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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현실지배 및 현실통어의 한 수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에 순응하는 하나의 방도로 보느냐에 따라 한편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재연하는 자연주의적 작품이 예술활동의 최초의 형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삶을 양식화樣式化하고 이상화하는 엄격한 형식의 작품이야말로 가장 먼저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1:13)> 인용문은 그런대로 이 저서의 전모를 어느 정도 요약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는 '자연주의적 작품'이나 '양식화된 작품' 어느 것이 먼저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우저 자신이 "'황금시대'의 전설"(1:13)에 대해 말하면서 어느 정도 의문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어느 것이 더 훌륭한 예술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어느 것이 더 훌륭한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일 우려를 감수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하우저의 이론을 포괄하여 당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예술이 훌륭하다고 정의를 내려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한데 이 책은 양식주의적인 설명이 줏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예술사'가 아니라 '예술의 사회사'라는 점은 주목에 값한다. 뒷표지에서 황지우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 채택하고 있는 '사회사적 관점'은 "정신사가 갖는 주관주의적 한계와 양식사의 어쩔 수 없는 형식주의적 공허함을 동시에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론이다. 예술은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토대 위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예술이 그 시대를 가장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예술이야말로 시대가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을 사회사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가령 선사先史시대에 "자연주의적 예술양식이 먼저 나왔음이 분명"(1:14)하다고 할 때, 거기에는 그래야만할 타당한 사회적인 근거가 희박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는 남아있는 예술작품을 보고 당시의 사회를 추측하는 것이고, 이 경우 사회사적 관점은 환원주의로 떨어질 염려가 없지 않다. 그점 구판「해설」에서 백낙청이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에서 20세기 영화예술에 이르는 서양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총정리"했다는 것은 일종의 과장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두고 사회사적 관점이 19세기를 어떻게 관통해가는지, 또 그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주의'적 방법론과 '양식화'의 방법론이 어떻게 대립되며 어떤 장단점을 지니는지, 그리고 황지우처럼 우리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의 과제는 다수 대중의 현재 시야에 맞게 예술을 제약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시야를 될 수 있는 한 넓히는 일이다. 참된 예술이해의 길은 교육을 통한 길이다. 소수에 의한 항구적 예술독점을 방지하는 방법은 예술의 폭력적인 단순화가 아니라 예술적 판단능력을 기르고 훈련하는 데 있다. 문화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듯이 예술의 세계에서도 발전을 자의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항상 해결해야 할 문제의 회피가 되고 만다는 데에 가장 큰 난점이 있다. 즉 문제가 생기지 않는 상태를 조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결책을 발견하는 일을 연기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원시적이면서 동시에 가치있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길은 없다. 오늘날 참되고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은 복잡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예술을 누구나 똑같은 정도로 즐기고 이해할 도리는 없지만 좀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고 심화될 수는 있다. 문화적 독점을 해소하는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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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J의 추천 도서. 5월은 이 세트를 다 읽느라 보냈다. 그런데, 책을 읽을건지 단어만 읽은건지,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 거꾸로 다시 한 번 보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작품을 읽을때...유명세에 비해서 그저그런 경우가 많았다. 플롯은 단순하고, 억지로 억지로 읽고 나갔을때...마치 뭔가를 놓친듯한 그 느낌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부분에서 처음 영감을 준 것은 블로그 이웃 드레스 누나였다. 그 시대적 상황,배경 같은 것을 보다보면...책이 더 잘 읽혔다. 그래서, 적절히 세계사 전반과 필요한 꼭지는 나름 챙겨서 보았다. 그럭저럭 읽을만 했다.
그리고 나서 또, 뭔가 아쉬움이 생겼다. 도대체 이런 문학작품이 전하는 뭔가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더 깊은 궁금증이 생겼다. 이 시리즈, 4권에 걸쳐...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아보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4권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정도까지의 문학과 예술 분야를 다룬다. 문학 부분에서는 자연주의 사실주의 , 예술분야에서는 인상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처음에는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도대체 책 한 권을 읽으면서..이런 사상까지 섭려하고 책을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저항감마저.
그런데, 읽고 읽고 또 읽다보니..어렴풋이 마구잡이로, 읽어내던 고전에도 시대적 배경에 따라 어떤 흐름이 있고, 선이 있어..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회를 대변하던지, 우리의 사회에 의하여 한 작품이 만들어지고,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았음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니... 그간의 쌓였던 갈증이 콱!!! 뿌리끝까지 뽑혀나가는 느낌이였다.
4권을 읽고는 발자크, 스탕달, 도스토프예스끼의 책을 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난 곧 읽게 될 것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한 발 더 나가고 싶고...이렇게 하나 하나 더 알아가고,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은..은근 즐겁고 행복하니까.
덧붙여, 혹자는 아르톨트 하우저,가 개정판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있으나...그럴 수는 없댄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고.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