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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화전쟁 - 공화국과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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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히잡 착용한 여중생들이 퇴학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1989년. 이후 거의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까지도 히잡 착용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하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일관되게 지켜온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여기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이래 궁극적으로 '단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공화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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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히잡 착용한 여중생들이 퇴학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1989년. 이후 거의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까지도 히잡 착용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하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일관되게 지켜온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여기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이래 궁극적으로 '단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공화국'을 추구한다. 정교분리원칙,즉 '라이시테(laïcité)'는 프랑스 교육과 문화 정책의 근간이다. 제3공화국 시절인 1882년 '공립 학교의 비종교성과 의무 교육에 관한 페리의 법률'은 엄격한 종교적 중립성을 보인다. 1905년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률'에서도 이런 관점은 이어진다. 히잡 착용 금지법이란 비난을 받는 '3월 15일 법' 즉 '종교적 상징물 착용 금지법'이 2004년 제정된 것도 기본적으로 말해서는 공화국 정신의 계승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인종차별인 것도 사실이다.

 

책은 히잡 착용과 3월 15일 법 관련 논쟁을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민자 집단과 정교 분리 원칙을 내세워 이들을 프랑스인으로 동화시키려는 프랑스 공화국 간에 벌어진 ‘문화전쟁’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20세기 북아프리카인들의 프랑스 이주 역사, 이민 2세대의 현실, 프랑스 공화국의 명분인 정교 분리 원칙, 공화국 내에 만연한 이슬람 혐오 주의, 프랑스의 동화주의 정책과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해 꼼꼼히 짚어준다. 어찌나 내용이 충실한지, 읽으면서 여러 번 책 날개의 저자 사진과 약력을 펼쳐 봤다. (어찌나 보고 또 봤는지, 사람 많은 홍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도 저자분 얼굴을 알아볼 것만 같다. )

 

특히, 히잡 착용 당사자인 무슬림 소녀들의 입장을 언급한 점은 읽다가 내가 다 고마웠다. 저자는 프랑스인도, 북아프리카 인도 아닌 이민 2세대 소녀들의 정체성 혼란을 말한다. 사실, 이게 핵심 아닌가? 프랑스 정치인이나 이슬람 남자 어르신들 입장이 뭐가 중요한가? 히잡을 쓰는 당사자는 이민 2세 소녀들인데. 보라보라, 페미니즘이란 무조건 '여권 옹호, 여성 상위'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를 보는 시선에서 여성주의 관점을 가지고 다른 시선으로, 더 약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도 나는 이 저자분이 좋았다. (홍대 거리에서 저자분 만나게되면 무조건 커피 한 잔 마시자고 들이댈 생각이다. )

 

뭐 맥빠지는 대목도 있긴 하다. 타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만이 이러한 이민자 문제와 그에 따른 민족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고, 두 공동체의 공존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란 결론은 좀 뻔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이상 다르거나 근본적인 결론이 나올 수 없긴 하다.

 

사족 : 저자의 능력에 더해, 책세상 문고의 기획력에도 감탄했다. 다른 출판사의 문고 시리즈들이 안전하게 고전적 내용을 설명하는 백과 사전의 한 항목 서술같은 구성인데 책세상 문고는 '우리 시대'라는 타이틀 그대로 지금 여기 우리 시대에 생각해봐야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은근 유행을 안 타는 낱권들이 많다. 대단한 기획력이다. 필자 섭외며, 필자가 송고한 원고를 놓고 방향 짚어가며 함께 이야기하는 등, 추진력 강한 데스크와 에디터들이 열일하고 계신 것이 분명하다.

 

m******n 2016.10.08.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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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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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아는 언니와 함께 한달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1년여동안 준비하면서 책도 많이 읽고 프랑스의 예술을 공부하는 수업도 하나 들었었었다. 비단 그 수업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지키고 이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철학과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실제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영국과 더불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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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아는 언니와 함께 한달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1년여동안 준비하면서 책도 많이 읽고 프랑스의 예술을 공부하는 수업도 하나 들었었었다. 비단 그 수업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지키고 이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철학과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실제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영국과 더불어 다른 그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흑인들을 보면서 아 역시 프랑스는... 이라고 생각했었다. 프랑스 역시 영국과 더불어 제국주의 국가로 많은 식민지가 있었음을 애써 무시하며 저 사람들이 이 나라에 있는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그들이 살기 좋고 프랑스 역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에 따라 그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 논문은 나의 이런 환상을 깨부수기에 충분했다. 프랑스라는 국가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는 하나의 집단이라는 점, 단순하지만 내가 만들어진 그 환상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점을 다시 보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책은 어찌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1989년 파리 근교의 한 중학교에서 여중생 3명이 히잡을 벗지 않으려고 하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사건이 그것이다. 종교가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참으로 이상한 사건이다. 히잡이 뭐길래 여학생이 퇴학을 감수하면서까지 벗지 않으려고 했고, 히잡을 쓴게 뭐 어때서 퇴학을 시키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 양쪽의 입장 모두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이상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왜 프랑스 내에서 커다란 논란이 되는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선 여학생 3명이 학교에서조차 히잡을 고집한 이유를 살펴보면 나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은 프랑스가 지배한 식민지에서 협정에 따라 프랑스의 필요에 의해 이민해온 노동자 계층이자 흑인이고, 이슬람 교도들이다. 백인이자 카톨릭이 대부분인 프랑스와는 매우 상이한 배경과 출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프랑스의 식민지 국민들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세대 이민자들은 프랑스와 동화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출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자신의 종교와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방편으로 히잡을 쓰게 된 것이다. 물론 부모의 강요와 같은 또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고 어린 나이의 그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민 2세대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그런 사소한 행동이 어쩌면 자신의 근본을 찾고자 하는 행동에서 나오지 않았나 한다.


 하지만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는 이러한 학생들의 돌출행동을 쉽게 용납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그들이 외치는 정교분리 원리는 학교라는 교육받은 시민을 길러내는 공공기관에 종교적 상징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게 한다. 또한 미국과 같은 다문화를 인정하는 국가와는 달리 프랑스는 이러한 다문화를 용납하지 못한다. 다른 문화들 역시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이상 하나의 통합된 상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히그들의 문화에 통합될 시민을 길러내는 학교에서 종교적 특수성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공화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히잡 착용을 금하는 이성적인 생각이라면 보다 감정적인 요인 역시 몇 가지 존재한다. 이러한 무슬림이 많은 이민자들을 함께 묶어 그들과 자신들은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 그들이 무엇인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 실업과 경제불황과 같은 문제를 그들과 연관짓는 생각 등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그들의 생각또한 그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여러 통계수치들로도 증명되는데 인권과 자유의 나라라는 프랑스인들의 생각이 외국인에 매우 배타적인 면모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2003년 제정된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하는 법이 인종주의적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생각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과 관계가 있지 않는가 싶다. 세계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를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문화를 누렸던 영광을 생각한다면 프랑스인들로서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전혀 다른 문화를 납득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서 점점 이슬람 문화가 커지고 그들의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이슬람 문화가 도리어 프랑스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역습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그들의 감정적인 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무슬림들은 히잡 착용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프랑스는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을 법으로까지 제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히잡사건을 문화전쟁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이민자 집단과 프랑스 사회로 동화시키려는 공화국 간에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전쟁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전쟁이라고까지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거의 10년여간에 걸쳐 그 논란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다른 형태로도 그 충돌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진 파괴성 때문인지 나는 문화전쟁이라는 말에 쉽게 동의하기가 힘들다. 프랑스라는 나라와 그 나라에 이주한 이민자들처럼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사는 경우는 역사상 매우 많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부터 로마제국, 현대 다인종 국가의 대표적인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은 헬레니즘 문화를 낳았고 로마제국은 지금까지도 그 영광을 되새기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문화적 충돌이 없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 충돌은 지금의 프랑스가 처한 상황보다 그 여파가 작았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로마에 기독교가 처음 공인되기 전 무수히 많은 순교자들이 죽은 것처럼 훨씬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기독교 공인을 통해 종교의 단일을 추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역사상 많은 충돌이 일어났지만 그것이 전쟁과 같은 파괴성을 띄기는 힘들다. 어떤 형태로든 그 문화는 어느 한 쪽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문화를 만들어냄으로서 계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역시 문화전쟁이라기보다는 문화 충돌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문화와 이민자집단으로 대표되는 이슬람문화의 충돌로 말이다.


 이 책은 꼼꼼하게 잘 쓰여진 논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짜여진 구성과 여러 예시들, 통계들, 인용문들이 훨씬 더 사실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게 하였고 동시에 납득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민자 집단의 입장의 정리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설명하듯이 프랑스에서 단일한 조직력을 보이는 이슬람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프랑스의 각종 정치가들의 말과 사설, 기사들을 인용하는 것 만큼 이슬람 집단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소녀들이 히잡을 착용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단순히 부모들의 강요인지 자발적인 의지인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해서인지 말이다. 문화적 정체성을 위해 히잡을 쓴다는 소녀의 인터뷰가 실려있긴 했지만 프랑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한 스타지 위원회의 결과처럼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히잡을 쓰게 된 소녀의 사례는 구체적으로 제시해두고 있지 않았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 그들이 스카프를 둘렀는지, 거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통계가 조사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페이지는 주석과 머리말을 제외하면 130쪽 남짓한 분량이다. 일반 소설이 500쪽을 훨씬 넘어간다는 점을 보면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매우 커서 상당한 고민과 생각을 필요로 했다. 문화란 무엇인지, 그러한 문화적인 충돌이 왜 일어나고 이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은 무엇인지, 가장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롭다는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그러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더불어 이러한 문화적 충돌을 파괴적인 전쟁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또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재생산의 관점에서 봐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s****n 2007.06.0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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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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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적은 비용을 들여 양질의 상품을 생산해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과도 같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국가 출신의 노동력을 적은 비용을 들여 고용하는 것은 ‘선’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한 편으론 내국인이 종사치 않는 분야에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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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적은 비용을 들여 양질의 상품을 생산해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과도 같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낙후되었다고 여겨지는 국가 출신의 노동력을 적은 비용을 들여 고용하는 것은 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한 편으론 내국인이 종사치 않는 분야에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사회의 통일성 유지를 위해 우리와 다른 생김새를 지닌 이들을 강력하게 억압하는 이중성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바탕에는 신화와도 같은 단일민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미국이나 여타 다른 나라처럼 장기간 다양한 민족들이 한데 융합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우리가 이 분야에 있어 서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의 사례들을 보자면 이제껏 우리가 취해온 방식을 고수할 경우 수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폭발적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 우려도 있음을 염려하게 된다.

 

프랑스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치 중 하나가 바로 똘레랑스이다.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관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용어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강력하게 옹호해온 프랑스 사회를 지탱해온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역시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겪고 있는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모양이다. 일찍이 히잡을 학내에서 착용한 여학생 세 명이 퇴학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알제리를 비롯한 이슬람 문화권으로부터 이주해온 이들이 프랑스 사회에 문제시 되고 있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이 조심스레 흘러나올 정도로, 이러한 현상들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그러하듯 프랑스 역시 높은 실업률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이들 이슬람인들에 대한 배타성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민족에 대한 불쾌한 감정도 없진 않다. 하지만 유독 이슬람에 대한 강한 반감이 프랑스 안에 형성되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혹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명간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프랑스 사회가 요구하는 동화와 상반되는 것을 볼 때 이를 문명의 충돌이라 정의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단 생각도 든다. 오히려 하지 말라는 요구에 의해 형성된 것이 바로 이슬람 뿌리를 향한 젊은 여성들의 회귀인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사회는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의 위태로운 공존을 경험해 왔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엔 이주 집단과 프랑스 민족 사이의 이질성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이주 집단끼리도 결코 유사하지가 못했다. 이슬람 문화권 출신이라 하여 모두가 종교적인 신앙에 충실했던 건 아니었다. , 누군가는 강력한 근본주의적 속성을 품고 있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이미 모든 부분에서 프랑스인화 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이들을 한데 엮어 이슬람인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던 것이다.

문제는 프랑스인의 시선에 있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이질 집단을 한데 엮어 프랑스라는 하나의 집단을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똘레라스의 가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프랑스를 짓밟는다는 망상(?!)이야말로 프랑스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었을까 

 

이젠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우리 사회에도 도래했다. 그렇지만 다문화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우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거대한 혼란을 경험하게 될지 자못 걱정이 된다. 이미 우리보다 하얀 피부를 가진 이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가 그리고 검은 피부, 못 산다고 생각되는 국가 출신의 사람들을 향한 일방적인 무시가 이 땅에 만연해 있기에

이달의 사락 q*****2 2009.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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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월드컵 그리고 문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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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프랑스는 . 결승전 브라질을 3:0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한다. 생애첫 우승 그 당시 23명 엔트리중 16명은 프랑스령이나 아프리카 이민출신이거나 2~3세였다. 지단은 알제리 이민2세며 앙리와 튀랑은 프랑스 해외령출신이며 마케렐레와 비에이라는 아프리카 콩고와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거의 외인부대수준이였지만, 이는 프랑스의 “국민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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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프랑스는 . 결승전 브라질을 3:0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한다. 생애첫 우승 그 당시 23명 엔트리중 16명은 프랑스령이나 아프리카 이민출신이거나 2~3세였다. 지단은 알제리 이민2세며 앙리와 튀랑은 프랑스 해외령출신이며 마케렐레와 비에이라는 아프리카 콩고와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거의 외인부대수준이였지만, 이는 프랑스의 “국민통합”이라는 무형의 성과를 낳았다. # 히잡사건 80년대 말 프랑스의 한 중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복장의 하나인 히잡(차도르와는 다르다)을 착용한 여학생들이 퇴학을 당하는 사건이 발송했다. 흔희 말하는 관용의 나라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에 기초한 공화국 정신의 프랑스에서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는가? 히잡을 착용함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것이기에 학습권까지 박탈하며 그들을 내몰았을까? 여기에서 저자의 의문은 시작된다. 히잡을 쓴다는 것은 일차적인 옷으로서의 기능이 아닌 이슬람 문화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는 프랑스 공립학교의 원칙인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게 학교측의 주장이였다. 하지만 이는 내면적의 이유일뿐이며, 외면적인 이유는 어느세 프랑스의 제2종교로 부상한 이슬람과의 문화전쟁의 시작을 알리는것이였다. 관용의 나라인 프랑스는 좌,우의 구분없이 이 논쟁에 대하여 정도의 차이를 낼뿐이지 한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에 2003년 12월 프랑스는 “종교적 상징물에 착용 금지“법을 통과시키며 히잡논쟁에 일단락 짖는다. 이러한 시실은 유대교나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상징물에 대한 태도와 명확하게 다르게 보여주며 이것은 곳 이슬람에 대한 명확한 차별임을 보여준다. # 문명의 충돌? 반이민정책의 대표적인 정당이며, 신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극우정당의 당수인 르펜은 2002년 대선 일차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얻었다. 그 들이 주장하는 신인종주의 생물학적인 견해가 아닌 문화적인 특징을 기반으로 한다. 다른 문화적 종교적 전통을 가진 이민자의 위협적인 쇄도에 대해 프랑스 민족이 자신들의 특징을 보호하는 정당이라는 이념으로 10%가 상회하는 지지율을 획득하고 하였다. 이러한 극우주의자들의 기승은 9.11테러, 이슬람 극우주의자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마치 이살람의 모든 모습인 것처럼 보여주는 서방의 공정치 못한 시선이 만들어 놓은 문제이기도 하다. 『공개적 차별 정책을 펴는 대신, ''문화적 차이''를 가장한 극우파의 ''현실적 대안''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모습은 프랑스 공화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바로 그 얼굴 위에 분명 이슬람혐오주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 본문 126~127쪽에서』 샤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출동에서 예견한 이슬람문화와 기독교문명간의 충돌은 이곳 자유와 박애의 나라, 관용의 나라인 프랑스에 잃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상대방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편견과 두려움으로 인한 서로의 소통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과 공화국은 서로 두려움과 편견을 떨쳐버리고 이해하기 위해 한 발 더 다가설때, 두 문화는 비로서 화해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b******t 2006.11.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