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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이해하기 위함의 책일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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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이해하기 위한 책일까 싶어 궁금함에 구매했습니다. 뇌과학 관점에서 통찰하신 관점들은 흥미롭게 읽었으나, 보편과, 휴리스틱 관점에서는 다소 설명의 편향성과 모호함들이 더 생겼던 것 같습니다. 냉철한 분석이 일반화의 오류로 자리잡는 듯한 날카로움들이 다시 한 번 복기해보게 됩니다. 나의 리버럴리스 라는 앞제목의 의미가 어떤것일까 궁금했는데, 양분화가 더 심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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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이해하기 위한 책일까 싶어 궁금함에 구매했습니다. 뇌과학 관점에서 통찰하신 관점들은 흥미롭게 읽었으나, 보편과, 휴리스틱 관점에서는 다소 설명의 편향성과 모호함들이 더 생겼던 것 같습니다. 냉철한 분석이 일반화의 오류로 자리잡는 듯한 날카로움들이 다시 한 번 복기해보게 됩니다. 나의 리버럴리스 라는 앞제목의 의미가 어떤것일까 궁금했는데, 양분화가 더 심해지는 세태 가운데,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전보다 완화될 수 있는 관점의 전문서적들과 진정한 이해 관점을 갈망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진보의 수호를 위한, 마케팅을 위한 제목에 그쳤다는 생각에 다소 아쉬웠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d*******3 2025.10.13.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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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본능-최정균] 260321_전작 대비 논쟁적이지만 여전히 읽어볼만 한
"[보수 본능-최정균] 260321_전작 대비 논쟁적이지만 여전히 읽어볼만 한" 내용보기
과학의 정치적 중립? 이다지도 노골적인데...어쨌든 특정한 현상에 대해서 유독 관심이 깊고, 거기에 따른 결과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관측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일베나 기타 다른 관련 서적에서도 수 차례 지적해 왔다. 다만 그러한 논의들이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저자의 전공 분야인 뇌과학이나 진화, 유전자
"[보수 본능-최정균] 260321_전작 대비 논쟁적이지만 여전히 읽어볼만 한" 내용보기

과학의 정치적 중립? 이다지도 노골적인데...어쨌든 특정한 현상에 대해서 유독 관심이 깊고, 거기에 따른 결과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우경화되고 있다는 관측은 예전부터 있어 왔고, 일베나 기타 다른 관련 서적에서도 수 차례 지적해 왔다. 다만 그러한 논의들이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저자의 전공 분야인 뇌과학이나 진화, 유전자 측면에서 관련 사항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내용은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불편할 만하다. 속된 말로 정리하자면 ‘보수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을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저급하다(본능에 충실하니까)는 느낌으로 읽힌다. 저자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그러나 본능을 거스르는 게 의미가 있는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보수적인 생각이 드는 건 책의 내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지만....(밑에 내용이 나오지만)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는 게 저급한 행동인지 고귀한 행동인지는 누가 결정한 건가? 저자가? 아니면 다른 위대하신 지성들께서?

 

진보에 대한 날 선 비판 중 하나가 자신들이 고귀한 척 젠체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임을 간과하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들이 아닌가. 그런 위선을 지적하고, 질타하는 게 지금의 이대남들이 아닌가? 거기에 진보는 어떻게 대답해 왔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존보다 고귀한 게 있는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철학을 얘기하며 결국 인간의 존엄성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잠재성을 현실화하며 형질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힘, 즉 창조적 진화의 주체(p.223)”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 최소한 존재라도 했어야만 한다.

 

예민한 주제를 가장 합리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그만큼 첨예한 반응이 예상되는 책이다.

 

리버럴리스는 자연(진화)의 산물이 아닌 문명의 산물이며,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이들이 신인류를 만들어가는지 모르겠다. 호모 사피엔스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분기점이 생길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유전자에 심어진 게 바뀌기는 근미래 안에서 쉽지 않을 거다.

 

논의를 소화하기가 어렵다. 분명. 그렇기에 회독이 필요하겠고, 읽을 때마다 또 새로운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일독 260321 / 작성 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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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보수의 심리 / 그저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 우리의 사회 체계다. 혁명은 예외적이며 일시적이다. 이것이 보수가 기성 체제를 옹호하는 이유다. / 보수가 지키려 하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본능이다. 체제를 정당화하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정당화하는 체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 사회 지배 지향성은 돈과 권력, 우익 권위주의는 권위와 관습에 대한 노예근성이다. 권위와 비교해 권력은 더 동물적이다. 고로 권력의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판 노예들이야말로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p.55

2장 보수의 뇌 / 보수의 뇌에서 휴리스틱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지적 ‘종결 욕구’ 때문이다. /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휴리스틱 본능은 왜곡된 능력 과시마저 정직한 신호로 착각해 받아들이게 한다. 이처럼 값비싼 신호가 교란된 상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기득권층이다. / 기존 신념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는 불확실한 대상을 무조건 과잉 경계하는 진화적 습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편향성이 끼치는 폐해는 인공지능의 문제보다 더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자연 지능’의 현실적인 위험이다. p.99~100

3장 보수의 유전자 / 세로토닌, 옥시토신, 리포칼린 등을 둘러싼 유전자들의 생물학적 기능과 진화적 양상, 출산율 통계 등은 보수의 유전자형이 생존과 번식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 성공적으로 진화한 ‘다정한’ 자들의 사회성이란 편협한 이타주의, 집단 이기주의, 권력과 위계에 대한 복종에 불과하며, 그들이 잃어버린 공격성은 불의에 맞서는 데 필요한 투쟁심이다. /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데 있다. 반면 진화에서 ‘적응’이란 인간 조건으로부터 탈출을 위한 몸부림 없이 자연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순응’을 말한다. p.136~137

4장 보수의 환경 / 인간 정치성의 표현형을 만드는 공격적인 유전자, 예민한 유전자, 탐색 유전자 등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 노화에 따른 보수성이 생존을 위협하는 개인의 생물학적 변화에 기인한다면, 젊은 남성들의 보수성은 번식을 향한 생물학적 본능이 경쟁적인 사회 환경에 반응해 나타나는 결과다. / 오늘날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아쥬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신봉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스스로 ‘비자발적 독신자’라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 p.174~175

5장 보수의 문화 / 보편적인 보수의 특징은 평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적 경쟁을 옹호하는 사회 지배 지향성이다. 공산주의 정권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익 권위주의는 강한 반공 정서를 형성한다. / 성서의 내용을 왜곡해 교리로 고착시킨 기독교는 인간의 진화적 종교성을 충실하게 충족함으로써 보수의 핵심 사상으로 군림했다. 한편 과학에 대한 불신은 음모론 맹신으로 이어진다. / 배타적 민족주의는 도덕적 범주가 협소해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한정되기에 나타난다.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배척은 전 세계 우파 정권과 근본주의적 종교의 공통점이다. p.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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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과 관련해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연구된 대표적인 세 가지 심리학적 기제는 체제 정당화, 사회 지배 지향성, 그리고 우익 권위주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가지 모두 보수의 특성을 기준으로 명명되었다는 점이다. 주어진 체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것, 사회의 지배 구조를 옹호하는 것,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은 모두 보수의 특성이다. p.24~25

체제 정당화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을,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생존에 관한 안전감을, 관계적 차원에서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p.32

안타깝게도 인간의 사고 능력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뛰어나지 않다. 기획과 설계보다는 인간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 우리 사회 체제일 것이다. 예외적으로 혁명을 통해 등장하는 체제는 일시적으로 유지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보수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심리조사를 했을 때 그들이 선호하는 체제가 바로 현 상태, 기성 체제인 것은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보수가 주어진 체제를 ‘정당화’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본성에 부합하게 구축된 체제를 ‘옹호’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체제를 정당화하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정당화하는 체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p.37~38

체제 정당화 이론과는 달리, 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 이론에서는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 본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한다. 이는 인간의 정치 심리가 자연선택의 결과로 발생한 본능으로서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38

조스트의 체제 정당화 이론은 이미 보수적 본성에 따라 구축된 기성 체제를 옹호하는 두 가지 심리 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다. 경제적 보수를 설명하는 사회 지배 지향성과 사회적 보수를 설명하는 우익 권위주의가 그것이다. 요컨대 사회 지배 지향성은 개인의 능력에 기반한 자유시장 경제 체계를 옹호하고, 우익 권위주의는 전통적인 사회 제도와 규범을 옹호하는 심리로 이해할 수 있다. 조스트가 인용한 라보에시의 ‘자발적 노예’라는 비유를 빌려 표현하자면, 사회 지배 지향성은 돈과 권력에 대한 노예근성, 우익 권위주의는 권위와 관습에 대한 노예근성이라고 하겠다. p.44

권위는 제도적으로 승인된 가시적인 힘인 반면, 권력은 사회 집단 내부에서 은밀히 작동하는 힘이다. p.44

보수 성향이 높은 사람은 사회 지배 지향성뿐 아니라 우익 권위주의 역시 높게 나타난다. 보수 성향과의 관계를 떠나서도, 최근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심리 기제는 유전학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p.47

사회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심리적 선호나 인지적 양상이 개체의 진화적 이득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개체의 진화적 이득이란 어디까지나 생존과 번식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종교의 진화를 설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결국 해답은 개체의 생물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뇌과학과 유전학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p.53

사회심리학자 아리 크루글란스키는 인지적 ‘종결 욕구’라는 유명한 개념을 제시했다.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한다. 이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빠르고 손쉽게 결론을 내리는 습성을 유발한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서 휴리스틱이 사용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종결 욕구가 강할수록 우파 정당에 투표하거나 보수적인 관점을 지닐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리고 이렇게 종결 욕구가 보수적 신념을 형성할 때 주로 우익 권위주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관습과 규범 등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빠르게 판단함으로써 종결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p.61~62

심피언은 2025년에 발표한 인지과학 논문에서 능력주의를 휴리스틱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마치 아이들이 블라크가 부자인 이유가 더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고 본능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도 이러한 휴리스틱 기반의 단순화된 믿음이 무의식 깊숙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부유한 이들이나 작업에서 성공한 이들을 보면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노력을, 가난한 이들이나 노숙자들을 보면 게으름과 무능력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항상 한 번 더 생각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p.66~67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경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의 ‘자연 지능’에 대한 성찰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뇌가 휴리스틱과 같은 편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빈번하게 오류를 범하며, 이러한 오류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제도를 설계하며, 그 과정에서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따라서 우리의 자연 지능이 만들어 내는 편향은 사회적 결정과 사회 구조의 형성에 깊숙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p.67~68

동물로서 우리 인간은 다른 개체가 과시하는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진화해 왔다. 이것이 바로 내재성 휴리스틱이 타인을 대상으로 작동할 때 우리 안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들의 능력과 성과를 타고난 재능으로 간주하는 인간의 동물적 성향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기득권층의 지배와 불평등한 분배를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심리 기제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사회 지배 지향성 심리의 밑바닥에는 정직한 신호라는 성선택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p.74~75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전학적 능력과 상관없이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얻은 일확천금이나 상속받은 재산을 과시하는 것은 부정직한 신호다. 스펜스가 예로 든 학력도 이제는 점점 더 부모의 재력에 의한 위장 신호가 되어가고 있다. 단적인 예가 기부금 입학이다.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본능은 이 모든 것을 정직한 신호로 착오하여 받아들이고 만다. 이처럼 신호가 교란된 상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기득권층이다. p.75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오히려 우리는 누군가가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낀다. 어떤 이가 굳은 의지로 역경을 극복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선한 손길로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불리한 위치에 놓은 사람들도 사회에서 동등한 자격을 지키고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 그러므로 우리 내면에서 아직까지도 ‘정직한’ 신호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p.75~76

무니가 지적했듯이, 보수는 기존의 신념을 지나치게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베이지언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이는 사전 확률의 분포가 좁다는 것(분산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백신의 위험도를 0에서 1 사이의 수로 평가할 때, 사람들이 대개 0.1~0.5에서 느슨하게 값을 매긴다고 해보자. 이때 백신 음모론에 빠진 사람의 베이지언 뇌는 백신 위험성을 0.90~0.95 정도로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전 확률의 분포가 좁으면 새로운 정보가 주어져도 사후 확률이 바뀌기 어렵다. p.81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유전자의 두려움이 진화 과정에서 혐오의 감정으로 둔갑한 것이다. p.82

혐오는 진화를 통해 습득된 생물학적 반응이지만, 현대인들은 문화적 요소들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88

인공지능도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사람들의 데이터 자체가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학습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수정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반면 자연 지능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편향은 단순히 계몽이나 교육으로 제거할 수 없는 고질적인 본성이다. 오히려 사회적 판단이나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자연 지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p.92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이라는 뇌 부위의 역할이다. 먼저 강한 보수 성향이 더 큰 편도체로 나타났다면, 더 강한 진보 성향은 더큰 전대상피질의 부피로 나타났다. 또한 보수에게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행동실험 상황에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뇌섬엽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높을수록 뇌섬엽의 크기는 더 작다는 것도 드러났다. 뇌 부위들 간의 기능적 연결성 측면에서는 진보주의자들이 전대상피질과 뇌섬엽 간의 높은 연결성을 보였다. ... 전두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대상피질은 상충되는 정보나 반응 간의 갈등을 탐지하고 조절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측두엽과 전두엽 사이 깊숙한 곳에 섬처럼 숨어 있는 뇌섬엽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에 공감하는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전대상피질도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93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 신념이 갈등 탐지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교적 개념에 노출된 신앙인들의 뇌에서는 전대상 피질에서 발생하는 오류 반응이 약화된다. 즉, 종꾜적 신념이 오류에 대한 불안 반응을 완충시킴으로써 갈등을 회피하거나 외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종교의 성인들을 우러러보는 이유는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깨닫고 그것을 초월하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감수하고 그에 맞서 투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 종교의 교리는 신앙인들의 종교성만을 자극하며 세상의 아픔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하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종교가 점점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p.96

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와 같은 보수의 심리 기제가 집단이 아닌 개체의 진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뇌과학적인 연구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내재성 편향을 비롯한 휴리스틱, 사전 신념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편도체의 기능과 같은 심리학적, 뇌과학적 개념들이 번식을 위한 신호의 발신과 수신, 생존을 위한 혐오, 교감신경, 행동면역계의 발현과 같은 진화적 본능에 기반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진화적 결과물로서 보수의 성향, 즉 능력주의에 따른 분배 질서를 옹호하며, 내집단과 백인과 이성애자에 비해 외집단과 흑인과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본능을 설명할 수 있다. p.97

어떤 현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것이 말해주는 사실을 하나뿐이다. 바로 지식과 상상력의 부족이다. p.103

일반적으로 통계적 연관성이 인과관계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 그러나 유전학은 그렇지 않다. 유전학에서는 연관성이 인과관계로 해석된다. ... 세포나 실험동물에 특정 유전자형을 인위적으로 삽입해 예상되는 표현형이 나타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p.103~104

유전자는 정치 성향을 최대 65퍼센트까지 설명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p.108

옥시토신이 돌봄과 방어를 주관하며 보수의 이타주의를 집단 이기주의로 만들 때, 옥시토신 수용체 유전자형 두 가지는 각각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반응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p.126

세로토닌 회로체계는 서열이 높아지면 활성을 높여 지위에 걸맞은 지배적 행동을 하고 서열이 낮아지면 활성을 낮추어 순종적인 행동을 하게끔 되어 있다. 그것이 권위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사회적 위계를 설정하고 고착화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세로토닌으로 인해 인간은 별다른 투쟁 없이 주어진 힘과 능력에 의해 확립된 사회적 위계에 순응하게끔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다정한’ 자들의 사회성이란 기껏해야 편협한 이타주의, 집단 이기주의, 위계에 대한 순응, 권력에 대한 굴복이며, 그들이 잃어버린 공격성은 불의에 맞서는 데 필요한 투쟁심일지 모른다. p.128

보수는 주어진 체제를 어쩔 수 없이 정당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본능과 부합하는 체제를 당연하게 옹호하는 것이다. p.130

문명의 발전은 생존과 번식에 대한 자연선택의 압력을 완화했고, 그 결과 보수적 본능이 약한 이들도 점차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예컨대 편도체가 주관하는 교감신경, 싸움-주도 혹은 돌봄-방어 반응, 행동면역계 등의 작동이 약한 이들도 살인과 전쟁이 줄어든 사회에서, 그리고 감염 질환을 치료하는 의학이 발전한 상황에서 더 높은 수준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전대상피질과 뇌섬엽 등이 매개하는 유동성 지능 역시 문명화된 환경에서 생존과 적응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p.133~134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넘어서기 위한 창조적 몸부림의 산물이다. 해나 아렌트의 고전 <인간의 조건>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의 발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렌트는 이를 지구라는 감옥, 곧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 조건으로부터의 탈출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보았다. 반대로 진화에서 ‘적응’이란 그러한 탈출의 몸부림 없이 자연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순응’을 말하는 것이다. p.134

세로토닌 회로 체계가 발달시켰다고 하는 소위 ‘친 사회성’과 공격성 감소라는 이면에는 우울증이라는 비극이 있는 것이다. p.143

사람이 처한 다양한 사회 환경은 정치 성향 유전자들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 우리가 특히 이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부각되고 있는 젊은 남성층의 우경화 현상 때문이다. ... 이는 유전자군의 변화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정 유전자형이 집단 내에서 많아지거나 적어지는 것이 관찰되려면 적어도 수십 세대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p.147~148

신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는 동시대의 산물일 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서로 맞닿아 있다. 신다윈주의는 생물 세계에 집단을 위한 조절이나 희생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이기적인 개체들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고 번식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이익을 위해 매진하는 이기적인 경제 주체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균형과 효율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자유시장의 원리라고 말한다. 이 둘은 뚜렷한 대구를 이룬다. 생물 개체와 경제 주체, 집단을 위한 조절과 국가의 규제, 자연선택과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적자생존의 섭리와 자유시장의 원리. / 젊은 남성의 보수적 세계관 역시 신다윈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기조 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번식과 경제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생식 적령기 남성들에게 심각한 과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화두는 번식에 성공하는 것인데,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이는 점차 경제적 성공과 동일시되고 있다. p.154

불리한 환경의 가정에서는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데, 이것이 생리적인 차원에서까지 딸의 경우에는 투자를 늘리고 아들의 경우에는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는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남성들이 보이는 보수 성향이 주로 경제와 관련해 드러난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성별에 따른 정치 성향 차이의 상당 부분은 경제적 보수주의인 사회 지배 지향성으로 설명되는데, 이때 나이, 계층, 종교, 교육 수준, 인종, 인종 차별적 태도, 출신 지역, 성역할에 대한 의견 등 다양한 요인과 상관없이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다양한 국가와 인구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 반면 사회적 보수주의를 나타내는 우익 권위주의에서는 남녀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 오직 사회 지배 지향성에서만 남녀 간의 차이가 관찰되었다. p.162~163

나이와 성별은 보수주의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양상과 연관성을 보이는데, 이는 각기 생존 본능과 번식 본능을 반영한다.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우익 권위주의의 근간에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의 작용, 교감신경의 싸움-주도 반응, 옥시토신의 돌봄-방어 반응 등으로 매개되는 생존 본능이 있다. 위험에 대한 신체적 대응이 점차 둔화되는 고령층의 보수성이 사회적 보수주의로 이어지는 이유라고 하겠다. 한편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 지배 지향성에는 내재성 휴리스틱과 신호 체계, 세로토닌, 페로몬 등이 주관하는 번식 본능이 있다. 이는 성공과 쟁취의 욕망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층의 보수성은 능력주의 기반의 경제적 보수주의로 나타난다. p.164~165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남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p.165

사실 보수를 자칭하는 젊은 남성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 내지는 피해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가정, 또래 관계, 학교, 직장, 혼인 시장 내에서 능력에 따라 남자들을 평가하는 인간 본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생활 양식으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 일부 남성들의 부진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압박감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p.166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는 절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당장의 보상을 취하는 경향이 더 짙다. 자기통제력, 주의력, 실행력과 같은 정서 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미주신경의 활동성인데, 교감신경의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혀 안정 상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러한 미주신경의 활성도가 여건이 좋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에게서는 낮게 관측된다. 또한 앞서 설명한 대로, 예민한 유전자는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환경에서 주의 편향 혹은 선택적 집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베블린이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일체의 에너지를 당장의 생존 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 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 정확히 베블런의 이러한 메시지를 현대적인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으로 입증한 것이 MIT의 샌딜 멀레이너선 교수와 프리스턴대학교의 엘다 샤퍼 교수가 펴낸 <결핍의 경제학>이다. 이 책에서 제안한 ‘대역폭 세금’이라는 개념은 인지적 자원에 부과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의미한다. 세금을 낼 상황이 안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용한 인지 대역폭도 제한된다. 즉, 빈곤한 상황이 정신적 여유 혹은 에너지를 고갈시켜 인지 기능을 저해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 이들이 <사이언스>에 소개한 한 행동실험에서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재정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두 가지 가상 상황을 제시했다. 하나는 자동차 수리비가 적게 드는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아주 많이 드는 시나리오였다. 참가자들은 바로 이어서 지능 검사에 임했는데, 고소득층과 달리 저소득층 참가자들의 인지 능력 점수가 재정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확연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압박감이 인간의 인지적 자원을 어떻게 잠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 이렇게 인지 자원이 고갈되면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해지고,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깊이 있는 분석적 사고보다는 직관이나 간단하고 빠른 판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업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적 사고가 약해지면서 휴리스틱이 더 쉽게 작동한다. 특히 내재성 휴리스틱으로 인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버리면, 성공은 타고난 이들의 것이며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정당한 것이라는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사회 지배 지향성이 강화되어 여성에 비해 남성이, 이민자들에 비해 내국인들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p.167~169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는 경제적 불공정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는 권력자를 위한 편파적인 자유, 즉 특권일 뿐이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고용주의 자유는 근로자의 권리를 제약하며, 청년 세대의 성장할 권리는 이미 기득권을 점유한 기성세대의 이해관계에 의해 억압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자유를 빼앗기는 위치에 있는 젊은 남성들은 신자유주의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신봉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스스로 ‘비자발적 독신자’라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 p.170

정치 성향과 관련된 유전자들의 발현은 처한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p.171

노화에 따른 보수성은 개인의 후천적인 생물학적 변화에 기인한다. 즉, 바깥세상에 대한 신체적 대응의 둔화가 유전자에게는 환경의 변화로 감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젊었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위협적인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젊은 남성의 보수성은 선천적인 생물학적 요인이 사회 구조적 환경에 반응해 나타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이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경쟁적인 환경이 더 보수적인 표현형을 유도하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에 따라 재편된 경쟁 중심의 구조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환경은 생식 적령기 남성들의 번식 욕구와 관련된 신호 체계 본능을 자극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진화론적, 경제학적 신호 체계는 사회 지배 지향성으로 대변되는 위계적 사고방식과 능력주의적 가치관의 형성을 부추긴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불안정한 위치에 놓은 남성들은 인지 자원의 결핍을 겪게 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발되는 인지적 편향에 취약해지며, 그 결과로서 더욱 강한 보수적 세계관에 사로잡힐 수 있다. / 이러한 분석은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분포가 개인의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생물학적 요인들뿐 아니라 구조적 환경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문화적 정신에 따라 사회 구조와 환경을 구축하고 조성해 가는지에 따라 정치 성향의 전반적인 양상과 흐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p.171~173

결론적으로, 보수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유전적 요인들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뇌 구조와 기능의 발달을 주관하고 인지 체계의 작동에 관여한다. 그리고 뇌인지 시스템은 외부 요인들에 반응해 심리적 기전을 구축한다. 이러한 외부 요인들은 과거에는 주로 자연적인 것들이었다가 점차 문화적인 것들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즉, 자연 세계를 대상으로 구축된 진화적 심리가 오늘날의 문화적 요소들을 대상으로 우익 권위주의나 사회 지배 지향성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보수주의 문화를 형성하는 원동력이다. p.177~178

인간의 자연적 본능은 현대사회의 문화적 요소들에 반응해 보수를 특징짓는 심리 기제로 발전하고, 이것이 보수의 문화를 형성한다. 여기서 문화적 요소란 사회에서 흔히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여러 가지 정책, 사안, 쟁점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경제 체제, 국제 관계, 이민 정책, 교육 철학, 종교, 과학기술, 성소수자 권리, 임신중지권, 페미니즘, 총기 규제 등이 포함된다. / 그런데 정치 성향이 자연적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면, 보수는 물론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 역시 인류의 보편적 특성으로 보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보수나 진보가 지역, 사회, 민족, 국가 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이 두 성향은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으며, 심지어 시대를 초월해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이다. 물론 인간이 공유하는 본성과 본능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처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차이만으로 보수나 진보를 규정할 수는 없다. p.179~180

그런데 기독교, 즉 개신교와 카톨릭교의 보수적 성향이 다른 종교에 비해 유별나게 강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주요 보수 사상가들은 기독교를 그들의 핵심 세계관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는 지극히 역설적이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인 예수의 발언과 실천은 당대의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질서 자체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매우 급진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근본정신인 ‘공의’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둔 정치적, 경제적 정의 실현을 요구한다. 이처럼 예수의 행각과 성서의 내용은 우익 권위주의와 사회 지배 지향성의 발현인 보수주의 이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p.185

미국뿐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 보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반과학적인 태도를 지니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p.192~193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광범위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보수는 일관된 입장을 보인다. 이는 그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먼 과거 자연 속에서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며 구축된 진화적 심리가 현대사회의 문화적 요소들에 반응해 발현되는 것을 보수라고 규정하면,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휴리스틱과 보수적 베이지언, 신호 체계에 기반한 번식 전략과 같은 인지심리학적 요소들과, 편도체, 교감신경, 행동면역계, 싸움-도주 혹은 돌봄-방어 반응, 페로몬 시스템, 전대상피질, 뇌섬엽과 같은 신경생리학적 요인들. 그리고 옥시토신, 세로토닌,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안들에 반응해 사회 지배 지향성이나 우익 권위주의와 같은 심리 기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적 본능을 따르는 가치관을 지닌 자연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보수주의다. p.199~200

여러 분야의 다양한 자료를 통합해 다다른 결론은 보수란 인간의 진화적 본성이자 그 본성에 기초한 태도와 신념이며, 그것이 사회 속에서 발현되어 만들어 내는 문화라는 것이다. p.205

지구상에 등장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시 새로운 분기점 앞에 서 있다. 컨서버티버스가 지니고 있는 특성이 조상형이라면, 파생형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사피엔스는 리버럴리스에 가까워질 것이다. 리버럴리스가 지닌 파생형은 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학습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질들을 설명한다.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에 불리하거나 눈에 띄지 않을 특성들이지만, 문명의 보호 속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욱 번창해 왔다. 그러므로 호모 사피엔스의 분기를 촉진하는 것은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의 발전이다. 문명은 리버럴리스를 낳고, 리버럴리스는 문명을 더욱 발전시키며, 더 고도화된 문명은 더 많은 리버럴리스를 탄생시킨다. p.207~208

공정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어쩌면 유일한 도덕률인지도 모른다. 선악의 개념조차 없는 자연이라는 세계에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따져봐야 할 선이나 진리 따위는 없다. 결국 사회를 이루어 사는 개인들의 합의를 통해 도출되는 상대적 당위만이 존재할 뿐이다. 합의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공정한 결과가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p.211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들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며, 그 신념 위에 우리의 모든 윤리 체계가 구축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들 역시 존 로크가 주장한 자연권이 아니라, 도덕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사회적 구성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p.213~214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호소는 공정함을 향한 근원적인 갈망의 발현일 수 있다. 존엄하므로 공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정하기 위해 존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이 훼손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이 지닌 허구성도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구조화된 불평등이 해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다. p.215

호모 리버럴리스는 공정과 사유라는 두 가지 차원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진보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앞서 언급했듯이, 호모 리버럴리스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이다. 비록 그들의 유전자 파생형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그것의 보존과 확산은 자연을 넘어서기 위하 ㄴ능동적 창조 활동, 곧 문명의 산물에 의해 매개된 것이다. 이들은 자연의 힘에 구속된 노예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부여한 인간 조건으로부터 탈피해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인간 조건을 창조하는 존재들이다. p.221

베르그송의 철학을 가능성과 잠재성의 구분을 핵심 주제로 삼아 재해석한 것이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다. 가능성은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태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스스로 실현시키는 내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이미 형성된 구조에 따라 단순히 복제되고 재현되는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가능성의 실현은 기존의 구조와 질서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 반면 잠재성은 어떤 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현실화되는 힘을 갖춘 상태다. 역동적인 힘을 통해 차이를 생성해 낼 수 있는 창조의 장이다. 잠재성이 실현될 때 새로운 형태와 질서가 창출된다. / 신다윈주의가 설명하는 진화는 고정된 유전학 메커니즘을 반복 구현하는 가능성의 실현에 불과하다. 무수한 경우의 수를 지닌 유전 정보는 가능성으로 존재하다가 여러 차원의 기계적 힘에 의해 특정한 개체들로 실현된다. 이것이 실제 생명 현상이며, 인간에게서 내재적 존엄성을 찾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르그송과 들뢰즈가 이해한 생명은 이와 다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 잠재성을 현실화하며 형질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힘, 즉 창조적 진화의 주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목적이 아니라 실험, 경직된 메커니즘이 아니라 자유로운 운동인 것이다. p.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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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26.07.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