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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아는 것. 그 책이 내곁에 오는 것. 그 책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을 때의 그 충만함을 아는지. 올 봄 공지영 작가가 딸 고3인 딸 위녕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때 한가지 책들을 소개하면서 편지처럼 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으며 메모해 놓은 책 중의 한 권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려고 구입한 책으로 다른 책을 읽다가 12월이 되니 괜시리 마음이 허전해져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가슴에 무언가를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집으로 오게 된 서머가 메이 아줌마가 죽고난 뒤에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때 느끼는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이다.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하는 사람은 서머 뿐만이 아니었다. 오브 아저씨도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 해 잘 먹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도 이처럼 슬퍼하는데 열두 살 아이인 서머는 얼마나 슬펐을까? 낡은 트레일러에서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사랑받았던 서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메이 아줌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해 나가는 서머의 이야기는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전,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 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중략)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 두고 간 것이다. ~~~~~ 9~10페이지 중에서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들은 커다란 선물같은게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아줌마가 서머에게 했던 다정한 한 마디 '서머,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라고 불러 주었던 말이다. 오브 아저씨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줌마와의 추억이 묻어난 낡은 대패톱에서 아줌마를 느끼는 것이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사랑을 받았던 서머에게는 아줌마를 잃고 아저씨까지 잃게 될까봐 더 힘들기도 했지만 아줌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언제나 오브 아저씨의 마음속에, 서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줌마를 느낀다. 오브아저씨와 서머가 아줌마를 잃고 힘들어할때 나타나 준 클리터스로 인해 둘은 아픔을 점점 극복해 나가고 희망을 얘기한다. 메이 아줌마의 영혼을 찾아 떠난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길 기다리신 거야.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넌 아마도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지. 넌 우리가 너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 124 페이지 중에서 메이 아줌마의 이 독백은 서머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다. 풍족했을때보다 오히려 모든게 부족하고 간절했을때에 만난 서머에게 모든 사랑을 주었던 메이 아줌마의 사랑은 책을 읽는 나의 마음속까지 따뜻해졌다. |
|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것이 동화이든 수필이든 그림책이나 소설책이든 간에 황량해진 내 마음, 서걱서걱 모래 바람만 부는 내 가슴에 따뜻한 기운을 넣어줄 글이 그리웠다. 한동안 무엇인가 쫓기듯이 불안했다. 이유 없이 불안하니 잠 못 드는 날이 늘어났고, 이침이면 식은땀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마, 어떤 지인의 죽음을 겪으면서 많이 나약해져 있었나 보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를 다시 느끼게 되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동화나 소설에는 악역을 맡은 반동인물이 주동인물인 주인공과 대립하기도 하고, 악역은 없지만 주변 환경이나 운명이 주인공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 책에는 악역은 없다. 다만 운명이 이들의 삶을 잔인하게 끌고 간다. 그래서 더 가슴이 시리고 아렸는지 모르겠다. 6살 소녀 서머는 엄마를 여윈 후(아빠는 누군지 아예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친척들 손에 짐 보따리처럼 귀찮은 존재로 전전하다가 친척이 아닌, 피 한 방울 전혀 섞이지 않은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를 만나 새 삶을 산다. 메이 아줌마는 뚱뚱한 온 몸이 오직 사랑만 담겨 있는 것처럼 서머에게 온통 사랑을 담아 키운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아저씨와 함께 한 삶은 가정의 따뜻함을 모르는 서머에게 따뜻한 가정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아주 잠깐, 오랜 장마 기간동안 잠깐 비추는 햇빛 같은 것이다. 메이 아줌마는 갑작스레 밭에서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난다. 그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오브 아저씨와 서머와의 슬픔이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메이 아줌마를 너무나 사랑하던 오브 아저씨, 역시 아줌마를 너무나 좋아했던 서머. 그들의 슬픔은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까? 운명이란 왜 이렇게 선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때문에 이별해야 하는 것,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죽음이 찾아들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은 알게 해 준다. 살아갈 의지를 잃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방황하는 오브 아저씨를 바라보는 것은 어린 소녀 서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다는 사람(일종의 영매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브 아저씨는 기운을 차리고 3시간 넘게 차를 운전하며 서머와 함께 페트넘 군까지 간다. 하지만 이미 그 영매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 올 때의 허탈감이란...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아저씨는 다시 생의 의지를 찾고 그동안 억눌렸던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슬픔이 울음으로써 터져 나올 때 그 슬픔은 이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은 독약과 같은 것이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 수도 있다. 통과의례의 절차를 밟다 보면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행해졌던 틀 속에 갇혀서 진정으로 자신들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해진 것들에 기뻐해야 하고, 정해진 만큼 슬퍼하고, 통곡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머나 오브 아저씨 같은 사람이다. 가슴속에 있던 응어리는 풀어줘야 한다. 한 발은 이승에, 또 한발은 저승에 걸쳐놓고 사는 오브아저씨가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슬픔이 안에서 폭발하지 않고, 눈물로써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어린 양녀 서머를 지켜야 한다는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다. 비록 6살에 서머는 엄마와 헤어졌지만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라고 했듯, 충분히 사랑해 줬고,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를 통해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은 세상의 어떤 험난한 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슬픔을 이기는 힘... 그것은 사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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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인의 죽음을 이겨내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슬픔을 견뎌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추억 속에 살아 있다 믿기에 죽음과는 별개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서머도 그랬다. 사랑하는 메이 아줌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슬프고 힘겨웠지만, 한번도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다 아줌마와의 추억을 계기로 더 이상 아줌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그제서야 자신의 슬픔을 드러낸다. 슬픔의 드러남은 서머가 좀 더 성숙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머의 슬픔은 처음으로 사랑받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이였기 때문이다.
서머는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다. 당뇨를 앓고 있는 메이 아줌마와 관절염을 앓고 있는 오브 아저씨의 트레일러에서 가난하지만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고아가 된 후 친적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서머를 우연히 아이가 없던 메이 아줌마 내외가 보게 되고, 그때부터 서머에겐 또 다른 삶이 펼쳐진다. 자신에게 한번도 주어지지 못했던 행복한 삶. 사랑을 담뿍 받으며 사는 삶. 믿기지 않았지만 서머에게는 그런 삶이 주어졌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덕분이었다.
서머가 아줌마네 트레일러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바람개비였다. 새들을 쫓는데 씌이는 바람개비가 아니라 온 집안에 걸려 있는 바람개비는 오브 아저씨가 메이 아줌마를 위해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오브 아저씨는 그 바람개비 속에 아줌마의 영혼이 들어있다고 말했는데, 아줌마가 세상을 떠난 후 아저씨의 말을 믿고 싶을 정도로 서머는 아줌마가 그리웠다. 오브 아저씨도 서머도 제대로 된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아줌마의 빈자리를 힘겨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저씨는 어느 날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 자신의 곁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서머는 아저씨의 슬픔이 깊다는 것만 인정할 뿐 아저씨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같은 반 친구인 괴짜 클리터스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저씨도 서머도 서로의 벽 속에 갇혀 슬픔을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클리터스가 서머의 집에 나타난 것은 하나의 자극이였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 서머는 괴짜 클리터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브 아저씨는 클리터스와 급격하게 친해진다. 그리고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 자신에게 왔었다는 말을 하게 되고, 클리터스는 심령 교회를 찾아가서 메이 아줌마의 영혼과 만나보자는 제안을 한다. 서머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외쳤지만 아저씨는 클리터스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심령 교회를 갈 계획을 짠다. 그렇게 셋의 엉뚱한 여행은 진행 되지만, 심령 교회는 문을 닫아 버렸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서머는 울음을 터트린다. 깜깜한 밤에 도착한 그들의 머리위로 날아오른 올빼미에 아줌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 아줌마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서머는 아줌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토로하듯 그렇게 서머는 슬픔을 드러냈다.
서머의 슬픔을 독자에게 더 진하게 전해 주었던 것은 메이 아줌마의 독백이었다. 서머를 사랑하는 마음, 서머에 대한 추억, 서머를 당신의 가정에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가 뒤얽힌 아줌마의 고백은 서머를 따라 울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타인에게 전해지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 아이를 자신에게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보다, 서머가 자신의 집에 오게 된 모든 과정에 감사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간 메이 아줌마. 오랜 세월 같이 살지는 못했지만 아줌마가 준 사랑만으로도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설 수 있는 힘을 서머는 얻었다. 메이 아줌마를 통해 사랑을 받은 서머는 더이상 세상에 홀로 떨어진 쓸쓸한 영혼이 아니다.
이 책은 당순히 슬픔을 극복해가는 소설이 아니다. 사랑이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메이 아줌마의 빈자리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도록 클리터스를 보내주었고, 클리터스의 도움으로 서머도 자신의 병폐에서 깨어나올 수 있었다. 메이 아줌마는 서머와 오브 아저씨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제 볼 수 없다는 극단적인 현실이 아니라 메이 아줌마의 추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들 앞에 펼쳐질 삶 앞에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좀 더 꿋꿋해 지라고. 좀 더 행복하게 웃으라고 말이다. |
| 깊은 슬픔을 품는 일은 '이 어둠, 이 겨울 그리고 이 차디찬 새벽에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고약한 듯 하다. 그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의 곁에서 함께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초반부를 읽으며 '너무 빠르게 메이 아주머니를 천국으로 보낸 것 아냐?' 라는 투덜거림을 가졌었다. 그러나 읽는 내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과 슬픔'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일상에서 함께 누렸던 사랑의 시선들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도...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충분히 그리워하고 슬퍼해야 마음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누구나 알만한 사실을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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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날, 오브 아저씨는 트레일러로 돌아와 에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에 있던 시보레 승용차 안에 앉아 그 날 밤을 보냈다. 그 고물차는 언제나 개집 옆에 있었는데, 무성한 잡초에 둘러싸여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오브 아저씨가 그 고물딱지를 치워 버리지 않는지 오랬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치른 뒤 그 안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보기 전까지는. 그 때 나는 알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브 아저씨만은 그 고물차가 반드시 그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었음을. 그리고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을. (9~10쪽)
6년 전 메이 아줌마와 아저씨의 따뜻한 사랑속에 거처를 옮겨왔던 서머. 부모없이 떠돌이처럼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내던 서머를 따뜻하게 가두어 주었다. 먹을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던 서머를 안타까이 여긴 메이 아줌마와 아저씨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가득한 가정으로 감싸안아준다.
그렇게 따사롭기만 하던 메이 아줌마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슬픔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아저씨를 보며 서머는 한없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이 해줄것이 없는 텅빈 자리를 보며 괴로워한다. 그런 서머에게 한가닥 희망을 불러일으켜주는 만남이 다가온다. 서머와 같은 괴짜친구 클리터스.
클리터스는 서머가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다. 같은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친구. 한동안은 감자칩 봉지를 열심히 모으더니 또 한동안은 단추, 무엇이든 모으기를 좋아한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에는 사진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전교생중 모르는 아이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모으는 아이다.
그런 클리터스가 어느날 오브 아저씨의 고물차 주위를 얼쩡거리다가 오브 아저씨 눈에 띄게 되고 오브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집 안으로 불러들인다. 메이 아줌마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그 무엇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던 오브 아저씨가 클리터스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클리터스는 집에 자주 놀러오고 급기야 아저씨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는 아저씨에게 반가운 소식을 들려준다.
죽은 메이아줌마가 아직도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브 아저씨의 마음을 누구보다더 깊이 있게 헤아릴줄 아는 마음 깊은 친구라는 것을 서머도 비로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클리터스 덕분에 아저씨와 메이는 조금씩 슬픔에서 헤어나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항상 지나쳤던 책. 표지만 보고 그냥 지루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책이었는데 뒷표지를 보니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꽉 짜인 구성이라는 등의 찬사를 보고 보게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정말 좋은 책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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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 천덕꾸러기처럼 친척집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던 여섯살 서머는 어느날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부부에게 발견되어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그들이 사는 곳은 산골짜기의 녹슨 트레일러,비록 가진것은 별로 없지만 아이 하나 키워 내기엔 넉넉한 노부부의 사랑으로 서머의 인생은 비로서 꽃피게 된다.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메이 아줌마는 자신의 텃밭에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오브 아저씨는 아줌마를 잃은 슬픔에 잠겨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만다.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려 하는 아저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열두살 서머에게 학교의 괴짜 친구 클리터스가 다가온다.메이 아줌마가 아직 그들곁에 떠돌고 있다고 믿는 오브 아저씨를 위해 클리터스는 신문에 난 광고 속 영매를 찾아가 보자고 제안한다.질색하는 서머와는 달리 오브 아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감추질 못하고,영매를 만나기 위해 셋은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데...
요즘 조카와 함께 TV를 보는 일이 잣다보니 연령대별 시청가능 표시에 예민해진다.내가 젤로 좋아하는 표시는 모든 연령 시청가可 표시인데,그런 표시가 붙은 프로그램일수록 대걔 머리를 쓸 필요가 별로 없다는 매력 때문이다.마음의 긴장을 늦추고 무턱대고 봐도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만만해 보인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책도 모든 연령가를 선호하냐면 그렇지는 않다.오히려 그완 반대로 너무 쉬운 책은 짜증난다.상상력이 부족한 나머지 현실성 희박해 보이는 책들,특히 너무 착하고 도덕적이고 감동적이며 사랑이 넘쳐나는 바람에 아무리 믿고 싶어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게 뻔해 보이는,신빙성 제로의 책을 만나게 되면 조숙한(?)어른들을 위해서라도 연령 상한가를 붙여주면 좋지 않겠나 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린이만 보호받아야 된다는 법이 어디있는가. 어른도 보호 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일지 어떻게 알겠어? 하여 세상살이에 지치고 감정에 무뎌진 어른들의 감성을 위해서라도 이런 책엔 필히 29세 이상 금禁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즉,한마디로 이 책은 어른이 보기엔 심드렁 했다.좋은 책이긴 했지만 어른 용은 아니었던 것이다.이렇게 건전한 내용의 감동적인책을 심드렁하다고 말하자니 미안하지만 어쩌랴,이미 난 어른이 된 것을.그리고 아이로 되돌아갈 생각도 없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