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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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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던 <원더풀라이프>를 본 건 군을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 전체를 복습하게 만드는 영화였지만, 엄혹한 2년2개월을 보내고 막 사회로 복귀한 탓이었는지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그땐, 영화보다 동행한 이에게 더 신경 쓰느라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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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던 <원더풀라이프>를 본 건 군을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 전체를 복습하게 만드는 영화였지만, 엄혹한 2년2개월을 보내고 막 사회로 복귀한 탓이었는지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그땐, 영화보다 동행한 이에게 더 신경 쓰느라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좀 망설였다. <아무도 모른다>, 그 사람이 만든 거라던데.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라는 얘기도 얼핏 들었던 것 같고. 근데 영화에 나오는 애들, 아빠가 다 다르대. 네 명 다? 응, 넷 다. 게다가, 실화래. 실화? 부클릿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88년 일본에서 발생했던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을 실화적 모태로 하는 영화. 이거, 신파 같다.   괜한 망설임이었다고 안도하며 영화에 감정이입하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당분간 집에 못 들어오신대. 세탁기를 돌리는 교코에게, 아키라가 별 일 아니라는 투로 얘기한다. 응. 여동생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건조하게 받는다. 수도세와 전기세를 걱정해야 하는 아키라는 이제, 아빠다. 철부지 엄마에게 아침 메뉴를 설명하던 아키라와 이사한 아파트에 세탁기 들어갈 자리를 먼저 체크하던 교코는 이미, 아빠이자 엄마였다.   생활비는 금새 바닥난다.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는 열두 살 소년에게, 당연히 그 역할은 너무 버겁다. 버거움을 견디다 못해 들었던 수화기를 통해, 자신들을 버리고 간 엄마가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아키라가 보여주는 무덤덤함. 버림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엄마는, 성을 바꾸고 다른 집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인간이란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구.   땀에 젖은 듯한 이마, 거기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엄마 없는 집안에 떠도는 눅진한 공기, 한바탕 낮잠이라도 자다 깨어난 듯, 왕~ 하고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눈망울로 오빠(이자 아빠)인 아키라를 쳐다보는 유키. 바보, 엄마는 이제 안 와. 하지만 아무도, 울지 않는다.   눈물을 흘린 건 정작 나다. 아키라가 동네 야구팀에 끼어 어슬렁거리던 그 시각, 아파트에선 낡아빠진 의자 위에 올라선 유키의 모습이 교차편집되고, 노란색 의자, 아슬아슬한 까치발, 컵라면 속에서 자라난 잡초가 차례대로 화면에 잡히면, 슬슬 코끝이 찌릿해지기 시작한다. 꼭 산불 같다, 고 나는 생각했다. 약간의 불씨만 있어도 확 당겨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촛불 하나로 시야를 확보한 채, 세 명의 아이는 유키를 트렁크에 담지만, 아이의 몸은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우습게도, 몰래 아파트에 들어올 때 유키가 들어있었던 그 트렁크다. 유키...그동안 컸네. 힘겹게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트렁크를 베란다에서 지켜보던 시게루가, 있잖아, 유키 이제 못 봐?, 라고 들릴듯 말듯 속삭이자, 교코는 대답 대신 손을 꼭 잡아준다. 나는 너무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길버트와 베키가 그랬던 것처럼, 조제와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 영화에는 언제나 이별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로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 그런 순간들을 몇 번씩이나 거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그러한 성장을, 어떤 이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고, 또 누구는 ‘이제 어른이 되는 거’라고도 한다.   이들 남매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건 성숙해진다거나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다만' 과정일 뿐이지 않았을까. (학교는커녕 호적에 등재조차 되지 않은) 세상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아도,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은 '다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 발 물러나 이들을 담고 있는 화면이 얘기하듯.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아키라와 교코의 변하지 않는 표정처럼.   '일본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은 엄마가 기소되고 아이들은 보호 시설로 보내지며 일단락됐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 누구도 미움이나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행복해지고 싶어" 떠난 엄마조차도 '특수한 상황의 피해자’일지 모른다, 고 히로카즈는 말한다. 어쩌면 엄마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더 특별하다고 느꼈던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서. 누가 이 어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옆집 저 벽 너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를 저 남매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마치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다만' 아이들은, 살아갈 뿐이다.  
r******6 2005.09.07. 신고 공감 5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