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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과 마음길을 끄는 제목..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우리 큰 아이는 이제 7세.... 마음껏 놀아야 할 7세 남자아이이고, 이제 곧 학령기에도 접어드는 아이이다.
유치원 엄마들을 만나다보면, 엄마들 대부분이 나름껏 소신있게, 지금부터 접해줘야 하는 예체능 분야, 기본적으로 가르쳐야하는 홈스쿨 등을 선택해서 서로 정보를 나누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과 가르침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아이들에 심정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렇기에 그 부분이 늘 목말랐고...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아이가 앞으로 스스로 걸어야 할 배움의 길 에 대해 조금은 더 큰 안목을 기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저자는 미국 뉴욕 알바니 프리스쿨에서 30여년간 교사로 생활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을 이 책에 옮겨놓았는데, 교육현장에서 느낀 아이들에 대한 통찰, 교사의 의미, 학생과 교사의 관계,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배움의 길 등을 프리수쿨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쉽게, 그러나 진지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주도하고 계획하고 있는 공교육과 공교육에 맹목적인 부모들과 교사들, 학생들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우려를 표명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또 선생이라면 '교육' 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배움을 전달하는지, 한 번쯤은 깊이 반성해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진장한 배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작은 길을 내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표시해 둔 구절 몇 부분을 통해 이 책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길 원하며...
<구절>
* 우리는 한 인간의 정신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우고 이끌어내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라고 하겠다. ... 그것은 가장 최선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가능한 자유를 맘껏 누리고 난 다음, 자기만의 개인적인 시련과 실수에 근거를 둔 풍부한 상상과 가속력을 지닌 공부과정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육방법론이 무시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는, 인간의 발달은 직선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과정은 아주 초자연적이고 몹시 신비스럽고....
* 두려움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잠재된 정서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정해진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교실로 돌아온다. 그 교사들 또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교장의 감독 밑에서 애태우며 견디고 있는 처지임을 말할 것도 없다. ...부식성이 강한 두려움이란 놈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다. 가장 큰 공통분모는 부모들 자신의 과거 학습의 역사이다.
* 텔레비전의 중독성에 대하여.... 텔레비전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적 심상을 창조하는 능력을 없애 버린다. 심상 형성은 지성과 창조과정을 이루는 기초적 재료인데, 아이들은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개 이 이미지들을 형성한다. 한편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미리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활기찬 정신 기능을 수행하는 두뇌영역이 게을러지고....너무 오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아이들, 그들의 삶에는 뭔가 빠져있다. 이것은 이 사회가 진정한 도전, 진정한 감수성, 진정한 책임감,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도록 만든 문화적 공백이다. 바로 그 문화적 공백속에 텔레비전과 오락산업이 몰려와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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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역의 작은 모임에 나갔습니다. 여섯 가족의 부모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죠. 사는 곳이 떨어져 있어서 모이려면 서로 한참 차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더불어 부모도 공부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였습니다.
한국 교육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공감하고 맞장구칩니다.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한 토론이 되었습니다. 교육을 고민하는 이 모임이 지향하는 바는 ‘작업장 학교’입니다. 스스로 독립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답니다. 모임에서 책을 같이 읽습니다. 그 책은 아주 귀한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 있는 이들은 자식을 유학을 보내고, 조금 있는 이들은 이사를 해서 좋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학교에 다니게 하고, 평범한 부모들은 애써서 학원과 과외비용을 지원하고, 돈이 없는 부모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지금의 대안인가요.
대안이라고 등장하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역시 돈에 의한 순위가 정해지고 계급이 세습됩니다. 돈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지금의 경쟁시스템에서 상위클래스에 들기는 힘들죠. 알면서도 끌려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선택할 방법이 있을까요. 돈이 없다면 선택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대안학교가 떠오릅니다. 요즘 여기도 입시학원화 되었다고 하던데요. 학부모들의 연합으로 학교가 초기의 인성과 사고의 ‘대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중평입니다. 게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의 경제력이 아니면 다니기 힘든 ‘귀족학교’라는 비아냥거림도 듣습니다.
두 번째,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의 차별로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몇 학교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몇 학교와 지방 시골학교들이 등장하고 있죠. 치열해지는 경쟁률과 부모의 개입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의미의)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죠.
세 번째,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분명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답니다. 아이가 ‘자율’에 대한 욕구로 결심하면 부모가 걸림돌이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설득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한 주관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서 있지 않은 경우 부모와 아이 모두 혼란을 겪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완전히 주변사람들과 독립해서 살아야 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누군가와의 만남조차 힘이 들게 됩니다. 힘듭니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은 죽었다. 학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교육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해볼까요. 학교를 다니고 훌륭한 대학을 나온 자녀가 어떻게 되길 바라십니까. 혹시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승승장구해서 ‘기득권’층에 편입되는 신분상승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것 아닙니까? 그 기준은 성공의 척도를 신분상승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학교 책상과 교과서, 경쟁, 성적평가, 충분한 숙제 따위가 주어지기를 바랐다. 진짜 학교가 지닌 그런 장신구가 없다는 것은 이런 학교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이들이 사회의 저쪽 편에 대항해 경쟁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기르는데 충분한 토양이 되었다. 미국 내 대안교육의 훌륭한 모델로 존재하는 알바니 프리스쿨의 관계자가 말하는 어려움의 하나입니다. 학부모들의 생각이 완고해서 자유로운,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옆집, 친척, 친구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제도권의 교육과정을 이수해나가는 동안 자신의 아이들이 빈둥거리는 것을 참아낼 부모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빈둥거림을 통해서 뭘 배우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회생활에서 경쟁해야할 수많은 경쟁자들에 뒤처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대한 불안감이죠.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지금 교육이 가진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봅니다. 그 선언은 그저 던지는 말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을 통해서 얻은 고귀한 결과들이 빚어낸 ‘물음’입니다. ‘지금 제도권 교육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겠다‘ 는 선언을 몸에 담고 살아야 하는 학생들은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초등학교로 점점 내려가는 경쟁의 강화는 ’일제고사‘라는 틀을 통해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살아남으려면 그저 이를 악물고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두려움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잠재된 정서다. 두려움은 두뇌가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며 자동적 생존반응이라는 옆길로 가게 한다. 이 자동적 생존반응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제멋대로의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교실로 돌아온다. 그 교사들 또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교장의 감독 밑에서 애태우며 견뎌내고 있는 처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두려움이 교육자들을 모두 휘감아 버리면 결국 불쌍해지는 학생들과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는 다수의 어른들을 만들고 이 어른들을 길들이기는 점점 더 쉬워집니다. 과감하게 두려움을 떨치고 아이들이 자율 속에서 공부하고 생각할 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공동체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어른들이 될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기존의 틀이 가지고 있던 단단한 벽을 허물고 피부색이나 남녀, 돈의 많고 적음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 되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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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커 가면서 고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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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한 개념과 실행 방식을 근본부터 개혁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어왔다. 이 책은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에 대한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1) 알바니 프리스쿨의 역사, 2) 현재 프리스쿨의 모습, 3) 삶의 기본 주제 4가지(공격성, 성, 인종과 계급, 영성)을 다뤘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놀기만 하는 분위기에서 정말로 읽고 쓰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법을 익힐 수 있냐고 묻는다면, 물론이라고 답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온전히 바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뒤로 물러나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병리적으로 보거나 낙인 찍지 않는다. 물론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도 많았단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학교에서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뭐든 자유다' 라고 말해주었단다. 또한 분노조절이 어려운 아이의 경우에는, 규칙과 벌칙으로 다스리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했다. 그 대가란 우정을 잃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자기만족을 손상당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있는 그대로 아이 행동을 반영하고 지적해주었다. 정말 아이를 믿는 것 같다. 어른으로서 이런 기다림의 자세를 갖기가 참 어렵다. 한편, 가정환경이 불안정하거나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한 아이들도 많았다. 굽은 나무들은 절대로 바로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그 나무들이 병이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않으면 그들도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그 불리한 조건을 이겨낼 수 있다(p.95).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종종 가늠하기 어려운 탄력성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한계 너머로 내몰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더 곧게 자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한 번에 한 나무씩. 아이들을 기다려줌으로써 그 공동체에 속한 아이든 선생이든 함께 자라게 된다.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자연스러운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기까지,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을까 두렵고, 퇴보할까 두렵고, 아무런 학습을 못할까 두렵고, 세상에서 도태될까 두렵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해독제는 신뢰 뿐이다. 미지의 세계가 위험을 수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이들은 직선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므로 그 사실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전폭적인 믿음을 보여줄 때 훨씬 빨리 또 쉽게 배우게 된다. 이 배움은 평생을 두고 이어진다. 이런 배움은 나를 알아가는 배움, 내가 행복해지는 배움이다. 자기발견의 과정을 도와주는 과정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 과정을 도와줄 환경이다. 우리가 교육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가 이 지구 위에 있는 한정된 시간 동안 우리 자신을 가장 풍부하게 표현하는 데 이르게 해 주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그 교육이 무슨 진정한 가치가 있겠는가?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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