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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 시작한지 이제 일 년여가 지났다. 2011년 하반기부터 리뷰쓰기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연초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읽은 책 중 기록을 남긴 것만이 제대로 읽은 것이다”는 어느 간서치看書癡의 고백을 기반으로 리뷰쓰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데 목적을 둔 리뷰쓰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쓸 때야 마음의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웃님들의 경이감을 돋게 하는 리뷰를 보면서 조금 더 잘 쓰고 싶다는 욕구는 언제나 내 글에 대한 부족함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혔다. 리뷰쓰기는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이다”라는 리뷰를 쓰기 위해 처음 들은 글쓰기 강좌에서 한 선생님의 말씀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리뷰쓰기는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리뷰란 것이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필요한 영양분은 몸에 흡수되어 우리의 뼈와 살이 되고 나머지는 배설이 되듯이, 리뷰란 것도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고 나서 책에서 제공받은 정보는 우리의 삶과 지혜의 밑바탕이 되고, 필요 없는 나머지를 배설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성의 찌꺼기를 배출하는 행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글쓰기가 아닌, 남이 쓴 글을 읽고 쓰는 리뷰는 어차피 유에서 유를 걸러내는 행위이므로 그건 창조라는 글쓰기의 대명제를 부여하기에는 어려울 듯 싶다. 그래도 그 모방의 범주에 속하는 리뷰만이라도 스스로 만족감을 주게 쓰고자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발전이라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되는 행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리뷰쓰기도 내 느낌이 올 곳이 전달하지는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그 파도같이 밀려드는 감흥을 표현하기에는 내가 가진 글쓰기 재주는 그 감흥을 감당할 능력이 애초부터 안되었다. 표현은 서툴고, 문맥은 어색하고, 감흥은 왜곡되어 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스스로의 그 엄청난 감흥이 글로 그 형체를 바꾸는 순간, 내 앞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감성이 이질감으로 종이위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글을 쓸수록 내 느낌이 제대로 표현은 안 되었고, 그저 책속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옮겨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갈등과 리뷰에 대한 불만족은 리뷰의 횟수가 늘어 가면 갈수록 부담과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리뷰쓰기를 아예 그만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리뷰쓰기를 위해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난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하다가 그만두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옛 선조의 말씀을 굳이 대입하지 않더라도 어떤 일을 시작하면 최소한 3년을 해보기 전에는 절대 되돌리지 말자는 내 평소의 지론과도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의미로 글쓰기에 대한 재정립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런 글쓰기 관련 책을 통해서 말이다. 그동안 의무서평이나 권수위주의 양적인 책읽기 패턴에서 벗어나 새해를 맞이하여 제대로 된 글쓰기를 시도해보고자 도서를 알아보던 중 나의 고민을 들은 한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시인이며 작가이고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가 1986년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의 철학을 담아 펴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25년간 자신이 경험한 글쓰기의 체험과 선禪체험을 접목한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글쓰기의 노하우를 보여준다. 선 체험과 접목한 그녀의 글쓰기는 “덜어내기의 법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진정한 창조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내면의 그것을 내면에서 발견하여 종이위에 옮길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그의 독특한 교습법과 글쓰기에 대한 독특한 접근은 그동안 기법위주의 글쓰기 강좌와는 차별되는 내용으로 어차피 글이란 것이 내면의 소리임을 인정할 때 그 내면의 소리를 어떻게 끄집어내어 표면화 시키는데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했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를 증명하듯이 매 단락 끝에는 그에게 깨달음을 준 선禪 수련의 스승인 다이닌 카다기리 선승의 어록이 부록처럼 붙어있다. “ 나탈리 선禪이란 글을 쓰는 것과 똑같아요.” (12쪽) 이 책은 60여개의 짧은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단락을 분류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와 어떻게 쓸 것인가 로 나뉜다. 무엇을 쓸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주위에 흔히 마주치는 사물에 대한 짧은 글을 3~5분의 시간을 정해서 쓰라고 얘기한다. 책상위의 찻잔, 필기도구부터 시작해서 자연속의 벌레, 들꽃, 나무 한그루에 대해서, 또는 가족에 대해서 주제를 정하고 시간을 정해서 쓰라고 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그저 펜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데로 쓰고 또 쓰란다. 스스로 비평가가 되지 말고 그냥 쓰란다. 첨삭添削도 하지 말고. 그저 마음이 얘기 하는 대로 진솔하게, 사실적으로 쓰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는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을 들며 글쓰기에 대한 팁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각 단락마다 작가의 강좌가 어떻게 선과 연결되는지를 대비해줌으로 인해 글쓰기가 단순히 기술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옮기는 하나의 수련과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은 그저 사람마다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세에서 그 때를 만날 수도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빠르고 늦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계속 써라.(39쪽)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여랴(100쪽)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119쪽)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글을 쓸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때와 장소와 모든 여건을 따지지 말고 스스로 소재를 택해 시간을 정해 글을 쓸 것을 강조한다. 그것만이 수시로 내면에서 들리는 마음의 소리를 정리하는 방법이란다.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켜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침투시켜라(143쪽)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158쪽) 제목은 그 시에서 사용한 단어를 반복하기 보다는 그 시에 또 다른 느낌을 더해 주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200쪽) 이 책의 저자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시인이다. 그래서 인지 시를 쓰는 글쓰기에 대한 팁도 이 책에는 자주 거론이 된다. 하지만 글쓰기의 원류는 자신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했을 때 시를 쓰던, 수필을 쓰던, 장편이나 단편 소설을 쓰던, 우리네처럼 리뷰를 쓰던 그 글쓰기의 행위는 다 같다고 얘기한다. 지금 이순간의 감흥을 잡고, 조절하지 말고. 살아있는 한 치열한 글쓰기만이 글쓰기의 모든 것이다 고 작가는 주장한다.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서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들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란다.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상태로도 쓰는 것, 쓰고 또 쓰는 것.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는 것, 그 외에도 글쓰기에 필요한 다양한 팁도 거론되어 있어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참고할 일이다. 자유로운 글쓰기라! 이런 말을 누가 못하겠는가? 하지만 다음에는 이 자유로운 글쓰기란 자신만의 솔직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인생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글 앞에 진실하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스스로의 추함을 볼 용기가 있는가? 둘째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거울에 비쳐본 적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란다.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당당한 모습으로 나서서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꾸밈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글을 쓰라고 얘기한다. 한마디로 저자는 글쓰기는 자유로워야 한단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누구에게 꾸밀려고도 하지 말고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각나는 대로 펜 가는대로 그냥 종이에 옮기란다. 그것만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란다. 내일 아침에 오늘 작성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낯이 뜨거워져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더라도 그건 내일의 걱정이란다. 그냥 오늘은 쓰라, 그냥 쓰라, 쓰기만 하란다. 그게 글쓰기의 시작과 끝이란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갈 때만이,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길로 이끌어 주는 법이지,”(1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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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되는 대로 분야를 가리지않고 책을 읽다보니 글쓰기가 눈에 들어왔다. 글씨기를 배우는 중이다. 그냥 쓰면 되는 것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쓰기는 배움이 필요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가 당신을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모든 희망을 글쓰기에 걸 이유가 확실해졌다. 내가 가고자 하는곳에 글이 데려다줄 것을 믿는다. 글을 잘 쓸 수있는 방법은 질보다 양이라 했다. 부지런히 뭐든 쓰자. 이야기 모임을 만들다는 팁도 눈길을 끈다. 특별하게 이야기 모임 팀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만남이 있을때마다 이야기의 주제를 만들어 보려한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히 살겠다는 뜻"의 의미를 익히 알고 있으니 쓰기만 하면 된다. #뼛속까지내려가서써라#나탈리골드버그#한문화#글쓰기#그냥쓰기#글#책구경#블로그#책쓰기#믿음#예술#혁명적인글쓰기#글쓰기방법#쓰자 ------------------------------------------- 책 내용 메모~~ 음식에 대해 써 보라 외로움을 이용하라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위해 쓴다 글쓰기가 당신을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준다 정성을 들인 음식이 맛있듯이 글도 그렇다 매일하는 평범한 일이 시다 살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히 살겠다는 뜻이다 설거지에서 벗어나 글을 슬 수있는 카페로 달려나가라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한다 첫 생각에 불이 활활 붙도록 계속 써라-그동안 격은 감정 사건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 네 목구멍에서 데이지꽃을 꺽는다 예술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세계이며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것도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 삶을 꾸려나가는 과정이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글스기 훈련법. 글이 안 서질때도 매일 쓴다 지각이나 판단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시과 육체를 통과해야한다 퇴비에서 한 송이 튤립이 피어난 순간 비료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하고 비옥하게 만든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그렇지못한것은 사람마다 다 대가 다르기때문이다 습작시절의 훈련 중요 우리는 자신이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글감노트-창문통해 들어는 빛, 기억이 난다로 시작하는 회상, 강력한 감정, 한가지 색깔 사쓰기르 배우는 방법-시 자체속으로 들어가 머문다.시인이 보았던 이미지를 다시 불러내야한다.정작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 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말고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자신이 만들어낸 작품과 자신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는 안된다 은유를 위햇서는 사물을 바라보던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을 쓰게되어있다 세부묘사-말하지말고 보여주라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어 그 사물의 고유성을 만들어줘라-곷이라고 부른 대신 제라늄 마음에 맞는 친구에게 당신이 쓰고싶은 이야기 해보기 현상을 넘어 사물속으로 파고들라 작가는 다른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않는것에 관심 보이기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잇을때 가슴미어짐을 느낀다 현재 위치가 어딘지 모르고 여기저기 방황하기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두달에 한번씩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부딪힌다 글을 쓰는 이유-글을 쓰는 것이 내 진화의 시작이므로/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으니까 글쓰기는 치료술보다 심오하다 그동안 수없이 느껴왔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에 빛을 주고 색을 입혀 이야기 구조로 덧붙이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야한다ㅠ 분노를 붉은 튤립으로 변형시키고 슬픔을 회색빛 낙엽으로가득찬오래된 골목으로 옮겨놓아야한다. 감정의 균열에 대해 써보는 건 어때? 앞길이 막막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생계가 걱정스러울때 만나서 글씀 자신이 쓴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하라 대중을 통제 조정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 법규란 남을 다치지않게 하거나 해를 끼치지않기위해 만들어진 것뿐이다.모범생이 되기위한 모범생은 되지말라. 얼마나 오랜시간 집필할 수있느냐가 당신의 글스기 성공 여부를 판가름한다 엄청 많이 써야 탁월한 글이 나온다 도서관이 나의 직장처럼 도착하면 글을 쓴다 목표에만 사로잡혀 인생을 잃지말라-니체 글쓰기으 성패는 질이 아니라 양이다 의식의 흐름을 다라가며 거침없이 쓰는것-시인들이 즐겨쓰더 ㄴ방식 농부는 매일 농사하고 작가는 매일 글을 써야한다 한주제도 좋고 각기 다른 주제도 좋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가장 적확한 단어 선택하기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 "노인과 바다"-200번 고침 첫문장-두려움없이 거침없이 쓰기 원고를 나누어 써라-하루 원고지33매 책한권은 천매 편집과 인용의 신이 되어라 자신을 날마다 혁신시켜라 창조적 글쓰기는 저절로 흘러 넘칠때 찾아온다 글을 쓰고 싶지않을때나 기분이 내키지않을때도 글을 써라. 무미건조하고 형편없는 글들을 많이 써낸 뒤에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활기찬 삶을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판을 엎는다 자신이 쓴 글중에서 좋은 부분은 메모해두어라 자기가 쓴 글을 쓰자마자 읽어 보지는 말라 작가가 되려면 아주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 모임 만들기-주제는 그때 그때 다르게 |
|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신비한 마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쳐가지만, 글을 쓰면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결국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을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이끌고, 창의력을 키우게 된다고 본다. 최근 이권우님이 쓴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라는 책을 통해 이 책을 소개받았다. 한마디로 참 귀한 책이었고, 서너 번은 더 읽고 싶은 책이라 생각했다. 지은이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유태인으로서 자존의식을 가진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참선의 매력을 아는 불교도이기도 하였다. 禪을 접할수록 그녀는 자신이 더욱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한다고 한다. 참 반가운 설명이었다. 禪을 알되 맹목적으로 집착치 않는 의식이 참 좋았다. 내면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더 자신의 뿌리를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그 ‘자존 의식’이 참 든든했다. 작가는 미국에 있는 Zen Academy에서 카타기리 禪師로부터 지난 30여년간 참선수행을 배운 좀 유별난 이력을 가지고 있고, 유명한 선승인 일본의 도겐선사를 존경하는 표현이 책 속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그녀는 스승의 말을 인용하여, “글쓰기는 禪(명상)과 같다”고 강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일이고, 내 안의 나를 친숙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禪의 삼매 속에 빠지는 것처럼 글을 쓰면서 자신은 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이 강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는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최고의 축구 골잡이가 최고가 된 것은 다름아닌 부단한 훈련의 결과일 뿐 남다른 무엇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겐, 그의 성실한 시선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녀의 글쓰기를 위한 제안은 마치 신나는 세미나시간 같았다. 이론과 메마른 논리로 자꾸 시계를 보게 하는 그런 대화가 아니라, 흥미로운 사례들과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 논리의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넘어가는 지혜는 맑은 겨울밤하늘 시골 산길에서 보이는 어둔 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신선하고 포만했다. 이 책은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더욱 접근하기 쉬운 책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은 단지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글은 아무렇게나 쓰고 싶은 대로 쓰면된다는 자신감마저 들게 만든다. 솔직히 이런 책을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의 나와 더욱 친숙하게 되는 일이라고? 정말 찡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을 더욱 믿고 아끼게 된다는 것이고, 그 결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돌멩이 하나 하나, 더 나아가 인간을 더욱 소중히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세상의 평화와 고요를 위한 귀한 방편이다.... 책이 있어 인생이 즐겁다.... 물론이지.... |
| 책 내용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말고,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것,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무조건, 쓰라는 얘기다. 그런 기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간 책 같다. 자기가 글 쓰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뜻은 잘 알겠으나 실질적 도움은 전혀 안 되는 책 같다. 이에 반하여, 일전에 읽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 쓰기"는 너무나 훌륭한 책이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싶은 분들, 유혹하는 글 쓰기를 사시기 바란다. 나는 옛날에 사서 제 값 다 주고 샀지만 지금은 마침 50% 세일이다. 우리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할 때, 일기를 쓰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않나. 대체로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글, 이를테면 소설이라든가, 뭐 시나리오든가 이런 것을 쓰고 싶은 것 아닌가. '뼛속~'은 그런 의미에서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책이다. 별 두개라도 준 것은, 쓰는 수고를 들인 작가의 노고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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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었을 것이고, 읽어야 할 세계적인 명저이다. 글쓰기는 오로지 글쓰기에서만 배울 수 있을 뿐, 밖에서 배우지 못한다. 무조건 써라고 강조한다. "글을 쓸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당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단순한 언어들로 단순하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라."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고 글쓰기를 통해서만 실력이 는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등 수많은 빛나는 문장으로 빚어진 귀하고도 소중한 문장들은 글쓰기 강사들이 양념처럼 쓰는 문장들이다. 책속으로 뛰어 들어가자.
내면에 잠재한 글쓰기의 씨앗을 찾아라! 결국 참된 글쓰기는 세상을 보는 통찰력과 지혜를 넓힐 때, 자기 자신의 마음과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울 때,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될 때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이다. 글쓰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더불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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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정도를 머뭇거렸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아침이더라. 아이쿠!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하루가 또 가버렸구나. 오늘은 기필코 명문장을 쭉쭉 뽑아내리라! 굳은 다짐에 다짐을 해도 잘 되지 않는 일. 꼬박 꼬박 글을 쓰는 일이 그렇다.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도, 번뜩한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고 싶기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똥찬 문장을 구사하고 싶기도, 싶기도, 싶기도, 싶기도. 백만가지의 싶기도가 모여 이미 완벽한 글이 눈 앞에 아른아른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종이는 텅 비어있을 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순간 번개 같은 속도로 그 어떤 글이든 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니라,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좋은 글을 위해서는 값비싼 노트도 무거운 만년필도 필요없다고. 자신이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대하는 것보다 그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일 매일 글을 쓰는 데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유난히 큰 욕심과 기대가 들어가는 글이 있다. 왠지 모르게 과장되고, 불필요하게 덧붙여지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한 문장을 채우기도 버거워진다. 그럴 때면 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쭉 빼고 머리를 비운다. 쓰레기 같은 글을 써도 그래서 사람들이 다 비웃을 지라도 상관없어! 외치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나간다. 그러다 보면 금세 깨알 같은 글씨가 종이 한 바닥을 채우고, 그 안에서 쓸만한 문장이 꽤 여러개가 등장한다. 그 문장들을 잇고 이어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문장을 쓰고 이으며 문득 드는 생각. 나는 대체 왜 쓰는가?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아내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 글을 쓴다고 했다. 또 어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가득 차서 더 이상 그 말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밖으로 꺼낸다 하였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겪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겪고 느낄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종이를 꺼내 끄적인다고 한다. 다들 멋진 이유이고 일리 있는 답들이다.
불행해지니까. 나의 답은 이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지 않으면 나는 불행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쓰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나의 글쓰기는 '치유하는 글쓰기'에 가장 닮아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삶의 경험들을 삭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글을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비료가 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발효시키고, 비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아이디어 노트를 따로 만들어 평소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는 습관을 들이면 생활 곳곳의 모든 것에 깊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작은 아이디어 노트를 샀다. 쓰고 싶은 주제가 생길 때마다 부지런히 메모를 하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삶에 벌어지는 작은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늘 생각대로 글이 술술 써지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정말 쓰레기 같은 글을 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 나를 나아가게 하는 건 '솔직한 글쓰기'임을 부인할 수 없다.
1. 만약 당신이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무언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는 걸 명심하라. 이런 기대감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 p.32
2. 우리의 지각 능력이나 판단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각과 판단력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를 거쳐서 나온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퇴비를 섞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계란 껍질,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 p.36
3.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 p.43
4.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연출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인간 존재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가가도록 한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비참하고 불만투성이고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전반적으로 침체된 기분이 들 때, 나는 이런 것을 그저 하나의 감정으로 인식한다. 나는 이런 감정도 결국 변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감정이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장소를 찾아가게 하고 친구를 원하게 만드는 에너지라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다. --- pp.75~76
5.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 자주 출몰해서 괴롭히는 것,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자신의 육체가 풀려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이야기로 엮는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pp.78~79
6. 좋은 작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단어와 음향과 색깔을 통해 감각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어가라. 그리고 그 살아 있는 느낌이 종이 위에 생생히 옮겨지도록 계속 손을 움직이라. --- p.100
7. 작가인 우리는 늘 의지할 것을 찾아다닌다. 동료들로부터, 비평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안심하려 든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이나 작품에 대해 보내는 타인의 칭찬에 기대어 살아가는 한, 그 작가는 다른 이들의 비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의 근원적인 원조자에 대해 아는 편이 작품성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미 매 순간 무엇엔가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대지, 폐를 채우고 있는 공기..... 이 모두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 그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지금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침의 침묵,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하라. --- pp.106~107
8.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 p.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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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방법을 가르치는 책들을 별로 읽지 못한 나에게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1948 ~)는 따뜻한 자상함을 가진 스승처럼 느껴진다. 자신감을 불어넣는 말로 장정(長程)의 첫 걸음을 떼어 놓은 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분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그 일을 따라 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정녕 자신감을 갖게 하는 말이다. 그에 의하면 실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인생을 충실하게 산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기 위해 치열하고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 어떤 경우 글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을 만들기도 하는 나에게 나탈리 골드버그의 귀띔은 반갑게 들린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그에게도 물론 어설프고 거친 글을 쓰던 습작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겨지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중 하나는 그런 그도 글을 새로 쓸 때마다 전에 어떻게 글을 완성했는지 의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고백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고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부담감으로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글 쓰기에 능숙하려면 당연히 훈련에 애써야 한다. 꾸준한 글쓰기 훈련은 열망을 이어가게 하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꽃을 피우게 한다. 선(禪) 수행 체험을 글쓰기에 응용한 지침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저자는 마음을 들여다 보듯 자신의 내면을 종이 위에 풀어 놓으라는 조언을 한다.(그의 선적 뉘앙스는 자신이 쓴 시는 자신이 아니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저자가 말한 훈련에는 글감의 목록을 만드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글감을 찾다 보면 당연히 관찰을 하게 될 터이다. 저자는 글감 노트를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몇 시간이고 같은 곳을 주시하며 빛의 변화(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미세한 차이를 주시하는 인상주의 화가의 노력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하나의 현상에 대해 사랑하는 시각과 싫어하는 시각으로 각각 글을 쓰라는 저자의 충고는 한번은 이런 입장이 되고 한번은 저런 입장이 되는 역할극 참가자의 위상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조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신 속의 작가를 내면의 편집자나 검열관과 분리시키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자유롭게 호흡하고 탐험하며 표현할 공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5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글은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대가의 강의를 듣는다 해도 직접 쓰지 않는 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직접 쓰지 않고 배우려 하는 것은 시나 소설을 음미하게 하지 않고 분석하고 해부하게 하는 획일적인 학교 교육의 폐해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움, 자유로움, 상상력, 앞서가는 마음 경계하기, 여유 등이다. 나는 작가란 결국 자신의 강박관념에 대해 쓰게 되어 있다는 저자의 말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강박관념에는 힘이 있고 결국 우리는 그 감정이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는 각별하다.(79 페이지) 저자가 글쓰기에 대해 내린 여러 정의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글쓰기에 몰입하는 것은 좋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작가들을 자신과 분리된 존재로 여기지도 말고 그들은 훌륭한데 자신은 형편 없다고도, 자신만을 훌륭하다고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감을 주는 조언이면서 현명한 대처를 요구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저자에 의하면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이다.(167 페이지) 앞서 말했듯 저자는 글쓰기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의무감으로 하는 기계적인 훈련은 경계한다. 창조력을 마비시킨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럴 때 해야 할 것은 글쓰기에서 떨어져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린 뒤 글을 쓰는 것이다.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며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 작품이라는 저자의 말은 문학적 수사(修辭)로도 부족함이 없다. 그가 궁극적으로 주문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 용기를 지니라는 말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한자어를 떠올리게 한다. 결과에 연연/ 집착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열정을 다해 쓸 것을 강조하는 저자는 선사의 면모마저 지녔다. 원작이 나온 지 26년이나 되었고 기법보다 글에 대한 마음가짐과 글을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했으며 문학적 글쓰기에 중점을 둔 책이어서 나와 특별한 상관성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글과 삶을 사랑하는 저자의 치열함과 열린 마음, 여유 등은 충분히 본받을 만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보다 사는 것이 힘들 때 들추어 보게 될 책이라는 점에서 내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급의 위상을 지닌 책이다. |
| 이토록 쉽고 직설적인 언어로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 또 있을까. 저자는 내내 그저 쓰라고 말한다. 주머니가 텅 비어 있어도 당장 해야 할 것들이 자신을 압박해오더라도 고양이가 자신의 습작노트를 찢어져버릴지라도 그저 펜을 들고 쓰라고 말이다. 나는 작가가 꿈이다. 작가라는 이름이 아직은 아득한 미래의 꿈인 만큼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독과 다작 뿐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뭘 어떻게 쓰란 말인가, 하고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밤 나는 내 능력에 대해 끝도 없는 의심을 품었고 타인의 글을 읽고 절망했다. 무엇보다도 난 백지 앞에 경건하라는 스티븐 킹의 말의 도를 넘어 지레 겁을 먹곤 했다. 백지를 더럽히는 건 죄악이다, 라고. 그런 내게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느낌을 믿어라! 자신이 경험한 인생을 신뢰하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라! 물론, 이정도에 내가 감동한 건 아니다. 그런 문구가 적힌 표지를 보고 그저 심드렁해질 뿐이었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도리어 난 느낌표가 가득한 문구를 보면 경박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의심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두근거림으로 바뀌어갔다. 그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무조건 쓰기만 하라는 것이니까. 내내 쓰라고 말하지만 전혀 강요를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당장 뛰쳐 나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빠른 펜과 스프링 노트를 여러 권 사오고 싶어 안달이 났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나도 능히 할 수 있으리라, 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실제로 새 노트를 사가지고 와 열심히 쓸 수 있었다. 멈추지 말고 조절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몇번이나 되새기며. 실은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닐는지 모른다. 많이 쓰는 건 작가지망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무작정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지표도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내가 쓴 글을 읽어보고 맘에 들 때까지 고치고 하다보니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기도 전에 지쳐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는 이 노트를 통해 내가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안다. 이 노트는 한 인간의 존재 증명이다"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p. 42 그녀는 글을 쓰려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아마, 성공했으리라 본다. 지금 자기비하에 빠진 작가 지망생이 있다면 얼른 달려가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그리고 난 이 말을 노트 첫 장에 크게 써놓기로 했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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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글을 쓰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봐야 할 걸작 !
내 오른쪽 손의 중지는 기형이다. 손톱 옆살이 누구에게 얻어맞아 혹이 난 듯 두툼하게 살이 솟아나 있고, 돋아난 살 가운데는 점이 들어있다. 그리 보기 좋은 손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또 사내의 손가락이 딱히 보기 좋아야 할 이유 역시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 손가락을 유심히 지켜볼 때가 생기면 사이즈가 20이라서 반지 값이 꽤 들었던 유난히 굵은 약지의 굵기보다 항상 오른쪽 손의 중지에 신경이 쓰인다. 어린 시절엔 왼쪽 중지와 엇비슷하게 평범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중지 손가락은 거의 3 년 동안 항상 벌겋게 달아올라 손만 대도 아팠고, 모양도 차츰 흉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결국 가운데 손가락은 심하게 기형이 되어버렸고, 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흉한 가운데 손가락은 비단 나만의 소유물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손가락을 살펴보라(왼손잡이는 왼손 중지를 보시길). 거의 대부분 반대쪽에 비해 살이 돋아있거나, 약간 비틀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육각의 모서리를 가진 한 자루에 70원 짜리 모나미153 볼펜 덕분이며, ‘죽도록 외워는 자가 이길 수 있도록’만든 제도권 교육 정책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면 하루 종일 펜을 쥐고 뭔가를 적는 모습이다. 영어단어든, 수학공식이든, 하다 못해 교과서 모서리에 낙서를 하든 뭔가를 끼적댔다. 그리고 나처럼 머리가 많이 둔해서 쓰는 만큼 외워진다고 생각한 학생은 유난히 많이 그 짓(?)을 했을 것이고, 머리가 아주 좋은 학생이거나, 아예 머리 굴리기를 포기한 학생이라면 비교적 덜 끼적댔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뭔가를 하루 종일 썼다. 하지만 그 글 속에는 내가 없었다. 만약 그 시절 노트에 나의 이야기와 내 생활을 적으라 했다면, 그래서 그것을 누가 봤더라면 담임은 심각한 부모님을 불렀을지 모른다. ‘공부 없는 세상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이라고 썼을 테니까.
열 두 해 동안 손에 펜을 쥐고 항상 뭔가를 긁적거렸으면서도 난 ‘글쓰기’를 못한다. 방학숙제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숙제가 ‘일기’였고, 반성문을 쓰기 싫어서 한 번쯤 할 법한 일탈도 꿈꾸지 않았다. 그랬던 요즘 들어 내가 느즈막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구해 읽는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남아나는 빈대가 없다’고 했던가? 뭔가를 끄적이고 끼적거리는 짓에 재미가 들었기 때문이다. 재미야 둘도 없이 친한 친구와 질펀하게 술마시며 밤을 지새우는 재미만 하겠는가? 하지만 글쓰기에는 그도 따를 수 없는 묘한 재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나와 노는 재미’가 있다는거다. 그 재미를 더하고자 또 한 권을 집어들었다. 어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를 읽었다.
글쓰기는 이태백의 술잔이다. 그가 사랑한 술 속에 꿈에라도 가고 싶은 달 그림이 담겨 있듯, 내가 쓴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것이 묘해서 쓸 때는 내가 되더니 쓰고 난 뒤에는 남이 되어 나를 보게 한다. 원래 글의 목적이란 ‘남기기’ 위함일진대 쓰다가 보면 그 목적보다는 ‘나를 살피게’ 되더란거다. 그래서 글쓰기는 맹랑한 궁싯거리기가 아니라 ‘나와 내 속의 나의 대화’란 것을 알았다. 기왕에 대화를 나눌 바에는 보다 잘 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명저’로 소문난 책이다. 1986년에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되고 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면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책이다. 그녀의 글에 주목해야 할 것은 글쓰기와 저자가 체험한 선禪이 접목되었다는 사실이다. ‘덜어내고 덜어내고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을 때 완벽한 글이 나온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 있듯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최고의 글이 되는 것과 간결하고 고요한, 그리고 심플하고 따뜻함을 추구하는 젠(Zen, 禪)은 묘하게 닮았다.
그렇다면 다소 음산한 제목이 말하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의미는 뭘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 책의 한 부분, 가령 모든 사물에 개별적인 정체성을 주어 접근하라는 글을 읽었다고 치자. 이 말은 추상적이거나 아주 일반적인 문체를 가진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이번에는 자신을 누르지 말고 감정의 파도에 실린 그 상태로 글을 몰고 가야 한다고 써 있다. ‘진실을 글로 나타내려면 쓰는 이가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본문 17 쪽)
글쓰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검열’이다. 글을 써서 한 문장이 채 완성도 되기 전에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소름이 돋는다’고 스스로 평한다던지, 도대체 맞춤법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워 사전을 찾고 싶어진다면 내가 쓴 두 번째 문장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이 저마다 울음소리가 다른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사연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실컷 울고 나면 내 마음이 편한 것도 울면서 ‘모두’ 토하듯 말을 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제가 무엇이든, 소재야 어떻든 우선 머릿속 생각을 비우듯 아무 제약 없이 남김없이 글로써 쏟아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경험과 선체험을 더해 이야기해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깊숙한 내면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그리고 글을 쓸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손을 계속 움직이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출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본문 26 쪽)
저자는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이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목표란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고, 이럴 때 바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글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글쓰는 연습‘이다. 연습의 결과는 ’습관화‘다. 이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지 않으면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마치 흡연가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는 자리를 가서도 식사 후엔 담배가 피우고 싶은 것과 같다. 하루에 단 한 단락이라도 글을 쓰지 못하면 허전해져서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될 때 글쓰기 훈련은 완성된다. 저자는 글쓰기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글쓰기 훈련은 진정으로 쓰고 싶어하는 어떤 것을 쓰기에 앞서 몸을 데우는 워밍업 단계다. 훈련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전에 거쳐야 하는 가장 기초적이며 본질적인 바탕 그림에 해당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본문 30 쪽)
세상에 천재는 없고 1만 시간의 열정과 노력을 다한 아웃라이어만 있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말처럼, 타고난 글쓰기 천재는 없다. 독자가 읽기 쉬운 글은 필자가 각고의 고통을 감수하며 어렵게 쓴 글이다. 기상해서 양치질을 하듯, 흡연가가 식후에 담배 생각이 나듯 내 생활 속에 ‘글쓰기’가 배어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준비는 마친 상태가 된다. 그렇다면 저자 만의 글쓰기 훈련법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한 달에 노트 하나를 채우는 것으로 내 임무를 다 한다(나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나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 안내서를 항상 새롭게 만든다). 그저 이 노트를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훈련법이다. 이것이 나한테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도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튼 자신의 이상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되지 않는가.” (본문 32쪽)
저자가 제시한 문장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조언은 바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우선 내가 바라봐야 할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니고, 신경숙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속에 담기 내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글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은 나를 비우는 작업이 된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민과 열정을 토해낼 때 나는 ‘후련함’을 경험할 수 있다. 글쓰기는 머릿속을 비우는 작업이요, 다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가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책의 독자는 ‘작가’를 꿈꾸는 이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우리는 이미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댓글을 달며, 이메일을 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미니 홈피와 블로그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맛집과 영화, 그리고 상품에 대해 평을 하고,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자 글쓰기 선배의 선험적인 고백이다. 그래서 자못 딱딱한 이론 수업이 될 법한 글쓰기론이 한 편의 수필이고 자전적 소설처럼 읽힌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금방이라고 책을 덮고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게 하는 충동을 일으키게도 한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글쓰기의 바이블’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자는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라고 했다. 두 달 전에 괜찮은 글을 썼다고 해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은 없기에 언제나 새롭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 없는 여행일지라도 절대로 부러질 리 없는 지팡이와 튼튼하고 편한 신발, 그리고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모자가 있다면 다소 막연한 여행이라도 떠나봄직 하지 않을까? 글쓰기의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지팡이가 되고, 신발이 되며, 모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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