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번을 읽기를 시도하다 말았다. 결국 최후까지 읽기는 했지만 정말 끝이 짜증나는 책이다. 예수는 예언자였고, 막달라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며 신격화되길 거부했다는 제5복음서... 그 아들이 직접 썼다는 하는 제5복음서의 내용을 전하기 위해 여러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라고 하는 내용은 과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고 쫓고 쫓기며 이슬람교와 교황청이 사생결단으로 달려들며 비행기까지 폭파시킬만큼 대단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플롯이 엉성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에 의해 남겨진 제5복음서의 내용에 대한 암호.. 특히 그림속에 제5복음서의 내용을 숨겼다는 이유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실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사실 그것은 결과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촉진제일뿐 주류가 되지 못함에도 다빈치와 비밀의 역사성을 하도 강조하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된 듯한 플롯에다가 군더더기가 너무나 많아 핵심마저 흐려지는 핵. 시간낭비했다는 느낌마저 들게하는 책이어서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
| 내가 처음으로 접한 반덴베르크의 소설은 '미켈란젤로의 비밀'이었다. 그 소설 하나로 모든것을 평가할 순 없겠지만, 그것은 분명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류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썼다는 모든 책을 구입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하나같이 똑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이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나' 라는 사람에게는 이런 류의 소설이 쥐약(?)인걸지도 모른다. 한번 매료되곤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의 소설은 하나같이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액자구성, 그리고 제3자에 의한 서술. 이 소설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난 번에 읽었던 미켈란젤로의 비밀에 비해서 한결 고도화된 액자 구성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액자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도 결코 하나로는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안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양피지의 내용을 조사하는 수도원 이야기, 라이베트라에서 이루어지는 구트만의 이야기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그 순간 약간의 혼란이 있긴 했지만, 그 모든것은 끝 부분에 가서 명확화되어지고 있었다. 작가는 공동묘지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남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안네라는 여성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한다. 남편의 사망과 함께 등장한 남편 옆에 타고 있던 낯선 여자의 존재, 그로 인해 안네는 결혼생활 내내 남편에게 속임을 당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남편의 옷 주머니에서 오페라 티켓을 발견하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외도하게 만든 여자를 만나 담판 짓겠노라는 생각으로 그곳을 간다. 하지만 의외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탈레스라고 불리우는 남자였고, 그 남자는 안네가 알아 들을 수 없는 거래에 관한 이야기만을 꺼낸다. 그것이 안네에게 드리워진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탈레스가 가지고자 하는 양피지 문서의 내용을 감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가 의뢰하는 사람마다 수상쩍은 일을 당한다. 라우셴바흐와 포시우스는 죽임을 당하고, 구트만은 어느 순간 행방불명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포시우스가 죽기 전에 말한 '바라바'라는 존재로 인해 안네는 이 사건에 너무도 깊숙히 개입하게 되어버렸다. 남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는 오르페우스 사단에 직접 잠입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개입에 일종의 도움을 주는 역할로 아드리안 클라이버 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는 실제 아드리안 클라이버가 아니다. 그는 양피지 문서를 손에 넣고자 하는 또 다른 세력인 회교 세력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는 안네의 과거 남자친구에 해당하는 인물의 이름을 도용, 그녀에게 다가가고, 궁극적으로 그녀가 지닌 양피지를 손에 넣는데 중점을 두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 역시 오르페우스 사단에 의해 많은 곤욕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진실로 안네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식의 내용에 관한 서술은 어쩌면 이 소설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행위일런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자면 바라바에 의해 쓰여진 제5복음서가 적힌 양피지를 둘러싼 예수회, 오르페우스 사단, 그리고 회교세력간의 다툼에 안네라는 여성이 이용당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리고 안네에게 이러한 불행을 가져온 제5복음서는-다른 성서들이 예수 사후 50여년 경에 예수에 대해 그저 들은 내용만을 서술한 반면-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모든 성서의 기초가 되는 성서였던 것이었다. 이 복음서는 나아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하나의 예언자에 불과한 존재였노라고 기술함으로써 교회 세력 전체,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진 전체에 대한 부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졌을 때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이러한 내용의 복음서를 둘러싼, 지식이 지배하는 세계 오르페우스 사단과, 기독교 세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회교도 세력, 양피지의 내용을 변질시킴으로서 계속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독교세력 간의 삼파전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러한 진실은 그 사회의 천재들에 의해서 후세에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바라바스' 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덧칠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후세에 전달하고자 했었다. 그리고, 포시우스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보이고자 황산테러를 감행했다가 정신병자 취급을, 오르페우스 사단에 의한 살해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나의 진실을 둘러싼 음모는 너무도 컸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퍼뜨리고자 하는 회교도 세력은 안네로부터 양피지의 내용을 손에 넣었으나 결국엔 비행기 폭발로 인하여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기독교계는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노라는 식으로 무마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비밀과도 같은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소설 역시 진실을 알아버린 두 신부의 자살과 그림에 나타난 글자를 지움으로서 모든 진실을 은폐하는 교회의 부정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이 소설은 많은 것들을 드러내려 하고 있는 듯 싶다. 종교의 부패에 대한 경고는, 그가 쓴 다른 소설과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오르페우스 사단을 통해 그는 지식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우려 역시 드러내고 있는 듯 싶다. 그곳은 자신의 지식 정도에 따른 서열이 결정되고, 다른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는 과거 우수한 종족만이 살 권리가 있다는 식의 주장과 함께 유태인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했던 나치와도 같은 행위가 아닐까 싶고, 현재 독일사회에서 일고 있는 나치를 그리워하고 영웅시하는 풍조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싶다. 역사과 관련된 소설을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반덴베르크의 소설을 읽어라.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흥하리라고 난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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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시대를 초월한 천재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무수한 발명품과 그림들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중 예수의 비밀이 담겨있다는 설정은 꽤 재미있었다. 그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 그림에 황산을 붓는다는 설정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비밀 해결에 큰 실마리를 던진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구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현재 4개의 복음서가 있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제5복음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예수의 일생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
| 신의 저주가 내린 땅에 드디어 복수가 시작되고, 진실은 눈앞에 다가왔으나 여전히 오만한 가면을 쓰고 있다. 이제 가면을 벗기는 것과 가면을 진실이라 하는 것. 둘 중 어느 편이 진정한 신의 뜻일까. 그러나 신은 침묵한다. 교회는 영원불멸의 절대왕권과 같아서, 반역을 꿈꾸는 것조차 금기요, 반역같아 보이는 것도 죄악이다. 그녀의 왕국은 우리 앞에 현실로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작은 침범조차 신의 이름으로 처벌받을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신학의 진실위에 덮인 가면을 벗겨 진정한 신의 뜻을 세상에 펼쳐 낸다 하더라도, 신의 예언자나 대리인이 되기는 커녕 악마로 몰리기 쉽상이다. 그러나 금기이기에 우린 또다시 선악과의 유혹에 시달린다. 신은 침묵하기에, 우린 진실한 신의 계시인지, 악마의 대담한 유혹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금지된 도전을 시도해야만 할 운명이다. 인간이 타고나는 원죄는 어쩌면 단순히 선악과에 손을 댔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유혹에 흔들렸다는 사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그들의 발전을 위해 부여한 호기심이 예상 밖의 결과를 나은 것일 수도 있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할 날에 대비해 그 심판의 잣대가 될 장치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인간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하여, 시험에 통과했는가 -그 유혹에 넘어 갔는가 아닌가- 를 잣대로 심판을 하시려는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후자가 신의 진실로 밝혀지는 날엔, 있지도 않았던 제 5복음서의 존재와 거기에 담긴 어머니 교회에 대한 위해 행위를 이야기한 작가의 유혹에 넘어간 자들이여 그 댓가를 감당치 못하리라. 반론없는 이론은 영원히 불완전하고, 견제없는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 교회가 그 태동이래 맞았던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살아있는 증거로 오늘까지 존재해 왔지만, 과연 그 극복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는가, 혹시 신의 뜻을 빙자해 무조건적인 은폐와 침묵으로 유지해 온 허울뿐인 교회사가 아닌가. 이런 의문들을 전제로, 또다시 위기를 맞은 교회의 성스럽지 못한 극복으로부터 반덴베르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차라리 그가 성서 해석상의 논란이나 중세적 '이단'을 소재로 삼았다면, 영리한 악마라고 여긴다 치자. 그러나 그의 대담한 발상은 지난 번에 예수의 부활을 부정한 것에 이어서 이번엔 예수의 탄생 배경에 의문을 던지면서 천사다 악마다라는 판단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 종교의 기본적인 믿음조차 부정되었는데, 그 적의 존재인들 인정될까. 다시말해 천사와 악마를 가를 잣대부터 부정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쯤되고 보면 서늘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우린 반덴베르크를 떨쳐 내기 못한다. 이미 우린 그의 성안에 갇혀 버렸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신의 진실로 보건 신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보면 오로지 당신 자신의 문제다. 일상을 초월해 존재하는 정신적 영역 -종교적 차원- 의 죄의식을 자극하는 금지된 흥분과 긴장에 젖어 들고 대담한 발상과 성서에 기본을 둔 완벽한 신학적 지식에 감탄한 후에 그것들로 지어낸 단단한 성벽같은 구성에 도취되고 나면, 분명 소설을 읽고 있음을 의식하면서도 한 번쯤 그의 이야기를 믿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소설마다 사전 전개의 핵심 인물이 죽거나 실종되는 점이며 줄곧 액자 구조를 고수하며 뭔가 궁극적인 책임을 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 짙은 점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한다. 그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결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을 |
| 우리 학교 장서실에는 책이 많이 없다. 그 와중에 꽂혀 있는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제목부터.. 레오나르도는 우리 학교에서 한창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방면에 천재이던 그를 우리는 부러워 하고 있었다. 와 중에 본 이 책은 추리 소설로 내 마음을 끌었고 앞에 저자 설명도 맘에 들어 빌렸다. 읽자마자 너무도 재미있었다. 나는 독서실을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루를 그냥 침대에서만 책읽다가 보냈다. 잡자마자 그냥 쭉 읽어 버렸다. 그 다음장이 어떻게 전개 될지 너무나 궁금했다. 특히 나는 오르페우스 기사단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스에... 있는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사는 곳.. 궁금했다. 나는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단지 역사스페셜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소설이란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소설이 아니라 저자가 찾은 진짜 사실이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마 소설일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마지막 밝혀 지는 부분은 너무도 사실적이었다. 제 5복음서.. 나는 기독교는 아니지만 하느님의 존재는 믿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존재는 사실 의심이 많다.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더욱더 끌었던 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친구에게 권해 주었고, 그 친구도 이 책을 바로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고 난 후, 친구는 말했다. 너무 재밌더라.. 누가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적은 글.. 같다. 추리의 맛이 느껴진다. |
| 반덴베르크의 책은 일단 재미있다. 적어도 내게는. 이 책도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면 좀 짜증스럽다. 주인공의 모험과 여러 집단 관계자들의 음모와 우연이 그야말로 엉켜버린 실뭉치처럼 어지럽다. 반덴베르크 뿐만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추리소설들은 한결같이 음모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러다보니 유럽에서는 호흡 한 번 할때마다 누군가의 음모가 주위에 숨어 있는게 아닐까 의심해 봐야 할 것같다. 음모의 단골 주역은 교황청과 예수회. 역사적으로 그들이 저질러온 숱한 일들의 댓가인지...그리고 너무나 위대하고 재능이 많아 신비스럽게까지 여겨져온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책에서는 그다지 큰 역할이 없다. 미켈란젤로의 복수와 짝을 맞추려고 붙인 제목은 아닌지. 그런대로 재미는 있지만 뒷맛 씁쓸한 음모론 말고 좀더 깔끔한 추리소설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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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복수를 쓴 필리프 반델베르크의 책이다. 전작과 연장선상에 있는 내용, 제5복음서에 관한 콥트문서의 한 부분을 가지고 진실을 은패하려는 교황청과 이 문서를 통해 카톨릭을 붕괴시키고 이슬람종교를 퍼뜨리려는 이슬람세력, 지적 우월성으로 무장한 오르페우스 기사단의 세계 지배 야욕이 팽팽히 맞서는 내용이다.
주인공 안네는 의문의 교통사를 당한 남편과 같이 동승했던 여인, 그리고 남편 호주머니에서 나온 오페라 공연티켓을 보고 단순히 이 여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남편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한장의 콥트 양피지 이를 둘러싼 의문의 죽음들. 내용인 즉 2000년 전부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은밀한 방식으로 전승되어 온 비밀, 그 비밀의 전수자중 하나였던 다 빈치는 자신의 그림[장미원의 성모] 상에 의문의 그림을 그리고 덧칠을 하는데, 이에 의문을 느낀 학자가 황산을 끼얹으면서 서서히 이 사건이 떠오르게 된다.
4개의 복음서 보다 먼저 씌었고 예수 생전에 쓰인 진서로 파악되는 바라바의 복음서의 내용인 즉 바라바는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아들이며 모든 자들이 추정하는 기적과 예수 부활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사실에 근거한 내용인지 작가의 상상력인지는 모르지만 미스터리 기법에 흥미 진진한 내용들로 전작 미켈란젤로의 복수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이지만 종교계로부터 상당한 반향을 불려 일으켰을 법도 하다. X-파일을 비롯해 근래의 코리아 닷컴에 까지 대두되고 있는 음모이론을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다. 갑자기 제2의 IMF론이 대두되는 지금, 한 나라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장악하고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정말 있는 건지…. [인상깊은구절] “이것을 쓴 사람은 바라바라는 사람입니다. 바라바는 나사렛 예수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입니다. 나의 아버지 예수는 예언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집트의 마법사처럼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앉은뱅이를 걷게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
|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천재 (난 지난여름 이태리일주중 밀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에 다녀왔다. 거기서 그의 글씨와 해부그림이나 비행기 그림이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장난기 넘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표현한 글과 그림에 넋을 읽었다..그는 정말 매력적인 천재다!!!!)가 그린 그림에 얽힌 미스테리라니... 호기심에 가득차서 책을 읽어나갔다. 촛점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점점 국제적인 비밀학술 조직과 세계의 여러도시로 바뀌어 나갔다. 그러다가..이 모든 미스테리는 또다른 복음서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저자는 바라바...결국 이 사람의 존재 때문인데 ...(누구인지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책을 읽고 알아내시길...) 좀 허무했다. 마치 산 저너머의 풍경을 보고싶어 이곳저곳 길을 쑤셔가며 부지런히 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생각지않은 눈에 익숙한 앞에 나타난 남산타워를 보게 된 것과 같은 거랄까? 발상을 좋았던 것같지만, 일다보면 마치 여기저기 영화 한부분씩 다시 보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1-02-22 |
| 역사적인 그리고 전지구적인 음모론은 언제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글 역시 저자의 기본적인 의도는 독자의 이러한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역사의 재해석을 해보고자 했음이었으리라. 서구인에게 언제나 왕성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 - 4대 복음서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고 교회의 존재 자체조차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제 5 복음서의 존재- 을 제시하고 그에 얽힌 사건을 전개해나가고 있지만, 구성이나 내용면에서 볼 때 이글은 - 저자의 다른 글들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 아주 어설픈 수준에 그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특히나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와 비교해 볼 때 이 글은 너무나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수많은 바탕 지식들을 기반으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전해진다. 즉 왜 사람들이 이른바 '신비주의'(역사에 숨겨져 있을 듯한 거대한 음모)에 열광하는지, 해석의 관점에 따라(이는 주인공와 주인공의 부인의 대화 사이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길을 통해 있지도 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프 반덴베르크의 이 글은 그저 '푸코의 추'를 읽고 흉내내보려는 '보고서' 수준에 그치는 것 같다. 작가는 제 5 복음서라는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지만 그 바탕을 이룰만한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 수집 등에서는 너무 빈약한 전개를 이루고 있으며 그 개연성을 창조하기 위한 상상력도 빈곤하기 그지 없었으며, 저자 스스로도 새로운 역사를 써낼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결론을 짓자면 이 글은 '푸코의 추'만큼의 걸작도 되지 못하면서 시드니 셀던의 소설 같이 '재미'를 주지도 않으며 국내의 '퇴마록'과 같은 '상상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아주 어중간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독자가 은근히 끌리는 작품명이긴 하지만, 절대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글이다. 이러한 제목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라면 개인적으로는 엘리아트 아베카시스의 '쿰란'이나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를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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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에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미켈란 젤로의 복수를 읽고 그 책에서 얻은 작가의 치밀함을 느껴 다시 이책을 집어 들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실에서 반덴브르크 작가는 책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음이 분명 느껴졌다. 성서를 잘 모르는 나에게 교회에 관한 지식을 많이 인용함으로 해서 치밀히 연구하고 글을 썼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인 장미원의 성모는 이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등장하는 양피지 문서가 그 핵심을 이끌어 가고 있었고 안네라는 여자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작인 미켈란 젤로의 복수를 보면 인물인 미켈란 젤로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이나 미케란젤로의 성격묘사라던지 그의 사상이 많이 등장 되면서 호감을 느끼게 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부분이 조금 생략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것까지 거론하게 되면 책이 상당히 두꺼워지긴 하지만 말이다.
허나 반덴베르는 확실이 이 역사에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소설화 하였다는 점이 나를 자극 하였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까지를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이책에서 반덴베르크는 다른 사건들을 만듦으로 해서(예를들면 세집단의 갈등) 책의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점이 책을 놓을수 없도록 만들었다.
전작과 이번작품의 글을 읽으면서 약간의 공통점을 밝견하였다. (물론 이번작품이 전작의 완결이라고 보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전작과 이번 작품은 교회에 대한 반항심(?)을 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수의 부활을 사실이 아니라고 한점등이 그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교회 붕괴로 만들수 있는 사실을 쥐고 있으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묻힌다는 점이 공통으로 남는다.
이렇게 반덴베르크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을 서술해 보지만 나 또한 이 책에 재미를 느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반덴베르크는 역사적인 치밀함을 토대로 글을 썼으나 허구을 담은 소설이라는 점에서 함정에 빠지지 말기를 바라며 이책을 추천한다. [인상깊은구절] BARBARIA ATQUE RETICENTIA ADIUNCTUM BARBATI BASIS ATRII SACRI (야만성과 침묵이 로마 교황의 특징이요, 교회의 기초다.) 이 이상한 비명의 의미를 물으면 그는 뜻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개별 단어들의 첫 글자뿐이라는 것이다. BARABB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