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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배우이자 명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로 먼저 잘 알려진 원작이다.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영화가 선사하던 자연의 투명한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겨진 가족사, 형제의 아련한 사연이 잔상으로 남아 있어 무척이나 반가운 심정이었다. 영화와 문학은 서로 다른 장르이기에 그 감흥이 깨지거나 실망하지 않을 까 내심 걱정을 했으나 그건 하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영화와 문학이 아름답게 만난 흔치 않은 예인 것이다.
이 작품은 플라이 낚시를 매개로 하여 가족과 형제애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마치 주된 배경인 몬테나의 블랙풋 강물처럼 유유히. 그때의 아버지 보다 더 늙어버린 주인공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엄격한 아버지을 떠올려본다. 자유분방했으나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동생을 회상한다. 이러한 내면의 속사임을 통해, 주인공은 흐르는 강물 속에 여전히 남아있을 것 같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 진정으로 아버지의 말씀이 바위 밑에 각인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낚시와 강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나즈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 싶다. 그 시절 낚시와 강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었으며 그 자연의 속살을 경험하고 교감하는 존재자였다고. 그 안에서 인간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교감하며 살았다고.
주인공은 희뿌윰한 기억 언저리에서 꺼낸 사연들을 빛깔 고운 언어로 되살려놓는다. 주인공은 흘러가는 강물과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현대인들에게 설파한다.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건, 다름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자연이라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결국 모든 것들은 하나로 융합되고, 그리고 강은 그 위로 흘러간다. 강물은 대홍수가 만들어낸 강줄기를 따라 시간의 기저에서부터 있어온 바위 위를 흘러간다. 어떤 바위에는 시작도 끝도 가늠할 수 없는 빗방울이 닿는다. 바위 밑에는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나는 물소리에 넋을 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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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제대로 기억도 안나는데, 정혜윤씨가 [침대와 책]에서 극찬한 수십권의 책 중 하나라서 사서 읽었다.
영화 내용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아, 거의 처음 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세찬 물살을 거슬러, 마음에 드는 송어가 있는 곳을 찾고, 송어의 크기와 자주 접했을 듯한 먹이, 물살의 흐름, 주변의 바위와 수풀의 지형을 고려하여 적당한 플라이를 고르고, 띄우는 방향과 높이와 속도와 힘을 가늠하는, 그 일련의 과정동안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생각들과 계획들이란,
아주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인류보편적인 것들을 그려낸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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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뷰어의 글을 보고 또 출판사의 리뷰를 본 다음 읽을 만한다고 생각되어 샀는데, 저랑 안 어울리는 책이네요.
영화로 유명한 [흐르는 강물처럼]과 저자의 '첫 작품'인 짧은 소설 [벌목꾼 짐] 두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둘 다 이야기 자체에 치중한 단점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위한 글이라면 적절하겠으나 남에게 보여주는 책이라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간혹 비치는 좋은 문구와 감정은 이해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읽은 것 자체만 남은 작품입니다.
어쩌면,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칭송받았던" 아름다운 부분이 탈색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실패한 독서로 기록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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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유 하 그대와 나 오랫동안 늦은 밤의 목소리로 혼자 있음에 대해 이야기해왔네 홀로 걸어가는 길의 쓸쓸한 행복과 충분히 깊어지는 나무 그늘의 향기, 그대가 바라보던 저녁 강물처럼 추억과 사색이 한몸을 이루며 흘러가는 풍경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곤 했었네 그러나 이제 그만 그 이야기들은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 어느날인가 그대가 한 사람과의 만남을 비로소 둘이 걷는 길의 잔잔한 떨림을 그 처음을 내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다른 기쁨을 가졌지 혼자서 흐르던 그대 마음의 강물이 또 다른 한줄기의 강물을 만나 더욱 깊은 심연을 이루리라 생각했기에, 지금 그대 곁에 선 한 사람이 봄날처럼 아름다운 건 그대가 혼자 서 있는 나무의 깊이를 알기 때문이라네 그래, 나무는 나무를 바라보는 힘만으로 생명의 산소를 만들고 서로의 잎새를 키운다네 친구여, 그대가 혼자 걸었던 날의 흐르는 강물을 부디 잊지 말길 바라네 서로를 주장하지도 다투지도 않으면서, 마침내 수많은 낯선 만남들이 한몸으로 녹아드는 강물처럼 그대도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스며드는 곳에서 삶의 심연을 얻을 거라 믿고 있네 그렇게 한 인생의 바다에 당도하리라 나는 믿고 있네 20**년, 그리고 그 무렵의 기억들에게 ---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으로 오늘 볕 좋은 햇살이 그득히 내렸다네. 유독 눈이 잦던 겨우내 빙판을 방불케하던 운동장은 방학을 끝낸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하고, 오늘처럼 며칠에 한 번은 햇살도 제법 봄볕을 띠어가더니 가장자리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아래의 응달쪽만 남기고는 뽀얀 모랫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네. 바깥공기의 감촉은 여태도 한기를 담고 있지만, 손등을 내밀면 따뜻함이 곧 느껴질 듯한 빛의 입자들이 그동안 잦았던 눈발만큼 푸짐한 것이 참 보기 좋은 오후였네. 그러다 문득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송어낚시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아마도 부챗살처럼 퍼지는 빛의 입자나 은빛으로 찰랑거리는 물결을 대할 때면 으레 그 영화의 장면으로 이어지곤 하는 기억의 연상 작용이지 싶네. 그 영화를 혼자서 보았는지, 함께 본 사람이 그대였는지, 후로 한두 번을 더 보았지만, 내용이며 줄거리가 온전치 않은 걸 보면, 시간이 꽤 흐른 듯도 하고... 다만 앞서말한 빛의 입자, 은빛 물결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분명 저 영화를 보고 나서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거나, '가슴 벅찬 설움', '존재의 심연에 고인 슬픔' 따위 기억의 앙금들이 아직 씻어지지 않은 탓이리라 생각될 따름이네. 어찌됐건 우린 이미 오래 전에 각기 다른 강줄기를 이뤄 흘러왔고,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에 붙여진 생(生)의 가속을 이제는 거스를만한 기력도 용기도 잃을 만치 잃어가네. 또한 갈수록 흐려지는 기억은 애초에 우리가 흘러온 상류의 큰 지류 어디쯤에서 헤어져 각자의 작은 지류로 접어들었는지 조차 알 수 없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아마 우리 삶도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임을 담담하게 일깨우기도 했었네. "강은 하나 되기 위해 그곳을 향해 흐른다"라고. 그곳에 이르기까지 우리 어지간히 신산하고 알맞게 흥미롭고 적절하게 허무한 이 흐름을 따라 흘러가도록 하세. 흐르다 어느 물결 잔잔한 날에 탐스런 생의 보람도 낚아가면서 말이네. 언제 다시 기회를 보아 그 영화를 한번 더 볼까하네. 산다는 건, 때때로 무덤덤한 일상의 반복이기도 하니까 말일세. - 십이월 어느 볕 좋던 날에 오피러샤 보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