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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 김동인 /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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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소론이니 남인북인이니 오랜 붕당정치와 외척세력의 개입으로 민생은 피폐하고 적자가 대를 잇지 못하는 상황에 왕권은 흔들리던 조선 후기. 양녕과 같은 삶을 살던 흥선은 조선의 반전을 꿈꿨다. 왕의 생친이 섭정을 하는 전례없는 상황을 그 스스로 만들며 계획대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은 흥선. 아마도 일제의 침략이라는 대외적 정세가 없었다면, 3대 선왕의 외척이었던 김씨 가문
"운현궁의 봄 / 김동인 / 1933" 내용보기
노론소론이니 남인북인이니 오랜 붕당정치와 외척세력의 개입으로 민생은 피폐하고 적자가 대를 잇지 못하는 상황에 왕권은 흔들리던 조선 후기. 양녕과 같은 삶을 살던 흥선은 조선의 반전을 꿈꿨다. 왕의 생친이 섭정을 하는 전례없는 상황을 그 스스로 만들며 계획대로 조선을 손아귀에 넣은 흥선. 아마도 일제의 침략이라는 대외적 정세가 없었다면, 3대 선왕의 외척이었던 김씨 가문에 치를 떨던 과거로 인해 외척이 없다는 이유로 본인 스스로 간택한 민비가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쩜 많이 달라졌을까?




소년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장래 숱한 고난을 겪고 숱한 비극을 겪은 뒤에 태조 적부터 면면히 물려 내려온 사직의 소멸까지 친히 눈으로 보고, 왕자로서 능히 겪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일을 다 보아야 할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소년이었다. 영특한 눈, 총명한 눈으로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또 자기의 자격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가장 윗사람이고, 따라서 만인의 표본이 돼야 할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한다. 또 남을 눈 아래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호령할 만한 사람이나 호령할 만한 일이 있을 때는 호령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높은 집을 허락하지 않고 높은 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작다랗고 낮게 지은 집 안에는 비교적 거대한 체격의 주인인 시민들이 들썩거린다.이 시민이 가진 집에는 뜰이 없고, 뜰이 있을지라도 나무가 없다. 이층집에서 손 할 권리가 없는 이 시민의 집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높은 곳에서 굽어본다 할지면, 일면이 거무튀튀한 먹물의 바다일 것이다. 거무튀튀한 기와와 검게 덜민 초가지붕이 잇달리고 또 잇달려서, 이 시민의 가진 좁다란 길이며 좁다란 뜰은 추녀 끝에 가리어서 보이지도 않고, 고저가 없는 평균한 지붕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이 시민의 생활처는 물결도 없는 커다란 먹물 바다일 것이다.



"대감! 양녕 대군이 됩소사. 결코, 세상이 평하는 바와 같은 대감이 아니시기를 바라옵니다."



아무런 악정 아래서도 반항이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르는 이 어질고 착하고 기운 없는 백성과, 선정은 베풀고 싶지만 대신들의 낯이 어려워서 행하지 못하는 상감과, '선정'이라는 말과 '악정'이라는 말의 의의도 모르는 위정자들과, '의식'이라는 것을 인생의 최대 중요사로 여기고 있는 선비들-이런 사람들의 모임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신유년이 고요히 타고 넘어갔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불려는지 예측할 수 없는 임술년이 이르렀다.



야위고 창백한 얼굴이지만, 한번 그 눈을 크게 뜰 때는 등골로는 소름이 쭉 끼쳤다. 천연히 구비된 위풍-일조일석에 배우거나 스스로 짓지 못할, 그것은 왕자의 위엄이었다. 눈을 고요히 감고, 고요한 말로 하는 한마디의 명령이라도, 앞에 있 사람은 마음이 송구하여져서 저절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위풍ㅡ이것은 결코 배우거나 연습하여서 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천품을 타고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위엄이었다. 대사가 결정된 이후에는 한번 흥선을 찾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흥선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하였다.이 패기, 이 위력, 이 압력, 이 지배력, 이 통찰력 이래 반항을 하거나 대항을 할 만한 용기를 가져본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은 흥선 대원군, 주상 전하의 사친이오." 놀라운 성량-그 넓은 뜰에 태공의 말은 우렁차게 울리어 나갔다. "대왕대비 전하의 어명으로 오늘부터 유충하신 주상 전하를 협찬해서 이 사람이 대정을 보기로 합니다. 국정이 극도로 피폐한 오늘, 대소 백관들의 현력을 바라오."



진실로 거대한 야욕의 공전절후의 성공이었다. 항상 계획을 하며 진행을 시키면서도 일변으로는 스스로 코웃음 치고 싶던 이 야욕이 오늘날 성공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사이 십수 년간을 시정에 배회하며 시민들과 무릎을 마주 걷고 사귀면서 보고 들은 지식에 의지하여 그들에게서 고통과 중하를 제하고, 이 나라로 하여금 굳센 나라가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하여금 가멸은 백성이 되게 하고, 이 강토로 하여금 기름진 강토가 되게 하고, 이 사직으로 하여금 아직껏의 더럽고 추잡한 구태를 벗고 명랑하고 화기 찬 사직으로 만들어놓는다는 도정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e 2024.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