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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천성을 이해하는 게 결국 나 자신을 돕는 길이다. (63) 칼을 쥘 만한 사람들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는 건가? (64) *칼을 들이미는 작자 내 안의 지질함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이게 숨겨지는 것인가. 애써 숨기려고 한들 숨길 수 있는 게 아닌데. (64) ‘나 때’의 음악이 천천히 음미하는 시 한 편이었다면, ‘요즘 음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30초 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CF와 같다. (65) *‘훅’을 거는 음악 무엇보다 ‘리듬’이 중요해졌다. 리듬이란 곧,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 가장 악센트가 되는 부분을 모아 소리로 만든 것이다. (66) *강조점과 강약 조절 최면에 걸리듯 음악에 쭉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리듬과 패턴이 중요해지면서 ‘라임’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노랫말의 일정한 자리에 비슷한 소리를 가진 글자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 ‘말놀이’와 ‘리듬놀이’를 합해놓으면 절로 흥이 난다. 말과 리듬이 만들어내는 흥을 표현하려면 춤만큼 좋은 게 없다. 발라드보다 댄스곡이 대세가 된 이유일 것이다. (67) *‘듣기’의 영역 넘어 종합예술 ==> 어둡고 조용한 가운데 뒤집어쓰는 음악이 있는가하면, 강남역 앞 혼잡함 속에서 노래가 열어보이던 문을 잊을 수 없다. 윤건희 공동정부에 묶인 참혹한 시간, 음악에 많이 기댔다. 특히 여름에 댄스곡이 없었다면. 상상이 안 된다. 노래 한 곡에 언 마음이 풀리고 열받았다가 식는 나란 사람 ㅎ 그 어려운 걸 박주연 작사가는 해내고 또 해낸다. 게다가 과학책(‘코스모스’)에서까지 소재를 찾아내는 안목이라니... 혹여 노랫말이 다칠까 조심스러운 내 마음과 똑같이 멜로디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가사와 멜로디 사이에도 최적화된 균형을 찾아야 한다. (70) ♪성시경 ‘외워 두세요’ ((내 취향은 아닌뎅 누가 ‘차마’랑 1시간 재생 올려둬 듣다보니 좋네그려)) 음악에는 시퀀스sequence와 콘트라스트contrast가 있다... 일관성이 시퀀스가 가진 매력이다. 콘트라스트는 ‘반전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앞과 뒤를 대조시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하는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72) *책장 넘기기, 페이지 터너((내 최애어)) 우리의 삶도 변화와 성장, 결핍과 실패를 반복할 때 비로소 ‘재미난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김형석’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 (74) *음악이라는 ‘숨결’ 쉬운 일도 아니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결과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골치가 지끈거리기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78) 그날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처럼, ‘현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사람과 사람 간에 나쁜 감정이 없어도 / 사회와 세상이 정한 역할에 따라 서로 미워하고 등 돌릴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81) *어른 미 ㅎ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 모두 지나갈 거야. 정말 다 지나갈 거야.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네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네게 필요해서 일어난다는 것, 일고 있지?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마. (84-85) *웅,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훌쩍)) 낱말 줍기>> 셀프 ‘용비어천가’; 자기 예찬적인 이야기, 성취 성공, 자기 천성 이해, 허술, 반복 모양새 ‘패턴’, 리듬-패턴-라임-춤, 시퀀스 속 변주와 변칙; 예상 안팎 리듬을 가다듬기, 실패하기에 ‘성공’, 너나없이, 음반시장, 덜컥 수락, 영예, 사업 수완; 탄탄대로, 한량, 시련과 부침과 굴곡, 상대적인 행불행, 불운/행운, 골머리를 앓다, 괘씸죄, 동료에서 적으로 영혼이 얼떨떨해짐, 시끄럽고 쓰린 속, 별안간, 운명의 엘리베이터( 안 기류 전환), 역지사지易地思之, 오해와 억측, 진땀, 옴짝달싹, 띵까띵까 놀기, 그윽한 그리움; 고요한 달빛; 추억의 파도 ++ 눈물 핑 가슴 찡, 껄렁 꿀렁, 건전한 생각과 생활, so smart, 정찰제, 단타, 질질 흘림, 興, 춤사위
== 김형석 작곡가가 사업가로 변신해 법적 공방, 소송을 치렀음을 이번에 알았다. 우여‘곡’절.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고 싶지 않았다는 고백에서 다부짐이 전해진다.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한 내려놓음까지 남자답다!고 하면 차별어인가. 나만 놓고 봐도 한사람의 생활 고침이나 패턴 바꾸기가 힘들다. 마음먹기와 실행까지. 친구와 어느 날 대화 끝에, 중독을 딱 끊음도 유전자 DNA가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올해 유독 더워(살찜도 한몫) 실내 운동 끊겠다고 말하자마자 긴 목감기와 무릎 부상이 이어졌다. 그 사이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 웃어말어. 김어준 총수가 김건희를 “모조 정체성”이라고 했다. 잼통이 2015년 성남 시장 시절, 기초단체장이 ‘대통령’이 할 고민과 말을 해 ‘재밌네’ 했단다. 박구용 교수의 <명비어천가>, 이미 있는 데이터와 실체를 가지고 말해 설득력 있었다. 기조를 지키되 일관된 업데이트와 자발적 파악을 높이 사며, 그때부터 국민과의 “네트워크”와 “메시지” 전달 정치를 했다고 역사를 훑는다. 지역 음식물쓰레기통에 담아온 물로((댓글로 읽는데도 쓴 이의 분통 터짐이 전해져 적어둠)) 청소한 테러의 흔적 때문인지 명검, ㅋㅌ칼 은유를 피하고 싶다. 손에 쥔 도구(일할 ‘권한’)로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일처리한다는 것이다. 그의 꾸준한 업데이트 따라 당원들도 ‘정치 생리’를 간파하는데 한심하게도 원심과 의심이 그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당이 잼통을 앞에 세울 것이 아니라 중앙에 둬야 한다는 말에 말장단을 맞추고 싶다. 보좌진 필터링과 닮은 동종 교배로 이합집산하다 버퍼링 걸려 흐름을 놓친다는 내용이다. 지역구 의원이 파란색이라 다행이지만 구청장 거쳐 이십년 좀 안되게 정치했다구? 싶게 마니 아쉽다. 얼굴은 갈수록 구겨지고 보고서 읽을 때마다 버벅대서 창피하다. 소속은 하필 ㅇㄱ. 긍데 개별 방송 출연 알림은 왜 자꾸 하는지. 게다가 삐딱 노선, 이제 안 타는지 모르겠다. 박 교수와 김 총수가 이구동성으로 정치인들은 자기 위주로 출연분만 모니터링한다고. 하는 게 저 모양이라고 뜨악- 두분도 모니터링하셔야 ㅎ <삶의 속도는 안단테>는 1장까지만 읽겠다. 딱딱한 이야기가 고픈 때라서 빠이~ 금주 정치 뉴스와 기사를 읽는 재미가 다시 살아났다. 둘러보니 윤건희가 (빵에) 들어가 있다. 공기가 바뀐 것도 같고. 맡은 ‘직’도 징하게 못하더니 거기서도 그런다. 지들이 의료대란 일으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드나드는 거 보면 열불난다. 자꾸 눈 파는 놈도 짜증나지만 정신세계 들먹이는 오래 살고픈 명신이는 더 가증스럽고 가관이다. 언론은 언제까지 여사 호칭 붙이나, 정 못 떼겠으면 (독보적) 전례없는 전ex 여사라 하든가. 더 크레이지 커플스. 티 피 오 꽝 석두 마차, 이제 운행 중단. 폭주하며 뿌지직 싼 (대)똥 치우느라 다들 고생 들. 그래도 그래도 설레발, 김칫국 드링킹 나발, 언론 노출병 금물임, 명심. 광복절마다 듣던 망발 극우 매국 정치 언사 안 들어도 돼 늠나신나, 눈 귀 정화 ♡ 술(통) 말고 예술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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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본 사람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세수하고 이 닦고 밥 먹는 것처럼 피아노 소리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나 같으면 다음 멜로디는 이렇게 쓰겠어.’ (42) *나에게 새겨진 ‘원형,’ 멜로디 원형은 원형일 뿐 완벽함은 아니다. 완벽한 작곡, 완벽한 음악은 허상에 가깝다. 내 존재가 허술하듯, 내 음악은 불완전하고 여전히 나는 작곡이 어렵다... 모순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이 불완전성이 나를 여전히 음악 속에서 살게 하고, 음악을 만들게 하며, 음악으로 숨쉬게 한다. 나의 불완전과 불안 사이 어디쯤을 메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피아노의 숲에서 마냥 서성이고 있는가 보다. (43) *완전무결 함정 탈피 그 모양이 얄미우면서도 천연덕스러운 밀고 당기기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모두 다 내팽개쳐버리고 싶다가도, 마음에 드는 멜로디 몇 마디 쓰고 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44-45) *기분 무드 취함과 실제 장악은 다르다아 ==> 친구는 JYP, 김형석 등에 대한 내 신임에 “방시혁과 다를까?” 물었다. 정권과 예술 문화 사업 커넥션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에 “정치적 타협 부분이 있겠지”라며 넘겼으나 (이잼처럼) 그럼에도 결국에는 다름에 이를 거라고 본다. 희망사항. 정준희 교수가 여론은 구름 같은 거랬다. 그나저나 책의 말들이 순하고 아름다워 읽다 말겠.. 뭐래 ㅎ 그러니, 삶의 여정 속에 있는 그대여,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쉽게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그 일은 또 다른 문 하나를 여는 열쇠일 수 있으니. (53) *개인도 조직도 마찬가지 라면 아이들은 동요를 듣고 나면 노랫말에 자기만의 상상력을 더한다... 동요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수단이 아니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54-55) 그러고 보면 음악에서 모드는 인간의 기본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리디안은 기쁨, 도리안은 희망, 프라지안은 우울과 불안, 로크리안은 긴장과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도 (바이브처럼) 저마다의 모드가 있다. 그 사람의 정체성, 인간적 인격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그게 바로 모드가 되지 않을까. (56) *모드(감정 스펙트럼) 음악 수업 음식은 내게 특별한 이벤트라기보다 평범한 생활이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음악은 ‘생활 음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그저 삼시세끼를 챙겨 먹듯 음악을 만든다. (59) *내가 가진? 근성과 탄력성 ‘궁극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생활 속 어느 갈피에 숨어 있다가 홀연히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한 맛. 이 맛에 살아나고, 이 맛에 도전한다. (61) 낱말 줍기 >> 싱그러운 감정, 인류의 원형, 뚱땅뚱땅, 동요 가요 뽕짝, 반발짝 앞으로 조금 가보는 연습, 무위 자연; 관조 렛잇비; 순리대로 살아가라, 톡,톡,토독, 멜로디라는 고양이랑 놀기, 청량한 여름 바람, 보슬보슬한 봄비, 음악적 감수성과 천운; 호사,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꿈의 크기 울타리 치기, 선선히 그래라 했다, 논바닥보다 깊은 주름, 보름달 빵; 달님 감사합니당, 쐐기를 박다, 발돋움; 발판, 아이의 감수성, 눈물방울, 미식과 식도락; 별미, 창작; 연금술 제련과 정제, 속내, 그랬던 때가 그리움
♪NOBODY , 버뜨 유 - - - @sunk481 (서 대행아) 몰라서 모른다고 한게 아니라 사달라고 한거같은데? 버릇 어디 안가지 + 아무것도 아닌에 이어 들리는 꽃타령은 지가 V0였다는 자기 인증이넹. 걔 가스=3 라이팅 여전 행. 주목 받기도 가지가지 짜깁기, 어떻게든 전시 중중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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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다면 엉뚱한, 뜬구름 잡는 주제인데 뚝딱 곡이 나왔다. 아, 이제는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겠구나! ... 우리는 A.I.가 만든 음악을 들으며 감동받을 수 있다... 음악 창작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었다. 한마디로 음악을 만들고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갖고 놀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15-16) ‘재미도 없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싶기도 하지만 이 책을 내가 이뤄낸 것들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지금도 머리 싸매고 끙끙거리는 고민에 대한 것,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것,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것,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호기심과 질문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완전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18) ==>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물음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넌 알고 있어. 보이지 않는 마음, 들리는 소리가 되고 소리는 공중에 흩어져도 음악은 내 안에 남아. (27) 음악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없으면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게 된다. (30) ==> 작곡가 겸 뮤지션은 “슬프게도,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라 한다. 음악을 잘게 쪼개어 ‘분석’하는 대학 교육의 장벽과 전문성 고착화를 꼬집는다. 음악의 설계자라면, 영감은 마음에서 얻더라도 설계는 머리로 해야 한다. (31) 이제와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 그만인 것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33) ==>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으로 선진 팝송의 지배가 주춤하게 되었다. 이어 노래방과 발라더 열풍도 가사나 한글 알림에 중요한 경로, 아니 통로가 되었다. 삶의 말간 이야기가 그리울 때, 도돌이표처럼 마음의 처음 자리로 돌아간다. (34)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감정도 달라지는 법이겠지만, ◎‘어떤 경험’을 해왔느냐에 따라 감정을 느끼는 변곡점이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39) 낱말 줍기 >> 새로운 바다; 압도적인 데이터와 기억(메모리) vs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성, 엉뚱한 수; 삑싸리의 미학(봉준호), 숲의 자장가; 잠들 숲의 레퀴엠, 작곡가의 숙명, 마스터키, 밤하늘의 달처럼 빛나는; 부드럽게 감싸 안는 온화함, 노래에는 ‘나의,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위로’, 더 먼 곳을 보기, 맑은 슬픔; 소년성; 순수하고 묵묵함, 진심과 농담, 순/진한 마음, 하회탈을 닮은 함박웃음, 천국의 형, 노래는 감정을 담는 그릇, 한 시절의 유난한 감정, 낯부끄럽고 어설퍼 vs 노련; 연륜과 경험치, 빛바랜 편지지의 글자들; 그때만 쓸 수 있었던 노래들 == 온 신경이 5년 만에 강남 방문에 가 있어 책 읽기도 방송 시청도 사유도 분절적이고 흩어지는 나날이었다. 젊은이들은 메인 스트리트(중심가)인 그곳에 무리하더라도 방을 구해 살던데. 역과 인도의 인파만 생각해도. 건물 외풍과 들끓는 대로가 먼저 떠올라 숨이 헉 막힌다. 한때는 한여름에 거기까지 학원도 다녔고.. 서초 중앙도서관에서 독립한 어린이도서관이 그리로 옮겨 드나들고.. 대학들 스쿨버스 거점이라 분주히 다녔던 곳이다. 9일~10일 오전 실내 온도가 26도였다. 가을 같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 한낮에도 대로변을 걸었다. 무릎 통증 때문에 계단이 힘들어 노약자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다. 택시를 타느냐, 가족 편에 가느냐 의논 끝에 전철을 탔다. 날씨가 오락가락하니 기상청 예보‘관’인 몸이 부대꼈다. 그래도 평지 걷기는 수월해져 소나기도 오겠다 전철을 탔다. 이전과 달리 공사 현장 관리도 세심해졌고 온열 환자 예방책인지 공공기관과 시설이 쾌적하다. 눈에 띄는 변화라서 잼통님 베리 땡큐~ 민생 지원금 안 받은 5% 중 1인 신청, 지방은 오만원 더 줬.. 고마워 하자 쫌 어떻게 동대문운동장 인파와 계단을 뚫느냐가 관건이었다. 8시간 내내 붙어 집중 마킹해준 선생님 덕분에 잘 다녀왔다. 비교적 한갓지게 사당으로 앉아서! 왕복 이동할 수 있었다. 강남도 기피하지만 사당 경유는 7년도 더 된 것 같다. 여러 기억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곳이라 무의식적으로 피한 것 같다. 사람은, 아니 내 마음이란 참. 그냥이 없다. 여유있게 움직였던 터라 책을 넣어 갔는데 한줄도 못 읽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을까. 할리스에서 빵은 하나만 사서 나눠 먹자는 선생님 말을 뒤로 하고, 고집 피워 계란 샌드와 파니니로 배를 채웠다. 이것도 어느 여름 강남 결혼식 갔다가 음식이 떨어져 ㅋㅋ 배곯았던 기억의 작용이다. 몸의 기억과 반응이라지만. 어리석었다. 뷔페 요리는 담기만 하고 남겼다. 먹고 싶은 것만 담았는데 아까비.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고 해서 상비약과 겉옷을 챙겨 갔다. 아니나 다를까 블루보틀커피 한모금도 못 마시게 배가 아팠다. 선생님들도 배부르다고 안 마셔서 테이크아웃해 집에서 먹었다. 진하고 쓴 맛이 좋았다. (라떼 아트) 크림 에칭이 들어간 우아한 백조의 꼬리부터 살금살금 마시는 선생님. 잎사귀들은 훅 베어 마셔도 잎사귀를 유지했다. 7말8초 무더위 어디 갔노. 한낮 걷기도 무난했다. 날씨는 신의 한수였고.. 결혼식(장)에서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울 교수님이 얼마나 잘 사셨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두가지 기억에 남는 현장을 담아보겠다. 뭐니뭐니해도 무대 체질을 선보이셨다. 오랜 교직 이미지 싹 지우셨다. 연분홍 치마 흰 저고리 한복에 올림머리, 거기에 렌즈를 끼셔서 고운 어머니로만 보였다. 어느(ㅋ 하필 드라마) 교수님은 교수님을 못 알아봐 찾아 다니셨다. 덕분에 “희곡을 전공하셨어야”와 “무슨 소리. 역사소설 애독”하시는데 후담을 나눴다. 극 중 최고봉은 역사극 ^ㅅ^ ‘혹시?’ 하던 우리 일행은 교수님을 발견하곤 그만 와락 안아버렸다. 사부님을 비롯해 나머지 가족과 인사하는 시간이 감사하고 즐거웠다. 퇴임식 때(22년 아니 벌써 ㅎ) 하도 그지 같이 하고 가서 이번에는 안 그러고 싶었는데 ‘간 게 어디’에 만족하고 만다. 교수님의 짜안! 역할 수행성performativity에 놀랐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총동원, 아니 교수진들의 동행 의리에 반했다. 팔순 교수님부터 젊은 신임까지 자리를 지켰다. 결론적으로 과거를 살게 아니라 “현재를 살자”를 다짐하게 하는 곱게 나이드신 표본들이다. 오는 오늘을 맞이하고 빳빳 권위가 아닌 둥근 웃음과 덕담을 잊지 않는 모습을 닮고 싶다. + 12일 이해찬 고문님 깜짝 등장 :) 음..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는 둥글고 더 맑게 교수님들을 대하고 싶다. 짧게 스치는 데 “흰머리는 뭐냐”고 하셔서 “새bird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스치는 데 “학교에 있을 땐 이마에 ㅅ자가 잡혔는데 편해 보인다”고 하셔서 “계속 좀 아팠는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좋네요” 했다. 홀이 혼잡했던지 단체 사진이 아니라 한명씩 사진 촬영을 원하셔서 당황스러웠다. 웃지 못한 것도 같고. 시르면 ㅅ자 안 비밀, 후진 마이 멘탈리티. 북적되는 인파 속 여러 동시 시트콤에 식당에선 웃다가 끝났다. 나는 아이, 모르겠다 싶으면 계속 웃는 버릇이 있다. ‘찰칵’ 웃어야 할 땐 안 웃고 뭔 지롤인지 ㅋㅋㅋ 선생님 말대로 지금이 가장 정상, 그나마 좋을 때라는데 치렁치렁한 머리도 자르고 나이에 맞게 단장 좀 하고 그래야 할.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1998) == 김어준 총수는 자칭 김건희 연구가라고 자평한다. 연구가라. 몇줄 요약할 수 있다고 해서 공부를 마친 듯 말해도 될까. 그저 일부 맞을 뿐이라, 취합과 여러 각도의 확인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기 기여와 공로가 있다고 본다. 긍데 쏘리 재명 0기 출신인 나는 사람들이 저쪽 41%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간과하는 듯하다. 뭘 해도 괜찮은 대쪽 인구가 지방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잼을 지지하나 줄서지 않는 당원에 속한다. 민주 정부 4기라는 말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빚진 것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게 나와 같은 정치 입문 뉴 멤버의 정체(성)라고 주장하고프다. + 털고 가는 가뿐한 걸음으로 광복절 사면을 받아들인다. @shinis5155 네.. 그러니 빚 다 갚았습니다. 이제 스스로 헤쳐가시길 좀 과격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멍청하게 당하는 민주당 시러시러! 조심스러우나 솔직히 말해 보겠다. 노통의 검사 상대나 조국의 가자 상대가 2분할 화면을 꽉 차지한다. 그런 뻘짓 하지 않는 이잼에서 잼통을 (응)원한다. 조국 한사람이 문제인 게 아니라 조국이 들어간 그 당이, 세력화하는 이쪽의 다시가 싫은 거다. 부활전도 아니고.. 국힘과 개신이랑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결례인가? 민주당의 수박스러움 못지않게 특정 지역으로 대변되는 기득 세력이 우려스러운 거다. 새 정치가 아닌 것이 걸림돌로 작동한다. <유시민낚시아카데미>에서 유 작가님도 “지금 어떠냐, 지금 어떤가”가 핵심(사항)이라 했다. 과거에 좀 그랬어도 갱신과 우여곡절 끝 다시 태어남은 품고 봐준다. 최소한 맡은 일-잘러라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뭐라 군말하지 않는다. 눈엣가시가 줄지 않고 계속 튀어 나오니까 실망의 원성이 터져 나온다. 바로 말하자면, 끼리끼리 줄서기는 윤어게인 내로남불 버전 같아서다. 다음 선거에만 눈쏠림과 눈독들임을 읽고 아는 거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2-3년 주기) 유효기간이 있어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감정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새롭고 풋풋해야 솟는 도파민에 점령됨을 지나, 테토~ 에겐~ 넘어 옥신~(케어 애착에 필수인 호르몬) 바소~(외도를 막는 호르몬)를 붙이자는 시대를 좀 반영하자. 바이크를 소개하는, 그 바소 아니고요. 충실함의 바소프레신을 말합니다. 이번 <마로니에 27회>는 인생 상담 코너 사이섬만 들었다. 어느 세대와의 티카타카가 제일 편한지 물었다. 우리는 몇 세대와 걸쳐 살까, 만만한 세대라는 게 과연 있을까도 싶다. 만권 박사는 농 진담 4-5세대라는데 그런 조건에서의 ‘소통’을 우리는 너무 쉽게 보고ㅠ 확신하는 것이 아닐까. 정준희 교수는 “공유가 주는 해소”가 과한 분노나 위아래 즉각적 분노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만권 책방 주인은 자기감정을 과도하게 분출하는 것도 ‘갑질’에 넣는다. 세대성-시대성,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살펴야 (함께)살 것 같다. 금주 <토요토론>에서 세대론을 다뤘나본데 아직 보지 못했다. 김내훈 패널 이름이 낯설지 않아 찾아 보니 읽은 <인싸를 죽여라>의 저자이다. 윤건희 공동정부가 국민들을 여러모로 대차게 공부하게 만들었다는. + 토요토론 29회 스윽 시청했다. <에르네스토 리클라우> 찜- 나름 깨어있다는 기성세대가 걸려드는 함정이 보인다. 특수 영역이 아니라 예술 포함해 재연 욕망이 일반화된 상태이다. 온앤오프 세계 속에 이미 걸쳐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변적plastic 외모 변모 가능성이 가져온 변화이기도 한데 고침이나 기계에 몸을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좀 더 보태겠다. 낫 어프레드afraid. 제발 보라 입술 치장한 김건희와 딸림 부속물들이 두려워할 것으로 쳐라. 정치검사질을 비롯해 조지 오웰의 <1984> 등에서 입질, 말하게 하는 방식이다. 걔는 국민(+국가)을 그리 괴롭혔는데 고문torment 좀 하면 안되나, 성역‘시’ 증말 눈꼴 시리다. + 국정농단 비리 종합세트인데 고작 소품 0부인 틀에서 만지작 아쉽. 김 총수 말대로 이제 시작이라면 좋겠다. 지인들은 강릉 권이 자살하지 않겠냐고 했다. 지역 유지 사우나 돈독 정치해서 빠져 나갈 거라 했더니 그럼 부산 사상 장은 왜 죽었겠냐고 했다. 처벌 받지 않을 거라는 저 인두겁 껍질皮은 판검사 출신에서 오는가. 겸공과 월말 김어준을 시청하고 마음과 신경을 다독였더만. ‘다스뵈이다’ 박구용 교수편을 시청하고 또다시 마음과 심기가 반반으로 갈린다. 70점은 넘겨야 같이 호흡하고 흐를 수 있지 않나. 권위주의 vs 자유주의 나눠 보는 도표화가 이해를 도울 순 있다. 하지만 나갈 방향을 타진하기엔 부족하다. 역부족이다. 이미 굳은 사고 ‘안착’ 논리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독재와 맞물리는 권위주의(라는 용어)를 단순히 권위주의라고 해도 되나. 극우를 흡수할 깔대기 용어가 될 수 있나. 보수의 연장선 포섭이 걸리나보다. 전우용 역사학자가 ‘인간’이라는 용어와 기준에 민감한 것처럼 나도 그런가. 그리고 경제 vs 사회 문화(예술)적으로 갈라 볼 수 있나. 경제가 돈의 흐름이고 사회 문화 자본과 누림을 결정하다시피하는 생활권에서 맞나 싶다.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그 물살 안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다. 2010년 엠비 교육 정책 아래 중간 없는 양극단화, 이유 없는 (능력주의) 숭배와 (개천의 용) 악마화를 키웠다. 김어준 총수와 박구용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이들도 ‘기득’권이라는 그림자가 따라 붙나보다. 그 낌을 인정하고 색안경을 한번씩 닦아가며 보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될까. 안경과 어른 판박이 얼라의 공포 정치는 <파리대왕>에서.. 한국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신세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1984> 등 역주행 읽기가 웃프다. 전쟁 판타지에는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처방한다. 보이 십자군 원정대 누구ㄱㅐ 사실 시민들은 조국 가족의 도륙과 멸문지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서초 광장에서의 한겨울 고생은 들어 아는 정도다. 반면 쏘리!를 외치는 이들 중엔 그때 자신의 결벽과 도덕을 가늠하고자 그를 밟은 입들이 꽤 된다. 박 교수는 당시 김 총수처럼 사실을 알아보지 않고 외면한 점을 반성한다. 그런데 박 교수의 외면과, 언플에 놀아난 시민들의 무지와 무관심과 무감각은 또 다른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총수 과科 vs 박 교수 과로 양분해 그들이 모두를 대표한다고 사고하고 접근하면 위험하다. 좌 우파 대결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초고속 혜안에 이를 수 있나. 권위주의 vs 자유주의, 사회문화 vs 경제, 네 개의 사각과 위치 구분으로 일반 대중을 설명할 수 있을까. 데이터 집계와 지표의 편집술, 어용 정설 화는 경계할 사안이라고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며 몸소 배워 익혔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분석 (이상) 모델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결과적으로 거의 실패라고 해도 무방하다. 해명을 보자면, 획기적으로 방향을 틀거나 현상을 예고하는 분기점 제공에 의미를 둔단다. 고통스러워서 안 알아본 자들보다 (거리를 느끼고) 모르는 세계여서 ‘판단 중지’하고 괄호 속에 넣어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나. 극우라면 모를까, 일부 극좌 포함해서. 당원이나 정치 관여층은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것들에 휩쓸려 입방아 찍는 덴(데어ㅠ) 흥미 없다. 얼라들이나 어르신들이라면 모를까. 이런 내 말도 또다른 단정과 재단일까. 좌파 운동권의 도덕주의, 거기에 묻은 권위주의만이 진보 혹은 자유 진영의 문제라고 보는가. 그들이 여기의 위계 ‘질서’를 만들고 장악했듯이 저쪽도 그런 거 아닌가. 권력이 상습적으로 독재로 넘어가는 구도. 껍질을 피부로 착각하며. 한국 정치 양당제에서 진보가 어딨어, 보수 스펙트럼에서 보자 하는 것도 다 이에 기인한 움직임 아닌가. + 베트남과의 경제 외교가 한방향이 아니라 기본소득 등 We Can. 으로 대변되는 미국 사회주의 분배도 머금으면 좋겠다. 이런 내 바람에 지인들은 아서, 아니라지만. 저엉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더는 없다고 할 수 있나. 다른 형태로 변이되었을 뿐 더 극성맞게 자기들만의 타워를 만들어 ‘사다리’를 밀어 버리지 않나. 올라간 사람이 밀든, 아래 사람이 치우든 간에.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아닌 땐 굴뚝 아냐~ 한국인의 “양반성 충전”과 퍼포먼스 압박을 다뤘다. 좀 더 무리해보자면 윤건희와 조국 사태는 정반대 현상인가. 신생 세력 포함해 기득권 세력이라는 공통분모로.. 종이의 양면처럼 맞붙지 않았나. 친구도 조국 가족 건은 특검하고 검찰총장 윤씨가 다룬 사건들을 다시 들춰봐야 한다고 말한다. 두 축 모두 평행 진행형 그러니까 나는 철학 교수와 진보 인플루언서 둘이서?! 입방아와 입맞춤이 시른가보다. 그냥 당원들이, 이잼 지지하는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사)를 스스로 쓰도록 두면 좋겠다. 당원 주권이나 국민 주권 시대에, 언행일치로 들어맞게 말이다.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미끄러지는slippery 생물 체이고 싶은 이들을. 요구든 욕구든 욕망이든 강물로서 유유히 흐르는데. 댐 건설하겠다고 나서지 말길 바란다. 무엇보다 시대나 세대에 맞춰 피사체나 소품 전시, 연구 대상화 하지 않았으면 싶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조사 결과물이라며 퍼뜨리는 독극물에 대항할, 아니 백신이나 면역체계를 이론화 정립하고 싶은 지적 야망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자세히 모르면서도 뭔가 걸리나보다. 여론조사기관 ‘꽃’이나 대중교육 자료 배포 ‘월말 김어준’과 <겸손은 힘들다>와 같이 독보적이고 획기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 같지 않은가보다. 그니까.. 내 요지는.. K-민주주의는 잼통, 민주당, 깨시민들이 알아서 써나가야 할 ‘컨’텍스트이고 열린 텍스트이자 (서로 돌보며 자라는) 백과사전 나무 같아야 한다. 엄하게 한뚜껑 '기타' 등등 변종을 건드려 키워줄 필요없다는 거다. 카르텔이 낳은 다 해먹으려는 김석열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거기 또이또이 셈셈 지인짜 물리고 지치고.. 극단적으로 시르다. 박 교수가 언급한 집회에서 먹거리 나눔을 되새기자. “이거 받으실래요?”와 막 던져줌의 차이를, 공통 감각의 변화 추이를 봄(목격)을 자기자신 들에게도 녹여 (관찰) 적용하면 좋겠다. 여럿이 경합 형태로 머리를 맞대고 들판의 풀처럼 생성해나가야 할 것이지, 행여 성급히 정의하고 툴에 넣거나 돌려 박‘제물’ 삼지 말라는 뜻이다. 불확실성, 흩어지며 행진하듯 뻗어나가는 뉴런 망 시대에 방‘정 맞지’ 말자 한다. 물론 박 교수의 성실한 현상 설명과 이론 덧댐과 미학은 학식(적) 차원에서 응원한다. 실제와 이론의 따로 놂은 외국 학계가 가진 병폐이자 위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론과 실제라 말하지 않음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지인짜 민주정으로, 실제와 이론이 병행하는 한국‘발’ 역사를, 해묵음 넘어선 쓰기를 기원한다. 애정하여 오래 함께하고프다. 둘이 좋음, 그럼에도 그게 다가 아냐. 다일 수 없어. 다이면 클나 ㅎ 신입도 바로 일할 수 있어야 뽑는데 정치인드라 언제까지 기다리고 말해줘야 움직이니ㅠ / 찐민주엉늬들 사랑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