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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또 하나의 광주
내가 이 책을 펼친 것은 어떤 행사에서 이옥수 작가와 함께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나왔으니 꽤 알려졌을 법한 이 책을 나는 불과 두 달 전에 알았다. 사실 이옥수 작가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 이 책의 존재를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사북항쟁까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사북항쟁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강원도의 모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에도 가본 적이 있었다. 당시까지도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치부했던 광산노동자들의 파업은 2005년을 거치며 이제 조금 따뜻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 1980년 사북에 또 하나의 광주가 있었다.
이 소설은 사북항쟁 재평가의 흐름에서 당시의 사북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작가는 '김수하'라는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 또래의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1980년을 기억한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수하는 당대와 지금을 잇는 가교이다. 수하가 실존인물이라면, 아마도 지금은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대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이런저런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갈 지도 모른다. 오늘날 사북의 인구는 5천여 명으로, 그나마 강원랜드 카지노가 생긴 후 들어온 사람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그 좁은 사북시장 골목길은 그대로이고, 이 사건이 일어났던 안경다리나 지장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0년 4월, 사북은 광주의 프리퀄이었다. 막장에서 인생을 보낸 광부와 그의 가족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초반부는 수하의 고뿔같은 짝사랑 이야기가, 뒷부분은 탄광촌 사북에서 벌어졌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이 다소 거친 노동소설이었면 사북을 아마 코뮨으로 그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옥수 작가의 눈으로 그려낸 항쟁 당시의 사북은 항상 아름다웠던 곳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다. 광산촌 석탄쟁이의 생존권적인 저항이 있었던 사북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결국 불과 며칠 뒤 광주를 포위하고 총칼로 진압했다. 그래서 사북은 광주의 프리퀄이었고, 1980년의 초상이었다.
나는 1980년대의 대부분을 사북 인근에 위치한 증산에서 보냈다. 지금은 억새축제로 유명한 민둥산을 오르는 길에 위치한 증산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다. 우리 동네에도 공동 빨래터가 있었고, 아낙들은 상수도를 두고도 빨래터를 찾아 빨래를 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 증산에는 사북의 동원탄좌처럼 큰 광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모양을 갖춘 묵산광업소라는 탄광이 있었다. 많은 광산노동자들이 살고 있으니 탄광 근처에는 아파트형으로 된 묵산광업소 사택이 있었다. 증산에서는 사택에 사는 탄광노동자들이 그래도 제법 사는 축에 속했다. 내 아버지는 그곳에서 캔 석탄을 증산역(현재 민둥산역) 부근으로 옮기는 트럭을 운전했다. 성격이 유별났던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석탄을 나르는 일도 오래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가 발표되며 묵산광업소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 역시 증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 기억에 증산, 사북, 고한, 태백(철암)은 시커멓고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동네였다.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곳.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그런 집이 너무나 많았다. 유달리 술집과 다방이 많고, 삼겹살집도 넘쳐났다. 아마도 인생의 고통을 그렇게 견디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적든 많든 월급을 받고 있었으니, 그곳을 드나들 기회도 있었을테고 말이다. 증산 앞을 지나던 강의 이름은 '동남천'이었다. 그런데 동남천은 항상 광산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물만 있었다. 우리는 동남천 주류를 피해 계곡에서 흘러나온 개천에서 뛰어놀곤 했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2부제 수업을 했고, 한 학년은 마을회관에 나가 수업을 받아야 했던 학교 분위기는 이제 찾을 수 없다. 광산촌의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 100명도 채 안되는 작은 학교들이 광산촌에는 넘쳐난다. 어디 흐르는 것이 세월 뿐이랴.
나는 지금도 내 유년 시절을 보낸 증산 동네와 민둥산역을 종종 돌아본다. 증산역(현 민둥산역)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석탄가루도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컸던 마을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진다. 억새축제로 유명해져 관광지가 되어버린 증산 마을이 내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내게 그곳은 여전히 석탄가루 날리는 동네에, 차 두 대가 지나가기 어려운 꼬불한 길의 마을이기만 한데 말이다. 그래, '내 사랑, 사북'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생생한 기억의 일부이다. 그래서 더욱 몰입하고, 생각하고, 곱씹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