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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9일, 당시 열다섯이였던, (무슬림 기준으로는 성인이 되던) 말랄라는 시험을 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중이였다. 버스가 잠시 멈췄던 틈에 어떤 괴한이 올라 타고, 괴한은 누가 말랄라인지를 찾게 되고, 학생들은 말랄라쪽을 바라 보게 된다. 그 즉시 괴한은 이 말랄라에서 세발을 총을 쏘게 되고, 그 중에 한발을 왼쪽 눈쪽에 맞게 되나, 이후에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그 괴한은 자신이 탈레반의 테러리스트였음을 밝힌다. 무슬림이였지만, 파키스탄의 스왓지역에서 여자아이들의 평등한 교육에 애써온 말랄라의 아버지는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운동하던 사람이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말랄라는,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하지 않고, 여성도 똑같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주장하는데, 이 스왓지역은 2007년도쯤 이슬람 극단주의인 탈레반의 영향권이 들어가있었다. 탈레반은 CD, DVD, TV등도 모두 이슬람교리에 어긋난다며 태워버렸고, 여자아이들이 교육받는 것도 교리에 어긋난다며, 밤이면 여자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들을 폭파시켜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말랄라의 아버지와 그녀는 언론을 통하여 여성도 평등히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학교를 운영했으니, 계속해서 탈레반으로 부터 위협을 받던 중이였고, 말랄라도 언젠가 자기에게도 탈레반이 테러를 행할것이라는 것을 마음 한켠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니, 십대 초반의 나이로는 믿기어려운 용기있는 행동이였다. 그녀의 그러한 용기있는 행동과는 독립적으로 책 자체는 말랄라 자신의 이야기는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많은 부분이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파키스탄의 정치적 혼돈과 탈레반에 관해 이중적이면서도 무능한 대응등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사실 회고록(Memoir)에는 한 개인이 겪은 일에 대한 온전한 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기대가 크지만, 그 목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개인이 역사적 시대적 사건과, 살고 있는 곳의 배경과는 무관할수 없으므로 맥락을 이해시켜줄 배경과 그 배경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의 내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와 그 배경에 대한, 그리고 개인의 주장에 대한 균형을 Memoir로서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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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드니 오래 갖고 싶은 책이네요. 선물하고 싶어 재구매 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이 위협할때 그 소용돌이 속에서 단지 살아남는 것도 어려운데 민족을 위해 용기내는 어린 여자아이에게서 한국전쟁을 이겨낸 부모님을 찾게 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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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반, 이슬람, 무슬림, 파키스탄, 할랄...자주 보고 듣지만 생각해보면 자신있게 안다고 할 수 없는 낱말이다. 그것이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이 되어 이른바 '망명자'로(Asylum seeker or refugee) 도착한 무슬림이 상당히 많다. 그 1세대들 중 다수는 모국에서도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영어 한 마디 모른다. 심지어 문명의 수혜를 전혀 받지 못해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영어교육을 지원을 받는 등 '반쪽짜리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잘못이라고는 파키스탄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 뿐이데 인생의 90%는 이미 예측가능할 만큼 굳어져 버렸다. 망명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인 지원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정부를 압박하는 택스 페이어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수 국민들은 이에 크게 반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리라. 인도적 지원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게되면 마음이 180도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영화 같은 감동과 하룻밤에 읽는 역사책처럼 임팩트가 강하다. 내 나이탓에, 책을 읽는 내내, 말라라보다 그녀의 아버지쪽으로 더 마음이 쏠렸다.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위해 스스로도 목숨을 걸고 행동한 것에 더해, 딸 역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실천하게 하는 삶의 철학, 딸이 탈리반으로부터 머리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의 아버지로서의 마음 등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탈리반의 행위는 '독단/독선 vs 신념/정의'로 생각을 끌고 가는데, 반쯤 읽다 접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펼쳐 보면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될까? 입장차이는 곧 생각차이. 상대의 정의는 그의 독선, 상대의 신념은 그의 독단으로 보이게 된다. 그런데 그 다른 생각이라는 것이 종교라는 절대적인 색을 입으면 그 다른 생각은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된다. 신의 '절대성'은 다른 생각과 '절대' 만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이 일신교가 가진 근본적인, 잠재적인 불화의 불씨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을 통해 일신교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기는 하지만, 일신교도들 대다수는 너희들도 인정하는 관용성보다 우리만을 인정하는 통일을 강조하는 이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인다. 이 책은 '아직도 이런 나라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다른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그것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탈리반에 의해 얼룩진 파키스탄의 현대사, 여성의 권리가 없는 사회, 그리고 그 요동치는 파도 위의 가족에 대한 세계다. 우리 현대사가 오버랩되는 부분도 많다. 동시에 딸 가진 아버지로서, 소시민으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기계발서, 힐링서로도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