을 향하여> 속 장면으로 풀어내고, 이어 프랑스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 에두아르 뷔아르의 그림 속의 창가와 빛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솜씨에 매료되었다. 3부는 예술이 일상과 어떻게 만나는 가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창문은 더 이상 그림 속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감각하고 경험하는 창문이 된다. 읽다보면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으로 예술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더욱 많이 풀리다보니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 가운데 예술작품 속 창을 보며 단순한 관찰을 넘어 감각하고 느끼는 주체로서의 나를 회복하기를 권유받는다. 창문 앞에서 ‘바라보는 나’를 인식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일상에 함몰된 존재가 아니라, 자각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예술은 그 거리의 틈을 열어주는 도구다. 『창문 너머 예술』 은 단순한 미술관련책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예술, 그리고 자신을 더 깊이 마주하게 이끈다. 미술사 지식이나 작가의 배경보다는 그림이 우리 일상과 내면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에 집중하기에, 읽는 동안 저절로 창 앞에 서서 숨을 고르게 되고, 마음속 한 켠을 따뜻하게 응시하게 되었다. 책 속에 나오는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고.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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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 틀 안에 세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은 창문과 닮았다." p.5 - 《창문 너머 예술》은 창 너머 예술 작품 이야기를 담은 예술 에세이다. 창을 품은 예술 작품을 아트 디렉터인 저자의 고유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의 그림 속 창문을 시작으로 마르크 샤갈, 르네 마그리트, 호크니, 프리드리히, 뭉크, 마티스, 페르메이르 등 다양한 작가의 화화 속 창문을 소개한다. 회화속 창에만 머물지 않고 안토니 곰리, 루이스 부르주이의 조각을 품은 공간의 창, 사울레이터의 사진 속 창, 도쿄도 정원 미술관 다실과 리움미술관처럼 공간이 품은 창까지 확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창문이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이야기를 풀어내 재밌게 읽었다. 전시회를 즐겨 찾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연말리뷰 #창문너머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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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러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춰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도 한데 확실히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창문 밖으로 풍경이 보인다거나 아니면 아예 인물이 창문을 앞(근처)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확실히 더 눈길이 간다. 몇몇 그림들은 그림 자체도 아름답지만 창문 밖의 풍경에 눈길이 머물며 마치 그림 속에서 나 역시도 그 창문 밖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기도 할 정도이다. 책에서는 저자가 그림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냄으로써 어떻게 보면 저자 스스로도 해당 그림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이 책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창문과 등장인물들의 모습들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공감일 것이고 매료되는 순간이며 때로는 그러한 감상을 통해 얻게 되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그림뿐만 아니라 건축 공간에서의 창문에 관련한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기도 해서 확실히 볼거리가 있는 책이며 동시에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그려낸, 또는 그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열어둔 창문에 담긴 사연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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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너머 예술 》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_박소현 (지은이) / 문예춘추사(2025) “창 너머 예술이라는 주제는 창에 묶여 있던 내 생각을 창 너머로 확장시켰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창을 그리는 이유와 같다. 작가에게 창은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경계이자 현실을 투영하는 렌즈이기도 하다.” 창(窓)은 야누스이다. 창을 통해 밖을 볼 수도 있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창 안쪽이라고 안전할까? 창밖은 과연 자유일까? 창에 ‘살’이 붙으면 ‘창살’이 된다. 갇힌다. ‘창’을 생각하면, 유럽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조세 제도 중 ‘창문세’가 떠오른다. 말 그대로 창문의 개수를 갖고 세금을 매겼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행되었다. 창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방이 많다는 것과 창에 끼울 유리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간주한 것이다(그 당시 유리 값이 꽤 비쌌다고 한다). 먹고 살만 하다는 이야기다. 창문세를 만들기 전엔 난로세가 있었는데, 징수원이 직접 집으로 들어가야 확인되기 때문에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창문세로 바꿨다고 한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본다. 이 책의 지은이 박소현 작가는 15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하고 퇴직 후, 전시를 기획하고 예술에 관한 글을 쓰는 등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은 3부로 편집되었다. ‘경계 위에 서서’, ‘창문 너머 빛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활짝 열어 두었다’ 등이다. 글은 음악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단상이 잘 버무려져있다. 스페인의 유명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화가이다. 근대미술, 다다이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독특한 개성과 행동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사진 중 기억에 남은 것은, 익살스런 표정과 함께 뒤집어진 8자로 된 콧수염이다. 콧수염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다. 3살 어린 여동생 안나 마리아는 달리에 대한 책을 집필한 작가이다. 달리는 1923년에서 1926년 사이에 12번이나 여동생의 그림을 그렸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의 모델이 바로 안나 마리아이다. 달리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몹시 차분하다. 그림 속 소녀는 바다와 저 멀리 보트를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소녀의 뒷모습에 집중한다. 때로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진실 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그림은 볼 때 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다(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필자는 집을 떠나 다른 곳 거처를 들어가게 되면 창문부터 확인한다. 창을 통해 무엇이 보이는가? 지은이는 도쿄도 정원 미술관의 히로마(Hiroma)라고 불리는 응접실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바깥을 찍었다. 사방이 모두 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안에 있어도 밖을 실감한다. 사람은 사방이 막힌 방에 있을 때보다 사방이 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선 좀 더 몸가짐이 조신해질 것이다. 언제 누가 들여다볼지 모르지 않은가? 따라서 창은 막는 기능 보다는 소통이 우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창과 창문을 찬찬히 다시 보게 된다. 무엇이 보이는가?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마지막 글 ‘위대한 유산’은 작가의 외삼촌 고 김관수 화백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김화백이 한창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후 가족들은 모두가 말을 잃은 채 2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한다. 누군가가 남긴 ‘상실이란 과거완료의 사건이 아닌, 남겨진 이들의 삶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현재적인 것’이라는 메시지가 생각났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가슴깊이 스며든다. #창문너머예술 #박소현 #문예춘추사 #쎄인트의책이야기2025 #에세이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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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 아나운서 박소현이 아트 디렉터가 되어 그림을 말한다. 창문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매력이자 그 자체로 예술이다. 같은 작품을 봐도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른 까닭은 보는 사람의 배경과 경험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하삼의 그림을 보고 유년시절 즐겼던 피아노를 떠올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호크니 그림을 보면서 새로운 길과 풍경을 떠올렸듯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천일야화와 같아서 작품을 보고 이야기 하는 그 사람의 삶도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봤던 작품을 또 봐도 새롭고 갔던 미술관을 다시 갔을 때 더 감흥이 깊어지는가보다. 푸른색을 즐겨썼던 페르메이르의 창문과 뭉크가 그린 그림의 창문은 색감부터 다르게 느껴진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음에도 아버지의 정을 놓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뭉크의 심정을 그가 그린 아버지가 바라보는 창문을 보면서 느껴본다. 거대한 거미 작품으로 유명하고 하반기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창문은 그의 평탄치 않았던 가정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작품에 나오는 창문은 마치 기하학을 보는 듯하다. 덴마크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도 이 사람은 수학자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한 창문과 그림자가 인상적이었는데 북유럽 특유의 미니멀함과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창문 너머 예술을 읽으면서 저자와 좀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다. 창을 주제로 예술 작품을 이야기한 것처럼 이 다음에는 또 다른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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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작은 창문으로 본 세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와닿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창문은 커지고, 시야도 넓어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경험한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침내 창문 너머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걸어 나가면, 이 방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남는다. 170" 어릴 적 살던 주택에서 창문은 이런저런 스티커가 붙여져 빛이 들어오는 어느 오후면 방바닥으로 알록달록한 색이 번져나가곤 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창꾸를 했던 셈이다. 그렇게 꾸며진 창문은 겨울이 되면 나만의 냉장고가 되곤 했다. 창틀에 올려둔 차가운 커피우유나 탄산음료를 따뜻한 방에서 바로 꺼내 마시는 것이 좋아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특히 방에서 나와 부엌 냉장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 사는 집을 보러 왔을때 바깥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했던 것이 창을 통해 집안이 얼마나 잘 들여다보이는가 였다. 불 켜진 집 안은 웬만한 고층이 아니고서야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심해서 생활해야 할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창 밖의 시선이 덜 신경쓰이는 낮에는 가끔 블라인드를 열어두고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곤 하는데 그때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같단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이렇듯 창을 의식하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들과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어디에든 철학이나 예술이란 말이 붙으면 괜히 더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는 마음과 합쳐진 덕분에 '창문 너머 예술'이란 제목을 봤을 때 한눈에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어렵거나 낯선 작품들을 만나게 될까 싶었을 때 금방 친숙한 샤갈의 그림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특히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으며 러시아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얼마 전에 읽었던 '여행 면허(패트릭 빅스비 저)'라는 책에서 상세히 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요즘 한가람 미술관에서 샤갈의 특별전도 진행하고 있으니 '창문 너머 예술'을 인상깊게 본 독자라면 발걸음을 옮길 곳이 분명해질 것이다. " 마티스는 아멜리의 초상화도 여러 번 그렸지만 한 번도 그녀의 마음에 들게 그린 적이 없었다. 자신의 본모습보다도 못하게 묘사되는 초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남편이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78" 사진을 잘 찍는 법에 대해 말할 때 대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꼽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술과 타고난 미감, 마땅한 순간을 찾는 인내같은 점들도 중요하겠지만 애정을 바탕으로 대상의 장점을 끌어내야 함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잘 알려져있다. 현대의 사진처럼 과거 그림으로 대상을 표현하던 때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애정을 의심하던 아멜리의 마음이 짐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 두명이 짝을 지어 상대방의 얼굴을 그리는 실기 과제가 있었다. 내 짝은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귀여운 미인이었는데 그 애의 얼굴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냈더니 '지나치게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 애를 예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예쁜 모델이었는데 예쁜애를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였던 것이 꽤 분했던 앙금이 있다. 점수야 어찌되었든 그 애는 자신을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었고, 고마워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심히 바라보았던 그 얼굴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마티스 역시 아멜리와의 불화, 사소한 다툼들은 시간이 지나 잊었어도 그녀를 그리며 바라봤던 얼굴, 그 날의 공간들은 계속해서 기억하지 않았을까. "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들에 휘둘려 내 마음을 감옥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 발로 그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몇 글자의 댓글로 누군가를 그 감옥으로 보내 버리기도 한다. 의도가 의심스러운 한심한 댓글을 보며 비웃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우쭐해지기도 한다. ...중략... 가감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사처럼 보인다. 위로받으려고 올린 글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 누군가를 흠집 내려고 올린 글에 신나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걸 읽는 나도 있긴 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존재들에 끊임없이 휩쓸린다. 가끔은 나도 그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39" " 우리는 매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한다고 믿지만, 그 안에만 머물기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온 셈이다. 59" 그림과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만이 주를 이루는 내용은 아니다. 저자의 일상과 다양한 생각들이 작품과 엮여 마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저자는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해온 사람이라 SNS와 유명인, 대중들과 관련된 생각을 담아낸 내용들이 있다. 어떤 문장에선 적지 않은 압박감과 괴로움이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해 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무런 이름도 대단한 방문자들도 없는 별 볼일 없이 소소한 나의 SNS에도 본인의 오해로 굳이 무례하고 원색적인 말을 남겨두는 사람이 있던 경험에 비춰보아 이런 유명인들은 또 얼마나 고단한 일들을 겪었을까 싶었다. 요가(145)를 통해 자신의 몸을 일깨우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내면을 살펴보며 채워온 시간들이 책에 함께 녹아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이란 그림(105)이다. 왜 이 그림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떤 공간을 꿈꾸는가? (180)', '"어떤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가?"라고 하이데거가 물었다. (177)'는 질문의 반복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물건들로 차있지 않은 넓고 조용한 공간에 대한 바람이 투영된 끌림이었다.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은 그저 창과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그려진 그림인데, 사실적인 빛에 대한 묘사도 좋았지만 그 공간이 비어있다는 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가 표현한 다른 실내 공간들도 정적이고 정갈한 것을 보면, 아마 굉장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했는지 모르겠다. 또다른 작품인 <달빛, 스트렝게제 30번지>는 햇살이 들어오던 창의 그림과 같은 배경을 두고 한층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점이 재밌다. '창문 너머 예술'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그리고 저자의 생활까지 함께 녹아들어간 글이라 부담없이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책이다. 그저 어느 날 블라인드를 걷어 창문 밖을 바라보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책장 안의 예술 작품들을 넘겨 보아도 좋겠다. #창문너머예술 #박소현 #문예춘추사 #아트디렉터 #예술 #창을품은그림 #moonchusa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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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소현 작가가 쓴 문예춘추사에서 출판된 창문 너머 예술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MBC 아나운서였던 작가는 퇴사 후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네요. 아나운서는 저처럼 대중의 입장에선 최종 목표같은 직업인데, 삶의 과정 중 하나로 지나간 면도 멋지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 사각형 틀 안에 세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은 창문과 닮았다.” 제목과 띠지의 문장과 함께 이 책은 창을 품은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예술에세이입니다. 창은 열려있기도, 닫혀있기도, 안에서 밖을 보기도, 창 밖에서 빛이 들어오기도 하고, 아님 창 앞에 서서 밖을 보는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며, 단순히 창이 있는 그림만 나열하는 게 아닌 창과 그 주변의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샤갈의 그림과 인생, 사랑 이야기를 그의 그림과 창문과 함께 쓴 이야기는 표제작이라 느껴질만큼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같아 한 번 더 읽으며, 마침 샤갈 전시도 하고 있으니 읽고 보면 좋을 것 같네요. 도쿄의 여러 미술관들의 이야기도 예전 생각이 나서 책 속에서 좋았던 부분이에요. 차분한 기분으로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