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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영화를 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류의 영화를 보다 보면, 요원의 영웅담이 꽤 멋져 보이기도 하지만, 종종 정의와 선의 기준이 애매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국가의 생존과 사회 시스템의 안전을 위해서는 분명 필요하지만 대의와 개인의 선(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이율배반을 깨달은 뒤로는 첩보영화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이 책은 중앙정보연구위원회, 시국정화운동본부, 그리고 중앙정보부(=중정)를 거쳐 국가안전기회부(=안기부), 그리고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의의와 역사, 필요성을 다루고 있다. 책을 보다 보면, 마치 지난 몇 년은 사라져버리고 이 책이 출간된 2015년 무렵에서 2023년으로 시간이 바로 건너뛴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지난 몇 년을 지우고 싶은 게 아니라, 그 때의 혼란스런 상황이 하나도 수습되지 않은 채 탁상공론처럼 반복되다가 - 아니 더 악화되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상황 말이다. 북한 핵이 그렇고, 안보 상황이 그렇고, 이념 대립도 그렇다. 국정원 댓글조작이니, 간첩조작이니,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깃털을 물고 뜯었을 뿐 몸통은 의외로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사안들이었고 분명한 필요에 의해 진행된 사건들로 보인다. 정치 탄압이라고 부르짖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진짜 범죄에 대한 수사일 뿐인 현재 모 정치인처럼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단체, 환경단체, 인권단체, 교육단체가 왜 자신들이 표방하는 집단의 이익이 아닌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체제 변경을 요구하는 자가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중략)...2010년 7월 라이프치히 연방재판소는 “체제변경의 자유는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단언했다. 그 누구에게도 자유를 파괴할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논리의 당연한 결과로 ‘자유의 적’에게 관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p.73)
물론 정보기관이 국민이 아닌 권력을 위해 활동한다면 분명히 위험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 때문에 정보기관을 견제하다 못해 무력화해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대응책일까? 국정원 개혁이 진정 ‘개혁’에 방점이 찍힌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논리에 입각한 기구 개편, 혹은 내편감싸기를 위한 포석인지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국가정보원의 존재를 무지성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을 능력도 없지만,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조금은 이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다들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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