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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술이 최고라는 주장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민중의술이 최고라는 주장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내용보기
먼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아주 자극적인 까닭에 눈길을 끕니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저자가 왜 이런 제목의 책을 내야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현직 부장판사 입장에서 의학에 대한 비판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모야야 했을 것이고, 그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민중의술이 최고라는 주장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내용보기

먼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아주 자극적인 까닭에 눈길을 끕니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저자가 왜 이런 제목의 책을 내야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현직 부장판사 입장에서 의학에 대한 비판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모야야 했을 것이고, 그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하여 책들의 개요를 크게 나누어 보겠습니다. 황종국 부장판사는 본서를 통하여 우리나라 민간에 전승되어 온 민중의술이 제도권 밖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상고사에 심취하여 국사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일부 역사를 건너 단군조선과 그리고 환국에 이르는 역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동아시아 전체와 고대 북아메리카에 이르는 거주민이 우리 조상의 계파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향후에 입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확인이 된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방법론과 자료만으로는 확인이 어렵다 하겠습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진 외적의 침입으로 역사서가 침탈 망실된 까닭에 찬란한 우리의 역사를 입증할 자료가 없음을 한탄하면서 일부 살아남은 자료인 <삼성기> <단국세기>, <북부여기> 등을 근거로 하여 이와 같은 역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국가의 역사서 등을 비교하여 검토하면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역사학과 관련된 서지학, 금석학, 고고학 등의 전문가들을 다수 육성하여 밝혀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저자의 생각이 이러하다 보니 역시 제도권 밖에서 떠도는 민중의술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이게 됩니다. 민중의술이라 함은 단식, 침술, 쑥뜸, 부항요법(건부항과 습부항), 수기요법, 민약법, 자연요법, 물요법, 음양조절법 등, 아주 다양한 술법들이 건강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술기를 의료행위로 타인에게 적용하게 되면 현행법 상 의료법을 위반하는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민중의술을 최고로 치고, 한의학을 그 다음 그리고 현대의학은 환자를 치료하는데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버려야 할 문화라고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특히 법률을 위반하는 법범행위를 판단하는 판사직에 종사하면서(저자의  이야기대로하면 3년간 의료사건 전담판사로 100여건의 의료사고를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저지른 의료사고를 접하면서 사고가 고착화된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한의학이나 민중의학에서는 의료사고를 내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민중의학은 시술이 쉬워 배우기 쉽기 때문에 아무나 배워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의학도 의료사고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도입 초기에는 치료 상의 문제가 생겨도 의사의 과실임을 환자가 입증해야만 하였습니다. 의학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일반인이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환자의 체질 등을 이유로 묻힌 사례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법개념이 바뀌면서 이제 의료과실이 의심되는 상황이 되면 의사가 자신의 과실이 아님을 입증하도록 법체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경이로운 것이기 때문에 생각한 바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 역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증거 위주로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입장이 많니 불리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과실에서 의사가 패소하는 사례가 증가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진료행위가 투명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의사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추가적인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신뢰로서 맺어져온 예전과는 달리 서로 의혹의 시선을 깔고 보는 불신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새로운 법체계의 부정적인 면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의료과실의 의미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료를 잘못하는 경우만을 떠나서 오진으로 인하여 적기에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의료과실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의료과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의학에서도 다양한 부작용이 명현반응 또는 환자의 체질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로 묻혀져 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한의사들의 오진 또는 잘못된 의료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민중의술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의술을 행할 수 있고 부작용이 없다고는 하지만 적기에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책의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저자는 입증자료가 없는 구전이나, 추상적인 내용을 담은 책자이거나, 신문기사를 인용하고 있으며, 학술적으로 인정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미 사망하여 숨이 끊어진 사람을 응급조치하여 회생시켰다는 내용(제 1권 104쪽), 신생아에서 난원공의 폐쇄와 관련하여 담즙이 좌심방에서 우심방으로 흘러 황달을 일으킨다는 내용(제 1권 186쪽) 등을 읽게 되면 단편적인 의학지식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가를 알게 해줍니다.


사상의학만 하더라도 이제마보다도 2200년 전인 44대 구물단군 시절에 이미 개념이 정리되었다는 주장인데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귀중한 정보는 우리에게만 전승되었을리 만무하고 중국의 전통의학서 어느 구석엔가 언급되었어야 하겠지만, 중의학에는 사상의학의 개념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많은 쪽을 할애하고 있는 <어느 의학이교도의 고백>의 저자 로버트 멘델존이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현대의학은 언제나 과잉 진료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라고 말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의료행위를 제한하는 각종의 제도 때문에 의사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시행하고 있는 과잉진료 행위에 대한 일갈이며 그러한 제도에 대한 비판이라는 사실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 유럽을 비롯하여 미국 등지의 일부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체의학(엄밀하게 말하면 현대의학을 대신한 의료행위로 대체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기존의 현대의학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적용을 시도하고 있는 보완의학이라는 개념이 맞는 말입니다)의 비중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마치 대체의학이 인류의 미래가 될 것처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대의학이 발달해온 서양의 전통의학 역시 과거에는 우리의 전통의학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모르는 소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의학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에서도 우리의 전통의학에서 범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의료시술이 유행을 하고 있었지만, 점차 환자의 증상 및 소견을 중심으로 하는 의학적 자료가 축적되면서 임상의학이 발전하였고(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전통의학과 유사하다), 르네상스시대에 발달하게 된 해부학, 생리학 등, 철학을 뛰어넘는 자연과학적인 관찰을 토대로 하여 질병을 분류하고 이에 대응하는 치료를 행하게 되었으며,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물리, 화학 등의 기초과학이 의학과 접목하여 다양한 치료기술이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제한된 임상의학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여 과학으로서의 의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저자는 민중의술을 중심으로 하여 의료 일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의료일원화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최선의 보건서비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통합의료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서구에서도 보완대체의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의사입니다. 그것은 과학적 사고를 토대로 하여 전인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저자가 ‘현대의학은 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고 있는 <어느 의학이교도의 고백>의 저자인 로버트 멘델존도 “새로운 의학에 종사하고 있는 새로운 의사는, 의학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의사 집단의 사고가 열려 통합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업무량에 비하여 인력이 부족한 분야가 법조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송과 관련하여 읽어야 할 서류가 산더미로 쌓이게 마련이고, 혹여 중요한 구절이라도 한 줄 놓치게 되면 관련된 사람이 부당한 판정을 받을 수도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런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만든 비판서가 중심을 잃고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일부 분야 종사자만을 변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저의 직업 탓은 아닐까하고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현대의학에 대하여 편향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재판관이 의료관련 소송에서 중심잡힌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도 저의 직업 탓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y*****2 2011.07.23. 신고 공감 2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