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행을 그닥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집순이로도 크게 만족하며 사는, 그래서 가끔 사람들에게 "안 심심해? 여행가고 싶지 않아?"라는 물음을 듣기도 한다. 여행기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런 내가 낄낄거리며, 가끔 찔끔 눈물을 짜내며 읽었다.아마도 이 책에서 전해지는 진한 사람냄새가 좋았으리라. 멀게 느껴지던, 아니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던 낯선 곳으로의 다가감이 훅 하니 내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 '어머! 나 여행을 안 좋아했던 게 아니었나? 나도 가고 싶네. 아니, 갈 수 있겠어!'
갈 수 있겠어. 이 말을 입 속에서 조물조물 거렸다. '갈 수 있겠어 갈 수 있겠어 갈 수 있겠어...'
그러고서 알아챘다. 나는 이제껏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여행을 피할 핑계를 무수하게 만들어 놓고 있었구나 하고. 그 핑계들은 때론 그럴싸 해 보이지만 뭐가 있을지 모를 낯선 길 앞에서 주춤주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용기 없음을 숨겨준 껍데기 였을지도, 혹은 '가지 못함'을 애써 '가지 않음'으로 위장한 속임수 일 수도 있다. 저자는 나에게 그것을 알아차리게 해 줬다. 감사하다.
서두에서 저자는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골라 담았다고 했다. 그곳들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고, 나이와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는 여행방식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그렇다면 성공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저 멀리 킬리만자로와 우즈베키스탄 사막, 데스벨리 등이 바로 내 발 아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저자 곁에 나란히 앉아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하! 그림이구나~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서 더 생생하구나! 하나, 둘, 셋 찰칵! 하고 마칠 수 있는 기록을 한참동안 앉아서 여러 번의 호흡을 하고서야 대충 실루엣이라도 남길 수 있는 그림.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잠시 멈춘 시간이 나에게로 스미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거기 가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밖에.
관광이 아니라,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쭉 이어진 '삶'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림은 재밌다. 힘 하나도 안 넣고 낙서하듯 그린 듯한 그림들 속에 그 날 그 장소의 생생한 분위기가 녹아있다.
여행을 간다면 나도 스케치북과 연필 한 자루 챙겨 가고 싶다. 그림은 커녕 길거리 간판들이라도 따라 그리고 싶다. 멀리 못 간다면 당장은 동네 구석구석 걷다가 철푸덕 앉아 그려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만의 눈으로 보는 세상, 새롭게 보이는 세상이 연필 끝에 달려 있을 것만 같다. 멋진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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