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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로스의 『퀴어(Queer)』는 단순히 동성애적 욕망을 그린 소설이라기보다, 고독과 불안,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불편한 성찰이 뒤엉킨 텍스트라고 느껴졌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체감한 건, 버로스가 인간 내면의 ‘이상함’을 감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리’라는 화자가 멕시코에서 유학 온 젊은 남자 유진 앨러턴을 향한 집착과 구애를 그린 이야기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구도 안에는 사회와 단절된 인물의 황폐한 심리와 자기혐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우스꽝스럽고도 처절한 몸부림이 보인다. 리의 시선과 행동은 어딘가 불편하다. 앨러턴을 향한 대화와 제스처는 계속해서 과도하게 치밀고 계산적이다. 그 계산이 꼭 성공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오히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자기파괴적 패턴처럼 느껴졌다. 읽는 내내 ‘이건 사랑인가, 아니면 자기 증명의 수단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버로스는 리의 내면을 미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집착의 어색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독자로 하여금 웃음과 불편함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진한 맛이라고 생각했다. 흥미로운 건, 『퀴어』가 1950년대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현대적인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리는 알 앞에서 자꾸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설명하려 들고, 자신의 지적 우위를 과시하거나 특이한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존재를 각인시키려 한다. 요즘 말로 하면, ‘관심 받고 싶은데 방법이 너무 서툰 사람’이다. 이 모습은 오늘날 SNS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과잉 노출과 자기 브랜드화의 욕망과도 묘하게 닮아 있다.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불안과 애정 결핍은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소설은 욕망의 대상이 실제로는 얼마나 ‘타인’으로서 모호하게 존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앨러턴은 리에게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거의 공허한 실루엣처럼 그려진다. 독자는 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끝까지 뚜렷하게 알 수 없다. 이건 리가 앨러턴을 사랑한다기보다, 알에게 투사한 ‘이상화된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욕망의 실체가 아니라, 욕망하는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결국 리의 내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알이라는 인물은 하나의 ‘거울’ 역할에 가까웠다. 버로스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기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 같다가도, 특정 대화나 장면에서 갑자기 감정의 깊은 층이 드러난다. 특히 멕시코의 거리와 술집, 그리고 리와 앨러턴이 나누는 대화의 공기 속에는 일종의 ‘정지된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 속에서 리의 욕망은 번번이 표류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순환 구조가 읽는 이로 하여금 묘한 피로감과 몰입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퀴어』가 버로스 자신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이 쓰인 시기는 버로스가 자신의 성정체성과 마약중독, 그리고 아내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 직후의 혼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리의 불안정함이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거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픽션이 아니라, 버로스가 자기 자신을 냉정하고도 잔혹하게 해부한 기록이다. 읽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흔히 사랑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감정의 해소나 결말은 여기서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누군가를 원할 때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때로는 비루해질 수 있는지를 직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 비루함 속에 솔직함이 있고, 솔직함 속에서 묘한 해방감이 스며든다. 버로스는 우리에게 ‘당신도 이렇게 집착하고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직설이 거북하면서도,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결국 『퀴어』는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자아의 일그러짐’을 그린 소설이었다. 리의 서툰 애정 표현과 앨러턴의 모호한 반응, 그리고 그 사이의 공허한 틈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미묘한 균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버로스는 그 균열을 가차 없이 확대해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 불편함 속에서도 책을 덮기 힘든 힘이 작동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낀 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 속에는 언제나 ‘나를 인정해달라’는 숨겨진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퀴어』는 그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끝까지 드러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고,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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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그놈의 야헤에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약간 후반에 삼천포? 느낌이 있지만.. 초반 분위기를 영화가 너무 잘 살려놨더라구요 엘러턴이 책에서는 리에게만 짜증스럽고 자기얘기를 잘 안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또다른 매력이.. 콜바넴 좋아하셨다면 그만큼의 로맨스는 기대 안하시는게 좋은데 분위기는 좋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