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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피렌체에서 완성한 이 작품은 그 전에 지은 '무지개(1915)'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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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되고보니 소설속에서 순수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즐겨 찾게 되었지만, 이 책은 고2 여름방학때 사전지식없이 멋모르고 그냥 일반적인 고전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이야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집어 들었었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읽기에 적당한 책을 정작 그 시절에 다 읽었고, 지금은 오히려 10대 소녀들이나 읽을 법한 책들에 빠져 있다.
그 당시만 했어도 적나라한 표현들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지금다시 생각하면 이 책이 그다지 '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어느 쪽이냐 하면 이 소설을 성인이 되어 다시 끝까지 읽고 났을 때 적어도 성적인 부분에 관한 묘사만큼은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고 믿어졌다. 이건 머리에서 '생각'된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느낀'감정이다. 이 소설이 천박하지 않고 명작의 대열에 서는 것에 공감한다고 해서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명작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질 수는 없다. 독자인 내가 주인공의 감정과 일치감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난 그 소설을 좋아한다고 인정한다.
성적 욕구에 앞서서 인간적 교감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 인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장지기에게 집착하는 코니의 일탈을 나무랄 수만 있을 것인가. 남편의 하반신마비로 인한 육체적 문제에 대해서만 불만을 품고 그것만을 이유로 불륜을 추구해 왔다면 난 코니라는 여성을 경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육체가 마비된 남편이 정신까지도 마비되었는지 심적으로도 아내에게 외로움을 가중시켰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지닌 여성다움에 감동하고 그녀를 배려하는 산장지기에게 마음이 기울여 졌는지도 모른다.
코니는 처음부터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찾아 안락한 사회적 신분까지 버리고 새 삶을 찾은 것을 나무라진 않는다. 만약 그녀가 남편을 진실로 사랑했다면 남편이 더이상 '남자'가 아니고, 자신을 다소 외롭게 한다고 해서 남편과 사는 한 집안에서 그것도 남편의 친구와 본능의 충족에 이끌리는 일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채털리 부인은 정숙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꽤 보수적 성향인 내게서 동정을 이끌어 내고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여성이었다. 보바리 부인의 행로를 대하고 느낀 의아스러움에 비교한면 그렇다. 하여튼 이 책은 언제까지나 '성적 표현이 신비로웠던'소설로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인류가 생긴 이래,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로 좋아들 하고 있습니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난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습니다 여자가 더 용감하고,좀더 솔직하게 이야길 나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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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사랑이란 플라토닉하고 정신적인 사랑은 고차원적이며 육체적인 사랑은 웬지 차원이 낮고 은밀하고 숨겨야만하는 것인줄 알았다 이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서로 마음만 맞으면 결혼전에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고 동거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려서 오히려 육체적인 순결은 별로 중요시하는 일은 없어져 버린듯하다
D.H.로렌스가 이 책을 써낸 시절 프로테스탄트의 청교도적인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의 분위기는 이 책을 외설적인 책으로 낙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에 대한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음은 세월과 사상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진정 아름다운 사랑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어 갈 때라고 강렬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에 귀기울여 보자 [인상깊은구절] "어째서 요즘의 남녀는 진심으로 서로 좋아하지 않을까요?" 하고 코니는 토미 듀크스에게 물었다 그녀는 그가 하는 말 속에서 계시적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왜요,좋아하고 있죠! 인류가 생긴 이래,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로 좋아들 하고 있습니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난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습니다 여자가 더 용감하고,좀더 솔직하게 이야길 나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