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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교사이고 싶다.
교직이란 보통 인간으로서는 중간도 하기 어려운 직업이며 ‘가르치는 것’은 찻잎으로 점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는 파커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교직의 아픔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여기서 파커의 주된 논의는 ‘훌륭한 가르침은 하나의 테크닉으로 격하되지 않는다.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에서 나온다.’라는 것이다. 교생실습 때 기억을 떠올려 본다. 첫 수업반 아이들은 파커의 말에 의하면 ‘지옥에서 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반응과 침묵의 교실. 그때 나는 껌벅껌벅 금붕어처럼 눈만 깜박이는 아이들 앞에서 진땀 꽤나 흘렸었다. 그 지옥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종이 쳐주기만을 기다렸고, 교실 문을 빠져나오며 나는 무기력한 아이들의 태도를 원망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책감에 빠졌다. “내가 수업을 너무 못 하는 것은 아닐까? 수업의 테크닉이 너무 부족한건 아닐까? 과연 나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꼈고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곧 모든 것을 ‘지옥에서 온 학생들’의 탓으로 돌렸고, 그 후로 난 무반응반의 수업에서는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을 진행시키지 못했었다. 그때 담당선생님의 지도교사 조언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것은 “교사의 열정적인 모습에 아이들은 하나가 됩니다.”라는 것이었는데, 다년간의 교직 생활을 했던 그의 눈에 보였을 나의 불성실함과 무능력함을 생각하니 몹시 부끄러웠다. 이 상황을 파커의 말을 빌리자면,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이 얼마나 충실하게 단련되느냐에 따라 그런 공포가 더 좋은 가르침으로 가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타성에 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인데, 교생 때 나의 모습은 후자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었다. “나로부터 무엇을 끄집어내고 얼마만큼 얻어 가느냐 하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재미있는 수업이 되느냐 지루한 수업이 되느냐 하는 것은 너희에게 달렸어. 학생들이 반응이 있으면 가르치는 것이 신이나지만, 반응이 없으면 나도 너희들만큼이나 수업이 재미없거든.” 성의 있게 준비한 수업에는 성의 있는 학생의 반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발언이, 이 책을 읽은 지금 교사로서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깨닫는다. 학생들이 따라오지 않아서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의사가 쉽고 가벼운 증세의 환자면 진료하겠다는 요구하는 것처럼 난센스인 것이다. 파커는 많은 교사들이 좋은 가르침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들어보라고 하면 ‘학생들’이라고 대답한다면서, 자신을 포함한 많은 교사들이 학생의 무반응과 침묵에 온갖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 공포는 ‘스스로 수업을 신통치 않게 진행 한다’는 두려움을 낳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포는 교사만의 공포가 아니라 학생들의 공포이기도 한데, 학생의 공포와 교사의 공포가 함께 뒤섞이면서 교육현장은 마비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의 공포를 파악하고 생생한 만남에서 오는 다양성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타자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서 타자에 대한 존경 혹은 사랑으로 옮겨간 지식의 방법과 삶의 방법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훌륭한 교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 뒤로 담당선생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 시험을 보는 듯한 기분 때문에 어렵고 불편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현직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우리 교생들은 많은 교사들이 교생의 참관을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내심 불편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파커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교사는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동료들에게 문을 닫는 다는 것이다. 교사는 자신의 경험을 별로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학문적 자유’라고 치켜세운다는 것이다. 즉, 나의 교실은 나의 성이요, 다른 영지의 군주는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교사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 달리 직무에 있어서는 참으로 독립적이다. 이렇게 교직의 개별화는 교육 능력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교육 기관은 무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커는 교사들이 커뮤니티 속에서 풍성한 재원을 얻을 것을 충고하고 있다. 즉 ‘동료교수’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서 대부분의 교사는 권위적으로 되기 쉽고, 진도를 나가야하고 지식을 전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수업의 질이 교사의 테크닉과 지식의 수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은 같은 차시를 다른 반에서 똑같이 진행하고, 심한 경우 앵무새처럼 농담까지도 똑같이 한다. 이런 경우,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기계와 무엇이 다른가? 서로 다른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각각의 다른 교실에서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은 학생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교단은 연극무대가 아니며, 수업은 연극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은 동일해야겠지만, 그 전달과정은 교실의 환경과 학생과의 소통 양상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시 교생 때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담당선생님께 매 차시 같은 이야기를 4개의 반에서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담당선생님은 “왜 같은 이야기를 하세요? 다른 이야기 하세요”라며 간단명료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몇 년의 경력이 있는 자기와, 교생인 내가 같을 수 있나?’라고 생각하면서, 경험이 부족한 교생인 내가 어떻게 매 차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원망하듯 속으로 반문했다. 나는 여기서 또다시 반성을 하게 된다. 학생들과 제대로 소통이 이루어진 교사라면 같은 지식을 전달하더라도 ‘학생과의 소통양상’에 따라 수업의 방법이 달라야 한다. 즉, 교생이었던 나는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생 때의 모습들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교사에 따라 환희일 수도 아픔일 수도 있다.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 자신을 교사라고 생각하며, 가르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는 교사가 되고 싶다. 제목처럼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준 이 책에게 감사한다.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온전한 가르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늘 가까이 두어야겠다. 훗날 가르침에 대한 마음이 헤이해질 때마다 채찍으로 삼으며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받아야겠다. 가르치며 살 수 있다는 것,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다.
2007.07.08 |
| 작가는 이 책에서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자아의식)에서 나오며 훌륭한 교사는 교실에서 느끼는 학생과 교사간의 공포를 극복하고 학생들과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감이라는 그물망을 구축하여 교사의 자아와 학과, 학생을 진리의 그물 속으로 한데 촘촘히 엮어 학생들 스스로 하나의 진리 세계를 엮어내어 스스로 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유아를 가르치는 교육 현장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딱히 무엇이라고 꼬집어 낼 수 없었던 생각들을 작가의 새로운 시각을 통하여 접하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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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과목 수강중.. 레포트 때문에 읽게된 책입니다. 처음에 제목만으로 봤을때, 그저 교단에 섰을때 주눅 들지 않는 노하우 정도를 공개해주는 그런 책인줄 알았는데... 직접 읽어보니깐, 정말 가슴에 와닿네요... 이 책은 가르치는 '테크닉'을 말하지 않습니다. 1장에서부터, 가르치는 자는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필자는 말해주네요.. 그리고 어떤 강의에서든, 최고의 강의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바로 나의 강의를 선생과 학생이 같이 공감하는 분위기.. 열정을 논합니다.
책 표지는 깔끔하니, 보기 좋구요.. 각 장마다, 그 장에 대한 요약 정리가 되어 있어서 보기 좋았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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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꽤나 무모한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이제 내 안의 용기의 질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용기를 더 많이 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무모하고 무식한 용기 대신에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애써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용기라는 게 나만을 위해서나 혹은 남만을 위해서만 발휘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발휘할수록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올해 내가 읽은 책 가운데 10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내게 가치 있었던 책이다.(10손가락이 넘으면 다른 책을 빼리라.) 내 직업이 교사여서 중요한 책이 되었다는 게 아니다. 내가 사람이라서, 매일매일 배우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매일매일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결국 내가 이 사회 안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일원이어서 이 책은 내게 중요했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인지, 어떤 태도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나를 키우고 나를 다듬고 나를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책 안에 나오는 '공포'라는 개념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무섭거나 두렵거나, 거부하거나 거부당하거나, 삶의 문제이고 지침이다. 우리는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이 두려운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쉽지 않아서 날마다, 매번 쓰러지고 다치고 아파서 울게 되는 것이리라. 힘을 내어 일어서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일어설 힘조차 없어서 주저앉아 포기해 버리는 무수한 영혼들, 우리가 용기를 내어 가르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영혼들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생명을 갖게 된 근본이 다른 영혼들의 도움이었으므로.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붙잡고 있었던 책이었다. 금방 덮지도 못하고 훌렁 넘기지도 못하고 사이사이 다른 책에 눈흘기면서 끝내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했다. 내게 읽을 기회를 준 모든 상황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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