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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땅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 땅이 백제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의식적으로 생각은 했지만, 백제의 핵심부와는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지역이 백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구심도 갖었었다. 그러다 몇 해전 국립나주박물관 일대에서 열린 마한 축제를 찾으며 그제서야 마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역사책에서 마한은 따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그저 삼국 이전에 삼한이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그 중에 하나일 뿐으로 언급되었다. 더욱이 마한의 그 한이 한겨레인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그 한이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는 삼국 이전에 삼한에 가 닿아야 했고, 그 중에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은 마한의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과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남의 옷을 걸치고 있다 제 옷을 찾은 사람처럼, 또는 이제야 진짜 나를 낳아준 친부모를 만난 아이같은 기분이었다. 백제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시기까지도 이 마한 땅은 자기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나갔고, 외부와의 교류에 있어서도 열려 있는 태도 역시 우리에게 많지 않은 유물을 남기고, 잊혀져버렸던 그 마한을 다시 복원하고 연구해야하는 이유가 된다. 자기 만의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단단한 토양에 뿌리를 내린 독자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존재임을 일깨워주게 한다는 점에서 이 땅 잊혀진 나라 마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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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여행기'라는 제목을 본 순간 마한이라는 곳에 대해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삼한 중 하나인 마한에 대해 배웠지만 역사적으로 비중있게 다루는 나라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라의 위치나 특산품 정도 배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마저도 다 잊어버리고 나라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 왜 애착을 가졌을지 궁금했다 그건 작가의 이력이나 프롤로그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광주가 고향인 작가는 옛 마한 지역인 영산강 유역인 나주, 영암, 무안 등의 지역에 남도의 뿌리가,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가 있다고 믿고 있다.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마한의 한(나라한)은 역사상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고대 문화의 원형은 삼국시대가 아닌 삼한시대라고 작가는 말한다 전라북도의 마한은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많은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어 그 존재가 더 널리 알려졌다 책의 1부에서는 익산, 고창, 담양, 영산강, 광주 신창동, 나주, 영암, 함평, 무안, 목포, 해남, 신안 등 옛 마한 지역의 유적과 풍경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마한의 문화, 인물, 유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한은 충청도, 전남, 전북 일대에 존재했던 나라로 변한, 진한과 함께 삼한을 구성했다 이중 진한은 신라가 되고 변한은 가야가 되고 마한은 백제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마한의 역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한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지만 700년에서 900년 정도 존재했던 나라였다고 추정한다 작가는 많지 않은 자료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역사를 추정한다 그리고 마한을 떠올릴 때는 옹관이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한글로는 독널이라 부르는데 국립나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 작가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마한의 유물과 문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마한 남자들이 문신을 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마한여행기를 읽으면서 직접 그곳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치 가본 것처럼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경주 여행하면 대릉원, 월지, 불국사 등 많은 유적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마한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읽다 보니 마한 지역에 속하는 곳들도 두루 살펴보면서 역사 여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잊혀졌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우리의 뿌리를 찾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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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 :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 저자 : 정은영 출판사 : 율리시즈 이 땅에 800년 존재했지만 역사에선 잊힌 나라, 마한 한국 고대사는 너무나 의문에 많이 차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바로 옆에 붙은 중국은 기원전에 그 당시 보기에도 고대사를 훌륭하게 기록한 사마천이 있다보니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건국되었고 그 고조선은 2000년 넘게 이어져온다. 아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거고 통치 세력의 변화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에 남은 건 없으니 상상으로 맡길 수밖에. 기록에 정확하게 남아있고 이 책과 연관 있는 시기만 얘기해보겠다. 조선 말기 연나라에서 위만이라는 사람이 망명해온다. 처음에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에게 변방 수비를 맡겼으나 이후 그는 한나라가 쳐들어온다는 거짓으로 준왕을 속인 후 군사를 동원해 정변을 일으킨다. 왕위를 잃은 준왕은 무리를 이끌고 한반도 남부로 남하한다. 그가 무리를 이끌로 내려온 곳이 지금의 익산이며 건마국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준왕은 스스로 한왕이라 칭했다. 건마국은 초기 마한 연합의 중심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후 3세기 경에는 현재 천안, 아산 지역에 있는 목지국이 그 지위를 넘겨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진한만 해도 고조선 유민들이 넘어와 세력이 커진 것이 확실해보이며 신라의 기원이 되는 사로국의 경우에도 고조선이 망한 후 유민들이 넘어와 커져 점차 진한을 복속시키고 신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변한의 경우는 12개의 소국이 변한으로 통칭되며 후에 점차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가야 연맹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이 어느정도 사실에 가까운 우리 한국의 고대사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체제를 가졌는지 역사적 사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우리도 아는 바가 없다. 실제 우리가 삼국시대라고 배우는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이다. 하지만 각 나라의 존망 시기를 보면 고구려의 경우 기원전 37년 세워져 668년 멸망하였고 백제의 경우 기원전 18년 세워져 660년 멸망하였다. 신라의 경우 더 늦은 시기인 기원후 57년에 나라가 세워진다. 기록이 적어 무시당하기는 하지만 고구려와 부여는 오랜 기간 공존해왔다.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와 2대왕 해부루 이후 부여를 전승했다는 나라가 고구려이다. 이후 동부여를 거쳐 광개토대왕 시기 고구려에 귀속된다. 심지어 이후 독립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것은 494년이다. 남쪽은 더욱 심한데 가야 연맹이 건국되고 맹위를 떨치던 시기는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후반이고 대가야가 최종적으로 멸망한 시기는 562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흥왕 시대에나 가야가 신라에 완전 병합한 것이다. 연도 상으로 삼국이 전쟁을 하던 시기는 가야가 멸망한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98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전을 보면 삼국이 형성됐으나 삼한이 한창이던 4세기말까지 약 400년간 남쪽의 삼한과 고구려, 부여가 세력 다툼을 하던 북쪽은 큰 다툼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 이후 100여년간은 삼국에 가야를 더한 '사국시대'라 해야 더 옳다. 삼한이 존재하던 시기가 삼국이 형성되고 전쟁하던 시기보다 훨씬 오래 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사료가 남아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삼한은 이름을 잃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조선, 고구려, 부여, 훗날 발해까지 북방 예맥족과 유목민 계열의 역사 발전과 삼한시대부터 백제, 신라, 가야, 이후 통일신라(통일은 아니지만)까지 두 갈래로 우리 뿌리를 고려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고고학적 증거나 인류학, 언어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관련 분야를 훗날 꼭 공부해서 스스로 정립해보고 싶은 분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한을 찾아 떠난다. 삼한 중 진한도 아니고 변한도 아니고 왜 마한일까? 변한은 가야로 자연스레 발전했다. 변한과 가야는 이름만 바뀐 한 나라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전작은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이다. 변한을 따로 찾을 건 아니고 가야를 알아봤으니 진한을 찾지 않는 이유만 보면 될 것 같다. 진한의 경우 진한 12국 중 하나였던 사로국이 발전하며 진한을 병합한다. 진한에서 가장 대국인 사로국이 소국들을 병합하는 형태였으니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다. 반면 마한의 병합 과정은 사뭇 달랐다. 마한의 초기 중심 국가는 익산에 위치한 건마국이었다. 고조선의 준왕이 무리를 이끌고 왔기에 초기 세력이 컸을 것이고 익산이라는 위치도 나쁘지 않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전체를 아우르는 지역이 마한의 세력권으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봤을 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지역이다. 그 이후 중심 세력은 천안, 아산에 위치한 목지국이다. 목지국도 당시 북쪽과 남쪽 진한, 변한과의 교역을 생각해봤을 때 산간지역을 제외하고 수월하게 지날 수 있는 교역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한을 병합한 것은 이 국가들이 아니라 마한 입장에서 변방에 위치한 백제국이었다. 마한 연맹의 중심 국가도 아니었고 문화적으로도 차이를 다소 보이는 국가와의 병합은 새삼 달랐을 것이다. 삼한 중 진한은 신라가 되고 변한은 가야가 되었다. 그러나 마한은 백제에 병합되었다 본문 중 이러한 이유로 마한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한, 변한과 달리 마한은 백제와 같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백제가 마한을 병합한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군사적 압제였고 문화가 바뀌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도 이러한 생각으로 마한을 기억하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두 챕터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저자가 직접 마한 유적지를 탐사하며 그 특징들을 적어놓았고 2부에서는 탐사와 스스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마한의 문화, 유물, 인물 등을 상상해보는 내용이다. 1부에서 찾아가본 지역들은 대개 전라남도 지역이다. 마한 시절 중심지는 좀 더 북쪽이었지만 백제에 복속되어 특징이 많이 남지 않아 유적지, 유물로만 찾아봐야 하는 현재 현실적으로 마한의 흔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찾아간 지역은 나의 제 2의 고향 익산이다. 오랜 기간 생활하기도 했고 우리 어머니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저자가 익산을 찾아간 이유는 고조선의 준왕이 무리를 이끌고 와 건마국을 세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익산에는 금마라는 지명이 있다. 이 지명이 아마 건마국에서 이어졌을 것이라 추정한다고 한다. 나는 금마도 여러번 가보았고 건마국도 알았지만 둘이 이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직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조만간 이 책에 나온 왕궁리 유적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 겠다. 간단히 이야기한 익산과 고창을 제외하고 마한 유적을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지역은 영산강 유역이다. 영산강이 시작하는 담양, 물줄기가 흐르는 나주, 광주를 거쳐 영산강이 끝나는 영암과 함평까지이다. 이곳에선 공통되고 마한만의 특징을 가진 유적지들이 더 자주 발견된다.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문화는 장고분과 옹관이다. 장고분은 우리나라 전통 악기 장고 형태로 생긴 무덤이다. 한쪽은 사다리꼴이고 한쪽은 둥근 모양으로 생긴 이 무덤은 일본 고대 특이한 형태의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좌) 신덕 장고분, 출처 : https://www.todaygwangju.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071 (우) 일본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 출처 : https://www.kookminnews.com/220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일본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 무덤이 일본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며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 우리나라의 장고분의 인물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현지인으로 확인되었다. 오히려 기원후부터 5세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도래인이 1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니 일본의 고분이 우리나라의 형식을 베낀 것이 더 옳은 설명 아닐까? 이 책에서는 좀 더 현실적으로 본다. 당시 일본과 마한은 교역이 매우 많았기에 문화가 닮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력이 큰 한 지역에서 권위를 표현하면 그 영향권 안에서 따라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 아닌가. 인기 있는 연예인이 입는 옷을 일반인이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의 경우 그 규모가 더 크기는 하지만 내부는 어떨지 모를 일이다. 아예 내부는 커녕 부속물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고분과 또 한가지 특징은 옹관이다. 옹관은 옹이, 즉 항아리를 관으로 쓰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옹관을 쓰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한의 옹관은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규모가 큰 것은 3m, 무게가 1.4톤이 넘어가기도 한다. 현대 도기 장인들에게 물어봐도 만들기가 어렵고 이동이 어렵다고 하니 당시 기술력과 세력 크기를 알 수 있다. 2부는 마한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다. 앞서 마한의 시작과 흥망성쇠는 대강 이야기했다. 건마국으로 시작해 목지국, 그리고 이후 백제에 복속된 것이다. 하지만 마한의 시기를 더 길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역사적으로 추정해보건데 마한은 369년 근초고왕에게 멸망하고 복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마한이 6세기까지 존속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다만 마한이 6세기까지 독립 국가로 존재했다는 주장보다는 마한이 백제의 직접 지배보다는 간접 지배를 받으며 흡수됐다고 주장하는 편이 옳겠다. 저자도 후자의 주장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독자적인 옹관의 존재이다. 이 옹관은 3세기부터 6세기까지 마한 지역, 특히 영산강 유역에 분포를 한다. 즉 이런 특징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나주 신촌리에서 발견된 금동관이다. 이 금동관은 백제 중앙정부에서 제작되어 지방으로 사여한 '위세품'이라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백제의 양식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백제의 금속공예는 금속판에 구멍을 뚫어 무늬를 표현하는 '투조기법'을 사용하는 한편 신촌리 금동관은 금속판을 두들겨 모양을 새기는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백제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에서 금동관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이가 있었느냐 하는 주장이다. 아마 이 부분은 복속의 정도 차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한반도에서 중앙 정부는 지방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인력도 부족했겠지만 현실적으로 교통이 너무 좋지 않다. 강으로 이어지지 않은 곳은 사이사이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보내 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고려 시대까지도 중앙집권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백제도 마한을 간접통치하며 지배층을 백제 귀족으로 서서히 흡수하는 정책을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신라가 가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문화가 지속되는 것은 이해가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금동관도 지방 총관 같은 지위를 인정하며 직접 사사하거나 만드는 것을 허용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나의 상상을 책으로 써내려간 것에 가깝다. 머지않을 미래에 책을 써 작가가 되고 싶은데 그 때 구상했던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백제 지역의 유적, 유물을 보고 고대 기록과 비교해 상상을 더해 재구성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굳이 백제로 고른 이유는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이기에 익숙하고 접근이 좋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가볼 수 없고 신라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어 상상력이 더해질 백제가 재밌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한은 또 다른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로 모두 통칭해서 쓴 지역시 실제 백제가 아니라 마한 문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섣부른 생각으로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한국 고대사를 다시 상상해보게 한 너무 좋은 책이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잊혀진나라마한여행기 #마한 #한국고대사 #고대사 #정은영 #율리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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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호남 지방에 살면서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없었다. 역사를 배울 때도 삼국 시대를 더 중점적으로 배웠지 마한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다. 책이 마한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으로 가득해서 어려우면 어떡할까라는 두려움과 내가 알지 못한 나라 마한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고분이 있는지 몰랐다. 내가 알게 모르게 지나가면서 작은 언덕이었다고 생각한 것이 옛날 옛적 무덤이었던 것이었다. 그 모양도 제각각인데 나라가 중앙 집권제가 아니라 여러 부족 국가로 되어 있어 각자의 문화가 따로이지만 작은 실로 서로 얽혀있어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는 만큼 그 틈새 사이로 우리 생각을 메운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유적지를 보면서 여기에서 밥을 먹었겠지. 여기에서 서로 장난치며 놀았겠지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완벽하게 알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매력적인 나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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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어느 곳이나 그 곳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러 바람결에 이야기가 흩뿌려지기도 하지만 더러는 땅속에 고이 묻혀 있기도 하고, 마을 어귀 어디쯤에 장승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이야기 옆에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담는 다양한 흔적들이 바람을 맞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이야기 위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덧씌워지고 흔적들은 깨어지고 짓눌려도 고스란히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야기를 하나씩 들추고, 깨지고 짓눌러진 흔적의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내면 오래된 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저자는 그런 흔적이며 숨결을 따라 남도 땅을 돌았다. 그리고 조금씩 백제보다도 더 오래 전에 살았던 마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을 찾아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며 흔적들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것들도 있었고, 박물관에 박제된 채로 숨결을 멈추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저자는 그런 흔적들 속에서 마한을 더듬었고, 그들의 숨결이 마침내 오늘의 남도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는 정치사를 중심인 탓에 민초들의 이야기는 생략된다. 저자의 발길은 그렇게 소외되고 묻혀버린 흔적으로 어스름하게 남아있는 민초들에게로 향했다.
그 발걸음이 남도 어느 곳에 닿으면 그곳을 살피고, 마한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이야기가 허황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마한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소임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발길은 마한의 흔적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았다. 그러다보니 익산, 고창을 시작으로 신안의 섬들을 돌아 그 바닷가까지 종횡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들에서 마한을 그려냈다. 옹관에서 마한을 이야기하고, 고분에서 마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렸다.
고분 속 금동 신발에서 마한의 장인들의 떠올렸고, 구슬과 문신을 통해서 마한 인들의 삶을 유추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과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을 부러워한다. 모두가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들이다.
가까이는 일본 ‘요시노가리 역사공원’도 있다. 저자는 그곳을 둘러보며 우리의 선사시대를 생각했다. 우리의 선사시대는 더러 아스팔트에 묻히고, 더러 거대한 아파트에 짓눌려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기회는 있다. 마한의 신창동 유적이 그렇다고 저자는 희망을 내비친다.
이 책은 비록 에세이로 마한을 둘러보지만 누군가는 다시 그 이야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때마다 마한은 조금씩 ‘잊혀진 나라’가 아니라 실재한 나라로서 드러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오늘의 남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갑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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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땅 한반도에 800년이나 존재했지만, 역사 속에선 잊혀진 나라,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나라, 삼한의 한 나라였던 마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우리 문화의 태동과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책은 기행 에세이로써 남도지방의 마한 문화권을 거닐면서 저자의 토포필리아를 찾는 과정을 기록했다. 익산, 담양, 광주, 나주, 영암, 함평, 무안, 해남, 신안, 일본 규수를 여행하면서 마한의 흔적을 찾는다. 사실 나의 어릴 적에 배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삼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삼국시대 이전에 있었던 마한, 진한, 변한의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세력으로 간략히 기술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역사에서는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 의해 내려와 정착한 곳에 그들만의 문화가 존재했었고, 그 흔적이 마치 백제의 화려한 문화로 둔갑되어 써 내려오고 있었다. 국가로 세력을 만들어가기 전에 병합된 마한과 그 연맹체의 문화와 그들의 흔적은 백제를 비롯하여 왜(일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신촌리 금동관과 정촌 고분의 금동신발은 옛 마한 땅에서 제작되지 않았을까? 실질적으로 백제가 마한을 합병하고 마한의 세력을 위로하기 위해 하사했다면 백제의 수도인 한강유역에서도 유사한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을 근거로 이런 상상을 하게된다. 또한 일본에서 학문의 시조로 추앙받는 왕인박사의 출생의 설화의 흔적으로 구전되는 영암의 설화를 근거로 왕인박사의 활동지역과 시기를 판단해서 가야 출신인 김유신처럼 마한 출신이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인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와 같이 우리의 고대 잊혀진 세력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는 고마운 책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쓰여진다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의 고대사의 많은 비밀이 하루 빨리 밝혀지길 바란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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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한, 진한, 변한...학교 다닐때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시대, 위치, 특징 등등 정확히 어떤 나라들이었는지 기억에 없었다. 이 책은 마한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면서 그 시대에 대해 소개해 주는 독특한 여행 에세이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고, 행정고시를 보고 공무원이 되었다.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고향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일하고 있다. 집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어 광주와 세종을 오가며 지나는 곳들이 모두 마한 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답사하며 책을 쓰게 되었다. 마한은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 한민족 등에서 쓰는 '한'이라는 글자가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명에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밀려 바다 건너 한반도 남부로 이주했고, 충청도, 전라도 일대에 자리를 잡은 것을 마한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주변에 있던 진한은 신라가 되었고 변한은 가야가 되었으나 마한은 백제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백제의 역사에 가려져 기록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약간의 남아있는 기록과 저자의 유적지 탐방에 상상을 더해 마한이 어떠한 연맹체였을지 소개하고 있다. 익산, 고창, 담양, 광주, 나주, 영암, 함평, 무안, 목포, 해남, 신안에 이르기까지 전라도 여러 지역에 마한의 유적지들이 있다. 해당 지역에 이런 유적들을 볼 수 있고 기념하는 박물관, 역사관, 공원들도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국내 여행을 나름 많이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전라도 지역은 목포, 해남, 신안 말고는 거의 가 본 데가 없었고 특히 마한의 유적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마한의 가장 특징적인 유적은 옹관이라는 묘의 형태이다. 항아리나 독을 사용해서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 양식으로 저자의 유적지 탐방은 대부분 고분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고분 안에서 나온 금동관, 금동신발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음은 벌써 국립나주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목포대박물관에 가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지역마다 맛집까지 소개하고 있어 마한의 흔적을 따라 이 책에 나온 지역들을 여행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듯 싶다. 같은 곳을 방문하더라도 관심사에 따라 보는 것, 경험하는 것, 느끼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경치를 보기 위해 전라도 지역을 방문할 것이다. 내가 만약 나중에 이 지역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 책에서 언급된 박물관들에도 꼭 가 볼 생각이다. 그 때 이 책을 여행 가방 속에 넣어서 가져가면 좀 더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리뷰어클럽리뷰 #정은영 #마한 #역사 #전라도 #옹관 #금동관 #금동신발 #국립나주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목포대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