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은 단상들이 모여 있는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존 버거와 다이앤 애커먼을 본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서 존 버거를 보고, 지구상의 희귀한 동물들과 희귀해져 가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와 그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모습을 본다. 그의 작품에 고저가 있기는 하지만, 2000년에 쓰인 이 작품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는 행동파 작가이다. 산도적같이 생긴 얼굴에 눈만은 맑고, 빛난다. 책의 들어가는 이야기는 '소외된 이야기들' 이다. 작가는 독일의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한다. 수억가지 감정을 안고 있는 그는 거기 수용소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칼끝이나 못으로 써 놓은 글귀를 보게 된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지만 세풀베다는 깨닫는다. '그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걸' 어느날 밤 집에서 끌려 나와 몰매를 맞으며 자식과 헤어져, 번호판 없는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끌려와 붕대로 두 눈이 가린채 세상과 멀어져 군화자국과 피부에 새겨진 전기 고문흔적들로 만신창이 된 금발머리 여자와 검은 머리 여자. 한 가족이었던 고귀한 고양이 소르바스에 대한 이야기. 실수로 칠레에 가서 실수로 결혼하고 실수로 좋은 친구들을 두고, 다른 더 큰 실수로 행복했던 이탈리아 남자 주세페.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배를 폐선장까지 이끌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주는 벵골 남자 심파, 등등 세계 구석구석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 멈추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세풀베다와 함께 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유려한 문장이라거나, 반전이라거나 그런 재미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할 때 나올 수 있는 힘.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장에서 쓰는 세풀베다의 필력은 대단히 영향력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들이 있다. 세풀베다는 지키려는 자, 자유를 추구하는 자의 편에서서 강력한 글들을 써낸다. 그들은 소수이다. 극소수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 했다. 과연 '펜은 돈보다 강할까? 작가의 인생은 치열했고, 지금도 치열하다. 작가가 인용한 브레히트의 '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라는 말처럼. 루이스 세풀베다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
| 굳이 보르헤스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남미작가들은 그들만의 내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정열로 대표되는 그들의 성격과, 우리나라보다 더한 정치적 혼란이 내적, 외적으로 단련시킨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보는 내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이 책에서 소외된 자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삶을 살아서 '소외'라기 보다는 자신의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같습니다. 외부의 권력에 맞서는 사람,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보잘것 없게 느껴지는 기술을 나눠줌으로서 보잘것 있게(!!) 된 자, 밀림을 지키는 자,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양심을 거스리지 못해서 다른 이들에게 비록 소외되었을지언정,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짧은 Chapter들로 구성되어 지하철과 같은 곳에서 짬짬이 읽기 좋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의 여윤은 꽤 오래 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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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는 칠레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지금, 현재, 독일에 산다는 이 케니 로저스 풍의 털복숭이 미남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슬슬 들려주는 듯하다가 문득 내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소외>에서 들려주겠다던 잊혀진 평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살았던 치열한 삶 탓에 어쩔 수 없이 위대한 삶이 되어버렸다. 그 위대한 삶은 결코 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소원하며 살다간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검은 머리 여인과 금발 여인> 칠레 독재 정권하에서 한밤중에 가족들로 부터 끌려나와 어두운 고문실에서 고문을 받았던 두 여인의 용감한 삶.
-그것은 즐거움과 고통 속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들인 사랑과 절대 삭으려 들지 않을 증오 속에서 성숙한 아름다움이었다.
<카바토리>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대리석 조각들이 만들어 진 데에는 하얀 대리석 가루의 치명적인 위험으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는 카바토리(예술가가 스케치해서 건네 준 그림을 보고 대리석 조각의 기초를 세우는 작업을 하는 사람)와 대리석 가공업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내가 조각가라면, 그래서 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상을 맡았다면, 동상 발치에 새기는 내 서명은 맨 마지막에 새겨 넣을 것이다. 맨 먼저 태산만 한 대리석을 선별해 자르고 작업한 카바토리의 이름들을 새겨 넣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석에 윤곽을 잡아준 대리석 가공업자들의 이름들을 새겨 넣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육포를 말린 사람들과 로즈마리를 공급한 사람들, 빵을 만든 사람들, 토스카나의 시원한 포도주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들을 새겨 넣을 것이다. 독자여, 언젠가 당신이 카라라 지역의 대리석으로 조각된 동상 앞에 서게 된다면 피에트라산타의 카바토리들과 대리석 가공업자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존엄한 익명성을 높이 사 주십시오.
<비달이란 사나이> 에콰도르에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내, 혹사당하며 길거리에서 살다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인디오들을 위해 노조를 만든 비달 산체스의 이야기.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라는 브레히트의 말이 옳았다.
<아타카마 장미> 1973년 9월 16일 파시스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에 저항했던 프레디 타베르나는 군인들의 손에 살해되어 사막의 어딘가에 묻혔다. 그는 군인들 앞에서 국가를 목청껏 노래부르며 총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중한 친구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군 군사고문관과 연루된 엘살바로드 군인에게 암살된 쿠스 쿠스터 기자와 그의 약혼녀인 의사 크리스티나의 이야기. 크리스티나는 죽은 연인을 대신해서 엘살바로르 게릴라에 합류한다. 두 사람의 친구였던 세풀베다는 몇년 후 기자의 자격으로 찾아간 엘살바도르의 밀림에서 한 게릴라 여의사를 만난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그들만알고있는 인사인 <메리 크리스마스!>로 지난 세월의 아쉬움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읽고나면 여전히 그 밀림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게릴라 여의사가 떠오른다.
<잃어버린 섬>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으로 상처 입은 섬 사람들의 이야기.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와 세르비아민족주의로 나뉘어진 섬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남과 북,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싸하다.
-잃어버린 섬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자기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민족들은 쉽게 사기꾼과 거짓 예언자들에게 넘어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그 섬은 나에게 거듭 이야기한다.
<피츠카랄도의 흔적을 찾아서> 정복욕에 눈이 멀어 눈앞에 있는 밀림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정복자 피츠카랄도의 이야기.
-피츠카랄도는 이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탐욕은 항상 눈동자를 찔러 대는 쇠바늘과도 같다.
<엘베 강의 해적> 한자동맹의 잔혹함에 맞서 민중을 대변했던 함부르크의 전설적인 해적 슈토르 테베커의 이야기.
-삶이 짧고 허망한 건 확실하지만, 자존심과 용기가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것 역시 확실하다. 생명력은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함정과 불행을 견딜 만하게 해준다.
<콤파> 독재에 대항해 싸우느라 하나뿐인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
-부드러움은 강함으로 지켜야 하고, 고통은 우리를 마비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남쪽 끝의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 ...그리고 우주의 그 많은 쓰레기 중에 자기가 먹을 빵은 스스로 정당하게 벌어서 먹는 사람들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거리나 시간은 아무 상관없었다.
<침묵의 목소리> 루이스 세풀베다가 언제 죽게될지 모르던 망명시절, 본명도 모르고 <오스카>라는 가명으로만 만났던 존엄한 사람의 이야기다. 고문으로도 <오스카>의 의지를 꺽지 못한 사형집행인들은 그는 미끼로 썼다. 그의 척추에 심한 손상을 입혀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불구를 만든 다음 허허벌판에 내다 버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항거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공포의 메시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동료들이 그를 구하러 올거라 믿으며 던지는 미끼로.
- <확실하게.> 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확실함을 증오한다. (...........) 옛날 옛적에 전기 기술자인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불구와 침묵으로 그 누구도 깰수 없는 바리케이트를 친 소년이었다.
<갈베스 선생님, 건배!> 작은 시골학교의 스페인어 선생이었던 갈베스 씨. 칠레의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던 아들이 심한 고문으로 폐인이 되어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자, 아들을 독일로 떠나보내지만 아들은 결국 독일에서 죽고 만다.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로 간 갈베스 선생은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반역 행위라는 칠레 독재 정권의 판결로 자신의 조국에 입국이 거부되어 낮선 땅 독일에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던 칠레의 작은 교실을 그리워하며 살다갔다.
- <존엄한 사람은 입에 빵을 넣기 전에 그 빵을 벌어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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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의 운명은 참 기구하기만 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칠레 출신의 망명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거의 대개의 책이 절판의 운명에 처해 있었다. 우선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책들은 죄다 사고, 또 절판돼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은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구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귀향> 모두 그렇게 구했다. 하지만, 세풀베다의 또 다른 책인 <소외>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게 됐다. <소외>(Historias marginales)는 2000년에 나온 모두 35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수필집이다. 개인적으로 세풀베다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간결성이다. 그가 발표한 다른 소설들도 예외 없이 길지 않은 장편(掌篇) 스타일의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에 깊이가 없는 건 절대 아니다. 그의 글에는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조국 칠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절절한 세풀베다의 애끊는 심정이 투박하게 묻어 있다. 세풀베다는 정의에 대한 선동 같은 과격한 방법 대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그대로 글로 담담하게 풀어내기에 더 멋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상대로 맞짱 뜬 세풀베다는 가장 먼저 독일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이자 네덜란드 소녀 안네 프랑크가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베르겐 벨젠 수용소로 독자를 차분하게 안내한다. 수용소의 어느 돌멩이에 새겨진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절규가 새겨진 문구는 지난 세기 인류의 양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일대 사건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강제한다. 뒤에 나오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레지스탕스 아브라함 슈츠케버와 나치의 만행을 자신의 존재로 입증해 보인 페데리코 아무개(프리츠 니만트)의 이야기들은 서로 공명하면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과거사를 조명해 준다. 한 때 그린피스 활동을 했던 작가는 지중해 고래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독일에서 망명생활 중에 한 가족처럼 지냈던 소로바스의 죽음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삶의 소중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기도 한다. 지구의 끝 파타고니아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몸으로 맞선 이들의 영웅적인 모습과 혹한의 영지 라플란드 체험기, 아마존 마누 밀림이 가진 종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조국을 침략한 파시스트 군대에 대항해서 전투기를 직접 몰고 싸웠던 스탈린그라드의 백장미 여전사들과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엘살바도르의 정글에서 불의에 맞서 싸운 게릴라 여의사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가슴 뭉클한 감동의 전이를 체험한다. <소외>에는 이런 영웅적인 이야기 말고도,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시장통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양껏 제공해준 아름다운 여인 로셀라 아주머니, <죽음만 빼고는 모두 해결 방법이 있다>라는 신조로 죽는 날까지 가난한 고객들의 수도관을 걱정한 마에스트로 코레아 그리고 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폐선장을 차려 배를 해체하는 미스터 심파 등 우리네 삶 가운데 있는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역시 수필집 <소외>에서 압권은 바로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의 암울했던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을 이겨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얼결에 꿀과 젖이 흐르는 땅 아메리카(미국)이 아니라, 고기를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다는 라틴 아메리카에 둥지를 틀게 된 이방인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형집행인’들로부터 모진 학대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콤파녜로(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다 불구가 되거나 혹은 자신의 귀중한 생명마저도 잃은 사람들, 오로지 진실을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아날리시스> 잡지를 발행한 세풀베다의 고집스러운 친구 후안파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아픈 상처의 퍼즐을 세풀베다는 투덕투덕 이어 붙이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읽을 수가 있어서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을 사랑한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때로는 투박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그의 글이 너무나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작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생명마저 초개같이 내던진 나의 영웅 살바도르 아옌데의 묘소를 언젠가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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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쌓아둔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다시 꺼냄으로써 저자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모든 작품이 소설인 줄 알고 있던 나의 무지를 깨치듯 자전적 에세이와 기행문, 짧은 이야기들이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가 모두 좋은 경우에 독자는 풍부한 문학의 세계를 느낄 수 있어, 이런 작가를 만나면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욕심까지 들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독서를 통한 발견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이런 행위를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접함으로써 생각의 뻗어감이 마냥 즐거울 정도로 현재 나의 독서는 무척 즐겁다.
<소외>는 저자가 소설가로써 뿐만이 아닌 사회 비평가, 다큐를 다루는 면모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나게 해준다. 제목처럼 소외된 것들에 대한 서른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소외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알더라도, 막상 하나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광범위함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책은 저자가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해서 수용소의 한쪽 구석의 돌멩이에서 처절한 글을 보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이 책이 어떠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소외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을 수 있었고, 저자가 쓴 이야기 이외에도 수많은 소외가 여전히 존재하며, 그런 소외를 관심으로 돌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임을 조금씩 인식해 갔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는 짧은 이야기들은 분명 존재하고, 존재해 나가는 사람들의 단상이었다. 단지 그들의 삶에 관심 갖지 않았으며, 함께 뒤엉키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자신의 인생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냐는 핑계도 소외된 이야기들 앞에서는 부끄럽기만 했다. 너무나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입김을 불면 책장의 글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도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소소하더라도 행복하고, 기쁨에 넘친 이야기들이 많았으면 나의 마음이 이토록 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듯, 지켜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향연에 동참할 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세계 각지의 이야기를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향연을 느끼기에 바빴다. 너무 광범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지명의 낯섦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알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단락으로 이루어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중간쯤 들어서, 정치적인 주제로 글이 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는 저자의 다른 작품마다 녹아있는 또 다른 에피소드도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는 순간, 이야기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다. 소외된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소외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분명 관심을 갖고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행위에 대한 제재가 필요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환경파괴에 대해, 공동으로 이뤄가야 할 자연에 대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다. 그것들을 지켜보면서도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누구의 사연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그런 자들을 돌아봐 달라고 호소해야 할까. 흩어져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앞에서 나 역시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돌멩이에 적힌 문구처럼, 내가 잊힌다는 사실 앞에서 두려움만이 엄습해왔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물질의 풍요가 아닌 질적인 풍요로움을 간직하며 살고 싶었던 나의 바램들은 한구석으로 밀려나 버렸다. 주목받지 못해서 서글프다는 마음보다, 이것이 인생이고 삶이라는 관념이 밀려오자 잠시 긴장의 끊을 놓쳐 버린 것 같다. 그것을 놓쳐 버렸다고 해서 뒤처진 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앞에 한 없이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옮긴이는 저자가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보다는 제도권 밖에서 진한 인간미를 풍기는 일상생활 속의 영웅들을 더 선호했다.' 고 말했다. 이 책 속에 담긴 사람들이야말로 제도권 밖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같은 제도권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해진 기분이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려고 기를 쓰기보다, 제도권 밖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산이 흩어져 버린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의 이 다짐까지 흩어져 버릴까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러모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