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나지도, 공부 하나로 성공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 사회가, 기득권층의 벽은 더욱 두텁게 만들고 그 밑에 있는 사람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사람에게 어떤 능력이나, 천재성을 보이면 그것마저도 빼앗아 가려고 하다니.. 그러고 보면 이 세상. 평등하지 않다. 구멍가게도, 콩나물이나 두부마저도 돈이 된다면 뛰어드는 기득권들의 돈만 생각하는 모습이 그래서 참 싫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빛에 메시지를 담아 연주하는 특수한 능력을 지녔다. 소년 미쓰루는 밤마다 학교 옥상에 올라 자신의 빛 연주를 시작한다. 광악에 메시지를 담아 빛을 쏘고 이것을 본 젊은이들은 그를 향해 모여 든다.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밤마다 학생들은 밖으로 나가고, 이들은 커다란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빛의 연주를 보지 못한 학생들은 금단 현상과 같은 증세를 일으킨다. 미쓰루의 광악 연주에 기획사가 붙고, 그로 인해 대형 콘서트를 하게 된 어느 날. 연주회장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쓰루는 다리를 다치게 된다. 하지만 미쓰루는 한밤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고이치와 함께 감금 된다. 괴한들은 미쓰루의 뇌수술을 계획하게 되는데... 요즈음 나는 철학 강의를 듣고 있는데 얼마 전 헤겔에 대해 배웠다. 헤겔은 말한다. 영웅이 역사의 주체인가? 그는 영웅이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세계정신이 역사의 주체라고 했다. 대단히 뛰어난 지도자(영웅)가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의 배후에 흐르는 필연성. 즉 역사를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한 나라가 망하게 되는 이유 역시 지도자의 책임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도 사실은 문제라는 것. 왜냐하면 묵인하고 눈감아 주었으니까. 지금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를 보면 상위 1%가 세계 부의 98%를 갖고 있다 말한다. 요즈음은 부자가 영웅이자 지도자처럼 비춰지는데 우리가 혹 그들을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리를 저질러도, 비자금을 조성해도, 내 일이 아니기에 무시했고, 그랬기에 그런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더 가지려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소년이 가진 능력. 빛 연주를 하는 그에게 젊은 친구들이 집단을 형성하자 생각한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소년의 뇌가 어떤지 열어보겠다고.... 취직하기도 힘들고 결혼하기도 힘든 요즈음 젊은이들. 그들에게 용기의 메시지를 던지고, 힘을 주는 빛 연주가 있다면 모두 빠져들지 않을까? 순수하게 이용되면 좋겠지만 그 능력을 악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늘 씁쓸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가능하면 다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책은 좀 오랫동안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도중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타일이 아닌 걸? 하면서... 하지만 읽다보니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소년을 통해서라도 따스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잘난 혹은 대단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갈망하지만 국민인 우리가 그들의 정치를 무시하고 무관심하다면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 영웅이랍시고 나와 사회를 어지럽힐지 모른다.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때론 세상의 흐름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정의를 위해 단결하고 뭉칠 수 있는 힘. 소년이 빛으로 세상을 움직이려 했던 것처럼, 때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국민들의 힘이 대단함을 알면 좋겠다.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상상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고, 새롭기에 더 반가울 수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새롭고, 따스한 소설을 원했다면 읽어도 좋겠다. ^^ |
|
# 히가시노 게이고의 SF소설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는 일본 소설의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집필기간이 길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읽으려면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반면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계속해서 만날 수 있다. 워낙 다작을 하다 보니 1년에도 몇 권의 책이 나오는 것 같다. 아마 실제로도 최소 2권 이상의 책은 출간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이 제일 많이 보는 일본 소설의 작가도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로 바뀌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역시 다작이겠지만, 여기에 작품성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더 읽히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을 잘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도 추리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한국사람들도 일본추리소설이라고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을 말할 만큼 저자의 추리소설 작가로의 명성은 자자하다. 그런 그가 SF 장르라니! 뭔가 생소하면서도 어색하지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종이 '추리소설'이었던 것이지 저자는 여러 방면에 출중한 능력이 있음에 분명하다! 여하튼, 추리소설이 아닌 SF소설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은 신선한내용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은 추리소설로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접했기 때문에 'SF'물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선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초인"을 주제로 한 이번 작품은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미'만큼은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읽다보면 역시나 내용이 은근히 내용이 공감이 되고 진짜 그럴듯하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어가는 내용의 구성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완전한 허구의 내용이지만, 작가가 그리는 작품 속 세계가 현실에 존재할 것 만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잘 썼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저자답게 모든 것에는 사회를 관통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은 색다른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녀책의 첫장과 마지막 장에는 위의 사진처럼 음파 모양의 문양이 나온다. '빛의 파장' 같기도 하다. '초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의 상징을 보여주고자 의도적으로 저자가 넣은 것 같다. 작가는 이 번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초기득권과 대항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줄거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색'에 대해 민감했던 주인공은 '신동'소리를 듣더니! '빛'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어느 날, '빛'과 '음악'을 접목시켜 연주를 하게 되고 그 '빛'을 따라 사회적 소외계층, 꿈과 희망이 없던 청소년들이 모여들게 되고, 그들은 주인공을 통해서 삶의 희망을 되찾아 간다. 이런 현상은 마약보다 더 심한 중독성을 지닐 만큼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이 '빛'의 연주를 통해서 '각성'하기 시작하는데 사회적 기득층은 그런 현상을 못마땅해하며 적극적으로 방해하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빛'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과 관련해서는 "빛"이라는 개념이 주로 '텔레파시'의 개념만 알거나 그렇게 접하게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녀]에서의 빛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교감과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그것의 예로, 과거 예수와 부처의 형상에는 뒤에 후광 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성인이 낼 수 있는 강력한 빛이고 메시지의 빛이라는 것이다... ![]() 책에서 보여준 일부의 내용을 보더라도 마치 근거가 있는 이야기 처럼 들린다. 실제로 찾아보니 많은 불상과 예수의 그림에는 후광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고 특히 불상에는 후광도 같이 작업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많은 사진들이 나온다. 그중에 하나를 올려보았다. 아마도 이런 느낌의 후광이 있는 불상이 아니었을까?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현실성을 얻게 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세상을 바꾸려 시도했던 주인공의 이야기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고 있다. 추리소설을 기대했었지만, 추리소설보다 더 즐겁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였고, 이 정도의 '초인'은 어쩌면 주변에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무엇보다 추천평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써내려가는 방법이 뒤에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줄한줄 써 내려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이시대의 초인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닐까? 하고 써놓은 부분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예쁜 생각, 예쁜 글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세상, 이룰 수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세상, 각자의 수단은 달라도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세상. 그 세상을 향한 소설이다. 안타깝지만.
소설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어른 혹은 기득권자들의 태도는 인정하는 만큼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흔들리는 게 두렵기는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너 지금 잘 못하고 있다', 혹은 '네가 이제까지 믿어 온 게 잘못된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찌 거부감을 갖지 않겠는가.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것도, 열리지 않는 것도 또한 이해된다. 그럼에도 늘 변화는 있었고,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면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없었다는 것을 무수한 역사적 사례에서도 확인했건만.
작가는 그런 완고한 어른들이 못마땅했을까. 어린 젊은이들을 부모나 어른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철든 사람으로 보여 준다. 스무살은 어쩌면 어린 나이가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이 소설의 '빛'과 같은 혜안이 없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능력을 알아채는 재주도 없고, 오히려 남들 다 알아보는 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뛰어난 힘을 갖고 있지 못해서 살아오는 동안 가끔 섭섭하기는 했으나 그게 내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내가 내 그릇의 크기를 진작 알았다는 게 고마울 일이다.
미쓰루처럼 천재나 선구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정말 시기하는 걸까, 그들이 사라져 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완전히 아니라고는 못하겠기에 내 마음도 섬뜩하다. |
|
아기일 때나 태어나기 전에 사람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는 많은 지혜를 갖고 있지만 엄마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그 기억은 사라진다. 이런 말은 어디선가 보았다. 아기일 때는 어른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듣는다고도 한다. 사람은 정말 그럴까. 그런 말 어쩐지 사람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려 하는 것 같다. 천재만이 세상에 인정받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은 한사람 한사람 다 평범하고 소중하다. 어떤 사람은 사람은 모두 소중하니 자신과 남을 소중하게 생각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은 평범하다 하고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마라 한다. 조금 다른 말 같지만 둘 다 자신뿐 아니라 남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말이 있어서 조금 다르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칭찬받아야 무언가를 하고, 누군가는 야단맞아야 무언가를 한다. 둘 다 아닌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많을지도 모르겠다. |
|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이번에는 빛으로 소재를 삼았다. 개인적으로 읽은 결과로써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에는 추리소설도 아니다. 단지 그냥 소설일 뿐이다. 특별한 트릭이 숨겨져있는것도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감각에 극대화를 한 소설을 썼다. 인류의 진화에 주목을 했고, 또 그 진화를 감각이라는데에 초점을 뒀다. 또 인간이라는 종족의 종족의 유지 하려는 본능까지 주목해서 썼다. 그의 한계는 어디인가 생각이 든다. 제일 뒤에 이노우에 유메히토 라는 작가의 평만 봐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디까지 얘기를 끌어낼수있을까 생각이든다. 개인적으로 팬이 된거같다. 이번 책은 읽으면서 안녕바다의 별빛이 내린다 를 같이 들으면서 읽었는데, 뭔가 다채롭게 다가와서 더 좋았던거 같다. |
|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별칭 외에도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무기로 대중이 세상에 대해 눈뜨고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한 천재 소년이 빛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인간을 진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했던 경이로운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역시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무기로 대중이 세상에 대해 눈뜨고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한 천재 소년이 빛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인간을 진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했던 경이로운 과정을 그리고 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과 엄청나게 다양한 소재, 예측 불가의 반전, 따뜻한 인간미를 바탕으로 미스터리 소설의 새 지평을 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소설에서도 ‘광악’이라는 지극히 독특한 소재를 등장시켰으며 그것을 또한 누구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인간을 진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승화한다. |
|
모든 종은 진화한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학문제로 씨름 하다 조금 자신이 있는 영문해독을 하며 머리를 식힐 때였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새벽의 찬 공기가 들어왔고, 책에서 눈을 뗀 소년은 빛을 보게된다. 마치 여기로 오라는 손짓 같은 빛을 뭐라 설명 할 수 없지만, 분명 무언가 말을 걸어 오는 것 같다. 그 빛은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 다음 날도 어김없이 그 시간에 메세지를 보냈고, 소년은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 자신을 부르는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 가보니 자신 말고도 그 빛을 따라 온 소년 또래의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중심엔 역시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년이 빛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빛을 보면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고, 그 마음은 그곳에 모여있는 모든 이들과 동일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퍼지자 그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 해 졌다. 그리고 장소를 옮긴 곳은 짓다만 시민회관이었다.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하나의 전기 선만 의지해 소년은 연주를 계속했고, 아이들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런 평화의 시간도 잠시, 밤마다 사라지기 시작한 아이들이 걱정 된 부모가 쫓아오게 되었고, 아이들만의 은밀한 비밀이었던, 이 작은 공연은 점차 어른들의 탄압을 받게된다. 모두가 걱정어린 시선을 보낼 때, 광악가라는 소년은 그 일을 모두 예상 한 것처럼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와 비교 할 수 없을 만큼의 아이들이 모이자 어른들의 손을 빌리기 시작했고, 초기멤버였던 아이들은 돈을 받는 소년을 이해 할 수 없지만, 자신들이 그 공연을 보지 못하자 들게되는 생각과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소년이 하루 빨리 공연을 재개 해 주길 바라게 되었다.
아직도 인류에 희망을 점치는 그가 놀랍다. 아니면 재치라는 환상의 세계로 도망을 가는 지도 모르겠다. 하긴 퇴로가 없는 퇴행의 인류를 보며 희망을 가지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의 심정은 십분 이해 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의 판타지로 채울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뭐, 너무나 현실감 넘치는 전작들에 지쳤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작품 패러독스도13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그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한 획이 이 작품이 아니였으면 한다. |
|
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by Higashino Keigo
추리 소설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와 관련한 주제에도 관심 있게 다루기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노 님의 소설이다. 이 책은 빛을 연주할 줄 아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천재 소년 미쓰루와 이런 능력들 저지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득권층 간의 음모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작품을 이해할 때 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진화가 자연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권력이라는 힘이 얼만큼 작용하고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된다.
미쓰루는 자신에게 초인적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 빛에 메시지를 담아 연주한다. 밤마다 학교 옥상에서 발신하는 빛의 연주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입소문을 타고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고, 이 젊은이들에게서 이상 행동이 보여지면서 이것을 이용해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수많은 대중들의 관심이 불편한 적은 권력을 이용해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순수하게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스스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진화하도록 돕고자 하는 쪽과, 힘을 이용해 물불 가리지 않고 저지하려고 하는 권력자들의 묘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초인적인 능력을 다루는 이야기라 흥미롭기도 하지만 색을 구분해 내는 천재 소년, 빛을 이용해 연주한다는 설정 등 신선해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소통하듯이 빛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소통할 수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초인의 능력으로 이 세상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면 아마 빛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도 머지 않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빛의 연주가 주는 영향력 때문에 세상에 감추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무한한 상상과 그 뒤에 감춰진 숨은 이야기에 대한 나름의 해석, 그것이 바로 SF 판타지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나는 사람들을 눈뜨게 하고 싶었어. 인간 모두가 다음 진화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거든.”
|
|
소년소녀들은 한밤중에 발하는 수수께끼 빛을 보고 기묘한 힘을 얻는다. 그 빛은 무수한 색이 혼합되어 있고 신비하고 부드럽게 점멸하며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빛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는 광악가(光樂家), 시리카와 미쓰루가 있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 즉 기존의 인류가 갖지 못 한 특수능력을 갖고 있었다. 단순히 영재나 신동의 차원을 뛰어넘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빛을 발견하고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던 것이다. 책에서는 '바이오포톤(식물이 싹이 틀 때 늘어나는 발광량)'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미쓰루는 이 빛을 사람에게서 볼 수 있었다. 감정과 사고에 따라 몸에서 발산하는 빛의 색감과 정도가 달라진다고 하니, 미쓰루의 이런 통찰을 기존 지배계급에 대한 위협과 도전으로 본 자들로서는 탐탁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생각하기에 따라서 내용이 마냥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게 깊게 빠져들고 몇 시간 만에 완독하였다. 미쓰루의 범상치 않은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광악 연주를 보고 변하는 소년소녀들의 모습도 꽤나 흥미로웠던 것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의 <변신>에서는 뇌를 다루었는데 이번엔 눈을 다루니 나 혼자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미쓰루처럼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사물의 모양새나 움직임만 보았다 뿐이지 색 자체만 시간을 들여 관찰한 적은 드물었다. 색깔이란 게 짧게 생각하면 미(美)와 관련되겠지만, 굉장히 옛날부터 인류의 생사와 직결된 사항이었다. 신선한 과일의 색이라든가, 어딘가 아픈 환자의 혈색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미쓰루의 광악연주는 어쩐지 우주의 탄생처럼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달까. 살면서 그 환상적인 광악연주를 감상할 기회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접할 수 있는 한정된 색깔만큼은 예전보다 진지하게 대할 수 있겠다. 이 또한 살아있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호사니깐! 마음껏 보고 마음껏 구분하고 마음껏 느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