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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 고종은 개명군주였나?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 고종은 개명군주였나?" 내용보기
오늘 발표된 친일인사의 명단에는 꽤나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독립운동가로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었는지라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였고, 그들의 후손 중 몇몇은 이를 두고 명예훼손이라며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광복을 맞이한 지 60주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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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표된 친일인사의 명단에는 꽤나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독립운동가로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었는지라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였고, 그들의 후손 중 몇몇은 이를 두고 명예훼손이라며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광복을 맞이한 지 60주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비단 친일파의 자손들이 사회의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제 식민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닌 것이다. 물론 일제가 의도한 것처럼 이를 우리의 근대화를 위한 절대적 조건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만 말이다. 한 나라가 주권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그 순간 가장 중심에 있던 인물은 바로 고종이었다. 물론 조선이 고종 혼자만의 국가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분명 조선은 왕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신분제 사회였으니 말이다. 지금껏 우리는 고종을 나약한 군주로서 이해해왔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우유부단하며 외세에 의존한, 이러한 입장의 해석은 지난 식민 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고종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논의들에서는 고종의 진취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으니, 이태진 교수가 간행한 <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2004)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본래 고(故) 김대준 교수가 1974년 박사논문으로 발표한 것으로, 이 논문에서 고종은 치열했던 상황에 대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존립, 더 나아가 비상까지 꿈꾸었던 개명군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은 이 논문에 대한 학자들간의 견해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드물다고 하는 5개월에 걸친 진지한 논의를 담고 있다. 김재호 교수의, 고종은 전제군주에 불과하다는 반론으로부터 시작한 논쟁은 점차 그 주제의 범위가 확대되어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갑오개혁과 광무개혁 등 다양한 사건까지 확대되었으며, 고종뿐만 아니라 기존 친일파로 매도되던 개화파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까지 이어졌다. 거기에 왕현종, 김기봉 교수 등의 참여는, 물론 논쟁이 너무 거대하게 확대됨으로 인하여 일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난점이 존재하긴 하나, 논쟁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중심적인 기준에 조선 사회의 발전을 꼭 끼워 맞출 필요는 없겠으나, 조선 후기 사회는 객관적인 수치상으로 볼 때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력이 향상되는 등 발전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의 자료를 100%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별개로 한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은 그 발전이 행해지고 있던 시기 일제가 적지 않게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주체적 역량을 부정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일본에게 감사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논리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객관적인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옳지만은 않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고종에 대한 해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당대의 국제법적 질서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주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는 입장도 있었으나, 그의 행보가 결코 근대적 의미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전제황권을 강화시키고 하는 일종의 반동이었다고 보는 이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 왜곡은 자행되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도외시한 체 제국주의를 포장, 자신들의 화려했던 지난 날을 부풀리기에 급급한 일본의 태도는, 역사로부터 현재가 그리고 미래가 비롯된다는 점에서 실로 위험하다 하겠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렇기에 중요하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이며 고종이라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논의가 하나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하여 논의가 무의미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은, 학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활용된 수많은 자료들은 분명 우리에게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q*****2 2005.08.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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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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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한제국 이해를 놓고 한 판 싸움을 벌였다. 교수신문을 통한 논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책,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관을 극복하며 세계사에 국사를 당당하게 위치시키기 위해 등장한 서사. 우리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교과서 사관이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보면 된다. 실학, 경영형 부농, 광무개혁 등 자주적 발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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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한제국 이해를 놓고 한 판 싸움을 벌였다. 교수신문을 통한 논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책,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관을 극복하며 세계사에 국사를 당당하게 위치시키기 위해 등장한 서사. 우리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교과서 사관이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보면 된다. 실학, 경영형 부농, 광무개혁 등 자주적 발전의 역량을 강조하고 일본 식민지 시기를 수탈과 저항의 도식으로 접근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뉴 라이트 계열의 수구보수꼴통들 - 미안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들이 정말 싫다- 이 주장하는 근현대사 이해다. 이들에 따르면,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사회는 개방 경제체제로 이행을 하게 되지만 본격적인 경제 성장은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내재적 발전론이 민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실증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둘의 입장 차이는 개항기로부터 현재까지 폭넓게 갈리고 있지만 이 책은 대한제국에만 집중한다. 대한제국이 내재적 발전론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너그러운 반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척점에 선다.

 

누가 옳을까. 진실은 무엇일까.

 

내재적 발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모두 근대에 집착하는 면모는 매한가지다. 근대가 자유와 해방의 요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이미 드러났다. 니체로부터 푸코, 들뢰즈, 데리다.

 

근현대사를 놓고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을 진행 중인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지만 둘의 지향 모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는 않다. 그럼 무엇이 옳은가.

 

좀 더 공부해 보자고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6.07.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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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식 근대화란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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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있어서 일제 식민지시대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시기이다. 이 지역에서 ‘한국인’이라는 역사적 종족 집단이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정치주권이 완전하게 다른 異종족 집단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또한 일본뿐 아니라 기타 외국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교차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타자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이처럼 격렬하게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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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있어서 일제 식민지시대는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시기이다. 이 지역에서 ‘한국인’이라는 역사적 종족 집단이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정치주권이 완전하게 다른 異종족 집단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또한 일본뿐 아니라 기타 외국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교차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는데 이들 타자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이처럼 격렬하게 일어난 것도 처음이라고 하겠다. 開化와 近代化는 언뜻 보기에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판이하다. 개화는 기존의 구조에 대해 골격을 유지하면서 말단부분을 변화시켜 적응할지, 기본적인 사상체계부터 고칠 것인지 하는 스펙트럼을 가진다. 반면 근대화는 ‘지금 이대로는 죽었다 깨나도 나아질 수 없고 저리로 가는 것이 역사적인 순리이므로 거스를 수 없고 거스르면 패배가 있을 뿐’이라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19세기 조선의 개화파가 말하는 ‘발전’이란 개념과 21세기 한국의 근대화 연구자들의 ‘발전’이란 개념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위해 지난 수십여년간 고군분투하며 여러 가지 연구성과를 내었는데 그중 ‘내재적 발전론’은 현재 몇가지 점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이란 식민사관 중 ‘조선 정체성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으로 실은 ‘일본의 내재적 발전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문자 그대로 보면 내재적 발전론은 어느 특정 사회의 발전의 기초구조나 기폭제가 외부보다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의 내재적 발전론은 물론 일본이나 서구의 영향이 없었어도 조선은 자체적인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일부 논자들은 여기서 나가 조선시대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한편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 식민지시대가 조선왕조와 조선민중에게 고통을 준 사실과는 별개로 한국사에 있어 근대화의 계기는 이 시기부터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웬만큼 급진적인 이가 아니라면 이를 토대로 ‘조선 정체성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사실 어떤 학자도 자신이 ‘내재적 발전론자’나 ‘식민지 근대화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때때로 토론현장에서 반농조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기실 상대 주장의 명제를 정리하면서 붙여진 수식어이지 명확하게 주장되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은 고종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얘기가 시작되지만 실제로 ‘충격! 고종황제 4백원 비자금 파문!’같은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그 4백원이 어떻게 조성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 그것이 의미하고 내포하는 대한제국기, 조선 후기와 일제 식민지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요구와 그에 대한 대응이란 문제를 말하고 있다. 결국 좀더 많은 자료검토와 후진들의 가열찬 연구활동을 주문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된다. 고종 개인에게만 시대의 조명이 모아지는 것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한국근대사와 인간의 시대인식,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다가갈 수 있다면 적절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고종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수시로 변하는 논의주제에 천천히 집중해본다면, 그리고 그때마다 느긋하게 가비차 한모금씩 해준다면 어떨까.
p*****r 2006.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